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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유식과 선의 만남 : 마음의 두 가지 작동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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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5 년 12 월 [통권 제3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77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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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덕청의 유식 이해

 

부처님은 불교란 ‘마음 밭[心田]’을 가는 종교라고 했다. 그래서 마음에 관한 내용은 불교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선에서도 마음을 깨닫는 것이 핵심이므로 육조혜능은 “마음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다(不識自心 學法無益)”고 했다. 그런데 이 마음과 관한 초기불교의 설명은 12처설이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주관이며, 그에 상응하는 여섯 가지 대상이 객관을 형성한다. 마음이 12처로 설명된다면 마음은 6식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번뇌도 의식의 범주 속하게 되며,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도 의식 차원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유식(唯識)에서처럼 마음에 대한 설명이 6식에 머물지 않고 의식 근저에 제7식과 제8식이라는 개념이 추가된다면 마음에 대한 설명은 달라지고, 번뇌를 끊기 위한 수행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음을 제6식으로 보느냐, 아니면 의식 근저에 보다 심층적인 식(識)이 더 있느냐에 따라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설명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마음을 깨치는 것을 강조하는 선과 마음을 8식으로 설명하는 유식의 만남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백일법문』은 이와 같은 기대에 부응하여 인도의 유식사상을 설명하면서 선과 유식의 만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철 스님은 유식과 선이 만난 사례로 명말(明末)의 고승 감산덕청(憨山德淸, 1546~1622)을 소개한다. 감산의 『성상통설(性相通說)』이라는 문헌에 나타난 내용을 통해 선에서 유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유식에 대한 감산의 이해는 아래 인용문을 통해 간략한 요지를 엿볼 수 있다.

“항상함[恒]과 사량함[審]이 식(識) 가운데서 네 가지 구분을 만든다. 제8식은 항상하면서 사량이 없으니[恒而非審] 나[我]에 집착하지 않고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고[無間斷故], 제6식은 사량하면서 항상하지 않으니[審而非恒]나에 집착하고 끊어짐이 있기 때문이고, 전5식은 항상 하지도 않고 사량하지도 않으니[非恒非審] 나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고, 제7식은 항상하면서 또 사량하니[亦恒亦審] 나를 집착하고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대한 감산의 설명은 『유식삼십송』처럼 매우 간결하지만 음미할 내용은 심오하다. 주지하다시피 유식에서 마음을 여덟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여덟 가지 중에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하나로 묶어 전오식(前五識)으로 부르기 때문에 마음은 전5식, 제6식, 제7식, 제8식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감산은 그렇게 네 가지로 구분되는 각각의 식(識)의 특징을 결정짓는 것은 아래 도표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세 가지 변수라고 보았다.

 

 

구분

헤아림[]

항상함[]

자기 집착(執我)

전오식

×

×

×

6

×

7

8

×

×

 


외부정보 창고와 작동체계

 

감산은 마음을 구성하는 네 가지 식(識)을 도표와 같이 ‘사량함[審]’, ‘항상함[恒]’, ‘자기 집착(執我)’이라는 변수를 통해 마음의 작동체계를 설명한다. 여기서 ‘사량함[審]’이란 ‘생각으로 헤아림[思量]’과 ‘좋고 나쁨에 대해 분별(分別)’하는 작용을 의미하고, ‘항상함[恒]’이란 사유 활동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는 항상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기 집착[執我]’은 받아들인 정보를 해석할 때 작동하는 판단의 기준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감산은 정보에 대한 분별작용과 사유 활동의 지속성을 의식의 핵심적 기능으로 이해하고 있다. 감산이 제시하는 변수에 따라 각 식의 특징을 분석해 보면 우리의 의식은 크게 외부의 정보를 읽어와 분석하고 처리하는 ‘외부정보 작동체계’와 내면의 정보를 읽어와 처리하는 ‘내부정보 작동체계’로 크게 양분됨을 알 수 있다.

 

외부정보 작동체계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의식의 관계가 빚어내는 체계이다. 전5식으로 불리는 감각기관이 춥다거나 덥다와 같은 느낌을 받으면 제6식은 그 정보를 분석하여 좋다거나 싫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외부정보 작동체계에서 제6식이 읽어올 정보의 창고는 오감의 대상이 되는 외부의 경계(境界)들이다. 즉 감각기관이 외부 정보를 감지하면 제6식은 이를 토대로 좋고 나쁨을 판단[審]하는 작동체계이다. 이때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는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자아에 대한 집착[執我]’이다.

 

이처럼 외부정보 처리체계를 담당하는 것이 전오식과 제 6식인데 이 두 식의 특징을 감산의 원문과 성철 스님의 설명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5식은 ‘비항비심(非恒非審)’으로 요약된다. 항상 지속되는 것도 아니며 사량분별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전5식이란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다. 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객관대상을 감각적 느낌으로 외부정보를 받아들인다. 붉은 단풍을 보고, 바람소리를 듣고, 낙엽 냄새를 맡고, 과실의 단맛을 보고, 차가움을 느낀다. 하지만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단지 각각의 대상을 느낄 뿐 좋다거나 싫다는 판단은 내리지 않는다. 감각기관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에 감각기관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는 ‘무기성(無記性)’이다. 이렇게 정보를 받아들일 뿐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않는 것을 감산은 ‘헤아리지 않음[非審]’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전5식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지속성은 어떨까?
감각기관은 그것이 처한 조건에서만 작용하며, 접촉하고 있는 그 순간의 대상만을 감지하여 전달한다. 이와 같이 감각기관과 접촉하는 감각정보는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감산은 이를 ‘항상하지 않음[非恒]’이라고 설명했다.

