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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닦을 거울마저 부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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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6-04 16:25 조회16,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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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닦을 거울마저 부숴라”

완벽한 깨달음 얻으려면 근본 무명까지 몰아내야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  성철스님  장경각

한국 불교계에 돈점(頓漸)논쟁을 불러일으킨 조계종 전 종정 성철스님(1911~1993)의 대표작 〈선문정로(禪門正路)〉의 개정판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가 최근 출간됐다. 〈선문정로〉는 지난 1981년 성철스님이 선종의 바른 종지를 펴겠다는 뜻에 따라 발간한 책. 수행의 바람직한 자세와 구체적인 수행의 방법 그리고 깨달음의 세계를 총 19장에 걸쳐 다양한 경전을 인용해 제시하고 있는 명저다.

그러나 마치 ‘기미독립선언문’처럼 한자에 한글 토씨만 단 문장인 데다 어법 또한 한문 투여서 다소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스님)은 성철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의 시작으로 새롭게 바뀐 〈선문정로〉를 다시 펴냈다. 이번 개정판은 성철스님의 원래 문장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은 채 한자를 괄호 속에 넣고 어휘 풀이와 문장 해석을 각주 형태로 첨가했다. 특히 각 장마다 육성을 남긴 스님의 강설을 덧붙여 현장성을 살렸다. 깨달음의 본질과 선(禪)의 진수에 대해 생전의 스님에게서 직접 배우는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제목도 신선하다.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 스님이 선종의 중요 전적을 우리말로 옮겨 37권의 책으로 출간한 〈선림고경총서〉의 간행사와 완간사에서 따온 말이다. 간행사에 나타난 설봉스님의 ‘옛 거울’과 완간사 속의 영운스님 말씀 중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 서로 만나리라’의 합성어. 간행사와 완간사, 불서 간행 대장정의 처음과 끝에서 인용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납자들의 사표였던 성철스님이 평생 동안 추구해온 ‘완벽한 깨달음’을 갈음하는 말이다.

성철스님을 20여년동안 시봉한 원택스님은 지난 8일 신간을 소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책이 보조 지눌스님을 한번 더 깎아내리기 위한 개정판으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노파심을 드러냈다. 성철스님은 〈선문정로〉 1장 견성즉불에서 ‘견성했다고 하면서 정을 닦느니 혜를 닦느니 하는 것은 아직 미세망상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논지가 돈오돈수(頓悟頓修), 더 나아가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방일주의로 오해돼 ‘깨달아도 계속 닦아야 한다’는 돈오점수(漸修)로 대변되는 지눌스님 옹호론자들의 거센 비난을 샀다. 한국불교학의 경우 다수가 보조선을 전공하는 학계의 현실에서 성철스님의 주장은 이단에 가까웠다.

성철스님의 본심을 읽으려면 견성즉불 편의 다른 구절도 살펴야 한다. ‘흔히 참선하다가 기특한 소견이 생기면 그것을 두고 “견성했다”거나 “한 소식 했다”고들 하는데 정작 만나서 살펴보면 견성하지 못한 사람과 똑같다. … 제 홀로 망상에 휩싸여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떠드는 것에 불과하다. 견성에 대한 그릇된 견해와 망설은 자신만 그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선종의 종지(宗旨)를 흐리고 정맥을 끊는 심각한 병폐이다. 근본무명까지 제거되어 구경(究竟)의 묘각(妙覺)을 성취한 것이 견성이지 그러기 전에는 견성이라 할 수 없다.’ 곧 완전한 깨달음 이전에는 깨달았다고 하지 말라는 일침이다. 돈점논쟁은 중국 육조혜능과 신수 간의 게송 대결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신수스님은 불성을 거울에 빗대 때가 끼지 않도록 항시 거울을 닦으라했고 혜능스님은 거울마저 없다고 일갈했다. 성철스님은 후자의 견해를 따르고 있는 셈이다.

궁극적으로 스님은 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는 사람, ‘왕자병’에 사로잡혀 자기 거울만 열심히 닦는 사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과감하게 죽비를 내려친 것이다. 깨달음 뒤에 하는 수행이란 왠지 편안한 소일거리처럼 느껴진다.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이란 뉘앙스가 풍긴다. 그러나 죽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으르면? 죽을 각오로 달려든다. 다만 기어코 깨닫고 싶은 사람이라면. 〈옛 거울을 부수고 오너라〉는 이러한 이들이 읽어 주기를 원한다.

[불교신문 2293호/ 1월13일자]

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2007-01-10 오후 5:57:02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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