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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와 불교윤리 ]
전통불교와 참여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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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  2025 년 11 월 [통권 제151호]  /     /  작성일25-11-05 10:35  /   조회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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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이름이던 제인 구달(Jane Goodall) 박사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자연의 부름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간은 침팬지보다 조금 더 지적인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그녀의 동물학적 명제는 과학적임과 동시에 도덕적이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메시지 속에서 우리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모든 유·무형의 생명체들이 서로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야 할 근거와 이유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1.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Jane Goodall, 1934~2025) 박사. 2017년 만해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 위키백과.

 

그녀는 이미 생전에 ‘과학의 언어’와 ‘도덕의 언어’가 서로 만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종교철학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주1) 그녀의 평화주의적 환경보호운동의 의미를 곱씹어보다가 문득 불교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눠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여불교의 등장배경과 개념정의

 

한때 ‘사회참여불교(Socially Engaged Buddhism)’라고도 알려졌던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는 아시아의 불교권 국가나 서구의 불교 공동체들에서 발견되는 현대불교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참여불교’라는 이념이나 성향은 특정한 지도자나 일정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사회가 직면하게 된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어쩌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 대사회적 적응의 일부이기도 할 것이다. 

 

‘참여불교’는 불교 고유의 신념, 가치, 관념, 세계관, 수행을 바탕으로 국가나 공동체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제반 문제들의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비폭력적인 불교사회운동이라는 공통의 분모를 가지고 있다.(주2) 다만 지역마다 여건이나 상황이 다른 만큼 조직이나 활동의 형태가 다소 상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주3)

 

전후세대의 참여불교도들에게 사회적 고통은 인도의 카스트제도, 베트남 전쟁, 스리랑카 농촌의 빈곤, 중국의 티베트 정복과 정치적 억압 등에서 발견되고 또 표출되었다. 이러한 지역적 문제의식은 점차 산업사회의 구조적 병폐, 개발도상국의 민족전쟁, 세계 수준의 경제착취, 초국가적 소득 불평등, 환경생태적으로 취약한 공동체 및 자연계의 생명일반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등 전 영역으로 확장, 전개되었다.

 

사진 2. 틱낫한이 2007년 로스앤젤레스 맥아더 공원에서 열린 평화 걷기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걷고 있다. 사진: Alamy Stock Photo.

 

이런 상황에서는 특히 어떤 개인의 부도덕한 행위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제도화와 비인격화된 힘의 작동을 직시할 필요가 있겠다. 이즈음 불교도들 사이에서는 자신을 포함한 사회적 고통의 당사자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정서적 유대감이 생겨났다.(주4) 이는 참여불교의 씨앗이 싹트게 된 배경으로도 볼 수 있겠다.

 

공통의 가치들

 

참여불교란 용어는 틱낫한(Thich Nhat Hanh)이 베트남 전쟁의 와중에도 불교 사찰들이 이끌었던 비폭력적인 반전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주5) 오늘날 참여불교의 범위는 봉사에 기반을 두거나 마음챙김(mindfulness) 수행 등에 바탕을 둔 ‘약한 목적(soft-end)’의 참여로부터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강한 목적(hard-end)’의 헌신으로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는, 하나의 불교사회운동 ‘연속체(a continuum)’로 파악되고 있다.(주6) 

 

일부의 불교활동가들은 이 용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기도 했지만,(주7) 그들의 관심사와 문제해결 방식이 참여불교의 정신과 사실상 다르지 않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참여불교운동 진영에 속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크리스토퍼 퀸(Christoper Queen)은 불교윤리행동의 네 가지 중첩되는 길(path)들인 ‘계율(discipline)’, ‘덕목(virture)’, ‘이타주의(altruism)’, ‘참여(engagement)’ 중에서 마지막 항목인 ‘참여’를 참여불교운동의 가장 독창적인 공헌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사실 불교윤리의 네 가지 길은 자신을 ‘사회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활동가들에 의해 폭넓게 공유, 실천되고 있는 핵심 가치들이기도 하다. 이 네 가지 길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계율(살생과 도둑질, 성적 비행, 해로운 말과 취하게 하는 것을 삼감); 덕목(자애, 자비, 기쁨, 평정심, 관대함, 도덕성, 참을성, 활력, 집중, 지혜 등의 함양); 이타주의(사회의 이익을 위해 좋은 일하기); 참여(인간의 고통과 환경의 손상에 대한 사회적 원인과 제도적 원인을 지적하는 집단적 행동)가 곧 그것이다.(주8)

 

사진 3.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 사진: 위키백과.

