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거사선]
있는 그대로 완전한 실상實相을 밝힌 방 거사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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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 2013 년 10 월 [통권 제6호] / / 작성일20-05-29 14:01 / 조회8,173회 / 댓글0건본문
김성우
석두 스님과 마조 스님, 두 대선사 문하에서 마음의 이치를 깨닫고 단련을 받은 방 거사〔龐蘊, 미상~808〕는 이후, 자유자재하면서도 날카로운 기봉(機鋒)을 드러내며 최고의 선승들과 교유하게 된다. 그는 거사 신분임에도 선지식(善知識)이었기에 많은 총림에서 우러러보고, 이르는 곳마다 칭찬을 받았다고 전한다.
방 거사가 선객들의 따귀를 때린 이유
그가 석두 스님의 법을 이은 약산(藥山) 스님을 찾아가 상당 기간을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날 때의 선화(禪話)다.
방 거사가 약산 스님을 하직하자, 열 명의 선객(禪客)에게 문 앞까지 전송하도록 하였다.
거사는 마침, 허공에 날리는 눈〔雪〕을 가리키며 말했다.
“멋진 눈이로고! 송이송이 딴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구나.”
이때 선객 모두가 곁에 있다가 말했다.
“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
거사가 따귀를 한 차례 치자, 선객들이 말했다.
“거사는 거칠게 굴지 마십시오.”
“그대가 그래 가지고서도 선객이라 한다면 염라대왕이 용서해주지 않으리라.”
“거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사가 또 다시 따귀를 친 후 말했다.
“눈은 떴어도 장님 같으며 입을 벌려도 벙어리 같다.”
이 문답은 선종의 대표적인 공안〔話頭〕집인『벽암록』에 수록되어 있다. 대개의 공안이 그러하지만, 평범한 듯한 언행 속에 진리의 핵심이 담겨있으니, 하나하나 깊이 탐구해봐야 한다.
먼저, 약산 스님이 열 명의 선객에게 방 거사를 배웅하도록 한 것은 단순히 거사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한 일이 아니라, 일종의 ‘지혜 겨룸’인 법전(法戰)의 마당을 펼쳐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거사가 “멋진 눈! 송이송이 딴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구나.”한 것은 ‘바람도 없는데 괜히 풍랑을 일으키는’격으로서, 선객들을 테스트하는 의도를 지닌 말임은 물론이다. 이때 선객들이“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하며 질문한 것은 말에 끄달린 것으로, 노련한 선지식의 낚시에 걸려든 형국이다.
거사의 ‘눈송이가 딴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산은 높고 물은 흘러가고, 강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비와 눈이 내릴 곳에 내리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 그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중국 오대산 지통(智通) 선사가 깨달음을 얻은 후, 귀종(歸宗) 선사가 “그대는 어떤 도리를 보았기에 깨달았다 하는가?”하는 질문에 “비구니는 본래 여자입니다.〔師姑元是女人造〕”하고 대답한 화두와 같은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방 거사가 수행한 동굴이 남아있는 호북성(湖北城) 의성(宜城) 방거촌(龐居村).
삼라만상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가 완전한 부처의 현신이며 진리의 실상이 아닌가. 너무나도 분명하여 성스럽다는 말조차 용납되지 않는 철저한 깨달음 가운데 나온 사자후가 바로 “비구니는 본래 여자”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당연한 말도 소위 “깨달았다”는 선지식이 구태여 언구로 내뱉으니 뭔가 오묘한 화두가 되고 만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사랑하고 미워함, 선과 악, 길고 짧음 등 무수한 분별망상 속에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을 전하는 거사의 말도 시비거리가 될 만하다.
방 거사의 낚시에 걸려든 선객들이 “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하는 질문을 하자마자, 거사는 따귀를 한 차례 치며 응수한다. 대개의 화두가 그러하지만, 여기에는 무한한 뜻이 들어 있다. 1차적으로는 선객의 시비분별을 차단하는 경책의 의미가 들어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거사가 스님에게 따귀를 치는 행위는 승속과 나이, 주인과 손님, 주관과 객관 등 일체의 차별을 초월한 무심의 작용이며, 본성(本性)에서 우러나온 지혜작용인 것이다. 이 지혜작용의 당체(當體)는 만법(萬法)이 하나로 귀결되는 본래의 성품(性品) 자리로서, 수많은 눈송이가 내릴 자리에 내리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의 자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도리를 거사는 지혜의 검인 방(棒)으로 표현하고 있음에도, 선객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거듭 항변한다.
“거사는 거칠게 굴지 마시오.”산 송장들이 눈알을 부라리는 격이다.
거사가 “그대가 그래 가지고서도 선객이라 한다면 염라대왕이 용서해주지 않으리라.”하며 다시 한 번 질책을 하자, 뭔가 깊은 도리가 있음을 알아차린 선객들이 “거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하고 답변을 대신한 공격을 시도한다.
하지만 전혀 빗나간 대답이라 거사는 또다시 따귀를 치며, 진리의 한 소식을 전한 후에 “눈은 떴어도 장님 같으며 입을 벌려도 벙어리 같다.”고 판결을 내린다.
