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주인공의 삶]
새해맞이 금연 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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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4 년 2 월 [통권 제10호] / / 작성일20-05-29 14:21 / 조회7,041회 / 댓글0건본문
자주 만나던 선배한테서 한참 만에 연락이 왔다. 어째서인가 했더니 담배를 끊는 중이라고 한다. 선배 왈, 근기가 박약하여 단칼에 끊을 수는 없고 우선 흡연욕구를 돋우는 환경부터 차단하기로 했단다. 그리하여 내가 정리해고 대상 1순위가 된 것이다. 안 그래도 멸종위기에 처한 흡연자 동지 중에 또 하나가 나를 버리고 간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우울해진다. 그렇지만 부디 성공하길 빈다고 축원해 주었다.(노력은 가상하나 얼마 못가서 다시 피운다에 500원 걸겠다는 말은 차마 해주지 못했다)
해가 바뀔 때면 지겹도록 듣는 다짐이 금연이다. 금연을 해야 할 이유는 점점 늘어난다. 그 중에 건강상의 이유가 가장 크다. 재수 없으면 이 몸을 가지고 백 살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니까 피우면서도 걱정은 걱정이다. 거기에 가족과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한 몫 한다. 그 백해무익한 걸 뭐 하러 피우느냐고, 담배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를 동원하여 핀잔을 준다. 담배만 백해무익한 건 아닌데도 말이다. 탐진치(貪嗔痴)도 그러한데 끊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백해무익한 존재로 심지어 남편을 꼽은 친구도 있었다. 암튼, 그 단어의 불명예는 담배가 전부 뒤집어쓰고 있다.
이제 거리와 공원에는 어김없이 금연 표지들이 붙어 있고, 전체가 금연으로 지정되는 건물이 늘어난다. 흡연자들은 점점 갈 곳이 없어 구석으로 몰린다. 이런 분위기로는 흡연자들이 얼마 안 가서 ‘사배자’(사회적 배려 대상자) 대우를 받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 선배는 압박과 설움, 멸시와 천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텨오다가 점점 구차해지는 중독의 생활을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이렇게 흡연환경을 차단하려는 국가 시책으로 말미암아 더럽고 치사하고 서러워서라도 끊고 말겠다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 선배뿐 아니라 지난 몇 년 사이에 친한 흡연동지들이 금연을 선언했고 그중에 몇몇 독종이 성공을 했다. 그들이 금연하는 과정, 혹은 실패하는 과정을 곁에서 구경해 보니 그것이 흡사 도를 닦는 과정과 같았다. 금연으로 도 닦다가 곧 대오(大悟)하는 친구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실패를 거듭하며 간난신고하는 와중에 주위에 온갖 민폐를 끼쳐가면서도 아직 끊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날 문득 피울 마음이 없어져서 자연스럽게 그만 둔 상품상생도 있다. 금연에도 돈점(頓漸)의 차이가 있는가 보다.
끊는 과정에 차이가 있다 해도 뭔가에 일단 중독이 되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 번뇌에 중독된 중생을 흡연자에 대입해보면,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끊기 어렵듯이 탐진치가 마음을 갉아먹는 줄 알고 있어도 끊기가 어렵다. 괴로움의 원인을 통찰하고 끊으려고 마음을 굳게 먹어도 그동안 몸에 배어 있던 독성이 저항을 일으켜 금단증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만큼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각자의 업에 따라 겪는 증상도 가지가지다. 안절부절하다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가, 속에서 재떨이 냄새가 올라오다가, 가려움증 때문에 피날 때까지 긁다가, 병원 가서 약도 타먹어 봤다가, 과자나 껌 같은 대체물을 써 보다가 과자도 못 끊고 담배도 못 끊고 체중만 불어나 결국 다이어트에 돌입한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 한 후배는 금연 기간 중 일어나는, 간절한 담배 생각을 ‘찰나생, 찰나멸, 염념상속’이라고 몹쓸 전공을 살려서 표현하기도 했다. 옆에서 보기에 딱한 고행이었다.
대체로 20~30년 연력(煙歷)의 찌든 때를 빼기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오랜 전생부터 쌓아온 번뇌의 때는 어떻게 해야 빠질까. 담배를 끊기 위해 약물치료를 하듯이 탐진치 중독을 끊기 위해서는 수행이라는 해독제를 쓴다. 특효가 있는 해독제로 선정을 많이 드는데, 4선에 관한 설명을 보면 그것이 매우 강한 기쁨을 동반한다고 한다. 뇌에서 잠깐의 쾌락물질을 분비하는 담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나게 강력한, 고품격 쾌락이 엄습한다고 묘사되어 있다.
온몸에 털이 다 서고 몸이 떨리기도 하고 온몸 어느 한 곳도 기쁨이 충만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기쁨 때문에 마음이 흔들려서 수행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열치열의 방법을 쓰는 것인데 열이 덜 빠진 경우 그 쾌락에 눌러 앉으려는 집착이 일어나므로 거기서 빠져나와서 다음 단계로 향상하라고 가르친다. 그러고 보면 선에도 쾌락이라는 면에서 중독성이 있는 것인데 안 빠져나와도 좋으니까 이런 쾌락이라면 푹 절어 볼 만하겠다.
담배 끊기에 거듭 실패한 중독자가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러갔다면 중독의 원인을 짚어내기 위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따져 들어가서 애정결핍과 욕구불만이라는 심오한 문제를 끌어낼 것이다. 부처님이라면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묻지 말고 우선 뽑고 보라고 하셨을 것이다. 달마를 찾아 갔다면 중독된 마음을 가져와 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임제와 덕산이었다면 ‘닥치고, 금연!’이라고 소리 지르며 내쫓지 않았을까. 조주라면, ‘담배 피우는게 이미 정신병인데 그거 끊느라고 정신병 하나 추가하느니 차라리 그냥 피우고 살아.’ 그랬을지도…
새해에는, 흡연자들은 경전과 어록에서 각자 증상에 맞는 처방을 하나씩 찾아서 금연을 시도해 볼 일이다. 주위의 비흡연자들은 흡연자를 혐오하는 틈틈이 그들이 담배를 돈단(頓斷)할 수
있도록 불보살께 가피라도 청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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