 

이와 관련하여 불교의 제1목적인 “깨달음(열반)에 이르는 수행법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고통의 뿌리로부터 완전한 해방의 길에 이르도록 돕는 것”과 제2목적인 “불교적 가르침의 실천과 결합되어 나타나는 이익의 힘(공덕)을 활용함으로써 개인과 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 사이에서 어느 쪽에 방점을 찍는 것이 더 불교적인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뜨거운 논란이 진행중이다.(주9)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두 번째 목적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대중의 인식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불교를 비롯한 종교 소비자들의 개인행복 추구경향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교가 저 언덕에 대한 동경뿐만 아니라 이 언덕의 문제해결도 다급하게 요구받고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주10)

 

시대적 환경의 변화와 함께 참여불교의 공유가치들은 점차 현대의 인권 개념과 사회정의, 비폭력, 집단항의, 환경소송, 평화만들기 또는 휴전 제의, 제도개혁 및 체계적 사회변화의 요청 등과 뒤섞이게 되는 가운데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속으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이런 움직임들은 고유의 불교사상과 수행의 범위 안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참여불교라는 새로운 불교현상은 아시아의 불교가치와 서구의 민주제도가 상호 수렴, 발전, 전개되고 있는 과정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폭력성

 

참여불교라고 불리는 단체나 조직들은 기본적으로 비폭력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물론 불교의 역사에서 폭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스리랑카와 미얀마 정부가 주도했던 내전과 인종청소 캠페인들은 역사학자들이 참여불교의 특징으로 규정했던, 비폭력적인 패러다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인종적이고 민족적인 자부심이 반드시 폭력을 수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진 4. 슐락 시바 락사(Sulak Sivaraksa, 1933~). 태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참여불교 운동가.

 

많은 참여불교도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인종적 유산 및 종교적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만의 자부심과 미래적 비전을 당당하게 표명했지만, 이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예컨대, 암베드카가 아쇼카 대왕의 법륜과 사자 도시(lion capital) 인도의 국기와 화폐의 현대적 상징으로 삼자고 제안했을 때; 마하 고사난다가 시민들에게 킬링필드였던 은신처로부터 나오라고 촉구하기 위해 캄보디아의 거리를 걸었을 때; 슐락 시바 락사가 태국이 아니라 불교도 샴족(Siam)의 종교적 가치를 고수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나 체포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참여불교도들은 그들 나름의 평화주의적인 방식으로 깊은 애국심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행위동기는 국가와 진리에 뿌리를 두었으며, 그들의 실천행동은 그야말로 비폭력적이었다. 일반적으로 불교학자들은 ‘참여불교’, ‘사회적으로 참여하는 불교’, ‘불교·해방·운동’ 등을 불교의 폭력성과 연관 짓지 않는다. 이처럼 폭력적인 참여불교는 처음부터 하나의 모순어법(oxymoron)으로 인식될 만큼 비폭력적인 가치추구를 지향하는 불교사회운동으로 각인되어 왔다.(주11)

 

참여불교의 미래모습

 

최근에는 다소 공격적인 참여불교의 형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중인 ‘절멸·반란·불교도들(Extinction Rebellion Buddhists; XRB)’이란 환경단체는 지질학적 위기의 시대인 ‘Anthropocene’에서는 열반지향의 수행법을 시대감각에 맞춰 과감하게 재해석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환경재앙들을 극복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우리 모두에게 주문한다.