방 거사 가족들의 법담(法談)
농장 주인〔莊主〕의 부유한 생활을 버린 뒤, 제방을 주유하던 방 거사는 이후 작은 오두막집에서 돗자리를 짜면서 보림〔佛行修行〕을 하는 한편, 부인과 아들·딸에게도 직접 마음의 이치를 깨닫도록 하였다. 사심 없고 속박 없는 평화로운 나날이 지나면서 어느덧 가족 모두 높은 경지에 올라 일상사 언행이 모두 법담(法談)이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특히 딸인 영조(靈照)는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이름이 높다.
하루는 시험 삼아, 방 거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렵고 어려우니, 백석(白石)의 유마(油麻: 참깨)를 나무 위에서 뿌림과도 같도다.”
참깨를 나무 위에서 뿌려서는 절대로 싹이 날 수 없듯, 분별의식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음을 암시한다. 이는 곧 일체의 분별·집착이나 조작을 떠난 무념행(無念行)으로써만 지혜의 뿌리가 내릴 수 있음을 설파한 것이리라.
그러자 아내가 이를 듣고 화답했다.
“쉽고 쉬우니, 침상에서 내려와, 발이 땅을 밟음과도 같도다.”
본래의 자기를 확인한다면 ‘인위적이 조작이 없음〔無爲〕’이 어찌 어려운 일이겠는가 하는 뜻이다. 자신은 이미 일상 그대로 깨달음의 삶을 살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리라.
이번에는 듣고 있던 딸 영조도 끼어들었다.
방 거사와 딸 영조의 진영(日 동경박물관 소장)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으니, 백초두상조사의(百草頭上祖師意)라!”
‘백초(百草)’는 온갖 사물을 상징하는 말이다. 삼라만상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實相)은 어디서나 명백히 나타나 있으니, 그것은 어렵다거나 쉽다거나 하는 분별을 떠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은 하나의 도리(道理)를 다른 각도에서 말하고 있으나, 딸 영조는 쉽거나 어렵거나 하는데 치우치지 않은 중도적인 견처(見處)를 절묘하게 드러내어 후대의 칭송을 받았다.
유(有)를 공으로 돌릴망정, 무(無)를 진실이라 여기지 말라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방 거사가 마침내, 입적(入寂)을 예감하고 영조에게 말했다.
“인생이란 꿈같고 허깨비 같은 것이다. 너는 너의 인연을 따라 살아가도록 해라.”
그리고는 지금이 몇 시쯤 되었는지, 밖에 나가 해의 위치를 알아보도록 일렀다. 밖에 나갔던 영조가 돌아와 말했다.
“벌써 정오가 될 시간이지만 마침 일식중이어서 확실치 않으니, 아버님이 직접 나가 보시지요.”
그래서 밖에 나가 보았으나 일식도 아닌 것 같아 이상히 여긴 그가 방에 돌아왔더니, 어느덧 딸은 자리에 앉아 합장한 자세로 숨을 거둔 뒤였다. 이를 본 방 거사는 웃으며 중얼댔다.
“내 딸이지만, 참으로 민첩하군!”
방 거사는 딸의 장례를 위해 죽음을 일 주일 연기했고, 그가 입적할 때는 마침 그 고을〔襄陽〕태수 우적(于?)이 찾아왔다. 우적은 그의 친구이자 사법제자였고, 후일『방거사어록』을 편찬해 만고에 보기 드문 ‘도인 가족’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다.
방 거사는 친구에게 이런 유훈을 남겼다.
“다만 원컨대 온갖 유(有)를 공으로 돌릴망정, 삼가 온갖 무(無)를 진실이라 여기지 말라〔但願空諸所有愼勿實諸所無〕.”
무(無)는 공(空)을 가리키니, 유(有)를 ‘공’이라 하는 것은 좋으나, 그렇다고 ‘공’을 진실인 듯 여기지 말라는 법문이다. 세속인은 색(色)에 집착하고, 출가인이나 수행자는 공(空)에 빠질 수 있으니, ‘색’에도 매이지 말고 ‘공’에도 머물지 않는 대자유인이 되라는 당부의 말이다. 일체가 본래 환상이어서 텅 빈 줄 알면서도 상황에 처해서는 묘하게 쓸 줄도 아는, 진공묘유(眞空妙有)를 굴리는 진정한 도인이 되라는 참으로 긴요한 조언이었던 것이다.
이때 거사와 딸의 시신은 암굴에 있었고, 아내와 아들은 집을 지키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먼 관계로 우적은 거사를 다비해 장사지내고, 그 후에 사람을 보내 가족에게 알렸다.
“늙은이의 장례도 안 지내주고 먼저 가다니….”
딸을 나무란 방 거사의 아내는, 들에 나가 있는 아들을 찾아가 부음을 전했다. 이때 아들은 “앗!”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잠시 뒤에 보니 어느덧 선 채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거사의 아내마저 어디론가 사라져 자취를 끊었다. ‘앉아서 죽고〔坐脫〕’ ‘서서 죽는 것〔立亡〕’을 자재롭게 한다고 해서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깨달은 바대로 자유와 평화를 구가하며 잘 살다가 목숨을 거두는 일조차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경지를 일가족 모두가 보인 예는 동서고금에 드문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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