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청 선어록]
<고봉원묘화상선요高峰原妙和尙禪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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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귀 / 2020 년 3 월 [통권 제83호] / / 작성일20-06-12 10:57 / 조회8,249회 / 댓글0건본문
김호귀 |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1. 고봉원묘
고봉원묘(高峰原妙:1238-1295)는 속성은 서(徐)씨이고, 휘(諱)는 원묘(原妙)이며, 호는 스스로 고봉(高峰) 혹은 서봉(西峰)이라 하였고, 고불(古佛)이라 불렸다. 15세(1252) 때 교종 사찰인 가화현 밀인사(密印寺) 법주(法住)한테 출가하고, 16세 때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20세 때 정자사(淨慈寺)(주1)에 들어가 단교묘륜(斷橋妙倫)(주2)을 친견하였다. 22세 때 3년 기한을 정하고 단교화상에게 법을 청하여 ‘태어날 때에는 어디에서 오고 죽으면 어느 곳으로 가는가[生從何來 死從何去]’라는 화두를 참구하였다. 이후 북간탑(北磵塔)으로 설암(雪巖)(주3)을 참문하여 조주의 무자(無字) 화두 및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인가.[阿誰拖你死屍來]’라는 화두를 참구하였다. 24세 때 삼탑각(三塔閣)에서 ‘타사시구화(拖死屍句話)’를 타파하였다. 25세 때 강심사(江心寺) · 국청사(國淸寺) · 설두사(雪竇寺) 등을 유행하였다. 28세 때 다시 설암선사를 참문하였다. 29세 때 임안(臨安) 용수사(龍鬚寺)로 옮겨 5년이 지난 어느 날 밤 도반이 목침을 땅에 떨어뜨리는 소리에 활연히 의단을 타파하였다.
42세 때 천목산(天目山) 사자암(獅子庵)(주4)으로 옮겨 사자암 서쪽 장공동(張公洞)에 토굴을 지어 사관(死關)이라 내걸고 입적할 때까지 15년 동안 그것을 나서지 않았다. 그곳을 찾아오는 납자들에게 삼관(三關)(주5)으로 제접하였다. 1287년 설암화상이 입적하자 그 법을 이었다. 50세(1291) 때 운부(運副), 학사(鶴沙), 구정발(瞿霆發) 등이 땅을 보시하여 사자암과 10리 쯤 떨어진 곳에 대각선사(大覺禪寺)를 건립하였다. 58세(1295) 때 명대 초기 조옹(祖雍)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임종하였는데,(1295) 세수 58세이고, 법랍은 43세이다. 사법제자로 중봉명본(中峰明本) · 단애요의(斷崖了義) · 포납조옹(布衲祖雍) · 공종이가(空中以假) 등이 있다. 인종(仁宗)은 무오년(1318)에 보명광제선사(普明廣濟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주6) 현전하는 저서로는 <선요>를 비롯하여 <高峯大師語錄> 下卷(주7)이 있다.
2. 구성과 내용
<구성>
1) 서문과 발문
지원 갑오년(1294) 9월 9일에 천목산의 참학제자 직옹 홍교조(洪喬祖)가 쓴 [서문].
지원 갑오년(1294) 10월 16일에 참학제자 청초 정명 주영원(朱潁遠)이 쓴 [발문].
2) 시자 지정(持正)이 기록하고 참학제자 직옹거사(直翁居士) 홍교조가 편찬한 본문.
본문은 29개의 법어로 이루어져 있다. 개당보설 1개, 시중 19개(해제2·결제2 포함), 소참(만참 포함) 3개, 특별법어로서 직옹거사 홍신은 · 신옹거사 홍상사 · 이통스님 등을 위한 각각의 설법, 직옹거사에게 답하는 편지 · 앙산노화상에게 수행의 점검을 청하는 편지 · 실중삼관.
<내용>
<선요(禪要)>(주8)는 고봉의 법어집에 해당하는데,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 또는 <고봉원묘선사선요(高峰原妙禪師禪要)>를 줄인 말로 송말 원초의 고봉원묘의 법문을 모아 놓은 설법집이다. 거사 홍교조(洪喬祖)(주9)가 초록하고 편찬하여 선요(禪要)라는 제명을 붙이고, 시자인 지정(持正)이 기록하였으며, 고소산(姑蘇山) 영중사(永中寺) 명본(明本)(주10)이 판에 새겨 널리 세상에 전하였다. 총 29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법어는 전체적으로 납자가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해결을 위하여 화두를 참구할 것을 말한다. 특히 화두참구에서 마음의 자세 및 그 차례와 향상일로(向上一路)의 깨침에 대한 것을 고봉 자신의 경험에 의거하여 설법한 것이다.
