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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불교는 지금]
이윤 대신 공덕을 나누는 태국의 아속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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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  2025 년 12 월 [통권 제152호]  /     /  작성일25-12-04 13:21  /   조회2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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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 태국의 방콕엔 화려함의 극치미를 뽐내는 왓포, 왓아룬, 에메렐드 사원 등 400여 개의 불교 사원이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태국은 전국민의 90% 이상이 불교를 신앙하고, 전국에 3만 5천여 개의 사원이 있는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불교국가다. 태국인들에겐 불교가 종교를 넘어 생활 그 자체여서, 태국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일생에 한 번 이상은 머리를 깎고 짧게는 3주, 길게는 3달 정도씩 출가한다. 

 

동남아 대표적 불교국가 태국

 

태국불교는 달라이라마의 티베트불교, 마하시, 고엔카 등의 미얀마불교와 틱낫한의 베트남불교, 스즈키 다이세쓰의 일본 선불교 못지않게 근현대 서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아찬 사오(1860∼1942)와 태국불교의 숲 속 수행전통을 부활시킨 아찬 문(1870~1949), 아찬 마하부와 냐나삼판노(1913~2011), 아잔차(1918~1992) 등 근현대 고승들이 수행 전통을 되살렸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서양인 제자인 아잔 수메도, 잭 콘필드, 조셉 골드스타인, 아잔 브람 등에 의해 마음챙김을 전세계에 전해왔다. 

 

사진 1. 태국 방콕의 화려한 사찰 왓아룬(Wat Arun)의 전경. 사진: agoda.

 

그러나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던가. 불교국가 태국에서 타종교와 경쟁없는 사실상 독식은 주류 불교의 나태와 부패를 낳았다. 방콕의 황금사원들에 가면 빨래줄에 지폐 수천 장을 만국기처럼 걸어 놓는 모습을 언제든 쉽게 볼 수 있다. 몇 개월 전엔 태국에서 유명 사찰의 주지 등 고위급 승려 9명을 유혹해 은밀한 관계를 맺고 100억 원대에 달하는 거액을 갈취해 온라인 도박으로 탕진한 위라완이란 35세 여성이 붙잡혀 세계적인 가십기사가 됐다.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정신적인 기둥인 불교와 승려의 타락과 부패는 곧 국가적 재난을 앞당길 수 있다. 이때 태국불교에서 기성종교에 맞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게 아속공동체다. 아속은 근심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를 말한다. 고통이 없는 해탈의 경지에서 누리는 평화와 기쁨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아속공동체는 청년시절 태국 연예계 스타로서 누리던 명예와 부를 버리고 출가한 만 30세의 청년 몽콘 락퐁(Mongkhon Rakpong)에 의해 1974년 탄생했다. 법명 포티락(1934~2024) 스님이 무욕과 청빈, 자급자족을 하기 위해 설립한 아속공동체는 태국에 흩어져 있는 9개의 공동체 마을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진 2. 아속공동체의 설립자 포티락(1934~2024) 스님.

 

아속공동체는 붓다가 말한, 고통 없는 평화를 위한 무욕과 공덕을 삶에서 실천하는 드문 단체다. 주류 불교의 타락을 답습하지 않고 비판하면서 전혀 다른 불교적 삶을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에 감명 받은 많은 이들이 신불교운동이라고 할 만한 아속공동체에 합류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청백리로 유명한 잠롱 스리무앙 방콕시장이었다. 군 장성 출신으로 출세 지향적이던 정치인 잠롱 스리무앙 전방콕시장은 포티락 스님과 아속공동체원들의 삶에 감동을 받아 무소유·무욕의 삶을 방콕시장이 되어서도 실천했다.

 

시사아속공동체에 가 보니, 20여 만 평의 드넓은 마을에 공동 홀과 공동 식당, 학교 등이 모여 있는 센터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의 집들과 공장, 학교, 숲, 논밭이 방사선으로 뻗어나가 있었다. 

 

사진 3. 스님이 기거하는 쿠티.

 

시사아속 게스트하우스 2층에서 내려다보면 허브 약을 만드는 간이 공장과 그 약을 파는 가게가 나란히 있었다. 또 유치원과 초등, 중고등, 기술학교 등 학교가 3개 있었다. 새벽이면 유치원생까지 빗자루를 들고 나와 거리를 쓸거나, 공용 강당과 화장실을 청소했다. 노동을 강제하지 않지만 모두가 스스로 일손을 거들었다. 공동체 가장자리엔 드럼과 기타, 북 등을 갖춘 야외 음악실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자주 그곳에 모여 신기를 발산했다. 

