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의 등장과 신유학의 태동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전체 기사

월간고경

[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유신의 등장과 신유학의 태동


페이지 정보

김제란  /  2020 년 1 월 [통권 제81호]  /     /  작성일20-06-13 17:32  /   조회5,234회  /   댓글0건

본문

김제란 철학박사 · 고려대 강의교수

 

동양에서의 모든 ‘학문’은 근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근대는 보편적인 의미의 근대가 아니라 서양의 근대를 의미한다. 불교를 포함한 철학, 역사 등 고래의 사유와 지식들은 사람들이 살아오고 있는 한 과거부터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 온 것이지 갑자기 수입되거나 발명될 수 없는 것이지만, 동양에서의 학문이란 ‘근대’에 시작되거나 발명된 것이다. 

 

동양에서의 ‘근대’

 

학문이라는 이름이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닌 과학적 사유를 지칭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상식이다. 대학교의 분과가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도 오직 ‘과학적’인 것만이 진정한 학문에 속한다고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근대 이전 동양의 모든 철학 사상, 역사 등은 과학의 범주에 속할 수 없고, 아직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 당시 서양학자들의 판단이었다. 불교와 같은 종교는 더욱이 반反과학적이라고 여겨졌고, 불교에 대한 연구는 근대 이후 새로운 방법론적 도입이 있은 후에야 가능한 것이었다.   

 

구체적인 예로 중국의 고대 역사와 사상을 들 수 있다. 중국에서 하은주夏殷周 삼대로 대표되는 고대 역사는 그 왕조가 존재했다는 ‘분명하고’ ‘과학적인’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전설이고 신화에 불과하다고 서양학자들은 주장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고고학으로 은 나라 수도인 ‘은허’가 발굴되고, 그 곳에서 갑골문甲骨文이라는 한자 이전의 문자가 발견되고, 방사성동위원소 측정법을 쓴 결과 발굴 유물이 4,000년 이전의 것으로 확정되는 과학적 ‘증거’가 나온 뒤에는 은 나라의 역사적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다. 뒤이어 1950년대에 하 나라 수도의 발굴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증거’가 나온 뒤에야 하은주 삼대가 전설이 아니며 실재했던 고대 국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삼대의 철학적 ‘사상’에 대해서는 포괄적이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물증’이 없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동양 사상은 『논어論語』라는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물증이 있는 공자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았다. 공자 이전의 몇 천년의 사상이 부정당한 것이다. 공자가 아무리 “은 나라 문화는 하 나라에 근거하고, 주 나라 문화는 은 나라에 근거한다”고 한 기록이 남아있다 한들, 포괄적인 물증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불교 역시 생활 속의 신앙과 문화적 의례로 남아있더라도 그것은 문헌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물증’에 비하면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인정되기 어려웠다. 중국 근대에 돈황 문서들이 대거 발견되면서 서양에서의 불교 연구가 ‘책상 위에서 하는’ 문헌학적 연구가 중심이 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중국 근대불교학 역시 서양 문화, 서양의 학문적 방법론과 연관없이 논의할 수 없는 근대의 산물인 것이다.  

 

불교의 역할

 

중국 근대 시기에 불교가 맡은 역할은 매우 독특하다. 아편전쟁(1840년)과 청일전쟁(1894년)으로 대변되는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과 그로 인한 민족주의의 위기를 본질로 하는 중국 근대에서, 동서 문화의 충돌이라는 상황 앞에서 불교는 서양 철학에 대항하는 사상적 무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중국의 근대 불교는 동서 문화 교류의 계합점으로 작용하였다는 특징을 가진다. 

 