 

그들에 따르면 예컨대, 불교의 원리와 명상 및 자비는 인류가 직면한 지구적 차원의 환경위기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배려의 정치학(politics of care)’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현대적 의미의 종교 역할을 다하는 불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주12) 절멸·반란·불교도들은 예상되는 이상기후를 예방하기 위한 불교적 지혜를 발휘하는 과정에서 ‘전통불교’와 ‘참여불교’는 고유의 영역을 오히려 확장하는 역사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진 5. 영국의 환경단체 ‘절멸·반란·불교도들(Extinction Rebellion Buddhists; XRB)’의 집회 현장.

 

여기서도 보듯이 참여불교는 앞으로도 계속 시대적 요구들을 묵묵히 반영하면서 끊임없이 재정의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참여불교가 표방하고 있는 비폭력적인 방식의 사회참여는 불교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려는, 새로운 버전의 불교가 될 자양분임이 분명하다. 붓다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 잠시 사회참여를 망설였지만 결국 45년 동안 부지런히 걸으시면서 설법여행을 하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붓다의 제자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일대사인연의 행운을 누리게 되었음을 잠시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주>

(주1) Peter Singer and Suzi Jamil, “Remembering Jane Goodall”, https://boldreasoningwithpetersinger.substack.com/p/remembering-jane-goodall, 검색일자 2025.10.5. ; Estella Elpers, “Jane Goodall’s Integration of Science and Spirituality”, Line by Line: A Journal of Beginning Student Writing, vol.11, Iss.2, Article 17(April 2025), pp.1~6 참조.

(주2) Sallie B. King, “The Ethics of Engaged Buddhism in Asia”, Daniel Cozort and James Mark Shields, eds., The Oxford Handbook of Buddhist Ethics(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8), pp.479~480. 

(주3) 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참여불교운동에 대해서는 Sallie B. King(2018), pp.480~481; 서구의 불교공동체에서 목격되는 참여불교적 성격의 활동들에 대해서는 Christopher Queen, “The Ehics of Engaged Buddhism in the West”, Daniel Cozort and James Mark Shields, eds.,(2018), pp.501~528 참조.

(주4) Christopher Queen(2018), pp.502~504. 이어서 저자는 서구에서 일어난 다양한 형태의 참여불교들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녀는 각종 마음챙김 수행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명상산업의 상업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특히 불교명상가로도 알려진 스티브 잡스의 이율배반적 행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잡스의 입장은 결코 ‘참여불교적’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같은 논문, pp.510~525 참조.

(주5) Christopher Queen, “Engaged Buddhism at Sixty-Five: Nuancing The Consensus”, Journal of Buddhist Ethics, vol.30(2023), p.77

(주6) 우리나라의 참여불교운동에 대해서는 박수호, “한국불교의 사회참여 역사와 성찰”, 『월간 불교문화』(2024년 11월호); 이병욱, “근현대 한국불교의 사회참여 사상의 변화”, 『종교와 사회』(2010년 창간호) 등을 참조할 것. 

(주7) Christopher Queen(2023), pp.77~78.

(주8) Christopher Queen(2023), pp.72~73. 

(주9) John Makransky, “Positive and Problematic Aspects of Modernistic Engaged Buddhism in Light of the History of Buddhist Adaptation to Cultures”, Journal of Buddhist Ethics, vol. 32(2025), pp.130~157. 

(주10) 참여불교를 둘러싼 더 자세한 이념적 논쟁에 대해서는 André Laliberté, “‘Buddhism(s) for this World’ and ‘Engaged Buddhism’:Some Key Differences”, Journal of Social Innovation and Knowledge, vol.1(2024), pp.44~64 참조.

(주11) Christopher Queen(2023), pp.74~75.

(주12) Zoe Zielke, “Contesting Religious Boundaries with Care: Engaged Buddhism and EcoActivismin the UK”, Religions, vol.14(2023), p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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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결
동국대 국민윤리학과 졸업(문학박사). 영국 더럼 대학교 철학과 방문학자 및 동국대 문과대 윤리문화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로 있다. 역저서로는 『불교윤리학 입문』, 『자비결과
주의』, 『불교의 시각에서 본 AI와 로봇 윤리』 등이 있고, 공리주의와 불교윤리의 접점을 모색하는 다수의 논문이 있다.
hnk@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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