 

그런데 모든 공동체원이 그렇게 자유분방한 건 아니었다. 하루 한 끼만 채식을 하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스님과 시카매트(사복 입은 여성 독신수도자)들이 있었다. 한번은 학생들이 농장에 간 데서 20여 명의 아이들을 따라가 보니, 교장 선생님인 시카매트가 큰 밭에서 홀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 말 없는 실천적 삶이 아이들의 모델이 되어 주는 듯했다. 시카매트는 출가 비구니가 아니었고 유니폼을 입지도 않았는데, 맨발로 다니며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

 

부니욤(공덕주의)을 추구하는 아속의 경제

 

공동체 정문 옆엔 시사아속에 속하는 대형 마트가 있다. 시사아속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이나 시사아속 공장에서 만드는 의약품이나 세제 뿐 아니라 외부에서 온 의류나 생필품도 판매했다. 이 대평마트는 싸기로 유명하다. 아속의 경제 철학이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것이니 너무도 독특하다.

 

사진 4. 아속공동체 소속 스님들의 탁발 풍경.

 

아속공동체는 ‘부니욤 네트워크’로도 불린다. 그들의 경제 원리가 ’부니욤(공덕주의)’이다. 아속공동체의 경제 행위는 이윤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서다. 즉,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원가와 판매가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 원가를 공개하고, 농산물은 원가 이하에 팔거나 거저 주기도 한다. 명절 때는 모든 식품을 1바트에 판매한다. 1바트는 우리 돈으로 30원가 량으로, 타이에서도 과자 하나 사먹기 어려운 푼돈이다. 아속은 이윤을 높이려 할수록 부도덕해지고 영적 손실을 피할 수 없는 반면, 자기의 탐닉을 최소화할수록 ‘영적 이득’이 증가한다고 여긴다.  

 

아속은 갈망과 혐오에서 벗어나는 실천을 가장 중시한다. 시사아속 입구엔 ‘의·식·주·약’이라고 쓰인 입간판이 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아속이 생산하는 것 가운데 소비주의에 부화뇌동하는 제품은 없다. 하나같이 삶의 필수품뿐이다. 사람들은 허영을 채우려 소비를 늘리며 생명을 죽이고 지구를 파괴하고 있지만 아속인은 많이 팔아 많이 남기고 많이 소비하려는 갈망에서 벗어나는 소박한 삶을 몸소 실천한다. 공동체원들은 자신의 생산품들로만 삶을 영위하는 ‘자족경제’를 꾸린다. 그리고 그 혜택을 고을 이웃과 나눈다.

 

사진 5. 탁발 후에 공양하는 모습.

 

아속공동체 안엔 밖으로 직장에 다니는 사람 등 다양한 이들이 함께 하고 있지만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스님들과 시카매트, 이에 동조하는 많은 공동체원이 있다. 그래서 부니욤 경제가 실현된다. 이토록 싼 가격으로 물건을 공급하고 봉사하면서도 공동체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 전체적으로 더 커지고 풍요로워지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로 아시아 전체가 기우뚱할 때조차  아속은 조금도 장애 없이 발전해 자족 경제의 힘을 보여줬다. 부니욤 네트워크는 현재 30개의 공동체와 9개의 학교, 6개의 채식레스토랑, 4개의 유기농비료공장, 3개의 쌀 방앗간, 2개의 허브 의약품 공장, 하나의 병원, 160헥타르의 농장을 갖추고 있다. 

 

 시사아속의 아침은 새벽 5시에 시작됐다. 그 아침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로 길을 쓸며 청소하는데, 그 노동의 현장엔 스님들도 누구나 다름없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출가자들은 직접 마당을 쓸고, 돌을 나르고, 건물을 고치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남방 불교권인 타이에서 통념상 출가자들이 일을 하는 것은 상상키 어려운 일인데, 이들은 관습에서 벗어나 매사 솔선수범하고 있다.

 

사진 6. 젊은 시절의 포티락.

