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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함께 하는 인생이야기]
종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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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2019 년 8 월 [통권 제76호]  /     /  작성일20-05-29 10:29  /   조회6,46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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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 불교전문 작가

 

지난 달 초, 이종 사촌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의 자매 중 유일하게 생존해 계신 막내이모께 다녀왔는데, 이모께서 나를 굉장히 보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러잖아도 오래 못 찾아뵙고 있던 터라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던 차여서, 한번 찾아뵙겠다고 약속을 하곤 전화를 끊었다.

 

어머니의 ‘불교’와 이모의 ‘기독교’

 

 내겐 이모가 세 분인데, 두 분이 일찍 돌아가시자 어머니와 막내 이모는 가끔 오고가면서 잘 지내셨다. 그런데 이모의 막내딸이 어머니의 중매로 결혼을 한 이후 두 분의 사이가 멀어지고 말았다. 어느 날, 이모의 안부를 묻는 내게 어머니가 “나, 이제 너희 이모 안 만날 거다.”하시는 게 아닌가. 

 “왜 무슨 일 있어요?”

 매사 화통한 어머니에 견주어 사소한 일로 골을 잘 내는 이모 때문에 어머니가 늘 애를 끓던 참이었다. 

 “내가 중매를 잘못해서 제 딸이 마음고생이 많다는 거야.”

그러면서 어머니는 내가 어쩌다가 중매를 서가지고 이런 얘기를 시시때때로 듣느냐며 푸념을 하셨다. “왜 무슨 일이 있어요?”

“사돈 댁 형제들 사이가 좀 안 좋아서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는 모양인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보고 왜 그런 데 중매를 섰느냐고 야단이니 나보고 어쩌란 말이니? 중매를 잘 해봐야 술이 서 말이요, 잘못하면 뺨이 석 대 라는 옛 말이 그르지가 않구나.”

 

이모는 딸을 셋 두셨다. 그 가운데 가장 예쁘고 똑똑한 둘째딸이 스물일곱 살로 세상을 떠났다. 나와 동갑이었던 딸을 잃은 이모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이모는 평소에 아들이 없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그 딸로 상쇄시킬 만큼 의지를 했는데, 그 딸을 떠나보내고 부쩍 아들 없는 타령을 많이 하셨다. 바로 위 세 살 터울 언니인 우리 어머니가 아들 셋을 둔 것에 대한 시샘이 부쩍 커진 것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언니는 아들이 있으니까’ 하는 말을 달고 달았으니 어머니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딸을 잃은 동생 앞에서 매사 조심을 했을 터이나 어쩌다가 언니의 아들들이 효도하는 모습이라도 보는 날엔 영락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사소한 것을 트집 잡아 횡 하니 집으로 가버리기도 했다.

 

어머니는 ‘내 다시는 저 소갈머리 없는 인사 안 보고 살아야지’ 하시다가도 이것저것 싸들고 용인 이모네 집에 가서 달래주고 오던 차에 중매 건으로 단단히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어머니와의 사이가 그러하니 우리도 이모를 뵙지 못했다. 우리 오남매가 나서서 여러 차례 어머니를 설득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속이 깊은 어머니답지 않게 받아드리질 않으셨다. 두 분은 오랫동안 화해를 못하고 있다가 몇 해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장례 때도 이모는 오시지 않았다.

 

언니와 막내 남동생에게 연락을 해서 이모 댁을 방문하기로 하고 이모께 전화를 드렸더니 ‘내가 너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면서 울먹이셨다. 이모는 어느덧 아흔둘이라고 나이를 밝히셨다. 며칠 후 우리 남매 셋이 이모를 만났다. 몇 해 전 이모부가 돌아가시고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큰딸과 살고 계셨다. 이모는 화사하게 화장까지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이 드시니 어머니와 모습이 흡사했고, 우리는 어머니를 뵙는 듯 반가웠다.

 

기독교 신자인 이모는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기도를 시작하셨다. 한참 동안이나 이어진 기도의 시작은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기도를 통해 다 하셨다. 이 사람들을 내가 죽을 때까지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시는데, 단정하게 차려입고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모가 종교에 귀의해 잘 살아오셨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에도 이모는 시시때때로 얘기를 하다말고 감사기도를 드리셨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모의 기도에 동참한 사람은 기독교인인 언니 한 사람 뿐이었다는 것이다. 불교인인 동생과 나는 이모가 기도를 할 때마다 뻘쭘해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언니가 기도에 동참하자 이모의 관심은 온통 언니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너도 교회 나가니?”로 시작되어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워했다.

 

“내가 하나님 때문에 살았다."