본문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 <개당보설>에서는 고봉 자신이 쌍경사에서 만법귀일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의 화두를 참구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의단형성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한다. 제2 <시중>에서는 일대사인연을 해결하기 위한 대분지(大憤志)의 필요성에 대하여 설한다. 제3 <직옹거사 홍신은에게 주는 설법>에서 화두참구의 수행에서 분별심이 없는 반야지혜가 필요함을 설한다. 제4 <결제시중>에서는 안거 동안에 대신심(大信心)으로 정진하라고 설한다.
제5 <시중>에서는 깨침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사구가 아닌 활구를 대신심으로 참구하여 무진장 보배를 찾으라고 설한다. 제6 <해제시중>에서는 선지식의 가르침에도 구속되지 말고 정진하라고 설한다. 제7 <시중>에서는 뜻을 세워서 간절하게 화두를 간절하고 굳세며 면밀하고 용의주도하게 참구하되 초심을 잊지 말라고 설한다. 제8 <입한시중>에서는 각자의 능력과 필요에 맞게 기한을 정해두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수행에서는 상과 벌이 분명해야 함을 설한다. 제9 <시중>에서는 정해 둔 기한에 깨침을 성취하려면 산란하고 혼침하며 더디고 순조로운 경지에서 여념이 없이 간절하게 정진할 것을 설한다.
제10 <만참>에서는 일상의 생활에서 실참(實參)과 실오(實悟)할 것을 설한다. 제11 <신옹거사 홍상사에게 주는 설법>에서는 결정신(決定信)과 대의(大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곧 화두에 대한 의심은 믿음이 체(體)가 되어야 하고 화두를 통한 깨침은 의심이 용(用)이 되어야 한다고 설한다. 제12 <시중>에서는 오랜 수행에도 불구하고 깨치지 못한 열 가지 원인을 언급하고 그것 보다 중요한 것은 출가의 본분사로서 대사일번(大死一番)의 심정으로 정진할 것을 설한다. 제13 <결제시중>에서는 법신의 향상사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간절하고 골똘하며 면밀하고 용의주도하게 화두를 참구할 것을 설한다. 제14 <시중>에서는 참선의 요체에 대하여 일상의 생활에서 혼침(昏沈)과 도거(掉擧) 기타 번뇌가 일어나는 것은 해태심에서 비롯된다고 설한다. 제15 <단양시중>에서는 집착과 분별의 고질병에 걸리지 말라고 설한다.
제16 <시중>에서는 대신근(大信根)과 대분지(大憤志)와 대의단(大疑團)으로 참선할 것을 설한다. 제17 <이통스님에게 주는 설법>에서는 악지악각(惡知惡覺)을 벗어나려면 본분작가(本分作家)를 만나야 할 것을 설한다. 제18 <시중>에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사구명(己事究明)할 것을 설한다. 제19 <해제시중>에서는 평등불성의 경우에도 일념에 회광반조(廻光返照)할 것이 중요함을 설한다. 제20 <시중>에서는 본래성불(本來成佛)일지라도 대지(大志)와 대원(大願)을 일으켜서 화두일념을 정진할 것을 설한다. 제21 <제야소참>에서는 조사관(祖師關)을 타파하여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생사사대(生死事大)의 성취에 대하여 설한다.
제22 <시중>에서는 해태심과 의심과 만족심을 내지 말라고 설한다. 제23 <결제시중>에서는 철위산에 갇힌 상황에서도 일착자(一著子)를 터득해야 한다고 설한다. 제24 <시중>에서는 주장자의 설법으로 간절한 마음에서 진정한 의심이 형성되면 번뇌를 극복한다고 설한다. 제25 <제야소참>에서는 분별지[知]와 분별식[識]의 초월하여 정진할 것을 설한다. 제26 <시중>에서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하는 마음으로 공부할 것을 설한다. 제27 <직옹거사에게 답하는 편지>에서는 무심(無心)의 경지에서도 대분지를 일으켜 정진할 것을 설한다. 제28 <앙산노화상에게 수행을 점검받는 편지를 보냄>에서는 고봉 자신의 수행과 진착과 깨침 등에 대하여 자세한 이력을 회고하면서 점검을 청익하는 내용이다. 제29 <실중삼관(室中三關)>에서는 세 가지 화두를 제시하여 납자들의 수준 내지 수행의 진척 등에 대하여 점검하고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은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3. 화두 참구의 지남서
간화선의 수행에 대하여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대혜종고의 <서장>과 고봉원묘의 <선요>를 그 지침서 내지 텍스트처럼 의용依用해 왔다. <서장>은 전체가 서간문으로서 그 특성상 개별적인 법어 내지는 질문에 답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에 <선요>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대중 납자들을 상대로 시중 내지 소참법문으로서 간화선의 수행법에 대하여 비교적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고봉원묘 자신의 수행 이력에 대하여 스스로 점검하고 스승으로부터 자문을 구하고 있는 점이 뚜렷하다.
