[목탁소리]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에서 발견한 소중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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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5 년 7 월 [통권 제147호] / / 작성일25-07-05 13:32 / 조회28회 / 댓글0건본문
무관심이 오히려 보물을 지켜낸 힘
지난 6월 5일과 6일, 황금연휴임에도 불구하고 백련불교문화재단의 사무국장 일엄스님과 성철사상연구원 서재영 원장 그리고 동국대 불교학술원 서수정 박사와 김은진 박사 일행은 성철 종정예하의 유품인 장경각의 책들을 새로 지은 장경각으로 이운移運하기에 앞서 고심원古心院에 보관 중인 ‘큰스님의 책’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출장길에 나섰습니다.
6월 6일 아침 일찍, 일행은 백련암에 모여서 장서들을 일일이 살펴보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우선 몇 해 전 동국대 학술원에서 조사하면서 정리해 둔 책의 목록을 일일이 대조하여 확인하고, 간단하게나마 책의 먼지와 상태를 살피는 포쇄曝曬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소납은 마침 부산 고심정사에서 6월 윤달이 끼어 있는 하안거 중인 데다가 이날이 ‘백중영가 100일 천도기도일’이라서 아침부터 참가하지 못하고 저녁 5시 30분 김천역에서 만나 당일 작업 내용과 차후 진행에 대한 의견을 듣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일이 오랫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임시 거처에 보관해 오던 큰스님의 장서들을 항온항습 장치까지 갖춘 새 장경각으로 옮겨서 잘 모시는 것의 첫 단추라 큰일은 큰일이지만 저에게는 더 중요하고 감격적인 감정을 가지게 한 정말 귀한 자리였습니다. 이 일에 동행한 서수정 박사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에서 백련암까지 열 차례가 넘는 출장과 조사를 함께 진행한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집성팀의 일원입니다.
3년여에 걸친 연구 조사 결과, 동국대 학술원에서는 『성철스님의 책』이라는 도록을 출간했고(비매품), 아울러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https://kabc.dongguk.eud)’를 통해 인터넷이 연결만 되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큰스님의 소장 도서 중 고서를 열람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서수정 박사는 그 경험을 월간 『고경』에 2022년 1월부터 1년간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이라는 타이틀로 연재를 하였고, 연재를 마친 후엔 내용을 보완하고 정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이라는 부제하에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도서출판 장경각, 2025년 3월 10일 초판)라는 단행본을 출간하였습니다.
소납은 성철 종정예하의 책 이운과 관련해서 출장이 잡혔다는 소식을 상좌인 일엄스님에게 전해 듣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잠시 희끗희끗 들춰보던 서수정 박사의 책을 1페이지부터 끝까지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성철 종정예하께서 소장하고 계시던 책들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인 이야기(유성룡에서 김병룡에 이어 큰스님에게 오기까지 책과 사람과의 인연 이야기)와 더불어 불교 출판의 역사가 시대별로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큰스님께서는 ‘수다라총목록修多羅總目錄’이라는 이름의 도서목록에 장경각의 책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관리해 오셨다는 점에서 소납의 무식함이 여실히 드러난 것 같아 큰스님께 너무나도 죄송하고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큰스님께선 장경각 서고의 열쇠를 상좌들에게 넘기지 않으시고 또 그 책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 주시지 않으셨던 것이 어쩌면 이 책들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흩어지지 않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진즉에 책의 가치들을 알려주셨더라면 그것이 도리어 화근이 되어서 상좌들이 열쇠만 움켜쥐고 있지 않고 그 책들을 이리저리 흩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상좌들로 하여금 장경각 책에 대해 무관심하게 두셨기에 “이 책들은 큰스님께서 아끼시던 귀한 책이다.”라는 생각만 하고 오늘까지 열쇠만 움켜쥐고 왔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다행하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에서 발견한 소중한 자료