 

둘째 제6식은 ‘심이비항(審而非恒)’으로 요약된다. 제6식의 기본적 특징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해석하는 ‘사량(思量)’과 좋고 나쁨을 따지는 ‘분별(分別)’작용이다. 이런 특징을 합쳐서 사량분별(思量分別)이라고 하는데 제6식의 첫 번째 역할은 전5식으로부터 받아들인 정보를 분석하는 것이므로 감산은 이를 ‘헤아림[審]’으로 분류했다. 제6식이 자아에 대한 집착에 근거하여 전5식에서 받은 정보를 종합하여 헤아릴 때 비로소 우리의 의식에서는 “아! 아름다운 가을!”이라는 하나의 인식이 성립한다.

 

그렇다면 제6식이 지닌 이런 판단과 인식은 지속적인 것일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전5식과 제6식의 관계를 CCTV와 모니터의 관계로 대입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CCTV 앞에 어떤 사물이 나타나면 모니터는 그 사물을 반영한다. 하지만 대상이 사라지면 모니터에도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찬 물에 손을 넣으면 제6식은 차가움을 느끼지만 반대로 뜨거운 물에 손을 넣으면 뜨겁다는 느낌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제6식은 전5식이 주는 정보에 종속되어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에 감산은 제6식을 ‘항상하지 않음[非恒]’으로 분류했다.

 

내부정보 창고와 작동체계

 

전5식과 제6식이 외부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작동체계라면 내면의 정보를 읽고 처리하는 작동체계는 제7식과 제8식의 관계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제6식이 전5식을 통해 객관대상을 정보창고로 삼았다면 제7식이 읽어오는 정보의 창고는 의식의 심연에 깊이 숨어있는 제8식의 정보들이다. 감산은 제7식에 대해 ‘역항역심(亦恒亦審)’으로 요약했다. 즉 제7식은 ‘나’라는 자의식을 계속 유지[恒]하면서 자아에 대한 집착으로 항상 좋고 나쁨을 따지는 작용[審]을 한다는 것이다.

 

제7식과 제8식은 감각정보를 통해 외부의 정보를 수용하는 체계가 아니라 의식의 심연(深淵)에 일어나는 작용이다. 따라서 제7식은 제8아뢰야식에 기록된 정보를 읽어와 자아정체성과 동일성을 고집하는 기제로 구성된다. 그래서 제7식의 정보창고는 자아 정체성과 관련된 근원적 정보를 담고 있는 제8식이다. 이를테면 전5식과 제6식의 관계가 컴퓨터의 마이크나 카메라 같은 입력장치와 프로그램의 관계로 볼 수 있다면 제7식과 제8식의 관계는 하드 디스크와 중앙처리장치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제7식은 감각기관의 정보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이미 기록되어 있는 제8식으로부터 정보를 받기 때문에 제 7식은 제8식에 종속되어 움직인다. 제8식의 기본적 특징은 ‘무몰(無沒)’ 즉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제7식은 제8식으로부터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서 작용함으로 제7식 또한 ‘항상함[恒]’이라는 지속성을 띤다. 나아가 연속되는 매 순간순간 자아에 대해 집착하고, 자기를 내세우며 타자와 대립하며 자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제7식이다. 이런 이유로 유식학에서도 제7식을 아애집장(我愛執藏), 즉 ‘자아에 대한 집착의 뿌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끝으로 제8식은 ‘항이비심(恒而非審)’으로 요약된다. 제8식은 아득한 과거부터 미래까지 이어지며 자기동일성을 유지시켜주는 내면의 정보창고이다. 아뢰야식은 항상 정보를 기록하고 빠짐없이 미래로 상속하지만 ‘나’라는 생각을 고집하거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 행위와 경험이 저장된 정보창고와 같은 것이다. 그 정보를 읽어 와서 자아라는 인식을 만들어내고, 나와 남을 구분 짓는 것은 제7식의 역할이다.

 

따라서 전5식과 제8식의 공통점은 정보의 창고일 뿐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감산은 이 두 식은 모두 ‘헤아리지 않음[非審]’이라는 특징으로 분류했다. 이처럼 자기를 중심으로 좋고 나쁨을 구별하지도 않고, 선악과 이익과 손해를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이 두 식은 무기식(無記識)으로 구분된다. 차이가 있다면 전오식의 정보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非恒)’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아뢰야식의 정보는 ‘변함없는 항상성(恒)’을 갖고 있다.

 

전5식과 제8식이 외부와 내면의 정보창고라면 이 두 곳에서 정보를 읽어와 처리하는 것은 제6식과 제7식의 활동이다. 이 두 식은 읽어 온 정보를 해석하고 처리해야하기 때문에 이로움과 손해라는 기준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자기집착(我執)’이다. 이 두 식의 차이는 지속성의 여부이다. 제6식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감각정보에 의존하기 때문에 항상하지 않는 ‘비항(非恒)’이다. 하지만 제7식은 사라지지 않는 아뢰야식으로부터 정보를 읽어오기 때문에 항상 존재 하는 ‘항(恒)’이라는 특징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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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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