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암 거사와 배우는 유식]
마음작용[심소] 1 – 별경심소〔욕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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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암 / 2020 년 1 월 [통권 제81호] / / 작성일20-06-15 11:26 / 조회7,695회 / 댓글0건본문
허암 | 불교학자 ‧ 유식
지난 호까지는 심왕[전오식, 의식, 말나식, 아뢰야식]의 본질적인 성질과 그 부차적인 작용에 대해 기술했습니다만, 이번호부터는 마음작용[심소]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심소의 정확한 명칭은 심소유법心所有法이라고 하는데, ‘마음[心王]에 소유된[所有] 것[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유식삼십송>의 주석서인 <성유식론>에서는 심소를 “항상 심왕에 의지해서 일어나고 심왕과 상응하며 심왕에 계속(繫屬, 다른 것에 매이고 구속되는 것)되기 때문에 심소라고 이름한다”라고 주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심왕과 심소를 각각 화가[밑그림]와 화가의 제자[채색]로 비유하거나 또는 왕[심왕]과 신하[심소]로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심소는 언제나 심왕이 작용할 때 함께합니다. 이 심소는 크게 나누면 6위, 즉 변행(5)‧별경(5)‧선(11)‧번뇌(6)‧수번뇌(20)‧부정(4)입니다. 이것을 자세하게 나누면 51개입니다. 이것을 ‘6위 51六位五十一심소법’이라고 합니다.
6위 51심소법
먼저 변행 심소는 아뢰야식을 설명할 때 이미 자세하게 기술했지만, 다시 한번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변행遍行이란 두루 변遍, 갈 행行이므로 심왕[전오식, 의식, 말나식, 아뢰야식]이 작용할 때 두루[遍] 작용하는[行] 심소[마음작용]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모든 심왕과 함께하는 다섯 가지의 심소[촉, 작의, 수, 상, 사]라는 뜻으로 오변행五遍行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별경(別境, viniyata)심소입니다. 별경이란 별도 별別, 대상 경境자 이므로 ‘별도로 작용하는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별경은 욕欲‧승해勝解‧염念‧정定‧혜慧의 5종류인데, 욕欲의 대상은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대상[所樂境]으로 삼으며, 승해勝解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 확실하게 결정한 것[決定境]이며, 염念의 대상은 일찍이 자기가 경험한 것[曾習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욕의 대상은 승해나 염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승해의 대상은 욕이나 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각각 별도의 인식 대상을 가지고 작용하기 때문에 별경 심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식삼십송>에서는 “소연사부동所緣事不同”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소연이란 능연[인식하는 주체]의 반대말로, ‘인식되는 것’, 즉 인식대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소연사부동’, 즉 ‘대상이 같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로움과 안락을 주는 선善심소는 신‧참‧괴‧무탐無貪‧무치無癡‧무진無瞋‧근‧안‧불방일‧행사‧불해의 11가지입니다.
게다가 우리를 괴롭히는 <근본>번뇌는 탐‧진‧치‧만‧의‧악견의 6종류입니다. 이 근본번뇌에서 파생한 부차적인 번뇌를 수번뇌隨煩惱라고 합니다. 이 수번뇌는 다시 소수번뇌‧중수번뇌‧대수번뇌로 나눕니다. 먼저 소수번뇌小隨煩惱) 분‧한‧복‧뇌‧질‧간‧광‧첨‧해‧교의 11종류이며, 중수번뇌中隨煩惱는 무참‧무괴의 2종류, 대수번뇌大隨煩惱는 도거‧혼침‧불신‧해태‧방일‧실념‧산란‧부정지의 8종류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정심소란 선인지 불선不善인지 정해지지[定]않았다[不]는 의미이며 후회‧수면‧심구‧사찰의 4종류입니다.
이 51개의 명칭은 <유식삼십송>에서 인용한 것(주1)입니다. 51가지 심소 중에서 오변행은 아뢰야식을 설명할 때 이미 했기 때문에 별경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별경의 첫 번째는 욕심소입니다.