뒤늦게 『성철스님의 책 이야기』를 정독해 나가다가 이 책의 끝 부분에 해당하는 <4. 청년 이영주를 만나다>의 <영원에서 영원으로>(128쪽)를 읽어 나가다가 저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는 대목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편주의학입문』이라는 오래된 책에 『태고화상어록』에 수록된 「시소선인示紹禪人」과 나옹스님이 편찬한 『몽산법어』와 근대에 들어 경허스님이 편찬한 『선문촬요』 등에 수록되어 있는 「고담화상 법어古潭和尙法語」의 한문 원문을 직접 필사해 놓으신 사진(129쪽)이 실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페이지를 읽어 나가면서 소납은 마치 홍두깨로 머리를 한 대 세차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동안 일타 큰스님께서 “옛날에 너그 큰스님을 찾아가면 점심 공양을 드실 때가 있거든. 절을 드리고 앉으면 말이다, 입에 물고 계시던 숟가락을 확 빼시면서 ‘내가 대원사에 가서 탑전에서 용맹정진하다가 40여 일 만에 동정일여가 되었다 아니가!’ 하시면서 화등잔 같은 눈을 부라리시던 모습이 참 볼 만했제.” 하시던 의문을 단번에 확 풀 수가 있었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원사 탑전에서 용맹전진을 하시기 전에 이미 ‘무無’ 자 화두를 드시면서 역사 속에서 선기禪機를 깨친 제자들의 무자 화두 드는 방법을 소상히 알고 계셨기에 그렇게 열심히 정진하시고 일찌감치 눈뜬 화두일념을 그렇게 자랑하실 수 있으셨던 경지가 이제야 이해가 되어 서 박사의 설명이 감격스럽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이에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소선인에게 주는 글[示紹禪人]
“생각생각에 무자 화두를 들어라.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느 때나 옷 입고 밥 먹을 때 항상 무자 화두를 들되, 고양이가 쥐를 잡고 닭이 알을 품듯 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없다’고 하였는가를 의심하여 의심과 화두가 한 덩어리로 된 상태로 어묵동정語默動靜에 항상 화두를 들면 점차 자나깨나 한결같은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때 화두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생각이 없고 마음이 끊어진 곳까지 의심이 이 르면 금까마귀가 한밤중에 하늘을 날 것이다. 이때 희비의 마음을 내지 말고 진짜 종사宗師를 찾아 의심을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130쪽)
고담화상 법어古談和尙法語
“만약 참선하려고 할진댄 말을 많이 하지 말지니, 조주趙州의 무자無字를 생각생각에 이어서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누울 때 눈앞에 두어 금강 같은 뜻을 세워 한 생각이 만년 가게 하라.
빛을 돌이켜 반조하여 살피고 다시 관하다가 혼침과 산란에 힘을 다하여 채찍질을 할지어다.
천 번 갈고 만 번 단련하면 더욱더욱 새로워질 것이요,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밀밀密密하고 면면綿綿하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지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 같아서 마음이 비고 경계가 고요해서 쾌락하고 편안하리라.
선악의 마가 오더라도 두려워 말고 기뻐하지 말지니 마음에 증애를 내면 정도를 잃고 전도를 이룬다. 입지立志는 산과 같고 안심安心은 바다와 같고 대지大智는 해와 같아 삼천三千을 널리 비춘다.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萬里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여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뗏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시절이 이르거든 산에서 나와 밑 없는 배를 타고 흐름을 따라 묘를 얻어, 널리 인천人天을 제도하여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올라 함께 부처를 증득할지니라.”(130~131쪽)
이렇게 지리산 대원사에서 청년으로 정진하시며 동정일여動靜一如의 경계를 이루시고 용맹정진하시며 대원사에서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대원사의 주지스님이 해인사 주지스님 앞으로 “젊은 청년이 와서 한 달이 넘게 기약 없이 탑전에서 혼자 용맹정진하고 있습니다. 해인사로 가서 큰 도인이 되게 지도해 주셨으면 합니다.”라는 편지를 띄웠는데, 큰절에서도 이 편지를 의미심장하게 여기고 당시 총무국장으로 있던 효당 최범술 스님을 보내 해인사행을 권했다고 합니다.