 

아속은 스님과 일반인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5개의 마을을 비롯한 아속공동체엔 갈색 승복을 입은 출가 비구와 비구니 100여 명 외에도, 승복을 입지는 않지만 무소유를 실천하며 헌신하는 독신 여성들인 30여 명의 시카매트, 또 가족들과 함께 아속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아속의 공장에서 일만 하는 노동자들, 밖에서 살지만 아속에 교사로 참여하는 사람들, 아속에서 살지만 직장은 밖으로 다니는 사람들, 이토록 다양한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포티락이 태국에서 기성불교에 대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방법은 철저한 계율과 무욕, 무소유적 삶이다. 포티락은 애초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어렸을 때 부친은 가족을 버리고 가출했다. 어머니는 열 살 때 세상을 떴다. 그 아래로 6명의 동생이 있었다. 소년 가장인 그에겐 험진 세파를 홀로 뚫고 나가야 하는 무거운 짐이 지워졌다.

 

최고 연예인의 삶을 버리고 출가한 포티락

 

그는 온갖 일을 하며 동생들을 돌봤다. 예술가가 되려는 자신의 꿈도 포기하지 않았다. 예술대학을 마치고 애초 그림을 그렸던 그는 작곡가와 티브이 진행자로 데뷔했는데, 단기간에 타이 최고가 됐다. 그는 방콕에서 호화로운 주택에서 살며 최고급 차를 굴렸다. 근근이 생계를 이어온 6명의 동생도 그의 돌봄으로 부유한 삶을 누렸다. 그런데 타이 안방에서 스타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어느 날, 그는 머리를 밀어버렸다. 그리고 채식주의자가 되어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부와 명성과 안락이 왕자 고타마 붓다를 정복할 수 없었듯이 나 또한 정복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가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나 방송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선언했을 때 모두 그가 미쳤다고 했다. 

 

사진 7. 일하고 있는 아속공동체 사람들.

 

그는 욕망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 그러나 불교 국가인 타이에서 스님도 아닌 젊은 전직 방송 엔터테이너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승복은 중요치 않지만, 사람들에겐 승복이 중요하다며 출가를 단행했다. 출가 전 어떤 결심을 했든 출가 후엔 승복으로 얻는 대접에 빠져 한 생을 보내고 마는 게 출가자의 일생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당연한 행보에서 또 벗어났다. 그는 2년이 되자 명상을 마쳤다고 했다. 공부를 마쳤다는 것이다. 드디어 명상과 진리를 삶에서 증명해 보일 때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는 승가에서 파문당했다. 그러나 그는 종교를 빙자해 탐욕을 채우는 타락을 꾸짖었다. 그는 “당근은 이미 많은 사람이 사용했기에 내가 사용할 것은 회초리다.”라고 말하며 그 자신은  “아기들이 잠들게 요람을 흔들어주는 보모가 아니다.”고도 했다. 그는 자신이 먼저 깨어 있기 위해 철저히 하루 1식만 하며 계율에 철저했고, 아속의 다른 스님들 모두 그렇게 하도록 했다. 그는 “너무도 강한 악의 흐름에 맞서야 하기 때문에 엄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방콕포스트〉의 한 기자는 “타이에서 구호품을 업자에게 팔아넘기고, 미신을 이용해 돈을 벌고, 화려한 집에서 살면서 비싼 차를 타고, 보시금을 빼돌리는 승려에게 포티락은 가장 껄끄러운 인물이다. 그는 성상을 숭배하지도 않고 어떤 미신적인 예식도 배제하고 자신에게 철저하며 이웃에게 헌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티락이 어떤 삶을 살든 주류 교단의 권위에 도전하지만 않았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8. 포티락 스님과 필자.

 

불교에서 그나마 고요히 마음을 챙기는 승려들은 존중받을 만하다. 포티락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어느 정도 명상을 하면 삶 속에서 명상하며 붓다가 말한 무욕의 평화 세상을 실현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사아속이 정말 특이한 것은 외부 방문객들에게도 실비 외에 돈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속공동체의 규정은 그가 누구라도 일곱 번 방문하기 전엔 기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속에선 손님들이 기부하는 것보다 함께 노동하며 참여하는 삶을 더 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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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전 한겨레신문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한겨레신문 수행·치유웹진인 휴심정(well.hani.co.kr) 및 유튜브 ‘조현TV휴심정’ 운영자. ‘나를 찾는 치유 프로그램’(나찾사) 총감독. 저서로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이들을 위한 마을공동체탐사기’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수행·치유 현장 르포인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그리스 순례기인 『그리스 인생 학교』, 『은둔』, 『하늘이 감춘땅』 등이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선정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됐다.
iuhappyd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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