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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파사현정의 삶과 중관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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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5 년 9 월 [통권 제2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73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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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한 용수의 생애

 

초전법륜에서 중국선종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핵심사상은 중도(中道)라는 것이 『백일법문』의 지론이다. 중도를 철학적으로 심화시켜 대승불교의 사상적 근간으로 만든 사상가가 바로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 보살이다. 그래서인지 『백일법문』에서도 용수와 그의 사상에 대한 내용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중도를 이야기하면서 용수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에 대한 내용이 극적인 전생담으로 전해지고 있듯이 용수 보살에 관한 내용 또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아마도 용수 보살 역시 제2의 부처님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용수 보살의 전기는 구마라집 삼장이 번역한 『용수보살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이 문헌에서는 구마라집 삼장이 번역했다고 되어 있으나 학계에서는 그가 편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삼예링 사원에 세워진 용수보살상  

 

아무튼 이 문헌에 따르면 용수의 중관사상은 정사에서 한가로이 명상에 몰입하고 책만 보는 평탄한 삶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용수는 매우 드라마틱한 과정을 통해 출가의 길로 들어선다. 『용수보살전』에 따르면 용수는 달마 대사가 그러했듯 남인도 바라문가에서 태어났다. 남인도에 위치한 데칸고원은 <반야경>이 성립된 지역이므로 아마도 용수는 그곳에서 반야사상을 공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관사상을 집대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용수는 베다문헌을 비롯해 당시 바라문교와 인도철학을 두루 섭렵하며 성장했다. 더욱이 그는 천재적 재능을 타고나 어린 나이에 4베다를 모두 암송했다. 뿐만 아니라 천문, 지리, 도술, 비참 등에도 능통하여 약관의 나이에 독보적 존재로 부상했다.

 

그러나 도가 높으면 마가 성하는 법이다. 타고난 천재성은 학문적 성취를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위기도 불러왔다. 용수는 자신과 실력을 견줄만한 재능을 지닌 3명의 친구들하고 어울렸다. 어린 나이에 여러 학문에 통달한 이들은 자만에 빠져 학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교만에 빠진 청년들이 선택한 것은 감각적 유희를 좇아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은신술을 배워 왕궁으로 몰래 드나들면서 아름다운 궁녀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런 생활이 100일에 이르게 되자 궁중에 있던 모든 궁녀들이 임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국왕은 범인을 색출하라는 엄명을 내렸고, 병사들은 신출귀몰하는 범인을 잡기 위해 모래를 뿌려놓고 기다렸다. 욕망의 단물이 초래한 결과는 가혹하리만치 비참했다. 용수는 세 친구들이 가혹한 최후를 맞이하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때서야 욕망의 불꽃이 초래한 고통을 몸서리치게 깨달았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했지만 더이상 세속의 삶에는 미련이 없었다. 그 길로 용수는 불탑이 있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수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소승의 삼장을 구하여 90일 동안 탐독하며 불법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지만 타고난 천재였던 그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심오한 가르침을 쫓아 설산의 노승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대승경전을 얻게 되었고, 심오한 대승세계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는 이들 경전을 통해 실의(實義)는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도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 대용(大龍) 보살은 용수를 불쌍히 여겨 바다 밑 용궁으로 데려갔다. 보살은 보장(寶藏)을 열고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방대한 분량의 대승경전을 용수에게 주었다. 그는 90일간 그들 경전을 탐독하며 대승의 깊고 오묘한 이치에 눈뜨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승의 공사상을 깊이 체득하고 마침내 아공(人空)과 법공(法空)의 이치를 깊이 체득하였다.

 

『용수보살전』은 인간의 삶을 끌고 가는 욕망이라는 기관이 삶의 고통을 초래하는 근원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 번뇌와 고통을 넘어서는 것이 출가의 길이었고, 공(空)의 진리를 통해 욕망의 굴레를 완전히 넘어서게 됨을 보여준다. 극적인 삶의 여정을 밟아온 용수가 쓴 반야경의 주석서가 『대지도론(大智度論)』이다. 이 논서의 제목이 담고 있는 뜻은 ‘큰 지혜로써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것이다. 무명이 초래한 욕망의 삶을 건너가는 것은 다름 아닌 진리의 배이기 때문이다.

 

