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로 세상 읽기]
사람에 의지 말고 뜻에 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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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 2019 년 10 월 [통권 제78호] / / 작성일20-05-29 10:14 / 조회7,368회 / 댓글0건본문
김군도 | 자유기고가
약산화상이 오랫동안 법좌에 오르지 않자 원주院主가 말했다. “대중들이 스님의 가르침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화상께서는 대중들을 위해 설법해주시기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약산이 종을 치게 하니 대중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약산이 자리에 올라 말없이 있다가 곧 자리에서 내려와 방장실로 돌아갔다. 원주가 따라와 “화상께서는 대중을 위해 법을 설하실 것을 마침내 허락하셨으면서 왜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물었다. 화상이 답했다. “원주야, 경에는 경사가 있고 논에는 논사가 있거늘 어찌하여 날 이상하게 여기는가?”
擧 藥山久不陞座. 院主白云. 大衆久思示誨. 請和尙爲衆說法. 山令打鐘, 衆方集. 山陞座良久便下座歸方丈. 主隨後問. 和尙適來許爲衆說法, 云何不垂一言. 山云. 經有經師, 論有論師, 爭怪得老僧. 『종용록從容錄』제7칙.
약산 유엄(藥山惟儼, 751-834) 선사는 속성은 한韓씨로 산서성 봉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7세 때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하고 출가하여 서산혜조西山慧照 율사의 제자가 되었다. 처음 율종에 귀의한 것과 달리 그는 경론을 깊이 연구하여 교학승으로서 명성을 크게 떨쳤는데 궁극엔 선문으로 전향하였다. 그리하여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 선사를 찾아 법요法要를 구했으며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을 추천받아 그에게 가서 3년을 공부한 후 다시 석두선사에게 돌아와 제자로서의 인연을 맺었다. 처음 경론에서 선으로 전향해 깨달음을 체득한 약산은 그러나 평상시에도 경을 쉼 없이 탐독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에겐 불경을 보는 것을 엄하게 금하였다. 문자나 언어가 미혹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그가 오랫동안 대중설법을 하지 않고 있자 어느 날 원주가 대중의 뜻을 물어 상당법문하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약산이 대종大鐘을 쳐서 대중을 운집하라며 상당법문을 수락했다. 대중이 큰법당에 모여 선사의 법문을 기다렸다. 선사는 법상에 올라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곤 이내 법상을 내려와 방장실로 돌아갔다. 대중이 모두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고 원주는 방장실로 따라 들어가 선사에게 따지듯 물었던 것이다. “설법하실 것을 허락해 대중을 모았는데 왜 한 말씀도 하지 않고 그냥 내려왔느냐?”는 원주의 물음에 선사는 “경에는 경의 스승이 있고, 논에는 논의 스승이 있고, 율에는 율의 스승이 있는데 날더러 어찌하라는 것이냐?”며 도리어 원주를 힐책하고 있는 것이 이 공안의 내용이다.
실제 출가자들이 얻고자 하는 진리는 경율론經律論에 다 있다. 그런데도 평소 약산은 제자들에게 불경을 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그리곤 가르침을 청하는 제자들에게 ‘경의 스승’, ‘논의 스승’ 운운하며 설법하지 않는 자신을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말라고 일침을 놓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하나 분명한 것은 있다. 당신이 법상에서 어떠한 내용의 상당법문을 하든 그것은 모두 경율론 속에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산 선사가 이 공안을 통해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은 사람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그 진리를 체득하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 힘은 곧 치열한 수행정진에 있음은 당연하다. 선사가 말하고자 하는 이 요지는 『대지도론大智度論』에도 등장한다.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의의불의어依義不依語, 의지불의식依智不依識, 의요의경 불의불요의경依了義經 不依不了義經이 바로 그것이다. 차례대로 해석하면 법에 의지하되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진리에 의지하되 말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되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말라, 진실된 부처님 말씀에 의지하되 삿된 경전에 의지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약산선사는 상당법문에서 양구(良久 오랜 침묵)를 통해 이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사람에게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며, 알음알이에 천착하고 삿된 가르침에 빠지게 되면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된다.
