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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임제록 평석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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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2-26 17:03 조회14,4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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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철스님 평석 임제록』을 출간하게 된 이유

대한불교조계종 제6~7대 종정을 지낸 성철(1912~1993) 스님 법문은 시자 원택스님에 의해 1993년 열반 직전에 대부분 법문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마지막으로 나오게 된 『성철스님 임제록 평석』(장경각)은 해인총림 방장으로 계시던 성철스님께서 1974년 하안거에서 이듬 해 75년 하안거까지 보름마다 『임제록』을 평석 강설하신 법문이 녹음테이프로 남아 있던 것을 정리, 보완해서 출판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성철스님께서는 『임제록』중 전반부이며 중요한 대목이라 할 ‘마방의 서’, ‘상당법문’, ‘시중’의 앞부분까지 평석하시다 중단하시어 안타깝게도 ‘시중’ 나머지 부분과 ‘수시’, ‘감변’, ‘행록’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원택스님께서는 이 부분이 늘 마음에 걸려 있었는데, 이번에 봉암사 결사 70주년이자 해인총림 백일법문 50주년에 즈음하여 성철스님께서 평석하신 부분은 그대로 정리하고 남기신 부분은 번역만 하여 정리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임제스님과 임제록, 그리고 임제종에 대하여

『임제록』은 임제의현(臨濟義玄, ?~867년) 스님의 말씀을 제자 삼성혜연((三聖慧然)이 기록한 법문집으로 흔히 불교계에선 ‘선어록의 왕’이라 합니다. 성철스님은 임제록 평석을 시작하면서 임제스님과 임제록, 그리고 임제종에 대한 역사와 전통을 소개하고 있는데, 『임제록』을 “선어록의 왕”, “세계 4대 귀서(貴書)”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일본 근대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는 일본이 전쟁으로 모든 책이 불타더라도 『임제록』 한권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극찬한 바가 있습니다.

『임제록』에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진정견해(眞正見解)” “살불살조(殺佛殺祖)” “무위진인(無位眞人)” 등 선(禪) 정신이 드러난 수많은 명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제록』의 주인공 임제스님은 불교 선종의 중심인 임제종의 시조(始祖)로 중국 당나라 후기의 선사입니다. 동아시아 선종(禪宗)은 ‘본래성불(本來成佛)’, ‘직지(直指)’, ‘돈오(頓悟)’ 정신으로 초조 달마대사에서 6조 혜능대사를 이어 남악 - 마조 – 백장의 법맥이 황벽스님에게 이어졌는데, 임제스님은 이 황벽스님의 제자로 깨달음을 인가받아 동아시아 선종의 황금시대를 여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스님입니다.

성철스님은 임제스님과 임제종을 평하기를 ‘중국에 불교가 전해져 초기 500년 동안에는 역경하는 불교였고, 그 뒤 300년간 법상, 천태, 화엄의 교학불교시대였으나, 6조 혜능대사를 거쳐 마조( ~788)스님 대에서 9세기 초엽인 임제스님 대에 이르면 선종시대로 접어든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에서 마조스님 문하에 수많은 걸출한 선지식이 나왔는데, 그 제자들이 위암종, 임제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 5가로 발전하였고, 그중에서 임제종과 조동종이 법맥이 이어졌으나, 가장 융성하여 지금까지 선맥이 이어진 것은 임제종이라 합니다.

실제 임제스님을 시조로 하는 임제종 법맥은 송나라시대에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종고 그리고 고려시대 태고보우, 나옹혜근, 백운경한 스님으로 이어져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전해집니다. 지금 일본에도 임제종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유명한 베트남 틱낫한 스님도 스스로 임제종 승려라 자부할 정도로 동아시아불교에서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동아시아 불교에서 이러한 전통은 지금 한국불교에도 그대로 전해져 흔히, 우리나라 스님들이나 재가불자들의 장례식을 치를 때마다 하는 망승의 축원에는 필히 "속히 사바세계에 다시 오시어 임제문중에서 길이 인천(人天)의 안목이 되소서." 라고 할 정도로 임제스님의 선맥이 우리나라에도 깊이 뿌리내려져 있습니다.



