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백련암에서 만난 불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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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6-04 16:31 조회16,870회 댓글0건본문
'깨달음의 문' 활짝 여는 그 순간까지…
해인사 백련암에서 만난 불자들…참회 업장소멸 위한 주력수행 구슬땀
‘가야산 호랑이’가 포효하던 명찰답게 해인사 백련암은 진한 수행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산사를 둘러싼 부처 닮은 바위들과 절 마당 안에 우뚝 솟은 네모 바위가 성철(1911~1993) 스님의 꼿꼿한 기상을 상징하는 듯 했다. 주말 임에도, 성철 스님의 등신상(等身像)을 모신 고심원(古心院)을 비롯해 적광전, 천태전 등에는 절삼매, 주력삼매에 빠진 불자들이 ‘절하다가 죽겠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정진 또 정진에 매진하고 있었다. 행여나 방해가 될까봐 몰래몰래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기도일념에 든 수행자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끝없는 참회의 절과 업장소멸을 위한 주력수행으로 저들은 육신의 고통마저 잊고 깨달음의 외길로 나아가고 있으리라.
출ㆍ재가를 막론하고 구도의 여정에서 한번이라도 좌절을 겪지 않은 수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럴 때 마다 불자들은 간절한 기도로 초발심과 신심을 다지고, 수행의 장애물을 돌파해 나가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이나 정진했건만, 질기고도 질긴 습기(習氣)의 발동으로 좌절을 겪는 수행자들은 반드시 이러한 기도를 통해 원점에서 수행을 재점검하고 새롭게 발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참회하는 절과 주력이 참선이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성철 스님은 백련암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대뜸 ‘비로자나 법신진언’을 장궤(무릎을 꿇은 채 바로 섬) 합장하고 외우는 참회기도(아비라)를 시키곤 했다. 스님이 열반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백련암을 비롯한 성철스님문도회 사찰에서는 아비라기도 소리가 아직도 끊이질 않는다. 성철 스님은 불자들에게 ‘예불 대참회’, 즉 108배 절하는 것과 ‘대불정능엄신주’ 독송 그리고 화두참구를 하루 일과로써 빠뜨리지 않아야 하며, 1년에 4회 절에 와서 아비라기도를 빠지지 않고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비라기도는 중국 당나라 때 총림의 수행법으로 전해 오던 것을 성철 스님이 참선납자들에게 권하면서 불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스님은 한국전쟁이 지난 후(1952년경) 고통과 불행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받는 모든 고통과 악업은 과거생으로부터 우리 스스로가 지어온 업장의 과보”라며, 업장을 참회하고 자기 자신을 바로 보도록 ‘예불 대참회’와 새로 음역한 능엄주를 외우게 하고, 아울러 아비라기도를 하도록 일러주었던 것이다.
