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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임제록 출간을 준비하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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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7 년 7 월 [통권 제5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00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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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고경』에 『임제록』 녹취과정을 말씀드리며 『임제록』 출간 준비 소식을 전한 지도 일 년 몇 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강설하신 부분은 선림고경총서의 『임제록』 전체 151페이지 가운데 25페이지부터 56페이지에 해당하니 양으로 보면 25%의 분량입니다. 하지만 마방의 서문에서 행록과 감변의 일부 내용을 강설하시기 때문에 내용으로 보면 전체의 1/3 정도를 강설하신 셈입니다. 

 


 

 

『임제록』의 출판편집 방향을 두고서 몇 분이 모여 분분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 중 한 의견은 큰스님께서 강설하신 부분까지만 정리하고 나머지는 강설집에서 빼서 미완의 상태 그대로 출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의견은 천하의 명저라는 『임제록』을 출간하면서 뒤편을 빼고 출판한다는 것은 『임제록』과 대중에 대한 심한 결례이니 보완하여 전체를 출판함이 옳다는 등 그렇게 갑론을박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큰스님 생전에 『임제록』 원문에 토를 다신 것을 가지고 선림고경총서 『임제록』을 발간한 전례가 있는데 그 『임제록』은 직역만 있을 뿐 주석이 없으니 큰스님 강설 부분은 그대로 싣고, 강설이 빠진 부분은 주석을 자세히 붙이고 번역을 새로하여 아쉬운 대로 『임제록』 전체를 출간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큰스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으리라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큰스님의 강설이 어렵게만 느껴지고, 책 전체 분량의 1/3 정도의 양으로는 책을 출판하는 것이 맞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묻어두었던 일이 이렇게 하여 큰스님의 마지막 어록번역 출판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큰스님께서 미처 강설하시지 않으신 부분을 번역하려니 그간에 출간된 『임제록』 서적을 참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임제록』의 편집 구성은 한문 원문을 먼저 제시하고 한글 번역을 실은 다음에 성철스님 강설로 하고자 하고, 이번에 예문으로 제시하는 『임제록』의 글은 우선 원문을 생략하고 한글 번역과 강설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되고 올바른 견해[眞正見解]

 

임제스님은 말했다.

“오늘날 부처님 법을 배우는 수행자들은 무엇보다도 반드시 참되고 올바른 견해, 진정견해(眞正見解)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대들이 참되고 올바른 견해를 얻는다면 나고죽음에 물들지 않고, 가고 머무름에 자유로운 것이다. 수승(殊勝)을 구하려 하지 않아도 깨달음이 저절로 이뤄진다.”

 

성철스님의 강설입니다.

 

먼저 법문을 이어서 임제스님이 하는 말입니다. 지금 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참되고 올바른 견해[眞正見解]를 얻어야 됩니다. 만약 참되고 올바른 견해를 얻으면 삶과 죽음[生死]에 물들지 않아서 가든지 머물든지 자유자재로울 것이며 깨달음[殊勝]을 요구하지 아니하나 깨달음[殊勝]이 스스로 이른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배우는 사람의 구경목표가 참되고 올바른 견해, 진정견해(真正見解) 즉 정견(正見), 바른 견해를 깨닫는 것입니다. 팔정도에도 정견이 있으니 정견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견을 보통 바른 견해라 하는데, 무엇을 바른 견해라 하는 것입니까? 사실에 있어서 바른 견해는 부처님같이 구경각을 성취해야 바른 견해지 그 전에는 전부 사지사견(邪知邪見), 삿된 지식 삿된 견해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바른 견해는 사량분별이나 언어문자로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참되고 올바른 견해, 진정견해라 하는 것은 불교의 구경각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한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전에는 전체가 삿된 지식, 삿된 견해입니다. 

 

부처님 이후 삽삼조사(卅三祖師)로 해서 전해 내려온 천하의 정안종사(正眼宗師)들은 모두 다 바로 참되고 올바른 견해, 진정견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정안, 바른 눈을 가지고 확철히 구경각을 성취한 사람이라야 진정견해인데, 깨치기 전에 어떻게 알 수 있나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정견(正見) 즉 진정견해(眞正見解)에 대하여 논란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일 유명한 것이 『가전연경(迦旃延經)』에 나와 있습니다. 가전연이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누구든지 정견을 얻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이 정견입니까? 정견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불법(佛法)을 따르고 중노릇을 천 년 만 년 한다 해도 부처님 제자가 아니라면서 항상 정견을 얻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무엇이 정견이기에 그렇게 자주 말씀하십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유(有)와 무(無)를 완전히 떠난 중도(中道)가 정견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일체 세간법이든지 출세간법이든지 무슨 법이든지 이름을 붙이려고 하면 결국은 유(有)가 아니면 무(無)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유무(有無) 양변은 중도(中道)가 아니고 불법(佛法)이 아닙니다. 

 

또 중도라 하는 것은 부처님이 다섯 비구를 만나 최초로 설법한 초전법륜에서도 선언했습니다. 소위 ‘중도대선언’이라고 하는 것인데, 부처님이 성도(成道)하고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법문하시면서 “나는 중도를 정등각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이 중도란 것이 정견이며, 정견을 가지려면 부처님같이 정등각, 확철히 깨쳐야 됩니다. 깨친 그 자체가 유무 양변을 여읜 중도정견(中道正見)입니다. 

 

그런데 중도를 혹 교리(敎理)로만 여기고 임제스님이 말한 진정견해, 곧 정견과 무슨 관계가 있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은 교리적으로 표현하고 혹은 선문답으로 표현하여서 각기 표현은 달라 보이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부처님이 증득한 대각, 그 자체가 양변을 여읜 중도인데, 그것이 곧 열반묘심이고 정법안장이고 구경각이고 묘각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입니다. 

 

임제스님이 말씀한 이 진정견해라는 것도 그냥 보통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바른 견해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실지에 있어서 아주 최고의 구경각을 성취한, 확철히 대오해서 열반묘심을 증득한, 부처님같이 완전한 대각을 이룬 그 자체를 진정견해라 했습니다. 임제스님은 부처님 같이 정안을 갖추고 완전히 진정견해를 얻은 분으로서, 누구든지 바로 진정견해를 얻으면 일체 생사에 물들지 아니하고 가고 머무름에 자유자재한 해탈경계를 성취하게 됩니다.

 

수승(殊勝)은 일체 만법이 원만구족하여 원융하고 무애자재한 경계, 깨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수승하다는 것을 그냥 좀 좋은 것 정도의 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부처님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원만히 성취한 깨달음을 수승이라 합니다. 말은 쉬워보여도 뜻은 아주 저 깊고 넓은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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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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