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돈점논쟁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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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4-18 14:28 조회17,904회 댓글0건본문
“돈점논쟁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
[지상중계]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학술포럼 ‘돈점사상의 역사와 의미’
데스크승인 2012.03.30 09:31:28 김종찬 기자 | kimjc00@ibulgyo.com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학술포럼의 다섯번째 마당이 3월2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렸다. 김형주 기자
‘화엄적 돈오·해오’를 비판한 성철스님과 수용한 지눌스님의 결과적 차이는 극명하다. 새로운 독법을 제시한 박태원 교수(울산대)는 성철스님의 점수(漸修) 비판은 처음부터 강렬했고, 돈오와 구경각의 중간지대를 없애버린 과격한 단순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철은 정견·혜학적 돈오의 한계와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화엄 원돈신해의 언어를 통해 선문 안에 정견·혜학적 돈오가 혼입되면 정학적 돈오와의 차이가 불투명하게 되고, 그 결과 선문의 초점인 정학적 돈오의 정체성과 지위가 혼탁해지는 것을 염려했다고 본다.
간화선을 찬양하면서도 집요할 정도로 화엄 원돈문을 선문 안에 포섭하는 지눌의 태도에서, 성철은 정학적 돈오의 면모와 생명력이 자칫 묻혀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배타적으로 보일 정도의 강한 어조로 지눌의 화엄 수용을 비판하며 선문(禪門)과 원돈문(圓頓門)을 분리시키려 했다고 본다.”
돈점과 돈오의 양대 거목이 갈라선 기점에서 돈오·해오의 새 해석이 주목받는다. ‘화엄적 돈오(해오)’와 ‘선문적·정학(定學)적 돈오’의 구분이 논증의 출발점이다. 결과는 성철스님의 관심사이자 공헌으로 불교 수행론에서 ‘정학적 돈오의 제자리 돌려놓기’가 제시됐다.
그 결과는 또 다른 논쟁점을 발굴했다. 일단 돈오의 ‘정체성’과 ‘수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박 교수는 정체성이 우선되는 일반관점에서 ‘점수’를 ‘깨달음 수준’으로 파악했다. 여기서 성철스님이 돈오군(群)에 속하는 ‘돈오와 구경각의 중간지대’를 과감히 증발시킨 위험성을 새로 지적했다.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인환스님도 참석했다. 김형주 기자
특히 돈점 논쟁이 결국에는 언어의 영역임을 감안, 언어적 분별인 지해(知解) 영역인 화엄 원돈신해를 선문(禪門)의 영역으로 진단하는 접근법에서 문제점을 도출했다. “이는 선문에 연계시키는 순간 선문 고유의 생명력이 사라진다.”
이유는 언어가 분별과 해체 과정 모두에 관여해, ‘마음의 분별문법’에서 통째로 빠져 나오는 ‘전환의 매개제’라는 것이다.
언어수용에 적극적이었던 지눌과 언어(敎, 知解)에 적대적 입장인 성철스님과의 차별성을 기존의 연구로서 충족할 수 없다는 박 교수는 “선문은 특수한 의미에서 언어의 고수들로 언어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적극적 전달을 구사했다”면서, 논평자인 서명원 교수(서강대)가 제기한 “돈오돈수의 성철스님이 역으로 언어화에서 시·공간의 제약에 빠진 것을 유마힐처럼 침묵으로 일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답했다.
선종(禪宗) 선문(禪門)의 돈오를 정견적 돈오라기보다 정학적 돈오로 진단한 박 교수는 “돈오 견성에 관한 <선문정로>의 언어 선택은, ‘깨달음을 향한 수행은 탐욕․성냄․어리석음을 극복하는 일상의 작업’이라는 불교적 초점을 흐리게 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스님이 학술포럼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형주 기자
곧 해오(解悟)와 점수(漸修) 및 분증(分證)마저 강하게 부정하는 돈오돈수의 언어가, 깨달음의 전망과 과정을 ‘일상과 무관한 저 높은 신비 영역’으로 이동시켜 한국 불교계에서 일종의 돈오돈수적 비약주의가 존재하게 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중국선사들의 돈점론’을 통해 논쟁의 역사를 훑어 본 종호스님(동국대 교수)은 돈점론이 중국적인 사고방식에서 출현한 것으로 경전내용과 실천수행 방법을 돈점 형식으로 정리해해 이론과 수행체계를 세운 중국불교의 특성을 진단했다.