이후로 참선은 물론 가지가지의 방편을 닦는 수행자들은 공부가 안 되면 전생의 업장이 많다고 생각되어 그 업장을 없애려고 ‘예불 대참회문’으로 참회하는 절을 하면서, 능엄주 주력이나 아비라 기도를 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성철 스님이 “전생과 금생의 업장이 소멸되어야 지혜의 눈이 열려 수행이 제대로 된다”고 하였듯이, 수행의 입문자나 향상일로(向上一路)를 도모하는 구참자는 이러한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이 둘이 아닌 기도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닦아서 얻은 바가 있다는 생각을 모조리 내려놓고 원점에서 출발한다는 각오만 있다면, 참회하는 절과 주력이 참선이 되고, 참선이 절과 주력이 되는 도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수행의 기틀
참선 용맹정진에 앞서 21일, 100일 기도를 결제하는 스님들이 적지 않은 것은 기도가 참회를 통해 업장을 녹이고 신심을 북돋울 수 있는 수행의 기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격적인 수행에 앞서 천수대비주 기도나 관음기도, 문수기도 등으로 득력(得力)해 참선 수행의 길로 나아간 고승들이 적지 않다. 또 이미 기도로 득력한 스님들은 단기간에 견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 선조 때의 선하자(禪荷子) 스님은 묘향산 문수암에서 100일간의 관음기도를 회향하는 날, 포수가 쏜 총소리를 듣고 확철대오 했다고 한다. 경허 스님의 수제자인 수월 스님은 글을 몰랐지만 오직 천수대비주 기도를 통해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깨달음을 얻었으며, 어떤 경전을 들어도 뜻을 꿰뚫게 됐다고 전한다. 수월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천수대비주를 10만 번 외운 용성 스님은 기도를 마친 후, 스스로 “사람의 근원은 무엇인가?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불과 엿새 만에 견성하였다. 숭산 스님은 출가한 지 열흘 만에 100일 기도에 들어가 “바위, 강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도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참다운 자성(自性)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일념삼매에 들면 깨달음의 문 열려
이처럼 기도가 삼매를 이뤄 오랜 시간 지속되면 곧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도를 하면서 힘이 드는 줄도,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고비를 넘기고 나면 묘한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주관과 객관이 하나 된 상태에서 모든 상대적인 경계와 시비ㆍ분별, 생사마저도 초월하는 무심삼매에 빠져들면 마침내 오도(悟道)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일타 스님은 생전에 “기도가 꿈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일념삼매에 젖어들게 되면, 깨달음의 문이 저절로 열리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스님은 <기도>라는 책에서 “의심도 나지 않는 화두를 들고 마구잡이로 씨름하기 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정하여 업장을 녹이고 신심을 북돋울 수 있는 기도를 한바탕 열심히 하는 것이 장래의 수행에 훨씬 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목숨을 걸고 간절히 기도하는 수행자에게는 반드시 모든 방편을 초월해 깨달음이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다. 끝없는 번뇌ㆍ망상으로 인해 미오(迷悟)를 반복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수행자들은 당장 절과 주문, 염불 속으로 들어가 기도일념에 빠져 보자.
해인사 백련암=김성우 객원기자 | 현대불교
2007-05-16 오전 10:35:00
해인사 백련암에서 만난 불자들…참회 업장소멸 위한 주력수행 구슬땀
‘가야산 호랑이’가 포효하던 명찰답게 해인사 백련암은 진한 수행의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산사를 둘러싼 부처 닮은 바위들과 절 마당 안에 우뚝 솟은 네모 바위가 성철(1911~1993) 스님의 꼿꼿한 기상을 상징하는 듯 했다. 주말 임에도, 성철 스님의 등신상(等身像)을 모신 고심원(古心院)을 비롯해 적광전, 천태전 등에는 절삼매, 주력삼매에 빠진 불자들이 ‘절하다가 죽겠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정진 또 정진에 매진하고 있었다. 행여나 방해가 될까봐 몰래몰래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기도일념에 든 수행자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끝없는 참회의 절과 업장소멸을 위한 주력수행으로 저들은 육신의 고통마저 잊고 깨달음의 외길로 나아가고 있으리라.
출ㆍ재가를 막론하고 구도의 여정에서 한번이라도 좌절을 겪지 않은 수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럴 때 마다 불자들은 간절한 기도로 초발심과 신심을 다지고, 수행의 장애물을 돌파해 나가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이나 정진했건만, 질기고도 질긴 습기(習氣)의 발동으로 좌절을 겪는 수행자들은 반드시 이러한 기도를 통해 원점에서 수행을 재점검하고 새롭게 발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참회하는 절과 주력이 참선이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성철 스님은 백련암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대뜸 ‘비로자나 법신진언’을 장궤(무릎을 꿇은 채 바로 섬) 합장하고 외우는 참회기도(아비라)를 시키곤 했다. 스님이 열반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백련암을 비롯한 성철스님문도회 사찰에서는 아비라기도 소리가 아직도 끊이질 않는다. 성철 스님은 불자들에게 ‘예불 대참회’, 즉 108배 절하는 것과 ‘대불정능엄신주’ 독송 그리고 화두참구를 하루 일과로써 빠뜨리지 않아야 하며, 1년에 4회 절에 와서 아비라기도를 빠지지 않고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비라기도는 중국 당나라 때 총림의 수행법으로 전해 오던 것을 성철 스님이 참선납자들에게 권하면서 불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스님은 한국전쟁이 지난 후(1952년경) 고통과 불행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받는 모든 고통과 악업은 과거생으로부터 우리 스스로가 지어온 업장의 과보”라며, 업장을 참회하고 자기 자신을 바로 보도록 ‘예불 대참회’와 새로 음역한 능엄주를 외우게 하고, 아울러 아비라기도를 하도록 일러주었던 것이다.
