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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의 세계]
독성탱화 속의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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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  2020 년 5 월 [통권 제85호]  /     /  작성일20-06-01 16:43  /   조회5,86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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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에는 대개 구체적이고 정교한 의궤성이 있고, 정해진 의궤에 따라 존상을 그리고 채색해야 한다. 물론 정해진 의궤에서 벗어나 금어(金魚, 불화 그리는 사람에 대한 존칭)의 자유로운 의지가 반영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그림도 있다. 그런 것 가운데 하나가 독성탱이다. 독성탱은 독성존자獨聖尊者를 묘사한 불화로, 사찰의 독성각獨聖閣에 단독으로 모시거나, 삼성각三聖閣 안에 산신탱화山神幀畵·칠성탱화七星幀畵와 함께 봉안된다.

 

독성탱화는 수독성탱修獨聖幀, 나반존자도那畔尊者圖라고도 하며 보통은 16나한탱화와 유사한 구도로 그려진다. 다만 16나한탱과 달리 독성님을 본존으로 한다는 점이 다르다. 즉 천태산을 배경으로 독성 존자가 석장錫杖을 짚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와 함께 동자가 차 달이는 모습을 함께 그리거나, 동자와 문신文臣이 권속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독성탱에서 하나 더 주목할 것은 산수화와 화조花鳥 등 다양한 소재가 주위배경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런 도상적인 특징은 거의 모든 독성탱에 공통적으로 보인다. 독성탱 가운데 「통도사 삼성각 독성탱」(사진 1), 「해인사 백련암 독성탱」(사진 2), 「화엄사 원통전 독성탱」(사진 3), 「개운사 삼성각 독성탱」(사진 4)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나한신앙은 8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려 시대에는 기우祈雨와 구복求福, 국난의 극복 등을 기원하는 나한재羅漢齋를 많이 봉행한 기록이 보인다. 고려 말 이성계는 석왕사釋王寺에 나한전을 짓고 광적사廣積寺의 5백 나한을 이곳에 옮겨 봉안하면서 5백 일 동안 기도한 공덕으로 조선을 개국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불교 신앙이 상대적으로 쇠퇴한 조선 시대에도, 나한 기도를 통해 복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는 등 나한신앙은 오히려 크게 성행했고, 여러 사찰에 응진전應眞殿·나한전 등의 전각이 많이 세워지게 되었다. 

 


통도사 삼성각 독성탱

 

특히, 독성·나반 존자를 본존으로 조성하는 독성탱은 남방불교권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 다른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한국불교만의 고유한 신앙대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앙의 바탕이 되는 관련 소의경전도 알려진 바가 없으며, 존상의 명칭이나 행적에 대해서 알려주는 경론經論이나 역사적 기록[사기史記]도 확인할 수 없다.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의식문儀式文에 관련 내용이 전해져오고 있다. 

 

나반 존자는 삼명三明과 자리이타를 갖추고 있는 분으로, 삼명은 숙명명(宿命明, 전생을 남김없이 아는 지혜), 천안명(天眼明, 미래를 꿰뚫어 보는 능력), 누진명(漏盡明,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끊는 지혜) 등이다. 다시 말해 과거․현재․미래의 일을 남김없이 알고 있는 분이 나반 존자이며, 나반 존자는 이와 같은 삼명의 능력으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원만하게 이룬다고 한다.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춘 나반 존자는 중생의 공양을 받을 만하고, 스스로 중생들의 복을 키우는 복밭[복전福田]이 되어, 미륵불이 출현하는 용화세계龍華世界가 올 때까지 이 세상에 계시며 열반에 들지 않고, 말세 중생을 제도하기를 석존으로부터 부촉 받았기에, 나반 존자를 주세아라한住世阿羅漢, 즉 세상에 머물고 계시는 아라한으로 일컫는다. 위의 내용은 『석문의범』 「독성청獨聖請」 거목擧目을 보면 간명하게 알 수 있다.

 

“나무 천태산상 독수선정 나반존자  

南無 天台山上 獨修禪定 那畔尊者 

천태산 위에서 홀로 선정을 닦고 계신 나반 존자께 귀의합니다.

 

나무 삼명이증 이리원성 나반존자  

南無 三明已證 二利圓成 那畔尊者

삼명을 이미 증득하고 자리이타를 원만히 이룬 나반 존자께 귀의합니다.

 

나무 응공복전 대준용화 나반존자  

南無 應供福田 待竣龍華 那畔尊者

공양 받을 만한 복전이 돼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리는 나반 존자께 귀의합니다.”

