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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름다운 불교의례 ]
번뇌를 부수고 악귀를 조복시키는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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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  /  2025 년 12 월 [통권 제152호]  /     /  작성일25-12-04 11:01  /   조회2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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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번幢幡 ❶ 

 

야외에서 의례를 봉행할 때면, 거대한 괘불과 그 아래 공양물을 갖춘 재단齋壇은 하늘과 산을 배경으로 대자연의 성전聖殿이 된다. 불단 좌우에는 묵직한 번幡과 당幢이 포진하고, 허공을 가로질러 크고 작은 오색의 종이 번이 바람에 나부끼며 장관을 이룬다. 도량을 감싼 번들은 공동체의 소망을 펼쳐나갈 종교 축제의 위용과 환희로움을 느끼게 하는 소중한 요소이다.

 

의례의 축제성을 고조시키는 요소

 

번은 불보살의 위덕威德을 나타내고 도량道場을 장엄하는 깃발이다. 의례에 청해 모시는 참배 대상의 명호를 주로 쓰며, 불화나 길상 문양을 그려 넣기도 한다.

『아함경』에 “바라문이 인간에 이기는 법을 깨달았을 때 옥상에 번을 세워 이를 사방에 알렸다.”라는 내용이 있고, 『유마경』에서는 “외적을 물리쳤을 때 승번勝幡을 달았듯이 도량의 마귀를 항복시키는 것도 같은 뜻이니, 불교에서 승번은 항마降魔의 표시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고대 인도에서 전쟁의 무훈武勳을 드러내고자 사용하던 번을 불교에서 수용해, 법왕인 부처가 모든 번뇌를 부수고 악귀를 조복시킴을 나타내게 되었다. 

 

사진 1. 삼화사 수륙재의 상단 번들.

 

따라서 불교의 번은 도량을 외호하는 결계結界의 의미로 출발하여, 오늘날 의례에서 빠질 수 없는 장엄 용구로 자리 잡았다. 규모 있는 전통 사찰에는 직물로 조성된 번이 소중한 유물로 전승되고 있다. 오방색 비단에 글씨와 갖가지 문양을 수놓고, 유소流蘇라 불리는 매듭과 술을 늘어뜨려 더없이 화려하다.

 

번의 형태는 긴 장방형으로, 각 부위의 명칭을 인간의 신체에 대입하여 부른다. 명호를 쓴 몸판을 번신幡身이라 하고, 삼각 모양의 위쪽을 번두幡頭, 길게 늘어뜨린 아래쪽을 번족幡足, 양쪽의 긴 면을 번수幡手라 부른다. 이들 대번大幡은 괘불 좌우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상단의 위용을 드러내며 장관을 이룬다. 조금 작게 만든 여러 종류의 번은 행렬에 앞장서서 의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진 2. 진관사 수륙재의 다양한 번들.

 

당일에 쓰고 태우는 종이 번 또한 정성껏 만든다. 근래에는 종이 장엄을 조성하는 스님이 드물어 대량 생산하는 번을 쓰기도 하지만, 큰절에는 여전히 필체 좋은 스님이 번을 비롯해 방榜과 소疏를 쓰는 경필經筆 소임을 맡고 있다. 예전에는 큰 재가 들면 경필 스님과 지화 만드는 스님들을 모시고, 트럭으로 한지를 들여와 대방에 펼쳐놓은 채 몇 달에 걸쳐 차근차근 모든 장엄을 직접 만들었다.

 

사진 3. 청련사에서 번을 조성하는 스님.

 

번이 평면의 장방형이라면, 당幢은 입체적으로 만들어 장식물을 늘어뜨린 깃발로 장대에 매달아 썼다. 그러나 이른 시기부터 번과 당을 혼용하고 ‘당번幢幡’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번의 개념에 당을 포함하기도 한다. 근래에는 대형 의례에서나 당을 볼 수 있고, 대개 불단의 양쪽에 하나씩 두게 된다. 팔각·원형의 입체적인 틀을 만들어 오색으로 단청한 다음, 비단과 장식물을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화려한 모습을 지녔다. 

 

사찰 입구에 세우는 당간幢竿은 당을 거는 기둥·장대이다. 그런데 불전 안에 두는 소형 당간을 ‘당’이라 하여, 당간이 당으로 불린다. 이에 당간의 머리인 간두竿頭 모양에 따라 이름을 붙여서 용머리 모양이면 용두당龍頭幢, 여의주를 장식하면 여의당如意幢·마니당摩尼幢이라 부른다.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당간 몸통에 불보살을 새긴 것을 불당佛幢이라 하고, 다라니를 새기면 경당經幢·다라니당이라 하였다.

 

사진 4. 수락산 흥국사 감로탱의 번幡과 당幢. 사진: 흥국사 소장.

