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산책]
보조국사-“마음과 짝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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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원기 / 2019 년 1 월 [통권 제69호] / / 작성일20-06-14 22:31 / 조회5,921회 / 댓글0건본문
백원기 동방대학원대 교수
보조국사 지눌(1158∼1210)에 이어 수선사(현 송광사)의 제2대 법주가 된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은 스승의 선사상을 계승하여 고려의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 뿐만 아니라 혜심은 중국 선사들의 공안과 그에 따른 염송을 모은 『선문염송』·『선문강요』 등을 편찬하여 고려 선불교의 이론적 기초를 닦았으며, 또한 문학성이 높은 『무의자시집』을 남김으로써 한국 선시의 발흥을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간화일문看話一門이 깨달음에 이르는 첩경임을 천명한 혜심은, 마음은 본래 형체가 없어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이므로 마음 밖에서 따로 구할 필요가 없음을 설파하고, 그것의 묘의를 시적 형상화하여 감동을 준다. 선사의 마음의 묘용에 대한 촌철살인의 일갈은 어느 화주의 부탁으로 벽에 쓴 「도벽화주청塗壁化主請」에서 선명히 표출되고 있다.
마음과 짝하지 말라
마음 없으면 마음은 절로 편안하리라
만일 마음과 짝하면
까딱하면 곧 마음에 속으리라.
막여심위반莫與心爲伴 무심심자안無心心自安
약장심작반若將心作伴 동즉피심만動卽被心謾
- 「도벽화주청塗壁化主請」
진중하지 못해 마음을 잘 갈무리 못하는 사람은 자칫 마음의 농간에 흔들릴 수 있음을 경책하고 있다. 선사는 그것을 마음과 짝한다고 비유하고 있다. 마음과 짝하지 않고 마음조차 비워버릴 때, 즉 무심할 때 실로 ‘마음’은 편해진다는 것이다. 이때의 무심은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이라기보다는 ‘마음에 끌려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혜심은 무릇 수행자는 항상 마음을 맑히고 묵언수행 정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전형적인 시가 「시료묵示了默」이다.
마음을 항상 맑고 밝게 하고 입은 항상 다물라
어리석은 자와 도반을 하면 도를 얻을 것이니라
송곳 끝 날카롭되 튀어나오지 않게 하면
한 소식 전하는 진정한 수행자니라.
心常了了口常默 且作伴痴方始得
師帒藏錐不露尖 是名好手眞消息
- 「시료묵示了默」
진정한 수행자의 마음은 언제나 새벽같이 깨어있어야 함을 묘파하고 있다. 이것과 저것이 서로 다름은 언어에 의한 허상이므로 ‘항상 입을 다물’고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침묵이 무지의 산물이 아님을 새벽같이 맑고 밝게 깨어있는 것으로 역설한다. 따라서 ‘어리석은 자’는 무명에 가려진 천치가 아니라, 언어분별의 늪에 빠진 겉똑똑이 문사가 아닌 사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런데 언외지의言外之意의 진리를 말로 가르치려다 보면 말로서만 그 모두를 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혜심은 피할 수 없는 언어의 사용을 비유적으로 ‘송곳 끝 날카롭되 튀어나오지 않’도록 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곧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한다는 역설적인 어법이다.
중도는 이항 대립(binary opposition)의 양 극단을 넘어서는 불교의 중심 사상인 동시에 깨달음의 세계관이다. 중도를 깨달은 경지에서는 삼라만상 그대로가 바로 진리의 실상이라는 원융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와 같이 객관적 자연물을 보고 그것을 수행의 중요한 과정으로 승화시키는 혜심은 목련의 모습에서 이러한 중도의 이치를 발견하고 간결하게 찬탄한다.
잎을 보면 처음엔 감나무인 듯하고
꽃을 보니 또 연꽃다워라
어여뻐라! 정해진 상이란 없는 법
양 두변에 떨어지지 아니함이여.
견엽초의시見葉初疑柹 간화우시연看花又是蓮
가련무정상可憐無定相 불락양변두不落兩辺頭
- 「목련木蓮」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는 뜻으로 목부용木芙蓉으로 불리는 목련은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시들면서 잎이 돋아난다. 목련은, 잎은 감나무 잎과 같고 꽃은 연꽃과도 같다. 혜심은 ‘견見’보다 좀 더 자세히 본다는 의미로 ‘간看’으로 묘사함으로써 정밀한 관조를 말하고, 또한 꽃을 봄으로써 연꽃이라는 사실과 함께 감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어 ‘어여뻐라!’라고 묘출한 ‘무정상’은 세간의 모든 법은 고정불변의 상이 없다는 의미이다. 하여 ‘양 두변’ 에 떨어지지 아니함은 옳고 그름, 오고 감, 선악, 유무, 보리 번뇌 등 이항 대립을 넘어선 불교의 중도를 말한 것이다. 거문고는 줄이 팽팽하지도(고행주의) 느슨하지도(쾌락주의) 않은 상황에서 비로소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수 있듯이,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조화로운 경계 속에서 중도는 구현되는 것이다. 잎과 꽃을 보면 목련은 분명 감나무와 연꽃의 모습이지만, 전체로서 보면 감나무도 아니고 연꽃도 아닌 목련인 것이다. 혜심은 감나무도 아니고 연꽃도 아닌 이러한 목련의 모습에서 중도의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시적으로 멋지게 형상화하고 있다.