 

이와 같이 나반 존자는 석존의 제자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석존의 기별을 받고 남인도 천태산에 머물다가, 말법 시대 중생의 복덕을 위해 출현하신다고 한다. 16나한의 한 분인 빈두로(賓頭盧·Pindola) 존자로 파악하기도 한다. 존자는 흰 머리와 긴 흰 눈썹을 하고 있으며 16나한 가운데 가장 신통이 빼어나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은 독성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인『영산대회작법절차靈山大會作法節次』(1634)에 수록된 「독성의 문」과『아육왕경阿育王經』제3권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독성각에는 드물게 나반존자의 조각상을 모시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독성탱화를 조성하여 봉안한다. 

 


해인사 백련암 독성탱.

 

독성탱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독성의 교의적 특징을 극대화 시켜주는 ‘배경의 산수표현’이라 할 수 있다. 때로 ‘수묵산수화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나, 대개는 화려하고 경쾌한 ‘청록산수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들 가운데 구례군 화엄사華嚴寺 원통전圓通殿에 모셔져 있는 독성탱(사진 3)은 독성, 즉 나반존자의 권능과 신행자의 심중소구心中所求가 능숙한 회화적 기법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수작秀作이다.

 


화엄사 원통전 독성탱.

 

화엄사 독성탱은 1897년에 조성됐다. 독성탱화의 일반적인 크기에 비하면 상당히 큰 편이며, 기법 면에서도 뛰어나다. 화면은 화사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산허리를 안개로 유현幽玄하게 처리한 청록산수풍의 배경은 그 자체로도 뛰어난 기량이 발휘되어 있다. 화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물․산수․화조 등이 조화롭게 그려져 있다. 인자한 미소를 보이는 나반 존자 주위에 신행자들이 이루고자 하는 소원을 상징하는 여러 도상圖像들이 가득하다.

 

천태산에서 구름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유희좌로 앉아 계시는 희고 긴 눈썹의 나반 존자는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손에는 염주를 들고 계신다. 이런 위의는 독성청 유치由致에 나오는 “만약 누구라도 공양을 올리면 반드시 신통스러운 감응을 내리시어, 구하는 것을 모두 이루게 해 주시고, 원하는 것을 모두 좇아 소원을 이루게 하지 않음이 없다[若伸供養之儀, 必賜神通之鑑, 有求皆遂, 無願不從].”는 내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나반존자 좌측에는 진각 거사眞覺居士가 다소 익살스런 표정으로 천도天桃와 다기茶器를 들고 있으며 우측의 선의 동자善衣童子는 불로초가 가득 담긴 망태기를 메고 있다. 주위의 배경은 유치의 내용을 그대로 표현해 놓았다. 즉 “은은한 산, 잔잔한 물가에 한 간 난야를 짓고 누웠다 앉았다 소요하며 활짝 핀 온갖 꽃과 지저귀는 새들… [山隱隱, 水潺潺, 一間蘭若, 坐臥逍遙, 花灼灼, 鳥喃喃…].”이란 구절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개운사 삼성각 독성탱

 

동시에 영험이 큰 나반 존자에게 공양을 올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복합적 의미를 지닌 상징이 가득하다. 즉 바위와 나비와 원추리[휜萱]를 함께 그리는 것은 남자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 하는 부인의 소원을 상징한다. 민화民畵에서는 이 세 가지만을 그려 소원을 이루고자 기원한 것도 볼 수 있다. 진각 거사의 허리춤에 있는 호리병 역시 자손이 영원히 끊이지 않음[자손만대子孫萬代]을 의미한다. 천도는 젊음을 표현하며, 기러기 한 쌍은 편안한 노후를 뜻한다. 여기에 바위와 붉은 등걸의 소나무를 그려 장수長壽에 대한 희구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결국 “항상 천태산에서 머물며 홀로 선정을 닦아, 열반에 들지 않고, 모든 중생의 복 밭이 되어 주시는[恒居天台山上, 獨修禪定, 不入涅槃, 爲作福田]” 본존 나반 존자의 상징적 의미들이 풍부하게 표현된 그림이 독성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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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
위덕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철학박사). 김해시청 벽화공모전, 전통미술대전 심사위원역임. 미술실기 전서-산수화의 이해와 실기(공저)
사)한국미술협회 한국화 분과위원, 삼성현미술대전 초대작가. 국내외 개인전 11회, 단체 및 그룹전 300여 회.
다수의 불사에 동참하였으며 현재는 미술 이론과 실기 특히, 한국 불화의 현대성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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