성철스님 평석 『임제록』의 특징에 대하여

원택스님이 정리한 이 책은 이전 『임제록』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첫째, 선어록과 선을 보는 성철스님의 관점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선사(先師)가 도덕을 중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나를 위해 설파하지 않으셨던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동산양개 선사의 말씀을 책의 첫 머리에 인용한 점에서 이 점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선종은 ①‘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제도한다’는 자성자도(自性自度)와 ②‘절대로 화두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불설파(不說破)를 금과옥조로 여깁니다. 성철스님은 이 책에서 이 두 가지 원칙을 분명히 지키면서도 『임제록』의 역사적·문화적·사상적 배경을 누구보다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둘째, 『임제록』을 단순히 문자적 지식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깨달음의 징검다리 혹은 깨달음에 이르는 이정표로 삼기 위해 평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설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도리는)오직 참으로 자기가 확실히 깨쳐야 알지, 깨치기 전에는 절대 모르는 것입니다.”는 강조의 말씀을 거의 예외 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정이 그렇다면 왜 이 책을 평석하셨지?”라고 의문을 품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문자와 책으로는 결코 깨달음을 드러내거나 가리킬 수 없지만, 문자와 책을 통하지 않으면 그나마 깨달음에 이르는 이정표조차 알려 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이 책을 평석하신 것으로 이해하시면 그 의문은 해소될 것입니다. 그만큼 성철스님은 실천궁행과 실참(實參)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셋째, 말의 겉만 쫓아가면 모든 법문은 독약이 됨을 성철스님은 이 책에서 고구정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뜻은 성철스님이 원오극근(園悟克勤, 1063~1135)선사가 지은 『벽암록』제100칙 끝에 나오는 아래의 게송을 인용해 설명하는 데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만곡영주신수나(萬斛盈舟信手拏)

각인일립옹탄사(却因一粒甕吞蛇)

염제백전구공안(拈提百轉舊公案)

살각시인기안사(撒却時人幾眼沙)


만 섬 곡식 배에 가득 실어 마음대로 집게 두었는데,

오히려 한 톨 쌀알 때문에 뱀이 독 안에 갇혔구나.

옛 공안 일백 여 개를 설명해 들려주었으니,

사람들 눈에 얼마나 많은 모래를 뿌린 것일까!