별경심소의 첫 번째는 욕(欲, chanda)이다
욕심소란 ‘좋아하는 대상을 희망하는 마음작용’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욕을 ‘희망’‧‘바람’‧‘의욕’이라고 번역합니다. 제가 욕심소를 왜 이렇게 정의했는지, 그 근거를 제시하겠습니다. 우선 세친 보살의 저작인 <대승오온론>에서는 욕을 “바라는 것들[可愛, abhipreta-vastuṇi]에 대해 희망하는 것이다.”(주2)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무착 보살의 저작인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도 “원하든 사물들[대상, īpsite-vastuṇi], 그것들에 강하게 이끌려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이며,(tadtadupasaṃhatā karttŗkāmatā) 근[정진]의 의지처이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유식삼십송>의 주석서인 안혜 보살의 <유식삼십송석>에서도 욕을 “바라는 것[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희망[바람]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바라는 것에 대한 희망이란 특별히 결정[확정]된 대상에 대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바라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희망[바람]이 없기 때문이다. 보거나 듣는 등의 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라는 것’이다. 그것[바라는 것]을 보고 싶어 하거나 듣고 싶어 하는 것 등의 희망이 욕chanda이다. 이것[욕]은 정진[근]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작용으로 한다.”(주3)고 주석하고 있습니다.
한편 호법 보살의 저작이자 현장 스님이 한역한 <성유식론>에서는 “좋아하는 대상(소요경所樂境)에 대해 희망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며, 근[정진]의 의지처라는 것을 작용[業]으로 삼는다.”(주4)라고 주석합니다. 또한 지욱스님(<대승백법명문론직해>)도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희구하고 바라는 것을 본성으로 하고, 이것은 정근에 의지하는 것을 작용(주5)으로 한다.”(주6)라고 주석합니다.
욕에 대한 주석서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욕이란 예쁜 여자[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다거나 좋은 영화를 보려고 하는 것 혹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이나 명품을 사려고 하는 마음작용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욕을 ‘좋아하는 대상에 희망하는 마음작용’이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또한 욕을 ‘근의 의지처’라고 하였는데, 근(勤, vīrya)이란 선을 닦고 악을 끊는 것에 노력[정진]하는 용감한 마음(勇猛心)작용입니다. 그렇지만 근은 ‘정진精進’ 또는 ‘노력’의 의미이기 때문에, 노력하는 그 자체는 선악 어느 쪽도 아닙니다. 게다가 범어 ‘찬다chanda’를 현장 스님이 욕欲이라고 한역했기 때문에 인간이 버려야 할 욕망이나 욕구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희망[욕]은 선법욕[善法欲, 좋은 바람]과 불선욕[不善欲, 나쁜 바람]의 양쪽으로 다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선법욕으로 작용할 수 있게 부단한 수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그 노력은 붓다의 가르침이나 진리 추구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은 용맹하게 노력하는 실천수행의 근거가 되는 심소입니다. 그래서 <유가사지론>에서는 선법욕을 4가지[증득욕, 청문욕, 수집자량욕, 수순유가욕]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 증득욕證得欲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고[괴로움]로부터의 해방, 즉 해탈하려고 하는 바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미혹이나 괴로움[생노병사 등]으로부터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 싶다는 바람 또는 희망입니다.
둘째, 청문욕請問欲이란 선지식[스승]으로부터 좋은 가르침을 듣고자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법문을 해줄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좋은 선지식을 만나기 위해 찾아다니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중요한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수집자량욕修集資糧欲이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식량[자량]이 되는 것을 익히려고 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량資糧’이란 식물이 자라기 위한 영양이나 비료에 해당되는 말이다. 식물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영양이 필요하듯이 인간도 영양 공급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인간이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면 장시간 동안 영양이나 비료가 필요합니다. 수행에 필요한 영양이나 비료를 자량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깨달음에 얻는데 자량[영양]이 되는 것은 계율을 지키거나 잠을 줄이고 식사를 조절하는 것 등입니다. 이처럼 수집자량욕이란 계 등을 지키려고 하는 바람입니다.