실유론의 논파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용수의 삶은 매우 극적인 과정을 걸어왔다. 하지만 출가한 이후 펼쳐진 사상가로서 삶 또한 격정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출가생활은 한적한 사원에 고요히 앉아 명상에 몰두하는 정적인 삶이 아니었다. 그는 교단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왜곡된 사상에 맞서 치열한 사상투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내적으로는 부파불교의 실유론(實有論)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밖으로는 정통 바라문교 등 외도사상에 맞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용수가 활약할 당시 인도의 사상계는 수론(Sāmkhyā), 승론(Vaiśeṣika), 정리파(Nyāya) 등의 사상이 발전하고 있었는데 이들 사상은 모두 존재의 실체를 인정하는 실유론에 입각해 있었다. 이와 같은 사조는 불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를 비롯해 여러 부파들 또한 실유론적 교설을 주장하고 있었다. 용수는 당대를 풍미하던 이런 사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여기서 용수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당시 사상계를 주름잡고 있던 실유론적 사상이 논파할 사견(邪見)이라면 불교의 중도사상은 현창해야할 정법이었다. 이에 용수는 반야의 공사상에 입각하여 당대를 풍미하던 실유론을 여지없이 논파하기 시작했다. 용수의 공사상은 왜곡된 사견을 혁파하고 정법의 깃발을 드는 것이었기에 맹목적 부정과 허무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성철 스님은 용수의 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단순히 모든 것을 부정하는 허무주의도 아니고, 도피와 체념에 사로잡힌 회의주의도 아니며, 결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무(無)도 아닙니다. 그의 공사상의 근저에는 어디까지나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곧 연기하여 생겨나는 일체의 법은 고유한 본성, 즉 자성이 없으며, 고정적인 자성이 없으므로 공하다고 설한 것입니다.”

 

공사상은 허무주의나 완전한 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야의 공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절대 무나 회의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실상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것이다. 존재의 본성을 꿰뚫어보면 각각의 사물은 자기의 본성[自性]이 공하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무가 아니라 연기(緣起)라는 관계망을 통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중관사상의 근본이 되는 문헌은 불멸 약 500년경에 탄생한 『중론』이다. 약 450구의 게송으로 구성된 『중론』의 핵심 내용은 연기(緣起), 무자성(無自性), 공(空)으로 압축할 수 있다. 용수는 “여러 인연으로 생한 법[衆因緣生法]은 곧 공이며, 또한 가명(假名)이며 또한 중도(衆道)”라고 정의했다. 개체 존재의 본성은 텅 비어 있음으로 개체적 존재의 자성은 실체가 없다. 그렇다고 존재가 완전히 없는 절대 무는 아니다. 독립적 실체로서 자성은 없지만 우리들 눈앞에는 분명히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 용수는 이를 가명, 즉 거짓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중론』에서 말하기를 “공하지만 단절됨이 아니요(雖空而不斷), 상속하지만 항상함은 아니다(雖有而不常).”라고 했다. 개체적 존재는 공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이 아니며, 눈앞에 가로써의 존재가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존재는 있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음도 아니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중도이다.

 

『중론』에 등장하는 이와 같은 세 가지 명제는 후대 불교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삼제게로 불리는 공가중(空假中)의 개념은 용수의 중관사상을 압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이는 삼론종은 물론 천태종과 화엄종 등 대승사상의 성립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모든 불교종파들은 용수의 정리한 삼제의 원리에 입각해 교리를 조직했기 때문이다.

 

팔종의 공조

 

용수가 중심이 된 중관학파는 무착(無着)이 창립한 유가행파와 더불어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용수의 사상은 중국불교에서 더욱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중국에서 용수에 대한 학습은 곧 대승불교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삼론종은 용수의 『중론』, 『십이문론』과 용수의 제자 제바가 쓴 『백론』을 연구하는 종파였다.

 

나아가 용수의 저작인 『중론』, 『십이문론』, 『대지도론』 등의 저작은 삼론종은 물론 중국에서 성립된 모든 대승불교의 사상적 원천으로 자리 잡게된다. 삼론종, 법상종, 천태총, 화엄종, 선종, 정토종, 밀종, 율종으로 구분되는 여덟 종파가 무도 용수를 초조로 삼거나 조사로 추앙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용수는 중국에서 ‘팔종(八宗)의 공조(公祖)’로 존경받았다. 용수의 중관사상이 중국에서 성립된 모든 대승불교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용수는 대승불교의 선구자, 제2의 붓다로 불리게 되었다. 그가 입적하자 사람들은 사당을 짓고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것과 같은 예를 갖추어 추모했다고 한다. 중국의 여산혜원(慧遠, 334-416)도 『출삼장기집』에서 “용수는 수행을 통해 부처님 다음 가는 십지(十地)의 경지에 이른 보살”이라고 평가했다.

 

성철 스님 역시 용수보살은 대승사상의 체계화 또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라는 위상을 인정한다. 용수의 사상이 공사상을 체계화하고, 외도와 부파불교의 왜곡된 교설을 논파했기 때문이다. 불교의 사상적 중심을 바로 세우고 대승불교의 사상적 초석을 다졌음으로 용수는 “부처님 이래 제일이며, 대승불교의 선구자이고, 최대의 공로자”라고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성철 스님은 이와 다른 평가도 덧붙였다. 즉, 용수는 부파불교에 의해 왜곡된 사상을 바로 잡아 불법을 근본으로 되돌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용수의 위대성은 그의 사상이 갖는 독창성 때문이 아니라 불교의 근본으로 되돌아간 것에 있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의 이런 평가는 어쩌면 대승비불설을 염두에 둔 설명인지도 모른다. 용수의 중관사상은 대승불교의 사상적 뿌리가 되고 있다. 따라서 중관사상을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한다면 대승사상은 불설이 아니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용수의 사상자체가 불법의 근본에 충실한 것이라면 대승사상 역시 불법의 적통을 인정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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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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