초기 돈점 논점은 교(敎)⋅관문(觀門)에서 천태가 정립했으나 선종이 대세가 되면서 핵심은 ‘돈오’였으나, 중국선사들의 어록을 계량적으로 분석했을 경우 돈오점수론자들의 숫적 우세가 보인다고 밝혔다.
간화선의 주창자 대혜도 주로 돈오점수의 내용을 보이고 있고, 그의 스승 원오의 경우 돈오점수적 내용이 아주 많다. 이는 결국 숫자적으로 소수인 최상근기의 돈오돈수보다 돈오점수가 대다수라고 본, 즉 수행자들의 근기 성찰에 따른 가르침이라고 파악했다.
“중국선의 돈점론은 근기론이며, 당 후기 이후, 특히 간화선을 중심으로 한 중국선은 돈오점수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학술포럼에서 동국대 종학연구소장 종호스님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김형주 기자
이에 김진무 박사(동국대 불교문화원)는 “돈오를 중심으로 논리가 전개돼, 만약 돈오가 제시되지 않았다면 돈점의 논쟁과 돈오점수 돈오돈수의 논의 자체가 출현할 수 없다는 입장이 되지만, 실제 돈오를 설명할 때 그 제창자인 도생(道生)의 관점 즉, ‘이치를 나눌 수 없음(理不可分)’인 ‘점수돈오’에서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불교 경전’에서 이 논쟁을 찾은 임승택 교수(경북대)는 “원칙적으로 점오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으나 점차적인 깨달음은 초기불교 당시의 일반적 입장이었다”며 “초기불교에서 깨달음의 돈점(頓漸) 문제는 관심사가 아니고 괴로움의 극복 자체에 있었다”고 말했다.
깨달음은 닦음에 선행하므로, 깨달음이 선행될 때 비로소 팔정도라는 일련의 닦음이 온당하게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 불교적 가르침의 본래적 특징이란 주장이다. 깨달음의 내용인 사성제를 중심에 두면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은 점오(漸悟)의 형태이며, 선오후수(先悟後修)라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구조란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재성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며, 선정을 위주로 한 사마타(止, samatha)가 무상․괴로움․무아에 대한 통찰을 의미하는 위빠사나(觀, vipassanā)중 선후가 있을 수도 있고, 모두를 한꺼번에 닦아 나갈 수도 있는 다양성이 초기불교 입장이라 설명했다.
‘돈오돈수와 조사선’을 조명한 정영식 교수(동국대 HK연구)는 ‘조사선이야말로 최상승선이며 조사선의 본질은 돈오돈수이다’고 주장하는 조사선의 특징은 한국만의 특성으로 파악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돈오이후에 수행을 해야 하는가 하지 않아도 되는가, 즉 돈오점수냐 돈오돈수냐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한국에서는 고려중기 이후 이 문제를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 있게 다뤘고 이것이 한국선의 특질이란 지적이다.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전통이 강해지면서 ‘돈오돈수야 말로 조사선의 핵심’라고 인식됐다.” 반면 정 교수는 문헌에 조사에서 조선시대를 분석해 “돈오점수론자보다 돈오돈수론자들이 많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변희욱 연구원(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의 논평이 독특하다. 돈오점수가 한국 선의 특질이 될수도 있다는 의제를 설명하며, “한국의 선에는 돈오점수가 대지를 관통하며 면면히 흐르는 주류였고, 돈오돈수도 땅 속을 흐르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 샘물처럼 하늘과 마주치며 흘러나와 물의 흐름을 바꾸려 한 것은 아닐까?”란 논제를 폈다.
이와 상반되게 중국에서는 돈오점수 못지않게 돈오돈수의 흐름이 굳건하게 흘렀을 수도 있다는 논제를 제기했다.
이번 학술포럼에는 많은 대중들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표현했다. 김형주 기자
3월2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에서의 학술포럼에 앞서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역경원장 인환스님은 “성철불교라고 할 정도의 독보적 실천논리를 확립한 성철스님은 현대 과학과 불교의 합리성을 강론하면서 불전에 공양물을 놓지말고 남을 도우라는 가르침으로 혼자이면서 모두 함께하고, 모두 함께하면서 혼자인 서로 위하고 존중하며 사상을 나누는 도반을 일깨웠다”며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해 불교문화로 하나 되는 역사적 자리에서 여러분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스님은 ‘“초기불교부터 중국불교까지 돈점론의 맥락을 세세하게 짚어내며 새로운 의제를 다양하게 제기한 보람이 있다”며 “다양한 비판과 분석이 새로운 돈점논쟁의 지평을 열 것”이라 말했다.
