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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세계]
지장 보살과 명부 세계의 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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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  2020 년 2 월 [통권 제82호]  /     /  작성일20-06-12 15:39  /   조회7,61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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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동국대 초빙교수·미술사

 

지장 보살은 석가여래로부터 미륵불이 이 세상에 출현할 때까지 정법이 사라진 악한 세상에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도록 약속받은 분이며, 스스로 지옥 세계의 모든 중생이 성불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발원한 보살이다.

 

지장 보살, 도명 존자, 무독 귀왕

 

조선시대 지장전이나 명부전에 봉안된 지장 보살의 특징은 머리 형식과 지물持物에 잘 나타나고 있다. 머리는 승려처럼 삭발했거나(사진 1) 가끔 두건을 쓰고 있고(사진 2), 손에는 여섯 개의 고리가 달린 육환장六環杖이나 빛을 상징하는 광명주光明珠를 들고 있다(사진 3). 육환장은 바로 지옥문을 여는 열쇠를 의미하며, 손바닥 위에 놓인 밝은 구슬은 어둠의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대방광십륜경大方廣十輪經』과 『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에는 “지장 보살이 많은 보살들과 함께 신통의 힘으로 이곳으로 올 때 출가 수행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삭발한 승려형의 지장 보살이 표현되는 근거이다. 

  

사진 1. 영광 불갑사 지장보살상, 조선(1654년)

 


 

사진 2. ‘정덕 10년명’석조지장보살상, 조선(1515년), 보물 1327호.

 

좌우로 승려 형상을 한 도명 존자와 왕 모습을 한 무독 귀왕을 거느리고 있다. 무독 귀왕(사진 4)은 한 바라문의 딸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아 저승 세계에 갔을 때 어머니에게 인도해 주는 역할을 했다. “효순한 딸이 어머니를 위해 각화정자재왕여래의 탑과 절에 공양하고 복을 닦은 공덕으로 어머니와 지옥에 있던 죄인들이 그날 다 같이 천상에 태어나게 되었다.”라고 무독 귀왕이 바라문의 딸에게 어머니가 있는 곳을 알려준 이야기가 『지장보살본원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진 3. 육환장과 광명주를 든 지장보살도, 고려(13세기).

 


 

사진 4. 영광 불갑사 무독귀왕상, 조선(1654년).

 

도명존자(화상, 사진 5)는 당나라 때 개원사에 살았던 승려로 저승사자의 잘못으로 염라대왕 앞에 갔다가 되돌아 온 분이다. 그가 경험한 저승 세계를 그림과 기록으로 남겼는데 아쉽게도 <환혼기>라는 기록만 전하고 있다. 중국에서 지장 보살의 협시로 무독 귀왕과 함께 도명 존자가 자리잡게 된 이유이다. 

 

명부전의 존상들

 

불교의 지장신앙과 도교 및 민간의 명부신앙이 결합되어 등장한 공간이 조선후기의 명부전이다. 중앙 불단에는 지장삼존상을 봉안하고 좌우로 죽은 지 7일부터 49일까지 재판을 담당하는 7명의 왕과 100일·1년·3년이 되는 날 재판하는 3명의 왕을 합해 모두 열 분의 왕 즉 시왕十王을 배치했다(사진 6, 7). 이 외에 재판을 돕는 판관(사진 8), 여러 시왕의 보조자인 귀왕(鬼王, 사진 9), 염라대왕 등 시왕이 망자에게 보내는 전령 역할을 하는 흔히 저승사자로 알고 있는 사자(使者, 사진 10), 심부름꾼인 동자, 지옥의 장군인 삼원장군三元將軍을 상징하는 장군상(사진 11) 등이 배치되었다.

 


사진 5. 영광 불갑사 도명존자상, 조선(1654년) 

 


사진 6. 영광 불갑사 제5염라대왕상, 조선(1654년) 

 


사진 7. 영광 불갑사 제10오도전륜대왕상, 조선(1654년) 

 

이규경의 「지옥변증설(地獄辨證說)」

 

“지옥에 대한 말을 옛날에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세속에서 명부(冥府) 혹은 음부(陰府)라 하고 또는 풍도(酆都)라고 한다. <패설(稗說)>에 ‘풍도는 산 이름으로 북쪽 음극陰極 지방에 있는데 그 산에 대제大帝가 있어 인간 세상의 지옥을 주관한다’ 했다. 이백은 시에서 ‘남쪽 두성斗星은 인간의 이생 호적을 주관하고, 북쪽 풍도는 죽은 사람의 성명을 조사한다’고 읊었다. …(중략)…

 

또 이르기를 ‘명부에서 선악부善惡簿를 비치해 선행이 많은 자는 복적福籍에 기록하기 때문에 선근을 심은 것을 복전福田이라 말한다. 따라서 시왕의 호가 있고 경전도 <시왕경十王經>이 있다. 염마왕을 염마라閻摩羅, 염라, 쌍왕雙王이라고 한다. <우란분기盂蘭盆記>에 ‘오빠와 누이가 다 지옥의 임금이 되어 오빠는 남자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누이는 여자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므로 쌍왕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왕 중에 첫째 진광왕은 부동不動, 둘째 초강왕은 석가문불, 셋째 송제왕은 문수 보살, 넷째 오관왕은 보현 보살, 다섯째 염마왕은 지장 보살, 여섯째 변성왕은 미륵불, 일곱째 태산왕은 약사불, 여덟째 평등왕은 관음 보살, 아홉째 도시왕은 세지 보살, 열째 오도전륜왕은 아미타이니, 오도는 바로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人道ㆍ천도天道가 그것이다. 