<선요>의 법어에는 특히 화두를 참구하는 기본적인 자세로서 대신근과 대분지와 대의단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공통적으로 보다 섬세한 가르침으로서 납자 자신이 깨침에 도달하지 못했을 경우에 그 수행방식에 대한 반성으로서 과거 전생의 깨침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하루 정진하고 열흘을 놀아버린 것은 아닌가. 근기가 낮고 의지가 미약했던 것은 아닌가. 번뇌망상에 젖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멍한 상태에 빠져 있고 공망무기(空妄無記)에 젖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터득하지 못한 것을 터득했다고 말하고 깨치지 못한 것을 깨쳤다고 말해왔던 것은 아닌가 등 화두참구 십종병에 대한 점검사항을 언급한다. 이들 열 가지는 대혜의 법어에 보이는 무자화두의 참구에 대한 점검과 함께 화두참구법의 궤칙이 되어 있다.
주석)
주1) 浙江 杭縣南郊의 남쪽 屛山에 위치한 절이다. 後周 顯德元年(954) 吳越王 錢弘俶이 창건하였다. 처음에는 慧日永明寺라 하였고, 宋代에 淨慈寺라고 개칭하였다. 그 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남송 고종이 중건하였다. 延壽선사가 15년 동안 거처하면서 1700의 대중을 이끌던 대가람이다.
주2) 名은 妙輪이고 字는 斷橋이다. 18세에 출가하여 처음에는 麻三斤話를 들었고, 뒤에 雪竇에서 무준사범을 참문하여 從何處來를 묻자 무준이 還過得石梁橋麽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단교가 一脚踏斷了也하고 말한 연유로 이 때부터 단교라고 불렸다. 景定 二年(1261)에 62세에 입적하였다.
주3) 雪巖祖欽(1215-1287)은 臨濟宗 楊岐派의 破庵派 선사로서 婺州(浙江) 출신으로 호는 설암이다. 5세에 사미가 되고 16세 때에 得度하였다. 후에 무준사범 선사의 법을 이었다. 황제가 紫衣를 하사하였다. 元 世祖 至元 24년(1287) 73세에 입적하였다. 본문의 仰山老和尙은 仰山祖欽 곧 雪巖祖欽이다.
주4) 천목산은 절강성 임안현 서북과 안휘성 접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에는 두 봉우리, 즉 동천목과 서천목이 있으며 높이가 각각 1520미터, 1547미터이다. 서봉에는 12龍潭과 36洞이 있고, 그밖에 峻峯, 巖洞, 石室, 冷泉 등이 있으며, 禪源寺, 獅子禪寺, 大覺禪寺 등도 여기에 있다.
주5) 高峰三關은 다음과 같다. “杲日當空 無所不照 因甚被片雲遮却/ 人人有箇影子 寸步不離 因甚踏不著/ 盡大地是箇火坑 得何三昧 不被燒却”
주6) 고봉의 법계는 조계혜능의 제23대이고, 임제의현의 제18세 적손에 해당한다. 曹溪慧能 - 南嶽懷讓 - 馬祖道一 - 百丈懷海 - 黃檗希運 - 臨濟義玄 - 興化存奘 - 南院慧顒 - 風穴延沼 - 首山省念 - 汾陽善昭 - 慈明楚圓 - 楊岐方會 - 白雲守端 - 五祖法演 - 圜悟克勤 - 虎丘紹隆 - 應庵曇華 - 密庵咸傑 - 破庵祖先 - 無準師範 - 雪巖祖欽 - 高峰原妙
주7) <高峰原妙禪師語錄>에는 탑명(卍新續藏70, pp.691上-701中) 여기에는 拈古·頌古·偈頌·行狀·塔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주8) <高峰原妙禪師禪要>, (卍新續藏70, pp. 702上-713上) 수록본
주9) 高峰原妙의 재가 제자로서 성은 洪씨이고 이름은 新恩이며 자는 節夫이고 법명은 喬祖이며 호는 直翁이다.
주10) 中峰明本(1263-1323)을 가리킨다. 永中은 寺名이고 이름은 明本이며 자는 中峰이고 호는 幻住道人이다. 南宋 景定 4년(1263)에 生하여 元 至 治 3年(1323)에 입적하였다. 元 至元 23年(1286) 24세 때 천목산 사자원에 들어가 고봉원묘에게 출가하였다. 홍교조와 함께 『선요』를 간행했을 때의 나이는 32세이며, 고봉의 사법제자이다. 조선시대 후기 蓮潭有一의 <禪要私記>에는 永中上人을 智玄이라 하였고, <韓國佛敎所依經典> 및 <四集私記>에는 智賢 또는 智現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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