대나무를 유난히 좋아했던 혜심이다. 한결같은 푸름을 자랑하는 대숲을 스치는 맑고 그윽한 바람소리에서 수행자의 기상과 품격을 읽어내는 혜심은 대나무의 곧음이 주는 청정함과 속 빔을 절개와 허심虛心으로 의인화 하여 찬탄한다.
내가 대나무를 사랑하는 것은
더위와 추위를 타지 않음이라.
서리 겪을수록 절개 더욱 굳세고
세월 깊을수록 마음은 비는구나.
달빛 아래 맑은 그림자 만들어내며,
부처님의 말씀을 바람에 전하고,
머리에 하얗게 흰 눈을 이고
숲속에 빼어난 자태 드러내기 때문이라.
아애죽존자我愛竹尊者 불용한서침不容寒暑侵
경상미려절經霜彌勵節 종일자허심終日自虛心
월하분청영月下分淸影 풍전송범음風前送梵音
교연두재설皎然頭載雪 표치생총림標致生叢林
- 「죽존자竹尊者」
선사가 대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는 더위와 추위를 타지 않으며, 풍상을 겪을수록 절개가 더욱 굳어지고, 세월이 흐를수록 텅 비는 그 자태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달빛을 받아 맑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바람이 불면 범음을 전하는 고고한 자태가 주위의 풍광과 조화를 이루며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가히 선경의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가장 아름답게 본 대나무의 자태는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다는 의인화는 대나무의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부여함과 동시에 수행자의 차갑고 맑게 깨어 있는 모습을 상징한다. 무릇 수행자는 이처럼 어떠한 경계에 처해서도 항상 맑고 투명한 성성적적의 정신으로 깨어 있는 대나무와 같은 곧은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선가에서 수행은 면벽참선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다 깨침의 문이며, 일상생활 그 자체가 바로 도임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선다일여禪茶一如 혹은 선다일미禪茶一味라 하여 ‘각성’을 의미하는 차는 수행자의 삶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의 고불 조주 스님이 두 납자의 참문에 “차 마시고 가게나[끽다거喫茶去]” 한 이후, ‘끽다거’는 유명한 화두가 되었다. 차를 마시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본래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평상심에의 회귀요, 또 무심하게 마시는 차 한 잔에도 자기 자신을 늘 반조해보라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혜심이 한 잔의 차로 번뇌의 열기를 식하고, 마음을 맑히며 선정바라밀에 드는 장면은 다음의 시에서 한결 극화되고 있다.
소나무 뿌리에서 이끼를 털어내니
돌구멍에서 신령한 샘물이 솟아오르네
상쾌하고 편안함 쉽게 얻기 어렵나니
몸소 조주선趙州禪에 든다.
송근거고소松根去古蘇 석안병영천石眼迸靈泉
쾌변불이득快便不易得 친제조노선親提趙老禪
- 「다천茶泉」
직접 다천茶泉을 파기도 했으며, 소나무 뿌리가 뻗은 곳의 이끼를 들추자 돌샘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을 ‘다천茶泉의 돌 눈’이라고 표현하였던 혜심이다. 선사는 돌샘의 물을 길어다 차를 끓여 마시며 그 맛과 향으로 인하여 맑은 정신을 잃지 않고, 조주선趙州禪을 실천해 본다고 하였다. 이는 곧 다선일여茶禪一如를 말한다. 혜심이 얼마나 조주차를 그리워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차별이 끊어지고 대립이 없는 원융의 선적禪的사유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혜심은 차를 통해 스스로를 반조하고 본래심을 찾고자 함은 물론, 중생을 깨우치고자 하였다. 요컨대 마음에 ‘번거로운 옷’을 걸치지 않아 스스로의 호를 무의자無衣子라 했던 혜심은 선심과 시심의 절묘한 조화로 한국선시의 발흥에 선두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여 새해 벽두에 고도의 상징성과 함축, 직관으로 표현되는 선사들의 주옥같은 선시를 읽고 감상하는 것은 잃어버린 ‘참나’를 찾고, 번다한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힐링’의 장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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