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시대와 호흡하며 변하는 것이 보수이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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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7-19 17:22 조회18,204회 댓글0건본문
“시대와 호흡하며 변하는 것이 보수이며 정도” | ||||||
한국불교 지성인의 진단Ⅲ. ‘세상은 그리고 불교는’ 원택스님 & 강천석 주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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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언론인. 사는 곳과 가는 길이 딴판이니, 웬만해선 친해지기 어려운 사이다. 고향도 영남과 호남으로 갈라지는 데다 출신학교도 다르다. 전자는 해인사 산승이었고 후자는 종교계를 출입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지간한 관포지교(管鮑之交)가 부럽지 않다. 두 사람의 인연을 이어준 건 입적한 성철스님. 10년 전 어느 날이었다. 서점에 들른 강천석 주필은 우연히 원택스님이 쓴 베스트셀러 <성철스님 시봉이야기>를 보게 됐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수행승의 숨겨진 일화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시류에 밀려 조금씩 퇴색해가던 정진과 청빈의 가치, 스승과 제자 간의 뜨거운 신의가 빛났다. 책의 편집을 도와준 동료 기자에게 연통을 넣어 저자와의 만남을 청했다. 마주앉아 점심을 함께 하면서 스님의 넉넉한 인품을 같이 맛봤다. 체질적으로 남을 감싸고 품을 줄 아는 대인이었다. 원택스님의 감회도 남달랐다. 언필칭 ‘수구보수’ 신문에서 30년을 일한 언론인의 사고가, 이렇게 자유롭고 부드러울 수 있나. 안목과 식견에서 그의 일터가 우리 사회의 리더를 자임하는 이유도 알게 됐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의 진솔한 면목을 단박에 알아봤다.
원택스님 : ‘不欺自心(불기자심).’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성철스님이 내게 내려주신 좌우명이다. 지금껏 수행자로서의 앞길을 밝히는 지남으로 삼고 있다. 조선일보에 게재된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던 시절 이야기’라는 제목의 ‘강천석 칼럼’을 기억한다. 예전에는 종교가 국민들을 걱정했지만 이제는 국민들이 종교를 걱정한다는 내용이다. 이전에는 없던 종교 간 다툼과 갈등이 그만큼 심각해졌다는 뜻이다. 우리가 사람들의 등불이나 위안이 아니라 이제는 한낱 짐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참된 종교인, 최소한 짐이 되지 않는 종교인이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 중이다. 강천석 주필 :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모범답안을 갖고 있는 집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얻은 화두가 ‘옳게 질문하자는 것’이다. 해답을 제시하진 못 하더라도 정확한 질문을 할 수 있다면 해결의 단초는 심은 것이다. 바른 기자가 되고 싶다면, 바른 신문이 되고 싶다면 해야 할 일이다. 강한 걸 강하게 표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원택스님 : 의견의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는 것. 현대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물론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열이 난다. 건강이 좋지 않다고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다. 곳곳의 다툼은 사회의 전반적인 건강이 망가졌음을 알리는 고함이나 비명과 같다. 강천석 주필 : 조선일보는 보수언론이고 나 역시 보수에 서 있다. 보수도 변화를 추구한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너진다. 다만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진정한 보수란 시대와 호흡하며 변해가는 것이다. 점진적 변화에 동의하는 흐름과 함께, 이상이나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흐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라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지만 여전히 풍요의 밑바닥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다. 그들의 상대적인 고독감과 박탈감을 이해한다. 급진적인 개혁은 장밋빛 목표를 내걸지만 부작용이 엄청나다. 프랑스 시민혁명, 러시아 공산혁명과 같은 역사가 증명한다. 모두가 인간다운 세상,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돈을 받는 극락과 같은 세상을 기치로 내세웠다. 그러나 혁명의 결과는 수많은 민중들의 살상, 문화적 전통의 파괴로 나타났다. 변화하되 국민들이 수긍하고 따라올 수 있는 속도를 선택해야 한다. 너무 급하게 떠나왔음을 후회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역사는 만회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 원택스님 : 종단은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에 대한 불교적 대안을 내놓기 위해 지난해 화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외적으로는 정부의 4대강 사업, 대내적으로는 봉은사 직영을 의제로 택해 해법을 창출했다. 올해는 남북갈등과 종교화합이 화두다. 남북화해의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는 남남갈등의 해소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북정책이 전혀 다르고, 여타 보수와 진보 노선의 대북정책이 제각각이다. 