 

이렇게 시작된 독백으로 이모의 간증이 시작되었다. 시집을 와보니, 시어머니가 만신(무당)이더란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만신으로 대물림을 하고 싶어 하는 걸 눈치 챈 이모가 그걸 물리치려고 동네에 있는 교회를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어머님이 얼마나 강한 성격인지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있으면 뛰어들어 와서 머리채를 잡아끌고 나갔어. 그래도 나는 무당은 될 수 없다 싶어 새벽에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지."

 

“어머, 이모 정말 잘하셨네요.”

 우리들은 현명한 이모에게 박수를 쳐드렸다.

 “아마 하나님 아니었으면 살지 못했을 거야. 둘째를 잃고 내가 반은 실성한 듯 살았는데, 결국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시 살아났지. 그런데 기도를 해보니까 하나님은 나 같이 못난 사람도 사랑하시더라.”

 

아흔한 살 이모의 이 독백을 듣는데 정말이지 가슴이 뭉클했다. 이모는 몇 번이나 못난 자신을 사랑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했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은 반드시 교회에 나가서 기도한다는 이모의 살아오신 얘기를 들으면서 이모에게 종교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종교를 잘 접목하면서 살아오신 이모가 지혜로워보였다.

 

언제가 어머니가 ‘너희 이모 집에 갔더니 내가 분명히 간다고 했는데도 교회에 가고 집에 없더라’며 혈육보다 교회가 먼저인 인사라고 열을 냈던 일이 기억났다. 그때는 어머니 편에서 들었는데, 이모의 고백을 듣고 보니 이모는 누구보다 신심이 깊고 기도를 통해 삶의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감사할 줄 아는 종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 뿌리 깊이 박힌 ‘한 생각’은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이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모가 이젠 아들이 없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모께서 막내딸의 자랑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자주 사위가 들러 요리도 해주고 가고, 손녀 손자들이 예쁜 옷도 사다준다는 것이다. 가족 모두 교회에 나가서 무엇보다 기쁘고 더불어 손주들 자랑도 곁들였다. 그런데 참, 기도로도 안 되는 게 있나보다. 나가서 점심을 사드리고 집으로 모셔다드리는 차 안에서 이모께서 이러시는 게 아닌가.

 

“얘들아, 또 와라. 나는 자식이 없잖니.” 

운전을 하던 남동생이 깜짝 놀란 듯 물었다.

“이모, 이모가 왜 자식이 없어요? 이때까지 딸 자랑 사위 자랑 해놓으시고서는?” 

모두 함께 웃었지만 이모는 답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으셨다.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이모는 아직도 딸이나 사위는 자식의 범주에 들어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모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그건 해결해주진 못한 것일까?

 

분별하는 한 생각이 무명을 일으키고, 그 한 생각으로 인해 고통 속을 윤회한다고 했던가. 이모를 여전히 불행하게 만들고 있던 저, 뿌리 깊은 한 생각이 나에겐 무얼까,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언니가 말했다.

“어머니와 이모의 불화는 종교가 다른 것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거야.”

 

두 분이 종교가 달라서 이래저래 불화가 가중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생전에 그렇게도 어머니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언니다운 생각이었다. 어머니가 편찮을 때 나는 아미타경을 머리맡에 놓아드렸는데, 언니는 그것을 치우고 성경을 놓아드리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언니와 나도 종교가 달랐던 두 분과 같은 모양새다. 마음이 넉넉하고 동생들에게 베풀기 좋아하는 언니는 나에게 교회로 나와 주었으면 하는 의사를 오랫동안 내비쳤다. 목사님이 하는 설교에 초대하기도 했고, 고등학생인 딸을 보내 회유하기도 했다. 불교를 통해 마음공부 만난 것을 천우신조로 생각하는 동생에게, 더구나 불교를 소재로 글을 쓰는 동생에게 개종을 권하는 언니가 한편 안쓰럽기도 했고 한편 살짝 불유쾌하기도 했다. 하나님만을 믿어야 잘 사는 것으로 여기는 언니의 시선 때문에 종종 관계가 서먹해지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종교가 왜 있는가? 서로의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화합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그래도 언니와 내가 우리 이모와 어머니의 관계와 다른 것이 있다면 종교가 다른 것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지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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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자

불교 전문 작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했고, 동국대학교 역경위원을 역임했다. 108배를 통해 내면이 정화되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면서 108배 예찬론자가 되었다.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를 지향하는 인터넷 도량 금강카페(cafe.daum.net/vajra) 운영자로 활동하며 도반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1박2일 정진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인홍 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길 찾아 길 떠나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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