 

당과 관련해 수행이 깊어진 스님이 전법傳法 스승을 정해 그 법맥을 이어받는 것을 ‘건당建幢’이라 부른다. 건당은 ‘건립법당建立法幢’이라 하여 불법의 깃발을 세운다는 뜻을 지녔다. 불법의 일가一家를 이루었을 때 사찰 앞 당간에 깃발을 달았던 데서 유래한 말이다. ‘장대에 깃발을 다는 것’은 무언가를 알리거나 내세우기 위한 보편적 행위이다. 따라서 불교의 깃발은 불법의 위대함과 환희로움을 드러내는 의미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저마다의 마음속에 나부끼는 소망

 

불교에서 번을 건 초기 기록은 석가모니의 열반 이후에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기록은 경전과 도상에서 나란히 나타나며, 사리탑을 장엄하는 용도가 주를 이룬다. 각각의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벽돌을 모아 탑을 쌓았는데 크기가 모두 1장 5척이 되었다. 금 항아리에 사리를 담아 그 속에 넣고, 장대를 세워 법륜을 표시한 뒤 그 위에 비단을 달았다.

 

부처님의 입멸 전후를 상세히 다룬 『반니원경般泥洹經』에 기록된 내용이다. 높은 전탑을 조성하여 사리를 모신 뒤 장대에 법륜을 나타내고 비단 번을 매달아 부처님을 모신 성소聖所임을 드러내었다.

 

사진 5. 마투라 출토 부조에 새겨진 번. 보스턴박물관 소장(좌). 사진 6. 칠라스 유적 바위에 새겨진 번. 사진: 유근자(우).

 

대표적인 도상으로는 기원전 2세기경에 제작된 인도 북부의 마투라Mathura 출토 부조를 꼽는다. 내용을 보면, 보리수로 둘러싸인 성소를 중심으로 상단·하단의 좌우에 각각 2개의 번이 깃대에 매달려 휘날리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번의 비중이 크고 문양이 섬세하여, 번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불탑의 위용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불교의 번은 중앙아시아로 전파되고, 5∼6세기 무렵이면 끝을 가른 ‘제비 꼬리형 번’이 등장한다. 면적을 둘로 나누면 세찬 바람에 잘 견딜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인더스 강변 칠라스 유적의 바위에 새겨 놓은 ‘탑 위의 나부끼는 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중국으로 건너온 번이 당나라에 이르면, 번신·번두·번미를 갖춘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특히 중국불교에서는 4세기 이후 황실과 서민의 구분 없이 발원을 위한 번이 성행하였다. 사원에서 주로 장엄 번을 만들었다면, 신도들은 재난을 막고 복을 빌고자 종이로 공양 번을 만든 것이다.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 “번과 당이 걸린 모습이 마치 숲과 같다.”, “공주·귀족이 한 번에 쓰는 번의 양이 많을 때는 2천 개에 달했다.”라고 한다.

 

사진 7.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물에서 나온 노리개 번.

 

이와 관련해 『유마경』에 “항마의 상징인 번을 세우면 복덕을 얻어 장수하고 극락왕생하게 된다,”라고 하였고, 『약사경』에는 ‘속명번등법續命幡燈法’이라 하여 7층의 등을 밝히고 오색의 신번神幡을 걸어 수명 연장을 기원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번을 만들어 세우는 일이 불화·경전 등을 조성하는 공덕과 다름없이 여겨졌고, 불전에 올린 뒤 태우는 종이 번 또한 등·꽃·향과 같이 소중한 공양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552년에 백제 성왕이 일본으로 불교를 전할 때 불상·경전과 함께 번개幡蓋를 보낸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이후 신라와 고려의 여러 기록에 번을 조성한 내용이 나오나, 소재의 특성상 당시의 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근래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복장물에서 고려 후기의 노리개 오색 번이 발견되었다. 약사불 복장유물인 점으로 보아 앞서 『약사경』에 나오는 속명번등법과 관련된 채번彩幡일 가능성이 크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갖가지 번을 걸고 의례를 치른 기록이 실록과 감로도 등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효령대군 이보李補가 성대한 수륙재를 한강에서 칠 일간 개설하였다. …임금이 향을 내려주고, 삼단三壇을 쌓아 승려 1천여 명에게 공양을 올리고 보시했으며, 길 가는 이에게까지 음식을 대접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나부끼는 번과 일산日傘이 강을 덮고 북소리·종소리가 하늘을 뒤흔드니, 도성의 선비와 아녀자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개국 초기인 1432년(세종 14), 배불정책이 강행되는 가운데 불심 깊었던 효령대군에 의해 한강에서 7일간 수륙재를 연 기록이다. ‘번과 일산이 강을 덮을 정도’라 했으니 당시 대형 의례에 얼마나 많은 번을 장엄했는지 알 수 있다. 도성의 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며 마치 잔치 같은 분위기를 읽을 수 있어, 위축된 불교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을 듯하다.