청년 이영주는 “여기 대원사도 조용하고 참선하기 좋은데 뭐하러 일부러 해인사를 찾아가겠습니까?” 하고 고집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는 수 없이 효당스님은 “청년이 혼자서 견성성불의 길을 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요. 해인사에는 마음을 깨치신 어른 스님들이 계시니, 내가 바르게 정진하고 있는지 점검을 받는 것이 옳은 일이요. 잘 생각해 보시고 꼭 한 번 해인사로 오시오.” 하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 뒤에 마음을 바꾸어 해인사를 찾아갔는데, 효당스님은 안 계시고 당시 주지 소임을 맡고 계시던 고경스님의 안내를 받아 선방에 방부를 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해인사는 비밀히 독립운동을 하던 만당卍黨의 중심지로서 주지 고경스님, 총무 효당 최범술, 교무 범산 김법린 스님 등이 머물고 있었고, 백련암에는 해인사 조실로 오신 동산 큰스님이 머물고 계셨습니다. 주지 고경스님의 배려로 속인 신분으로 선방에서 정진을 하다가 마침내 동산 조실 큰스님의 권유와 압박으로 삭발을 하고 ‘성철 사미’의 행자로 승가에 입문을 하게 됩니다. 이어서 1936년(25세) 3월 3일에 해인사에서 하동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37년(26세) 3월 15일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수지하여 완전한 스님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무렵 큰스님은 범어사 원효암에서 하안거를 지내면서 성철스님에겐 할아버지가 되는 용성스님을 시봉하셨는데, 당시는 일제강점기라 스님들조차 서로 간에도 스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센세이[先生의 일본식 발음]’라 불렀는데, 용성스님은 손자인 성철스님에게만은 “성철 수좌, 성철스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성철스님 행장』, 44쪽, 2012)
그동안 여러 고서에 묻혀 있던 책 중에 서수정 박사의 자료 발굴로 인해 성철 종정 예하의 출가 전 ‘무자화두’ 공부 자료가 나오고, 큰스님께서 출가 후 4년(29세)에 이르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오도송悟道頌을 읊게 되셨는지 이해가 되는 소득을 얻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글을 쓰며 소납과 더불어 제자들이 큰스님 살아생전에 기획하고 출판한 선림고경총서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중 『운와기담』(27권)에 있는 ‘대혜스님의 제자인 도겸수좌가 주자朱子에게 보낸 편지글’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일이 있을 때는 일을 하고 일이 없을 때는 이 한 생각에 머리를 돌려 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한 학인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조주스님은 이에 대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화두를 가지고 오직 들기만 할 뿐 생각해서도 안 되고 천착해서도 안 되며 알음알이를 내서도 안 되고 억지로 맞춰서도 안 됩니다. 이는 마치 눈을 감고 황하를 뛰어넘는 것과 같아서 뛰어넘을 수 있을까 없을까는 묻지 말고 모든 힘을 다하여 뛰어넘어야 합니다. 만일 진정으로 뛰어넘었으면 이 한 번에 백 번 천 번 모두 뛰어넘을 수 있지만 뛰어넘지 못했다면 오로지 뛰는 일에만 몰두할 뿐, 득실을 논하지 말고 위험을 돌아보지 말고 용맹스럽게 앞으로 향할 뿐 다시는 헤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하고 주저하며 생각을 일으키면 영영 멀어집니다.”(182~183쪽)
무자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선객禪客들이라면 성철스님께서 필사해 두신 소선인에게 주는 글, 고담화상법어와 대혜스님의 상수제자였던 도겸 수좌가 주자에게 보낸 글 등을 죽비 삼아 자신을 경책하며 정진하여 하루빨리 견성즉불하시길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이번 호 글의 마침표를 찍는데, 성철 종정예하께서 문경 대승사에 계실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미니계를 주셨던 세주묘엄 스님의 전시회 소식이 들려와서 알려드립니다. 비구니 승가 교육에 온몸을 던지신 묘엄스님의 발자취를 찾아 해를 머리에 이고 봉녕사로 걸음을 옮겨보시는 것도 무더위를 이기는 묘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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