성철스님의 평석에 의하면, ‘만 섬 곡식을 배에 가득 싣고’라는 구절에서, 곡식이란 우주 법계에 꽉 찬 보배를, 배는 우주 전체를 비유합니다. 우주 법계 전체에 꽉 찬 보배를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쓰도록 하였건만 독 안의 쌀 한 톨 때문에 큰 뱀이 독에 빠져 죽는다. 아무것도 아닌 조그마한 일 때문에 자기 생명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백 개의 옛 공안을 염고(拈古. 길게 설명하는 것), 문제제기를 하고 평창(評唱. 해석하는 것), 비평했는데, 몇 사람의 눈에다 얼마나 많은 모래를 뿌렸는지 알지 못하겠구나.’ 백 칙의 옛 공안을 가지고 『벽암록』을 지었는데, 그것은 눈병이 전혀 없는 사람 눈에 모래를 한 주먹 집어넣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 입니다. 성한 사람의 눈에 모래를 집어넣으면 눈이 어찌 되겠습니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눈만 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오스님 자기 자신도 우주 법계에 가득 찬 보배를 자유자재로 쓰다가, 『벽암록』이라는 조그맣고 아무 가치도 없는 쌀 한 톨 때문에 죽은 뱀처럼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벽암록』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체 법문에 다 해당하는 말씀이라고 성철스님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敎)를 떠나 따로 전하였다는 선(禪), 조사 스님들이 한 법문, 그것은 손가락이 아니라 실제의 달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법문을 말한 사람도 죽고 듣는 사람도 다 죽는 설비상(雪砒霜) 즉 독이라고 성철스님은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스님들의 법문에서 벗어난 출격장부(出格丈夫)가 되어 살아남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제스님 아니라 임제스님보다 천만 배 훌륭한 스님이 하신 법문들은 다 자기도 죽고 남도 죽는 설비상, 독이지, 실제로 사람 살리는 법문은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사람 죽이는 설비상(雪砒霜) 같은 법문을 성철스님은 하셨을까요? 사람 죽이는 독을 분명히 쓰긴 했지만, 독자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느냐? 결국은 어떤 스님이 어떤 법문을 했든지 간에 그 말을 따라가면 설비상(雪砒霜)이 되는 것이고 그 말에 다 죽습니다. 누구든지 간에 어떤 큰스님, 어떤 대조사의 법문이라도 말을 따라가면 결국은 다 죽고 마니 참으로 살려면 절대로 말을 따라가지 말고 말 밖에 있는 뜻, 근본 뜻을 알아야 된다는 것이 성철스님이 󰡔임제록󰡕을 평석한 진정한 뜻입니다. 즉 말의 겉만 따라가지 말고, 진정한 격외현지(格外玄旨)를 찾으라고 이 책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나는 말을 따라오지 않는 사람을 바라고 말을 하는 것이지, 말[語]을 따라와 말 밑에서 고꾸라져 죽는 사람은 절대로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참으로 말을 따라오지 않을지, 살아남는 사람이 다만 한 명이라도 있게 될는지, 전체가 다 살게 될는지 나중에 두고 봅시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넷째, 『임제록』전체가 아닌 앞부분의 중요한 대목만 평석하신 점입니다. 성철스님이 평석하고 강설하신 분량은 『임제록』 전체의 1/4, 내용적으로는 1/3 정도입니다. 다시 말해 ‘마방의 서’, ‘삼구·삼현·삼요’ 그리고 ‘사료간’ 등에 대해, 특히 역대 중국 선사들의 송고 등을 인용하며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이전의 『임제록』 해설서에서 보기 힘든 특징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에 당신의 총평을 싣는 등 학자가 아닌 선사로써 선에 대한 안목과 관점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단순히 『임제록』 해설을 읽고 내용을 이해한다는 심정으로만 이 책을 보지 마시고, 마치 스승을 옆에 모시고 있듯이 이 책을 대하고 또 책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한다면, 선(禪)과 선종(禪宗) 그리고 선학(禪學)에 대한 독자 자신의 관점을 확립할 수 있으리라 감히 생각합니다.

다섯 째, 『임제록』서문을 쓴 마방(馬防)이라는 인물을 조명한 것도 이 책의 특징입니다. 청나라 사람 서송(徐松. 1781∼1848)이 가경(嘉慶)년간(1796∼1820)에 총4백60권으로 편집한 『송회요집고(宋會要輯稿)』와 송나라 사람 이도(李燾. 1115∼1184)가 저술한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에 마방과 관련된 기록이 있습니다.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제339권에 마방에 관한 기록이 한 줄 나오는 데, 북경의 중화서국 편집부가 1990년 출간한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제339권(제23책. p.8162)에 있는, “도적을 사로잡은 공로로 건주(虔州) 감현위 마방에게 선덕랑(宣德郞)을 제수했다.”는 서술이 그 것입니다. 물론 『송회요집고(宋會要輯稿)』에 마방과 관련된 적지 않은 기록들이 전합니다. 이러한 사료들과 일본 학자들이 연구한 논문을 토대로 마방에 관한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여섯 째, 『임제록』본문과 관련있는 자료들의 내력(來歷)과 성철스님이 평석에서 인용하신 인용문의 출처를 『선문염송』등을 활용해 밝혀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 353쪽에 실린 「성철스님의 수좌오계」 부분은 이미 알려진 지침이나 당시 성철스님께서 이 『임제록』평석을 마칠 때 수좌들에게 하신 말씀인바 그대로 실었습니다. 안거 중 수좌들에게 “① 얘기하지 말라. ② 잠 많이 자지 마라. ③ 책 보지 마라. ④ 음식에 조심하여 적게 먹어라. ⑤ 돌아다니지 마라.” 다섯 가지 지침을 강조하신 것은 『임제록 평석』의 뜻이 선어록을 새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참실수를 독려하고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이 담긴 『성철스님 임제록 평석』이 선(禪)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선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많은 분들을 실참(實參)으로 인도하는 지침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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