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손가락 사이]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걸어간다
페이지 정보
최재목 / 2020 년 4 월 [통권 제84호] / / 작성일20-05-28 16:09 / 조회6,442회 / 댓글0건본문
최재목 / 시인. 영남대 교수
지옥에 동백이 피었습니다, 송이송이 지옥을
두 손 들고 찬송합니다
지옥에도 목련화가 집니다, 송이송이 지옥을
두 팔 걷고 내다버립니다
봄이 끝나면 그곳으로 주소를 옮길까 합니다
땅값이 오르기 전, 집 한 채를 사서
지옥을 잘 지키겠습니다
설마 그곳에도 불성이 있겠지요
제가 출가를 하겠습니다
뒷산에다 절을 짓고, 철새에게 백팔배를 가르칠 겁니다
돌들에겐 목탁 치는 법을, 밭 가로 흩날리는 비닐들을 끌어 모아,
참선에 몰두토록 하겠습니다
이만하면 지옥도 불국토라 할 만 하겠죠?
아, 그러면
저 극락이 설 자리는 또 어디인가요?
청도 운문사 내원암 가는 길에
도랑가로 내려가, 물고기 스님 세 분에게 묻는다
물속을 왔다 갔다, 금새 돌 밑으로 숨고
아무도 응대하지 않는다
불멸의 침묵이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구름도 몸이 무거워 밑바닥으로 내려와 눕는다
지옥도 짐이고, 극락도 짐이란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란다
들 것에 실려 떠나는 생각을 본다
내 생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로
떠나가는 그림자를 보았다
삭발한 허망을 붙들고 우는 신발을 쳐다보았다
지옥에서 쫓겨난 어둠이 터벅터벅 천국으로 걸어간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인간은 울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천년 고도 교토에는 수많은 정원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료안지龍安寺나 다이토쿠지大德寺처럼 사찰의 방장 정원이거나, 가쓰라리큐桂離宮, 슈가쿠인리큐修學院離宮처럼 황실 정원입니다. 정원에 가더라도 거기 있…
서종택 /
-
팔순八旬에 다시 보이는 성철 큰스님 유필
아마도 우리 세대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사람이 일흔 살까지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는 말을 젊은 날부터 귀가 따갑게 들으며 살아왔고, 소납도 70살까지 살면 다행이다 하…
원택스님 /
-
말법시대 불명참회와 53불신앙
지난 호에서 살펴본 윈강 11굴 태화 7년(483) 명문과 석경산 뇌음동의 참회의식은 당시 수행자가 말법시대를 대비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북위 효문제(재위 471∼499) 때 조성된 윈강 11굴…
고혜련 /
-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연꽃은 불교를 선명하게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진흙탕 안에서도 고아한 모습으로 그 자태를 은근히 드러내지만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 아니한다. 연은 잎에서부터 뿌리며 씨앗까지 인간 삶에 어느 하나 …
김세리 /
-
불교에서 유래한 고려시대 대표과자 유밀과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벚꽃의 향연은 막을 내리고 연둣빛이 선연히 짙어가는 5월입니다. 마치 차례로 줄을 서서 4월이 밀어 올린 기운을 받아 5월은 더욱 찬란하게 되는 느낌입니다. 장미꽃의 붉은 향기는…
박성희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