넷째, 수순유가욕隨順瑜伽欲이란 요가를 닦으려고 하는 바람입니다. 즉 산란한 마음[散心]을 가라앉혀 집중하는 마음[定心]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결국 유식에서 ‘욕’이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배우고 수행 정진하고자 하는 ‘선법욕’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법욕’에서 법dharma이란 (붓다의) 가르침, 진리, 존재[존재자]의 3가지 의미가 있는데, 이 가르침‧진리‧존재를 획득하고자 하는 좋은 바람[희망]이 선법욕입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법을 믿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것을 획득하고자 하는 바람[욕]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 다음 이를 목표로 수행 정진[근]해야 합니다. 즉 신信을 바탕으로 욕欲이 생기며, 욕을 바탕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정진의 마음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소요所樂란 3가지 대상을 포함한다
사족이 되겠지만, 한 가지 첨언하고자 합니다. <성유식론>에서는 ‘좋아하는 대상(소요경所樂境)’에 대해 3가지 입장을 제시합니다. 그 3가지는 가흔경可欣境‧중용경中容境‧가염경可厭境입니다. 먼저 가흔경이란 허가‧가능하다는 가可, 기뻐[좋아함]할 흔欣, 대상 경境자 이므로 ‘기쁘게 구하는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희망[욕]이란 중용[싫지도 좋지도 않는 것]의 대상 또는 싫은 대상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좋은 대상에 희망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것은 싫어하는 대상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희망도 있습니다.(주7) 좋은 것만을 희망한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즉 병이 낫기를 기원하거나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흔可欣의 대상[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염의 대상[싫어하는 대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가염의 대상[가염경]도 희망이라고 합니다.
중용경中容境이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대상’을 말하는데, 이것은 호법 보살의 입장입니다. 다시 말해 욕[희망]은 중용경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모여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무슨 구경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보고 싶어집니다. 다시 말해 ‘보고 싶다는 것’은 좋은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즉 이것은 중용의 대상입니다. 이처럼 중용의 대상도 희망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소요所樂’의 대상은 3가지를 전부 포함한다고 <성유식론>에서는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별경의 심소 중에서 ‘욕[희망]’에 대한 설명을 마쳤습니다. 다음호에서도 별경심소 중에서 승해, 념, 정, 혜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하겠습니다. namaste
주)
(주1) 初遍行觸等 次別境謂欲 勝解念定慧 所緣事不同(10게송)
善謂信慚愧 無貪等三根 勤安不放逸 行捨及不害(11게송)
煩惱謂貪瞋 癡慢疑惡見 隨煩惱謂忿 恨覆惱嫉慳(12게송)
誑諂與害憍 無慚及無愧 掉擧與惛沈 不信幷懈怠(13게송)
放逸及失念 散亂不正知 不定謂悔眠 尋伺二各二(14게송)
(주2) 謂於可愛事希望爲性.
(주3) tatra chando 'bhiprete vastuṇyabhiāṣḥ/abhiprete vastunyabhilāṣa iti pratiniyataviṣayatvaṃ jñāpitaṃ bhavati/ anabhiprete chandābhāvāt/darśanaśravaṇādikrtyaviṣayatvena yadabhimataṃ vastu tadabhipretam/ tatra darśanaśravaṇādiprāthanā chandaḥ/
(주4) 云何為欲. 於所樂境希望為性. 勤依為業.(대정장 31, p.28a21)
(주5) 본성이란 1차적인[본질적인] 성질이며, 업[작용]은 2차적인[부차적인] 성질을 말한다. 예를 들면 ‘불’의 본성은 ‘뜨거움’이며, 업[작용]은 ‘사물을 태우는 것’이다.
(주6) 於所樂境希求冀望. 以為體性. 精勤依此而生. 以為業用.(속장경 48, p.342c15)
(주7) 이것을 가염경이라고 한다. 가염경可厭境이란 허가‧가능하다는 가可, 싫을 염厭, 대상 경境자이므로 ‘싫어하는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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