이후로 참선은 물론 가지가지의 방편을 닦는 수행자들은 공부가 안 되면 전생의 업장이 많다고 생각되어 그 업장을 없애려고 ‘예불 대참회문’으로 참회하는 절을 하면서, 능엄주 주력이나 아비라 기도를 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성철 스님이 “전생과 금생의 업장이 소멸되어야 지혜의 눈이 열려 수행이 제대로 된다”고 하였듯이, 수행의 입문자나 향상일로(向上一路)를 도모하는 구참자는 이러한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이 둘이 아닌 기도를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닦아서 얻은 바가 있다는 생각을 모조리 내려놓고 원점에서 출발한다는 각오만 있다면, 참회하는 절과 주력이 참선이 되고, 참선이 절과 주력이 되는 도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수행의 기틀
참선 용맹정진에 앞서 21일, 100일 기도를 결제하는 스님들이 적지 않은 것은 기도가 참회를 통해 업장을 녹이고 신심을 북돋울 수 있는 수행의 기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격적인 수행에 앞서 천수대비주 기도나 관음기도, 문수기도 등으로 득력(得力)해 참선 수행의 길로 나아간 고승들이 적지 않다. 또 이미 기도로 득력한 스님들은 단기간에 견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 선조 때의 선하자(禪荷子) 스님은 묘향산 문수암에서 100일간의 관음기도를 회향하는 날, 포수가 쏜 총소리를 듣고 확철대오 했다고 한다. 경허 스님의 수제자인 수월 스님은 글을 몰랐지만 오직 천수대비주 기도를 통해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깨달음을 얻었으며, 어떤 경전을 들어도 뜻을 꿰뚫게 됐다고 전한다. 수월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천수대비주를 10만 번 외운 용성 스님은 기도를 마친 후, 스스로 “사람의 근원은 무엇인가?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불과 엿새 만에 견성하였다. 숭산 스님은 출가한 지 열흘 만에 100일 기도에 들어가 “바위, 강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도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참다운 자성(自性)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일념삼매에 들면 깨달음의 문 열려
이처럼 기도가 삼매를 이뤄 오랜 시간 지속되면 곧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도를 하면서 힘이 드는 줄도,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고비를 넘기고 나면 묘한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주관과 객관이 하나 된 상태에서 모든 상대적인 경계와 시비ㆍ분별, 생사마저도 초월하는 무심삼매에 빠져들면 마침내 오도(悟道)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일타 스님은 생전에 “기도가 꿈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일념삼매에 젖어들게 되면, 깨달음의 문이 저절로 열리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스님은 <기도>라는 책에서 “의심도 나지 않는 화두를 들고 마구잡이로 씨름하기 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정하여 업장을 녹이고 신심을 북돋울 수 있는 기도를 한바탕 열심히 하는 것이 장래의 수행에 훨씬 큰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목숨을 걸고 간절히 기도하는 수행자에게는 반드시 모든 방편을 초월해 깨달음이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다. 끝없는 번뇌ㆍ망상으로 인해 미오(迷悟)를 반복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수행자들은 당장 절과 주문, 염불 속으로 들어가 기도일념에 빠져 보자.
해인사 백련암=김성우 객원기자 | 현대불교
2007-05-16 오전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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