 

‘지장 보살은 모든 중생이 지옥으로 떨어져 여러 고초를 받는 것을 불쌍히 여긴 나머지, 맹세코 그들을 구원해 주기 위해 지옥에 이를 때마다 육환장을 울리면 지옥문이 저절로 열리게 된다. 그는 바로 신수神水를 가지고 고초를 받는 모든 중생에게 뿌려 주고, 업풍業風으로 그들을 불어 사람의 형체를 만들어 준다’하였는데 대체로 불교에서 지옥에 대하여 말한 것이 황당무계한 것이 매우 많다.”(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18 「지옥변증설地獄辨證說」).

 


사진 8. 영광 불갑사 판관상, 조선(1654년). 


사진 9. 영광 불갑사 귀왕상, 조선(1654년). 


사진 10. 영광 불갑사 사자상, 조선(1654년). 

 

앞에서 인용한 이규경의 「지옥변증설」은 조선후기 실학자였던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실린 불교의 지옥에 관한 글이다. 조선후기 명부 신앙에 관한 일면과 특히 염라대왕을 ‘쌍왕雙王’이라 일컫는 것에 대한 설명이 주목을 끈다. 지금은 헐렸지만 조계종 총무원이 위치한 한국불교역사기념관 자리에 있던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을 모셨던 조계사의 덕왕전德王殿의 ‘덕왕’은 바로 ‘쌍왕’을 의미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 . 영광 불갑사 장군상, 조선(1654년).  

 

조선후기에 유행한 명부신앙 

 

17세기 조선후기 불교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옥 중생 구제와 관련된 지장신앙과 염라대왕을 비롯한 시왕과 관련된 명부 신앙에 관한 미술이 유행했다는 것이다. 17세기에 조성된 불교조각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천도재와 예수재와 관련된 지장삼존상, 시왕상, 명부 권속 등이다.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신앙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의례가 함축된 신앙 형태로, 산 자의 예수신앙預修信仰과 죽은 자의 천도신앙薦度信仰이 합쳐진 것이다. 조선후기 예수신앙과 천도신앙을 고찰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명부전冥府殿이다. 

17세기에 명부신앙과 예수신앙이 유행한 것은 법견法堅 스님(1552~1634)의 글을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아, 지난 시대에 사람이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날 적에 몸을 온전히 해 돌아간 자는 한 둘에 지나지 않았고 참혹한 죽음을 맞은 자는 천만이나 되었습니다. 이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근세의 비통한 일을 대략 거론하면서 눈물을 닦고 써 볼까 합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삼경三京을 지키지 못한 채 만백성이 어육魚肉이 되었고 또 정묘호란 때에는 서쪽 방이 함락되어 억조 창생이 결딴이 났습니다. 그리하여 해골이 들판을 덮고 핏물이 시내에 넘칠 정도가 되었는데, 부자父子가 모두 죽었으니 누가 장사 지내고 누가 매장할 것이며 부처夫妻가 모두 죽었으니 누가 봉분封墳하고 누가 제사 지내겠습니까. 

 

아, 이것이 하늘 탓입니까, 사람 탓입니까. 아니면 명운입니까, 운수입니까. 어찌하여 사람이 도탄에 빠진 것이 이와 같이 극도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입니까. 애달프게 살아 죽은 이를 슬퍼하며 흐느끼는 소리가 뒤섞여 들리는데, 저 창천은 죽이는 것을 싫어하니 음양의 조화를 해쳐 재앙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만약 방외의 신력神力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원혼을 해탈하게 하기 어렵겠기에 산야山野에서 무궁한 대원을 세워 유정의 고혼을 구제하려고 합니다. 부모와 처자를 천도하려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 모두가 이 글을 읽고 동참해 주셨으면 합니다.”( <奇巖集> 권3 「楡岾寺普光殿基陛改築落成水陸勸善文」).

 

법견스님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으로 희생된 고혼들을 천도하기 위한 수륙재를 권선하는 글을 통해 당시 불교계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다. 17세기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명부전 존상은 당시 이러한 시대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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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 구」로 문학박사학위 취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불교미술전공 초빙교수,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 저서에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 기록 연구』, 공동 저서로 『치유하는 붓다』·『간다라에서 만난 부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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