이상은 하나같이 똑같다. 통일해서 잘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과정이 없다. 남의 입장은 전혀 들어보지 않은 채, 내 입장만 옳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형편이다. 화쟁위원회의 이론적 모태는 원효스님의 화쟁(和諍) 사상이다. ‘내가 옳으면 남도 옳을 수밖에 없다는 이치의 논리적 규명이다. 소통의 전제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다. 강천석 주필 : 정책의 성패 여부는 그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햇볕정책에도 원칙주의에도 공과가 있기 마련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여당과 야당이 내놓은 정책 간에 공통분모가 없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이었던 대북기조가 정권이 바뀌면서 돌연 원칙주의로 전환됐다. 햇볕정책이 거둔 일정한 성과는 완전히 무시된다. 지속성 없는 정책은 국민의 혼란과 불안을 야기한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만큼이나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 차이는 크다. 그러나 상이한 부분과 함께 공통된 부분이 적지 않다. 그래야만 정권을 잃어도 여당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 간 대북정책의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화쟁위의 역할이라고 본다. “화쟁은 내가 옳으면 남도 옳을 수밖에 없다는 이치 보편적 선별적으로 나누기 전 행동하는 복지 필요” 조계종 화쟁위원회 부위원장 원택스님
많이 가지고 잘난 사람만 사찰 주변에 보이면 곤란” 강천석 조선일보 주필 겸 편집인 원택스님 : 종교갈등과 관련해선 7대 종단과 협의해 종교평화선언문을 채택, 만천하에 공포할 계획이다. 종교인부터 자성하고 상대에 대한 비난을 거두고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자는 취지다. 불교계가 솔선해 21세기 아쇼카 평화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종교평화와 이웃종교에 대한 존중을 역설했던 인도 아쇼카 대왕의 정신을 현대에 계승하겠다는 의미다. 강천석 주필 :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다종교사회다. 수백만 수천만 신도를 거느린 거대 종교들 간에, 전쟁이나 최소한 유혈충돌마저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종교간 평화는 유리창과 같아서 한번 깨지면 테이프로 다시 붙인다 해도 금이 그대로 남아있다. 서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평화에 대한 가치를 합의하고, 불신을 해소해야 중동사태와 같은 파국을 막을 수 있다. 원택스님 : 정책의 영속성은 종단에도 요구된다. 최근 조계종 집행부는 자성과 쇄신 결사를 전개하고 있다. 사회적 참여에 소홀했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국민과 함께하며 국민을 일깨우는 불교로 거듭나겠다는 원력이다. 개혁과 재야의 뉘앙스가 강한 결사라는 개념을 종단의 핵심부가 도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결단이다. 성공적인 결사의 관건은 자발성과 지속성이다. 모든 사부대중이 힘을 합치고 실질적인 실천에 나서야 결사는 성공할 수 있다. 다른 종책들도 종도들의 원하는 종책, 종도들의 힘이 모아진 종책이 되어야 한다. 강천석 주필 : 절대적 빈곤의 상태에서 우리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국민들의 ‘빨리빨리’ 정신과 ‘나도 너처럼’ 정신이다. 빨리빨리 돈 벌어서 나도 너처럼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국가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시장경제 사회에서 빈부와 낙오는 필연적이다. 조계종에서 추진하는 자성과 쇄신 결사는 매우 시의적절한 선택이다. 국민 모두에게 자성이 필요하다. 많이 가진 사람은 재물이든 능력이든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겠다는 마음이 보강돼야 한다. 내가 잘 나서 얻은 명리 같겠지만 실은 세상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이다. 못 가진 사람은 가난의 원인을 외부에만 전가하지 말고 스스로의 책임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원택스님 : 좌파적 평등이 강세를 띠면서 보편적 복지가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우파적 평등은 선별적 복지를 들고 나왔다. 이젠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하자는 복지마저도 정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어떤 것이 옳다고 분별하기만 한다면 종교가 할 일이 못 된다. 알음알이보다는 우리 사회의 아픈 곳, 어루만져야할 곳을 찾아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이 종교인의 역할이란 생각이다. 강천석 주필 : 한번 실패하면 끝인 토너먼트가 아니라 재도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리그전 형식으로 사회시스템도 개선해야 한다. 사람들의 정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절망적이고 각박하다. 거꾸로 말하면 불교의 공동체 정신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호기인 시대다. 사회 밑바닥부터 열정과 자비의 불길이 타오르도록 불교가 산소를 주입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 많이 가지고 잘 나가는 사람만 사찰 주변에 두드러지게 보이면 곤란하다. [불교신문 2737호/ 7월2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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