그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16세기 초, 신하가 중종에게 상소로 올린 내용 가운데 산중 사찰에서 큰 재를 봉행하는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사진 8. 아랫녘 수륙재의 번들.

 

당개幢蓋를 만들어 산골에 이리저리 늘어놓고, 또 시왕十王의 화상을 설치하여 각각 전번牋幡을 두며, 한곳에 종이 100여 속束을 쌓아두었다가 법회를 행하는 저녁에 다 태워 버리고는 ‘소번재燒幡齋’라고 부릅니다.

 

당과 번을 무수히 걸어놓고 재를 치른 다음, 마지막에 수북한 종이 뭉치를 태우면서 이를 ‘소번재’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로 보아 종이 뭉치는 번과 지전 등인 듯하다. 지금은 대량의 번을 공양물로 조성하지 않지만, 중국의 공양 번과 같은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을 가능성을 짐작해 보게 한다. 이들 공양 번은 도량에 걸지 않지만, 중생의 마음속에 저마다 깃발처럼 나부끼는 소망을 담고 있을 법하다. 

 

바람에 나부끼는 번, 바람처럼 사라지는 번

 

번의 종류는 다채롭다. 의례에 거는 번 가운데 불번佛幡은 대번大幡으로 조성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대표적인 불번으로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을 나타내는 삼신불번三神佛幡을 모신다. 

또한 동서남북과 중앙의 모든 공간에 부처님이 존재한다는 상징적 표현으로, 방위불 개념의 오방불번五方佛幡을 모신다. 오방불 개념은 경전과 신앙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동방 약사여래, 남방 보승여래寶勝如來, 서방 아미타여래, 북방 부동존여래不動尊如來 등을 모시며, 방위에 따른 청·적·황·백·흑의 오색으로 각 번을 구성한다. 이외에 칠여래번을 모시기도 한다. 삼불·오불·칠불 등으로 묶여 있지만, 존상尊像과 마찬가지로 각각 번을 조성하니 불단의 좌우에 포진한 번들의 위용은 장관을 이루게 마련이다. 

 

사진 9. 진관사 수륙재 시련 행렬의 번들.

 

인로왕보살번은 대표적인 시련용 번으로,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을 상징한다. ‘길[路]을 이끈다[引]’라는 뜻을 지녔듯이, 수륙재·영산재 등에서 영가를 서방정토로 이끌어주는 역동적 역할을 하는 번이다. 또한 삼보와 사부대중과 일체중생에게 의례를 열게 된 목적과 발원을 널리 알리는 보고번普告幡, 국가의 안녕과 불법의 존속을 기원하는 축상번祝上幡 등이 있다. 

 

이러한 직물 번뿐 아니라 종이로 만들어 쓰는 번은 더욱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삿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다라니를 쓰거나 그림으로 그려서 사방에 걸어두는 항마번降魔幡이 있다. 항마번 그림은 십이지를 나타내는 열두 동물이나 신장상 등을 거는데, 인쇄한 것을 주로 쓰며 직물 번으로 만들어 두기도 한다.  

 

사진 10. 작약산 예수재의 시왕과 권속의 번들.

사진 11. 진관사 수륙재의 항마번들.

 

가장 많이 거는 종이 번은 불보살과 신중의 명호를 쓰거나 경전 구절을 쓴 번들이다. 또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번으로 설판재자를 드러내는 시주번施主幡,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는 산화락번散華落幡 등이 있다. 

 

몇 해 전 통도사 땅설법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화려하고 여법한 삼신불번을 만났다. 아름답고 섬세하게 오린 가사袈裟를 두르고 닫집까지 갖춘 모습이었는데, 한지로 만들었기에 법회를 마치면 모두 태워질 것이었다. 

 

사진 12. 땅설법에서 사용한 삼신번.

 

땅설법 법주인 다여 스님은 “예전 노스님들은 한 번 사용하더라도 불번 조성에 지극정성을 다했다. 번신幡身을 둘러싼 사방의 장식을 ‘가사’라 불렀다.”라고 하였다. 명호를 쓰는 부분을 ‘번의 몸’이라 부르니, 사방의 요소를 머리·다리·팔이라는 표현 대신 이를 감싸는 가사로 본 것이다. 더없이 아름답고 여법한 번이 법회를 마치면서 흔적 없이 사라졌으니, 바람이 되어 어디선가 중생을 지켜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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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래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박사(불교민속 전공).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 조계종 성보보존위원. 주요 저서로 『공양간의 수행자들: 사찰 후원의 문화사』, 『한국불교의 일생의례』, 『삼화사 수륙재』,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등이 있다.

futuren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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