[지상중계]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학술포럼 ‘돈점사상의 역사와 의미’
데스크승인 2012.03.30 09:31:28 김종찬 기자 | kimjc00@ibulgyo.com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학술포럼의 다섯번째 마당이 3월2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렸다. 김형주 기자
‘화엄적 돈오·해오’를 비판한 성철스님과 수용한 지눌스님의 결과적 차이는 극명하다. 새로운 독법을 제시한 박태원 교수(울산대)는 성철스님의 점수(漸修) 비판은 처음부터 강렬했고, 돈오와 구경각의 중간지대를 없애버린 과격한 단순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철은 정견·혜학적 돈오의 한계와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화엄 원돈신해의 언어를 통해 선문 안에 정견·혜학적 돈오가 혼입되면 정학적 돈오와의 차이가 불투명하게 되고, 그 결과 선문의 초점인 정학적 돈오의 정체성과 지위가 혼탁해지는 것을 염려했다고 본다.
간화선을 찬양하면서도 집요할 정도로 화엄 원돈문을 선문 안에 포섭하는 지눌의 태도에서, 성철은 정학적 돈오의 면모와 생명력이 자칫 묻혀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배타적으로 보일 정도의 강한 어조로 지눌의 화엄 수용을 비판하며 선문(禪門)과 원돈문(圓頓門)을 분리시키려 했다고 본다.”
돈점과 돈오의 양대 거목이 갈라선 기점에서 돈오·해오의 새 해석이 주목받는다. ‘화엄적 돈오(해오)’와 ‘선문적·정학(定學)적 돈오’의 구분이 논증의 출발점이다. 결과는 성철스님의 관심사이자 공헌으로 불교 수행론에서 ‘정학적 돈오의 제자리 돌려놓기’가 제시됐다.
그 결과는 또 다른 논쟁점을 발굴했다. 일단 돈오의 ‘정체성’과 ‘수준’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박 교수는 정체성이 우선되는 일반관점에서 ‘점수’를 ‘깨달음 수준’으로 파악했다. 여기서 성철스님이 돈오군(群)에 속하는 ‘돈오와 구경각의 중간지대’를 과감히 증발시킨 위험성을 새로 지적했다.
조계종 원로의원이자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인환스님도 참석했다. 김형주 기자
특히 돈점 논쟁이 결국에는 언어의 영역임을 감안, 언어적 분별인 지해(知解) 영역인 화엄 원돈신해를 선문(禪門)의 영역으로 진단하는 접근법에서 문제점을 도출했다. “이는 선문에 연계시키는 순간 선문 고유의 생명력이 사라진다.”
이유는 언어가 분별과 해체 과정 모두에 관여해, ‘마음의 분별문법’에서 통째로 빠져 나오는 ‘전환의 매개제’라는 것이다.
언어수용에 적극적이었던 지눌과 언어(敎, 知解)에 적대적 입장인 성철스님과의 차별성을 기존의 연구로서 충족할 수 없다는 박 교수는 “선문은 특수한 의미에서 언어의 고수들로 언어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적극적 전달을 구사했다”면서, 논평자인 서명원 교수(서강대)가 제기한 “돈오돈수의 성철스님이 역으로 언어화에서 시·공간의 제약에 빠진 것을 유마힐처럼 침묵으로 일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답했다.
선종(禪宗) 선문(禪門)의 돈오를 정견적 돈오라기보다 정학적 돈오로 진단한 박 교수는 “돈오 견성에 관한 <선문정로>의 언어 선택은, ‘깨달음을 향한 수행은 탐욕․성냄․어리석음을 극복하는 일상의 작업’이라는 불교적 초점을 흐리게 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스님이 학술포럼의 시작을 알리는 개회사를 하고 있다. 김형주 기자
곧 해오(解悟)와 점수(漸修) 및 분증(分證)마저 강하게 부정하는 돈오돈수의 언어가, 깨달음의 전망과 과정을 ‘일상과 무관한 저 높은 신비 영역’으로 이동시켜 한국 불교계에서 일종의 돈오돈수적 비약주의가 존재하게 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중국선사들의 돈점론’을 통해 논쟁의 역사를 훑어 본 종호스님(동국대 교수)은 돈점론이 중국적인 사고방식에서 출현한 것으로 경전내용과 실천수행 방법을 돈점 형식으로 정리해해 이론과 수행체계를 세운 중국불교의 특성을 진단했다.