인류사회는 대부분 인간관계를 특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에 기대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정서가 반영돼서 일까? 최근 검찰총수에 오른 한 인사가 과거 “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국민들로부터 적극 호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대지도론』의 가르침처럼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뜻[진리]에 부합하려면 나아가고 물러서야 하는 때를 잘 살펴야 한다. 나아가고 물러서야 하는 때를 모르는 사람은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즉 진리에 부합하는 사람은 어느 때 나아가고 어느 때 물러서야 하는지를 잘 안다. 이를 잘 아는 사람은 대중들로부터 존경받지만 모르는 이는 야유와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소설가 요산樂山 김정한(1908-1996)선생은 항일문학抗日文學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1936년 부산 범어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 「사하촌寺下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사하촌」은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거린다’는 민중의식을 품고 있는 작품으로 일제의 잔혹한 수탈과 이에 적극 동조하는 식민지 시대의 범어사를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 때문에 격분한 일본 경찰과 불상의 친일파 앞잡이들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전개하던 그는 1940년 돌연 절필絶筆 선언을 하게 된다. 표면적 이유는 동아일보의 강제폐간이었지만 악랄하게 우리 민족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일본군국주의에 항거하는 또 다른 방법의 선택이었다. 민족진영의 작가들이 어쩔 수 없이 친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악랄한 탄압이 극점極點을 향해 치닫고 있던 때였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았고 그는 부산대학교에 재직하면서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가 1966년 「모래톱 이야기」 문단에 다시 복귀한 데에는 해방이 되었음에도 권력자의 횡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치하에서 일본에 아부하고 빌붙어 목숨을 부지하던 인사가 해방이 되고 나서 민족의 지도자로 부상하더니 급기야 민중의 재산마저 약탈하는 모습을 더 이상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모래톱 이야기」는 엄밀히 말하면 고발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일제시대의 수탈이 해방이 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현장 고발이다. 유력자의 앞잡이가 농민들을 억압하고 폭행하면서 한 섬이 통째로 유력자의 소유로 바뀌고 소외지대에 사는 서민의 처참한 삶은 광복 후에도 나아진 게 없다고 이 소설은 고발하고 있다.
요산 김정한 선생은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그의 인생을 통해 보여준 인물이다. 그는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변절 또는 배신의 굴곡진 삶을 피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한결같은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하겠다. 그는 부산에 거처하고 있었지만 여여한 그의 삶을 흠모하는 문단의 사람들은 늘 그와 함께 하는 걸 자부심으로 여겼다. 따라서 민주화를 열망하던 1970년대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으로 활동하였고 1987년도엔 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의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정치권의 유혹도 있었으나 명예와 권력에 사심이 없었던 그는 언제나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에 있어서 자유자재했다. 요산은 때를 잘 알았다. 대중이 원한다고 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이익이 있다면 나아감을 선택했던 것이다.
조선 성리학의 기틀을 세운 대학자 퇴계 이 황도 나아가고 물러섬을 반복한 인물이다. 단지 조선왕조라는 제도적 틀 속에서 타의他意에 의지해 출입을 반복했다는 점이 요산과 다르다. 1543년 퇴계의 나이 마흔 세 살 때, 성균관 대사성직을 사퇴하는 것을 계기로 벼슬을 거절하는 사직의 연속이 시작된다. 그럴 때마다 왕은 퇴계를 부르고 퇴계는 왕의 소환에 못 이겨 관직에 불려 나아갔다. 그는 쉰여덟이 되던 해 아예 벼슬을 내리지 말아 달라는 ‘치사소致仕疏’를 올리기도 했다. 왜 그렇게 퇴계는 벼슬을 멀리하려 했을까? 부패와 타락으로 현실정치가 구렁텅이에 빠질 때 그는 벼슬을 살면서 욕을 먹느니 초야에서 학문에 몰두해 조선 미래의 자양분을 길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퇴계의 연구 업적은 주로 나이 쉰 이후에 이뤄진 게 대부분이다.
자신의 나아가고 물러서는 때를 잘 알아 처신하는 사람은 성공적인 인생을 산다. 요산과 퇴계는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뜻을 따랐던 인물들이다. 그 뜻에 따라 자신들의 나아가고 물러서야 하는 때를 또한 잘 알았다.
경과 율과 논서에 모든 진리가 들어 있다. 그러나 이를 다른 사람이 찾아줄 수는 없다.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다. 약산선사가 법상에 올라 침묵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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