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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과 도자기]
‘일상 다반사’ 주제 전시를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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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  2020 년 4 월 [통권 제84호]  /     /  작성일20-05-28 15:57  /   조회6,11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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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도예작가

 

생각지 못한 전시가 4월초로 잡히는 바람에 올 초부터는 전시회 준비로 분주했다. 무엇을 주제로 해야 할지도 고민이고 누구에게 뭘 보여준다는 것이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방향을 조심스럽게 시도해 보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나는 늘 禪의 느낌을 그릇에서 표현하고 싶었다. 일본에서 세계화시킨 와비사비(侘び寂び)를 기반으로 한 젠 스타일(Zen style)하고는 결이 다른 우리 방식의 그 세계.

 처음 애플에서 아이폰 3GS가 출시됐을 때 그 모습에 반했었다. 기계가 저렇게 멋있을 수가 있다니. 나중에 스티븐 잡스가 禪과 명상에 심취해 있었고 그런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러면 그렇지!하는 반가움과 내가 만들어갈 그릇이 막연히 그 세계이기를 바랬다.

禪的인 것은 뭘까? 

소박한 것? 자연스러운 것? 단순한 것? 백자같이 순백의 티가 없는 것? 뭐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차라리 쉽겠지.

 

‘선다록’에서는 선다(禪茶)에 사용하는 다기(茶器)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선의 다도에서 사용되는 다구의 기물(器物)은 반드시 아름다운 다구도 아니고, 진귀한 다구도 아니고 값비싼 다구도 아니며, 오래된 골동품의 다구도 아니다. 일체의 번뇌 망념을 텅 비우고 걸림 없이 자성이 청정(圓虛淸淨)한 일심을 다구의 용기로 삼는다. 이 일심 청정을 선다의 다기로 삼아 다도를 실행하는 것이 선기(禪機)의 차가 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을 ‘일상 다반사(日常 茶飯事)로 정했다.

일상다반사는 깨달음의 표현이 나타나는 곳의 의미로도 쓰이는데 수행의 장인 셈이다.

차 마시는 일이 어떤 엄격한 절차나 형식이 따르는 부담에서 벗어나 밥 먹듯이 편안한 일상에 녹아있는 찻자리. 차를 일상으로 마시면서 느끼는 마음의 여유. 그리고 찻그릇에서 느껴지는 편안한 엄숙함이랄까.

 

 

도자기 파편들

 

일단 작업을 하면서 그 느낌을 찾아야할 것 같았다. 올해 들어 가마의 불을 세 번 땠다. 한번 땔 때마다 가마를 채우는 기물의 양이 상당해서 말 그대로 ‘빡세게’ 일해야 한다. 가마 불때기가 실패하면 그간 작업한 것이 허사로 돌아가서 힘 빠지는 일이긴 하다.

올 첫 불은 가마의 불을 오랜만에 지펴서인지 가마 내부에 습기가 많이 차 있었다. 가마가 익어야 그릇도 익는데 불이 약했나 보다. 대부분 녹지 않아서 가마만 덥힌 꼴이 되었다.

 

 

도자기 가마의 타오르는 불꽃

 

불을 과학적으로 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번째는 여러 가지로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유약도 직접 만든 거라 너무 화도가 높아서 불에 잘 녹을 수 있도록 미세하게 조절했다. 그리고 바람과 날씨도 중요한데 바람은 없는 것이 좋고, 날씨도 고기압 일 때가 좋다. 연기 때문에 마을에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주로 밤을 꼬박 새서 불을 땠는데, 그 일이 힘들어서 이번에는 아침부터 서서히 군불 때듯이 시간을 길게 두고 예열을 해 나갔다. 온도가 높지 않으면 연기도 심하게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후 3시부터 본격적으로 불을 때기 시작하면 이미 가마 내부가 예열이 되어 있는 상태라 밤을 꼬박 새는 일은 피할 수 있어서 체력 소모가 덜 했다.

다행히 두 번째 세 번째 가마 불때기는 그럭저럭 잘 녹았다. 참 신기한 게 가마라는 막혀 있는 공간인데도 계절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있다. 봄에 불 때는 것이 가장 좋은데 세상의 만물이 소생하는 것과 같은 시기다.

 

이번에 불을 때면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심란한데 1300도나 되는 이 불앞에서 장작을 몇 번 던지면 나쁜 바이러스가 다 없어질 텐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오갔다.

1300도..용광로 온도가 1400도 부터라던데 나무로 1300도를 올리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나무를 많이 넣는다고 온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모든 조건이 맞아야 한다. 그 중 나무의 조건만 따지자면 잘 마른 소나무를 가늘게 쪼갠 것이 화력이 제일 좋다.

  

 禪을 찾아서 

 

내 나름의 ‘禪的’인 느낌을 찾기 위해서 작업의 전 과정을 고요와 집중으로 연결해보려 했다. 그릇의 線에서도 잠시 생각이 끼어들면 흔들리는 모습이 느껴졌다.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피곤함을 느끼면 되도록 작업에서 손을 놓고 차를 마시거나 산책을 한다. 무리하는 것 그래서 억지로 해야 할 일로 느끼면 흥미도 떨어지거니와 결과적으로 실패율도 높았다.

그리고 청정과 단순함으로 재료를 취하려 했다.

흙은 순수한 흙을 쓸 것. 유약은 재유(灰釉) 위주로 하되 직접 농사지은 것이나 주변에서 구할수 있는 나무를 태워서 재로 만들 것. 그리고 불을 땔 때는 소나무만을 쓸 것.

내 나름의 조용한 원칙을 이어나가다보면..

늘 손과 감각은 禪的이라는 한 켠을 열어두고 내 스스로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단속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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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소천素泉 김선미

귀신사에서 찻그릇을 보고 무작정 도천陶泉 천한봉 선생에게 입문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그릇을 만들기 위해 정진중이 다. 현재 운산요雲山窯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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