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한국의 전승불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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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섭 / 2020 년 3 월 [통권 제83호] / / 작성일20-06-12 11:17 / 조회6,697회 / 댓글0건본문
고영섭 / 동국대 교수
분황원효(617~686)는 특정 종파의 우월성을 강조하지 않고 불설의 핵심인 중도의 관점 위에서 공명정대하게 교판을 수립하였다. 그는 자신의 <대혜도경종요>∙<열반경종요>∙<법화경종>∙<미륵상생경종요> 등에서 대소승, 즉 성문장(聲聞藏)과 보살장(菩薩藏)이라는 두 교판으로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였다. 그러면서 ‘반야’를 ‘화엄’과 동격인 ‘구경요의교’(究竟了義敎) 즉 구극적 진리를 궁구하는 가르침으로 자리매김했다. 원효는 종래의 <반야경>을 <대지도론>의 ‘대지도’(大智度)처럼 ‘큰 지혜로 깨침의 언덕에 건너간다’(大慧度)는 의미로 옮겨 ‘대혜도경’이라고 했다. 이 ‘종요’(宗要) 역시 종래 불가에서 쓰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종요’를 원용하여 생명력을 불어넣은 뒤 새롭게 사용하였다.
원효는 이들 용어를 원용하여 자신의 저술 이름으로 삼은 <대혜도경종>에서 중국 혜관(慧觀)의 돈점오시(頓漸五時: 四諦∙無相∙抑揚∙一乘∙常住)설과 <해심밀경>을 소의로 하는 법상종의 삼종법륜(三種法輪: 四諦∙無相∙了義)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 뒤에 <대품반야>가 <대혜도경종요>에서는 두 번째 무상시(無相時)로 판석되고, <해심밀경>에서는 두 번째 무상법륜(無相法輪)으로 판석된 것은 그럴 듯하지만 “이치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理必不然)”고 주장한다.(주1) 그런 뒤에 <대품반야>는 <화엄경>과 같이 무상(無上)하고 무용(無容)한 구경요의(究竟了義)라고 주장한다.(주2)
원효의 4종교판
원효는 이들 종요류에서 먼저 수행자의 위의에 입각하여 삼승(三乘)의 별교(別敎)와 통교(通敎) 및 일승(一乘)의 분교(分敎)와 만교(滿敎)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4종 교판을 수립하였다. <법화경종요>에서 그는 <해심밀경>의 삼종법륜(三種法輪)설을 소개한 뒤, 거기에서 불요의(不了義: 제1∙2법륜)로 판석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 논리적 근거로서 다른 삼종법륜(根本∙枝末∙攝末歸本)설에서 이 <법화경>(제3법륜)이 <화엄경>(제1법륜)과 함께 구경요의(究竟了義)로 판석하고 있음을 들고 있다.(주3) 나아가 <열반경종요>에서는 중국의 남방(南方) 법사가 주장하는 인천(人天)∙삼승차별(三乘差別)∙공무상(空無相)∙열반(涅槃)의 돈점오시(頓漸五時)설에 <열반경>을 요의경(了義經)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북방(北方) 법사들이 주장하는 <반야>∙<유마>∙<법화>∙<열반> 등도 모두 요의경(了義經)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원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남북 교판에 대해 ‘만일 한쪽 견해에만 집착하여 한결같이 그렇다고 하면 두 설을 다 잃을 것이요, 만일 상대를 인정해 주어 자기 설만 고집함이 없으면 두 설을 다 얻을 것이다”(주4) 라고 갈파한 뒤, 5시(時) 5종(宗)으로 경전의 깊은 뜻을 판석하려는 좁은 견해를 경계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대품반야>∙<법화>∙<열반>∙<화엄> 등을 다 같이 구경요의라고 보는 포괄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주5)
원효는 새로운 교판으로서 삼승별교와 삼승통교, 일승분교와 일승만교라는 4교판을 짜면서 일승분교에 여래장과 대승윤리를, 일승만교에 보현교로서 <화엄경>을 배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의 큰 줄기는 <기신론>과 <화엄경>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나아가 원효는 <법화경>의 삼승(방편) 일승(진실)설에 의거하여 “승문(乘門)에 의하여 4종을 약설(略說)한다”고 말하면서 다음의 4교판을 제시하고 있다.(주6) 원효는 4교판에서 이승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일승(一乘)이라 하고, 그 중에 보법(普法)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수분교(隨分敎)라 하고, 보법을 궁구하여 밝힌 것을 원만교(圓滿敎)라고 일컫는다.(주7) 그는 삼승별교에는 아직 ‘존재의 공성(法空)’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제경>과 <연기경> 등의 아함교의를 배대한다. 그런 뒤에 원효는 모든 존재의 공성에 대해 이해가 있는 <반야경>의 중관교의와 <심밀경>의 유식교의를 삼승통교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삼승의 상위개념으로서 일승을 분교와 만교로 나누었다.
