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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민추본 본부장을 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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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8 년 4 월 [통권 제60호]  /     /  작성일20-05-29 12:23  /   조회5,47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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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스님께서 만나고자 하신다는 상좌의 전화를 받고 지난 2월 26일 모처럼 총무원 청사를 들러, 원장스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안부인사가 오간 후 원장스님께서는 지금 비어 있는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본부장 소임을 맡아주면 어떤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동안 박왕자 씨 사건으로 10년 전부터 금강산 관광길이 막히고, 북한의 핵실험과 잦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미국, 일본 등과의 관계가 예민해지고 마침내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폐쇄 철”라는 초강경 대북정책이 있고 나서는 그나마 명맥이나마 유지돼오던 대북관계의 모든 민간교류가 끊기고 말았음은 모든 국민들이 체험하고 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민추본 본부장 위촉장면(사진: 불교신문)

 

 

 “그러니 조계종 대북 민간교류도 아직은 멈추고 있으니, 크게 바쁜 일이 없을 것이지만 내일의 교류를 대비해서 소임을 맡아주면 좋겠다.”는 원장스님의 제안이었습니다. 총무원장 스님의 말씀과 같이 언제 물꼬가 터질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큰 내왕이 없으니 직원들과 더불어 차분한 준비의 시간을 보내며, 민족통일에 대한 관심을 대중들과 함께 쌓아가는 일에 힘을 보탤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어 미력하지만 본부장 자리를 맡아보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3월 6일, 총무원장 스님이 당부하시기를, “대통령님의 대북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남북교류가 곧 이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용하던 민추본도 앞으로 굉장히 바쁜 부서가 되겠는데, 열심히 일해 주세요.” 일주일 전에 권유하실 때의 말씀과 오늘 임명장을 주시면서 하시는 당부의 말씀이 전혀 달라지니 갑자기 책임감이 밀려오며 ‘앞으로 힘든 소임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이 북한에 다녀와서 발표되는 내용들은 어느 것 하나 우리들을 놀라게 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어제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내용들이 지면과 화면을 장식하면서 오늘이라도 당장 굉장한 남북교류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면서 교계의 언론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오면서, “본부장으로서 어떻게 대북관계를 풀어갈 생각인지,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막 본부장이 되어서 현실을 잘 알지 못하고, 내일 당장 우리가 대북관계를 펼쳐갈 일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정부의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결실을 보면서 총무원장 스님의 뜻을 따라 대북관계를 수립해 실천해야 하리라 봅니다. 민추본으로서는 지금 당장 대북관계를 어떻게 하리라고 발표할 입장이 못됩니다.” 하고는 언론 인터뷰를 자제하고 미루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20일, 백담사 기본선원 교수사로 가서 하루 오전·오후 2시간씩 21일, 22일 강의를 하고 저녁 8시경 서울 사무실에 돌아와 조간신문을 보니 갈 때보다 또 다른 남북대화관계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5월 중순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내용이, 또한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원샷합의’를 모색하여 종전(終戰)선언 추진”의 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막후 남·북·미 정상회담 물밑 준비단계에서 대단한 협상들이 오고가는 모양이라고 유추하면서 앞으로의 민간교류는 지금까지와는 판이한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과 정치협상이 일정하게 이루어진 연후에야 진행될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통일은 아직이어도 남북 자유왕래는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새해에 기대했는데 남북 불교 발전을 함께하는 큰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바가 되었습니다.

백담사 기본 선원의 유나 영진스님으로부터 “내년 기본선원 교육에 와서 성철종정 예하의 행장과 가르침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셔야 한다.”는 제안을 지난 겨울 안거중에 받고 백담사 기본교육에 다녀왔습니다. 담당 실무자로부터 교재나 원고를 미리 보내주기를 바라서 『성철스님 행장』,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성철스님 임제록 평석』, 『성철스님의 한글 선어록』 1, 2, 3, 4, 5권 등 각권 100권씩 백담사 기본선원으로 보냈습니다.

『성철스님 행장』과 『성철스님 시봉이야기』를 교재로 쓰고 나머지 책들은 기본선원 교육생들에게 법보시하였습니다.

 

옛날에는 200명 가까이 교육을 받았다는데 올해는 사미, 사미니 합해서 75명에 가깝다 합니다. 백담사 경내를 살펴보려 나섰는데 무문관 주변과 무설전 주변, 대웅전 주변, 기본선원 주변의 모든 건물들이 정갈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교육환경 시설이 옛날의 동화사나 봉암사 시절보다 한결 안정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납도 기본선원 교육장에 처음 나서서 생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다녀가신 종진 스님께서 기본선원 스님들의 수업태도를 극찬하셨다는데, 사미·사미니 스님들이 진지한 자세로 열심히 경청하여 무사히 수업을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 가득하였습니다.

기본선원 대중스님들에게 특별히 강조한 법문 한 부분을 적어 봅니다.

 

이 내용은 1982년 1월 1일 <중앙일보> 새해 인터뷰로 법정스님과 성철 종정스님과의 대담 한토막입니다.

 

질문 : 스님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준 서책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답 : 내가 책을 많이 읽어서 여러 가지 공부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로 한 것은 참선입니다. 내가 제일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조사스님네의 어록은 『조주록』과 『운문록』입니다.

 

지난해 김택근 씨가 지은 『성철 평전』에 병중일여 게송이 실려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다 병중일여의 게송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성철 스님이 잔병에 시달리시다가 겨울에 폐렴을 심하게 앓으셔서 동아대학교병원에 입원하시어 한 달 가까이 고생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저를 찾으신다기에 해인사에서 동아대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저를 무심히 보시더니 한 말씀 하십니다.

“이놈아 똑같다 이 말이다.”

“무엇이 똑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큰스님께서는 아직도 뜻을 몰라 헤매는 상좌를 노려보시다가 입을 여시었습니다.

“옛날 젊어서 깨쳤을 때나 장좌불와 할 때나, 지금 이순간이나 다 똑같다는 말이다. 이 벽창호 같은 놈아. 그 말도 못 알아 들어? 쌍놈 아이가.”

 

큰스님은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 와병 중에도 ‘오매일여’의 경지를 잃지 않으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게송을 쓴 종이를 건네 주셨는데 마지막 다섯 글자는 힘이 없으셨는지 한글로 흘려 쓰신 것을 본 순간 열반송인가 하여 눈앞이 캄캄하였습니다. 그 후 1년 10개월이 지나 큰스님께서는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때의 게송입니다.

 

白日杲杲碧霄中(백일고고벽소중)

千深海底漁生角(천심해저어생각)

趙州雲門却迷路(조주운문각미로)

萬朶珊瑚光燦爛(만타산호광찬란)

쨍쨍한 해가 푸른 하늘에 빛나고

천길 바다 밑에서 물고기는 뿔이 돋아나네.

조주, 운문 스님은 도리어 길을 헤매니

만 갈래 산호가지는 그 빛이 찬란하구나.

 

법정 스님과의 인터뷰에서 조주 스님과 운문 스님의 어록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그 조주 스님과 운문 스님도 길을 헤매고 있다고 평하고 계십니다. 성철 스님께서 열반송보다도 동아대 병창(病窓)에서 쓰신 이 게송을 세상에 꼭 남기고 싶으셨던 게송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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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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