초기 돈점 논점은 교(敎)⋅관문(觀門)에서 천태가 정립했으나 선종이 대세가 되면서 핵심은 ‘돈오’였으나, 중국선사들의 어록을 계량적으로 분석했을 경우 돈오점수론자들의 숫적 우세가 보인다고 밝혔다.
간화선의 주창자 대혜도 주로 돈오점수의 내용을 보이고 있고, 그의 스승 원오의 경우 돈오점수적 내용이 아주 많다. 이는 결국 숫자적으로 소수인 최상근기의 돈오돈수보다 돈오점수가 대다수라고 본, 즉 수행자들의 근기 성찰에 따른 가르침이라고 파악했다.
“중국선의 돈점론은 근기론이며, 당 후기 이후, 특히 간화선을 중심으로 한 중국선은 돈오점수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학술포럼에서 동국대 종학연구소장 종호스님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김형주 기자
이에 김진무 박사(동국대 불교문화원)는 “돈오를 중심으로 논리가 전개돼, 만약 돈오가 제시되지 않았다면 돈점의 논쟁과 돈오점수 돈오돈수의 논의 자체가 출현할 수 없다는 입장이 되지만, 실제 돈오를 설명할 때 그 제창자인 도생(道生)의 관점 즉, ‘이치를 나눌 수 없음(理不可分)’인 ‘점수돈오’에서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불교 경전’에서 이 논쟁을 찾은 임승택 교수(경북대)는 “원칙적으로 점오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으나 점차적인 깨달음은 초기불교 당시의 일반적 입장이었다”며 “초기불교에서 깨달음의 돈점(頓漸) 문제는 관심사가 아니고 괴로움의 극복 자체에 있었다”고 말했다.
깨달음은 닦음에 선행하므로, 깨달음이 선행될 때 비로소 팔정도라는 일련의 닦음이 온당하게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 불교적 가르침의 본래적 특징이란 주장이다. 깨달음의 내용인 사성제를 중심에 두면 깨달음(無上正等正覺)은 점오(漸悟)의 형태이며, 선오후수(先悟後修)라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구조란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재성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는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며, 선정을 위주로 한 사마타(止, samatha)가 무상․괴로움․무아에 대한 통찰을 의미하는 위빠사나(觀, vipassanā)중 선후가 있을 수도 있고, 모두를 한꺼번에 닦아 나갈 수도 있는 다양성이 초기불교 입장이라 설명했다.
‘돈오돈수와 조사선’을 조명한 정영식 교수(동국대 HK연구)는 ‘조사선이야말로 최상승선이며 조사선의 본질은 돈오돈수이다’고 주장하는 조사선의 특징은 한국만의 특성으로 파악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돈오이후에 수행을 해야 하는가 하지 않아도 되는가, 즉 돈오점수냐 돈오돈수냐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한국에서는 고려중기 이후 이 문제를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 있게 다뤘고 이것이 한국선의 특질이란 지적이다.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전통이 강해지면서 ‘돈오돈수야 말로 조사선의 핵심’라고 인식됐다.” 반면 정 교수는 문헌에 조사에서 조선시대를 분석해 “돈오점수론자보다 돈오돈수론자들이 많았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변희욱 연구원(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의 논평이 독특하다. 돈오점수가 한국 선의 특질이 될수도 있다는 의제를 설명하며, “한국의 선에는 돈오점수가 대지를 관통하며 면면히 흐르는 주류였고, 돈오돈수도 땅 속을 흐르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 샘물처럼 하늘과 마주치며 흘러나와 물의 흐름을 바꾸려 한 것은 아닐까?”란 논제를 폈다.
이와 상반되게 중국에서는 돈오점수 못지않게 돈오돈수의 흐름이 굳건하게 흘렀을 수도 있다는 논제를 제기했다.
이번 학술포럼에는 많은 대중들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표현했다. 김형주 기자
3월2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에서의 학술포럼에 앞서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역경원장 인환스님은 “성철불교라고 할 정도의 독보적 실천논리를 확립한 성철스님은 현대 과학과 불교의 합리성을 강론하면서 불전에 공양물을 놓지말고 남을 도우라는 가르침으로 혼자이면서 모두 함께하고, 모두 함께하면서 혼자인 서로 위하고 존중하며 사상을 나누는 도반을 일깨웠다”며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해 불교문화로 하나 되는 역사적 자리에서 여러분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스님은 ‘“초기불교부터 중국불교까지 돈점론의 맥락을 세세하게 짚어내며 새로운 의제를 다양하게 제기한 보람이 있다”며 “다양한 비판과 분석이 새로운 돈점논쟁의 지평을 열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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