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과 도자기]
분청사기의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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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 2020 년 5 월 [통권 제85호] / / 작성일20-06-01 16:40 / 조회8,141회 / 댓글0건본문
김선미 | 도예작가
‘멋있다’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고려청자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우아하다는 느낌이 있었고 백자는 단아함과 깨끗함이 느껴진다. 내가 보는 분청사기는 ‘멋있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이는 자연적인 본연의 느낌보다는 꾸며서 스타일리시한 느낌이 나는데 분청사기의 본래 의미도 화장化粧을 한 그릇이다.
우현 고유섭 선생은 일제 강점기 우리 미술을 처음으로 학문화한 학자인데 일본인들이 쓰던 미시마라는 표현에서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를 줄여 분청사기로 불렀다. 이는 회청사기에 백토로 분장을 한 것을 이른다.
고려의 쇠락과 조선의 개국이 이어지면서 화려했던 고려청자는 특유의 우아함과 고급스러운 면을 잃어버리고 청색도 백색도 아닌 회백색의 질박한 그릇으로 변화한다.
고려 후기의 청자는 유색과 흙에 불순물이 많이 섞이고 순도도 떨어지고 문양도 매우 간략해지는데 이런 질의 하락을 감추기 위해 제작된 것이 바로 분청사기이다. 이는 회청색 점토질 태토에 백토를 입혀 분장粉粧한 후 그 위에 투명한 유약을 시유하는 방식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졌는데 다양한 기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청자가 한정된 지역에서 만들어졌다면 분청사기는 거의 전국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지역 색을 나타낸다.
분청사기의 표현 기법은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7가지 방식이 있다. 상감청자를 계승한 상감기법은 원하는 무늬를 선각하고 여기에 백토나 자토를 넣어 구우면 희고 검은 무늬가 나타나는 방식이다. 상감기법은 고려청자부터 분청사기, 백자에 이르기까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인화
박지
철화
다음으로 인화(印花, 사진 1)기법인데 꽃무늬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늬의 도장을 찍어 백토로 채운 다음 유약을 씌여 구워내는 기법이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고 해야 하나.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점 등은 인화기법과 일맥상통한다.
또 박지(剝地, 사진 2)기법이 있다. 그릇의 면을 백토로 분장한 후 원하는 무늬를 그리고 무늬배경을 이룬 백토는 긁어버림으로써 하얀 무늬만이 남는다. 이와 비슷한 것이 조화彫花기법이 있다. 백토분장 위에 무늬를 그릴 때는 일단 조화기법으로 선을 새긴 다음, 일부분의 배경만을 긁어내면 박지와 조화가 한 작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철화(鐵畵, 사진 3) 기법이 있다. 이는 백토분장 후에 철분이 많은 안료를 붓에다 묻혀 그림을 그린 것이 많은데 특히 물고기, 모란, 모란당초, 연꽃 등이 많다. 전형적이지 않고 해학적인 그림이 많은데 물고기 그림은 보면 볼수록 웃음이 나온다. 계룡산 분청사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봉리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귀얄 기법이 있다. 귀얄은 도배할 때 쓰는 풀비와 같은 도구인데 주로 수숫대나 볏짚으로 만든다. 여기에 백토를 발라 빠르게 휘감아 친다. 생생한 율동감과 거친 붓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통쾌함이 있다.
마지막으로 덤벙 기법(사진 4)이 있다. 말 그대로 백토 물에 그릇을 덤벙 담갔다가 꺼내는 방식이다. 이는 다른 방식에서 느껴지는 활달함이나 대범함보다는 차분함이 느껴지는 방식이다.
분청사기에는 재미가 있다. 역동적이기도 하고 또 촌스런 화장을 한 사람처럼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사랑스럽다. 그리고 정형화되지 않은 익살스러움도 있다. 물고기가 바로 튀어 나올 것 같은 생동감도 느껴진다.
영국의 도예가인 버나드 리치는 “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조선 시대의 분청사기가 다 제시했으며 우리는 그것을 목표로 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추상적이면서도 해학적이며 순수한 일상의 표현. 짧은 시기 가장 파격적으로 세상에 나왔던 것이 조선의 분청사기이다.
분청사기는 단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흙이 정제되지도 않았으며, 그것을 감추기 위해 화장을 하면서 그 모습이 자유롭고 파격적이다. 그동안 억제되었던 감정이나 정형화된 모양에서 탈출하여 맘껏 호기를 부린 듯한 느낌이다. 간혹 허세가 지나쳐 웃음도 나오고 귀엽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분청사기만의 멋이고 맛일 것이다.
나도 ‘분청’이 좋아 여러 방식으로 시도를 해보고 있다. 재미는 못 봤다. 솔직하게 나는 아직 끄달림 없는 자유가 부족한 것 같다. 마음이 그릇에 그대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제일 쉬운듯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분야이다. 서민적이고 수수하다고 하지만 분청에서 그런 멋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찰나의 우연성이라고 말은 하지만 찰나에 귀얄을 하거나 덤벙을 하거나 철화로 대담하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실 오랜 기간 수련과 공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것도 꾸준한 수행이 뒷받침되어서 내재된 응축된 힘이 있어야 단숨에 표현을 하더라도 ‘멋있다’가 나오는 것이다.
덤벙 분청
한 때는 길을 걷다가도, 차를 타고 가다가도 흰 흙만 보면 저거로 분청 만들면 되겠다 싶어 흙을 퍼와 수비해 분청을 만들곤 했다. 또 집 뒤에 목장을 산책하다가도 노란 흙이 보이면 퍼와 노란 분청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분청의 느낌에 무슨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분粉이 날아가거나 철분이 많이 섞여 좀 지저분한 화장이 되곤 했다. 최근에 후배가 갖다 준, 합천에서 퍼 왔다는 백토로 분청을 만들어 쓰고 있는데 비교적 안정된 데이터가 된 느낌이다. 화장품만 좋다고 좋은 화장이 되는 것이 아니듯이 그것과 어울리는 바탕이 잘 맞아야함을 느낀다. 좋은 흙과 좋은 모양 그리고 유약이 적절해야 비로소 멋진 분청사발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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