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인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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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4 년 4 월 [통권 제12호] / / 작성일20-05-29 14:22 / 조회6,336회 / 댓글0건본문
3년 전인가, 고심정사 불교대학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인도 불교 성지순례를 다녀오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 뒤로 이를 위해 일정 금액의 적금도 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회장 보살님을 만나 일정을 들으니 일반적인 성지순례 코스에 네팔의 포카라에서 안나푸르나 설산을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일정이 추가되어 있었습니다.
“보살님! 인도 불교 성지순례는 한 번 다녀오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안나푸르나 설산을 보는 것도 좋지만 8대 성지와 함께 데칸고원이 있는 중부지방의 아잔타 석굴, 엘로라 석굴, 산치대탑 순례를 꼭 넣는 것으로 일정을 조절하면 안되겠습니까? 8대 성지는 부다가야 성지를 제외하곤 폐사지에 가까운 유적들이지만 그 세 곳은 인도에 남아 있는 불교 유적의 백미로 꼭 참배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의견이 반영되어서 성지순례 일정에 아잔타 석굴, 엘로라 석굴, 산치대탑 등 3곳과 함께 상카시아도 넣고 해서 11박 13일의 일정을 설계하고 저도 함께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아잔타 석굴
저는 2007년 12월 인도 불교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그때는 사전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나서 아쉬운 마음이 많았습니다. 하여 이번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에는 산치대탑에 대한 책을 구해 산치 불교미술에 대해 대중들이 충분한 사전 숙지를 한 결과 나름대로 뜻 깊은 여행이 되리라 기대했습니다. 북문, 남문, 동문, 서문에 조각되어 있는 부처님 전생 설화와 부처님 사리를 여덟 곳으로 나누는 장면, 과거 7불을 보리수와 탑으로 여러 곳에 표현한 것 등 BC 3세기에 이미 부처님과 관계된 여러 교설들이 다양하게 조각되어 이것이 산치유적의 백미이자 인도 불교미술사의 귀한 보물로 꼽히는 걸작품들임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아잔타, 엘로라 석굴에 대해서도 사전에 미리 공부하고 현장에 와보니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느낌도 새롭고 뿌듯한 생각이었던 기억입니다. 사실 7년 전에 왔을 때 일정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엘로라 불교석굴을 참배하지 못하여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릅니다. 이번에도 일정은 촉박하였지만 아침 일찍 서둘러 엘로라 석굴에 닿으니 아직 여명도 트지 않아 조각이 많은 굴 안은 어둠에 쌓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손전등과 핸드폰의 전등기능을 이용해 굴 안을 살펴보았습니다.
세 번째 굴에 들어서자 겨우 여명이 트기 시작하여 주위가 조금씩 드러났습니다. 10굴에 드니 천정이 아치형으로 높고 목조서까래가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장중하게 조각되어 있고, 굴 안 10m 지점에 부처님께서 의자에 앉으신 듯한 모습으로 모셔져 있었습니다. 대중들이 모여 오분향과 반야심경을 암송하니 굴 안에 울리는 음향은 그야말로 장중함 그 자체였습니다. 기대했던 12굴의 과거칠불을 보면서 뜻밖의 광경에 맞딱뜨렸습니다.
책에서 보았을 때는 과거칠불만 계시는 줄로 알았는데 와서 보니 놀랍게도 반대편에도 과거칠불이 모셔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례에 동참한 신도들의 가족 생축과 영가 천도의식을 마치고 나오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서너 시간을 달려 아잔타 석굴로 향했습니다.
“우리만 참배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참배객들이 모일 것이니 될수록 짧은 시간에 많은 굴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사전에 가이드에게 당부하였더니 정말 뜻밖에도 좋은 코스를 안내해주었습니다. 1굴부터 입장하려면 거기서도 한 시간이나 더 걸리는데 우리는 ‘아잔타 전망대’에서 차를 내려 전경을 내려다보면서 산길을 10여 분쯤 내려왔습니다. 그러자 아잔타 석굴 밖을 감싸고 도는 개울의 상류가 보이고 몇 굽이로 떨어지는 폭포 밑에 큼지막한 소(沼)가 보이는데 거기서부터 조그마한 강줄기를 이루며 흘러가는 개울 모습이 속속들이 보였습니다. 석굴만 보고 내려가는 감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관을 선물로 받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아잔타 석굴 전경을 열심히 살피며 약 15분 다시 내려가니 제10굴 근처에 도착하였습니다. 거기서 바로 대중이 26굴까지 먼저 강행군하였습니다. 앞으로 아잔타 석굴을 참배하는 순례단에게 참배순서를 전망대에서부터 내려가는 코스를 택하라고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엘로라, 아잔타 석굴 참배를 마치고 산치대탑을 향해 육로로 버스를 타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7년 전에 와서 보았던 일차선 정도의 포장도로는 그대로인데 달리는 화물차는 대형화되고 숫자도 늘은 듯 한데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운전기사는 계속 경적을 울리며 달립니다. 차 안이 아무리 조용해도 먼 길중에는 피곤하게 마련인데 계속되는 경적 소리는 사람을 질리게 하고 설상가상 옆을 지나가는 차들도 계속 빵빵거립니다. 앞쪽에서 둘째 자리에 앉은 저는 질주해오는 차들이 금방이라도 추돌할 듯한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밤이 늦어 호텔에 도착하니 녹초가 되었습니다. 마침 조계사 순례단을 만나서 주지스님 이하 소임스님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것으로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마침내 고대했던 산치대탑을 참배하게 되었습니다.
산치대탑의 사방에 세워져 있는 문은 토라나(Torana)라고 합니다.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하고 왔으니 생소하지 않고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수없이 많은 조각품의 내용을 음미하면서 2000년 넘게 견뎌온 세월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다음날 타지마할을 참관하러 아그라로 가기 위해 보팔에서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출발도 1시간 넘게 늦어지고 도착도 2시간이나 연착하여 밤늦게 호텔에 들게 되었습니다. 법정 스님의『인도기행』에서 열차 화장실 앞에서 하룻밤의 경험담을 적어놓으신 부분이 있는데 그 정도의 고생은 아닐지라도 그때나 지금이나 열차가 마음 놓고 연·발착하는 것은 변함이 없나봅니다. 7년만에 다시 보는 타지마할은 역시 처음 볼 때와 같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후 나머지 성지인 상카시아, 기원정사, 룸비니, 나란타, 녹야원, 쿠시나가라, 바이살리, 부다가야, 바라나시 등을 참배하면서 일정대로 성지순례를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7년 전과 비교해 8대 성지 곳곳에 울타리도 쳐지고 조경도 가꾸는 등 뭔가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반면 그때는 제지하는 사람이 없어 성지곳곳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는데 이제는 허락된 곳만 보아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이웃 중국만 해도 한두 해 걸러 가보면 도로, 철도 등의 인프라가 눈에 띄게 변하는데 부처님 8대 성지는 워낙 낙후된 곳의 시골이라 그런지 교통 인프라의 변화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제딴에는 세납으로 칠순이 되어 이번 불교 성지순례에서 무언가 삶에 대한 다짐을 해보고자 떠난 여행이건만, 돌아올 때 “내 마음도 여전히 7년 전 인도에 왔던 그 마음으로 인프라가 변한 게 없는 건 아닌가?”하는 자책감 속에서 또 한번 부질없는 새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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