서양사상이 새로운 시대 사조로 대두하게 되자, 근대 이전의 사회 이데올로기로 강력한 영향력을 지속해온 주자학에 눌리고 있던 불교와 양명학이 다시금 일어나게 되었다. 주자학은 세계와 인간을 동일한 영역으로 파악하고 동일한 메카니즘인 리理의 실현으로 파악하는 사상이다. 근대에 들어와 서양에서 자연과학이 들어오면서 동양 전통 과학인 역학曆學 및 천문학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 밀리게 되자, 세계와 인간을 동일한 방식으로 보는 주자학으로는 서양에 대응하기 부족하다는 인식이 동양의 지식인들 사이에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동양이 서양보다 자연과학 측면에서는 떨어지더라도, 심성론 등 윤리학이나 철학적인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라도 주자학을 폐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근대에 들어와 주자학에 대한 대안으로 대승불교가 발전하였고, 인간의 심성만을 주요 관심으로 삼았던 양명학이 득세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동양 학자들의 민족주의와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하은주 삼대가 전설에 불과하다는 서양학자들의 주장에 반하여 동양 학자들은 자신들이 유구한 역사와 깊은 철학을 지닌 민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동양 사상은 철학적 깊이가 없다는 서양학자들의 주장에 반하여 서양 철학과 동양 사상의 차이를 제기하며 반박하였다. 마찬가지로 중국 근대에서 불교의 부흥과 불교학의 성립 역시 서양의 침탈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적 학문 활동이었다. 

 

서양사상에 대항하는 세 가지 길

 

근대 시기 한·중·일 삼국에서는 서양의 충격에 대한 동양 전통 철학의 반응이라는  동일한 프레임이 작용하고 있었겠지만, 중국에서는 특히 불교 분야에서 대표적으로 다음 세 가지 반응을 나타내게 되었다.

 

첫째는 유식불교의 등장이다. 중국 근대에서는 특히 유식불교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게 되었다. 체계적이고 정밀하며 분석적인 유식불교는 서양의 칸트Kant나 헤겔Hegel 사상에 못지 않은 관념론 사상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양의 관념론 철학이 중국에 소개되고 중국 전통사상은 인식론이나 논리적인 부분이 약하다고 비판받는 상황에서, 서양의 관념론 못지 않은 인식론과 논리로 무장한 이 동양의 관념론은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유식불교는 그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성격 때문에 칸트나 헤겔 같은 서양 관념론을 대치할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여겨졌고, 유식불교에 대한 관심은 바로 그것이 서양과 중국 전통사상의 계합적 역할을 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유식불교의 부활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유식불교의 이성적, 사변적인 논리 정신을 근대 이후 서양철학의 유입에 대응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생각하였고, 이와 동시에 근대성의 중심이라 할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였다.  

 

둘째는 전통 중국불교의 옹호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태동해서 중국으로 들어온 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전파되었고, 불교의 모국인 인도에서는 힌두교에 밀려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불교가 중국에 전파된 것은 기원 전후의 일로서,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국 불교는 인도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천 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적으로 변화한 ‘중국화한 불교’인데, 그 핵심적인 내용은 연기관의 변화이다. 이 때 ‘중국화’하였다는 의미는 인도불교의 연기론이 진상심(眞常心, 眞心), 또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사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현상계의 모든 현상이 진심, 또는 진여에 의거하여 생겨난다고 보는 이러한 변화된 관점을 ‘진여연기’라고 한다. 전통 중국불교는 이 진여연기론에 근본을 두고 있고, 이러한 특징이 서양의 충격에 대응하는 동양의 우수성의 근거라고 보는 일군의 학자들이 등장하였다. 

 

셋째는 불교의 유학화이다. 유식불교를 추종하는 학자들과 중국 전통불교를 옹호하는 학자들간의 논쟁은 많은 철학적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보다 독창적인 제3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불교의 유학화를 시도한 현대신불교, 또는 현대신유학의 등장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인 웅십력의 저서 『신유식론新唯識論』은 유식불교를 비판하되 유식불교의 논리와 용어를 그대로 활용하여 전통 중국불교를 유학화시킨 철학이다. 제국주의라는 서양의 도도한 악의 물결이 동양을 침범한다고 해도 동양의 바탕은 불교의 불성론佛性論, 유학의 성선론性善論을 통한 인간 긍정과 현실 긍정에 있으며, 동양은 결국 도덕의 측면에서 서양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에서는 현실세계 외에 피안의 또 다른 세계는 없으며, 이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도덕적 행위는 최대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여기에 반외세, 반봉건의 사회적 실천을 더한 현대신불교, 또는 현대신유학은 불교와 유학의 결합으로 서양 철학에 대응하며 새로운 근대철학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동양에서 ‘근대’란 단순한 시대 구분만은 아니다. 모든 동양 근대사상의 기본 전제는 바로 서양사상과의 대결이며, 중국 불교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근대불교는 동서문화가 충돌하는 근대 시대에 서양사상과의 대결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응답하여 다양한 모색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작업들을 우리는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김제란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