원효는 일승분교에는 <보살영락본업경>과 <범망경>을 넣었다. 그는 일승분교에 대승윤리에 해당하는 경전들을 배치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교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공명정대한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원효는 일승만교에 보현교(普賢敎)로서 보법(普法)(주8)을 설하는 <화엄경>을 짝지었다. 이것은 그가 삼승을 별교와 통교로 가르는 기준이 ‘존재의 공성’(法空)의 측면이었다면, 일승을 분교와 만교로 나누는 기준은 일체법에 두루하여 걸림이 없이 상입(相入, 상호 투영성)하고 상시(相是, 相卽, 상호 동일성)하다는 ‘보법’(普法)의 측면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상판석은 불설의 전관 아래 불학 전반에 대해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능동적인 학문 방법이었다. 이처럼‘격의’와 ‘교판’의 방법론은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분과학문으로 나아간 근현대불교학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학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불교학은 전승 불학의 주체적 방법론(格義)과 능동적 방법론(敎判) 지닌 강점과 장점을 원용해 중도적이고 창조적인 불(교)학을 수립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상시론지嘗試論之 – 사료에 대한 객관적 평가 방법
‘상시론지’는 ‘자세히 조사해서 이를 논해 보면’이라는 관형구로 고전에서 자주 활용된다. 이것은 서로 상반되는 이질적인 사료들의 기록을 소개한 뒤 이들 사료들에 대해 사가(史家)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상시론지’는 하나의 사료에만 의지해 판단하지 않고 여러 사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에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상시론지’만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사가들은 사료의 말미에 ‘의왈’(議曰)이라 해서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혹은 ‘강론하다’의 의미로 사료 분석과 기록 평가를 덧붙이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문헌에 대한 서양인들의 과학적 합리적 분석적 태도와 방법론과 다르지 않다. 동양인들도 사료에 대한 객관적 태도를 엄밀하게 견지해 왔던 것이다.
이를테면 일연은 <삼국유사>「흥법」편 ‘아도기라’ 조목에서 ‘상시론지’를 통하여 “양나라와 당나라의 두 <고승전>과 <삼국본사>에 모두 고구려와 백제의 두 나라 불교 시초가 진(晋)나라 말년인 태원 연간(376~395)으로 기재되었으니 순도와 아도 두 법사가 소수림왕 갑술년(374)에 고구려로 온 것은 분명하니 이것은 틀리지 않았다. 만일 비처왕 때에 처음 아도가 신라에 왔다면, 이는 아도가 고구려에 100여 년 머물다 온 것이 된다. 비록 위대한 성인으로서 행동이란 나타나고 없어지는 것이 평범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반드시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또한 신라에서 불교를 받든 것이 이렇게 늦지도 않았을 것이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만일 미추왕 때에 있었다 하면 오히려 순도가 고구려에 왔던 갑술년보다 100여년을 앞서게 되니, 그때 신라는 아직 문물제도가 없었고, 나라 이름도 정하지 못했는데, 어느 겨를에 아도가 와서 부처 받들기를 청할 수 있었겠는가? 또 고구려에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뛰어넘어 신라에 왔다는 것도 합당치 못하다”고 하였다. “설사 잠깐 일었다가 스러졌다 하더라도 어찌 중간에 그렇게 적막하게 몰라, 향의 이름마저 몰랐다 할 수 있는가? 한쪽에는 어찌 그리 늦고 또 한쪽은 어찌 그리 빠르게 기록되었는가? 생각하건대 불교가 동방으로 전파되어 온 형세를 살펴보면 반드시 고구려와 백제에서 시작되어 신라에서 그쳤을 것이다. 눌지왕은 이미 소수림왕과 시대가 가까우니, 아도가 고구려를 떠나 신라로 온 것도 당연히 눌지왕 때가 합당하다”고 평가하였다. 이처럼 일연은 객관적인 사료비판과 실증적인 논증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의왈議曰’ 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연은 북조 탁발씨의 왕조인 원위元魏 시대의 석담시釋曇始의 전기를 검토하였다. 그런 뒤에 아도가 신라로 건너온 석담시라는 견해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로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담시가 태원 말년에 해동에 왔다가 의희 초년에 관중으로 갔다면 여기에 체류한 것이 10여년인데 어찌, 우리 역사에는 문헌이 없는가? 담시는 해괴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다. 아도·묵호자·난타와 연대와 사적이 비슷하니, 세 사람 중 하나는 반드시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가 의심스럽다”고 평가하고 있다. 위나라 사람 아굴마我掘摩와 고구려 여인 고도녕高道寧 사이에서 태어난 ‘아도我道’와 달리 머리를 깎은 승려를 뜻하는 ‘아도’라는 일반명사로 인해 많은 사가들은 오해의 기록을 남겼다. 이처럼 전승불학은 ‘격의’와 ‘교판’과 ‘상시론지’와 같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객관적인 학문 방법을 견지해 왔다.
일본 교토 고산사 소장 원효대사 진영
주석)
元曉, <大慧度經宗要>(<韓佛全> 제1책, p.486하).
元曉, <大慧度經宗要>(<韓佛全> 제1책, p.487중).
高翊晋, <한국고대불교사상사>, 서울:동국출판부, 1989, p.239.
元曉, <涅槃經宗要>(<한불전> 제1책, p.547상).
高榮燮, <원효, 한국사상의 새벽>, 1997; <나는 오늘도 길을 간다>, 서울:한길사, 2009.
表員集, <華嚴經要決問答> 권4, 分敎義(<한불전> 1책, p.366상).
表員集, <華嚴經要決問答> 권4, 分敎義(<한불전> 2책, p.385중); 法藏, <華嚴經探玄記> 권1(<대정장> 35책, p.111상); 慧苑, <刊定記> 권1(<속장경> 5편, 9투, 8책 상); 澄觀, <華嚴經疏> 권2(<대정장> 35책, p.510상).
表員集, <華嚴經要決問答> 권2, 分敎義(<한불전> 2책, p.366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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