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바람이 부니 혜능 선사의 머리카락도 휘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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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6 년 5 월 [통권 제37호] / / 작성일20-05-29 12:31 / 조회6,876회 / 댓글0건본문
바람을 찍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도록 끄집어내야 할 때가 더러 있다. 어린이들은 바람개비를 돌리며 장난감 삼아 바람과 함께 논다. 문인과 사진작가는 자기의 안목으로 바람을 잡아낸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라고 하여 풀의 처세술을 통해 바람을 묘사했다. ‘두모악 갤러리’는 “탐라의 바람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는 김영갑(1957~2005) 작가 사진 상설전시장으로 유명하다. 제주도 갈 때마다 들르고 볼 때마다 감탄한다. 정말 기막히게 삼다도의 많은 바람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포착했다. 이즈음 풍력발전소도 바람의 존재를 알려주는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바람인가? 깃발인가?
선사들은 바람을 주제로 선문답을 주고받았다. 『육조단경』에는 ‘풍번(風幡)’이야기가 나온다. 법성사(法性寺)에서 흔들리는 깃발(幡) 아래에서 두 승려가 “바람이 움직인다” 혹은 “깃발이 움직인다”는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논쟁하고 있다. 어쨌거나 중생의 눈에 바람은 깃발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그 무대인 광동성 광주(廣州, 광저우) 법성사는 현재 광효사(光孝寺)로 불리운다. “광저우가 있기 전에 광효사가 있었다(未有羊城 先有光孝. 羊城은 廣州의 이칭)”는 지역속담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사찰이다. 현재 육조혜능(638~713) 선사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는 탑(예발탑, 瘞髮塔. 瘞:묻을 예, 髮:머리카락 발)이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다. 머리카락 바람의 인기는 현재까지 그칠 줄 모르고 불고 있는 셈이다. ‘육조풍번’은 『보림전』에도 비슷한 스토리가 나온다. 구리로 만든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선종 제17조 승가난제 존자가 “풍경이 소리를 내는 것인가? 구리가 소리를 내는 것인가?(彼鈴鳴耶 彼銅鳴耶)”라고 18조 가야사다 존자에게 묻고 있다. 어쨌거나 이 장면 역시 바람으로 인한 풍경소리 때문에 생긴 일화라고 하겠다.
광동성 광효사에 있는 예발탑
도풍(道風) 정토풍(淨土風)
모양을 가지고 부는 바람이 있는가 하면 모양 없이 부는 바람도 있다. 성철(1912~1993, 조계종 6.7대 종정 역임) 스님께서 열반한 이후 불교바람이 전국적으로 불어 닥치는 신드롬을 만들었고, 현재는 혜민 스님(『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저자)과 법륜 스님(정토회 법주)이 그 인기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바람을 『보림전』에서는 ‘도풍(道風)’ 혹은 ‘정토풍(淨土風)’이라고 불렀다. 그 바람은 “삼천리에 미친다”고 했으니 신의주에서 부산까지를 덮고도 남을 거리이다. 또 『보림전』에서는 “바람은 성인이 세상에 출현할 징조”라고도 했다. 성인은 나타나서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성인이 나타날 징조로 미리 바람이 불기도 한다. 즉 성인을 맞이하기 위한 주변정리 및 청소를 통해 국토를 깨끗하게 만드는 정지작업의 일환인 것이다. 바람은 이렇게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다.
‘도(道)바람’ 혹은 ‘정토바람’의 특징을 『보림전』 권4는 이렇게 서술했다.
“이 바람은 온화하고 시원해서 일체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바다에 들어간다고 해도 해일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산림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나뭇가지와 잎을 흔들지 않는다. 모든 일체의 질병도 이 바람을 만나게 되면 낫는다. 일체의 죄업 가운데 참회해도 소멸되지 않는 것도 이 바람을 만난 까닭에 모두 없어진다. 익히고 배워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 때도 이 바람을 만난 까닭에 마음이 명랑하고 밝아져 모든 이치에 통달하게 된다.”
번뇌를 제거하며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바람이 정토풍(淨土風)이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문제의 근본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바람이 도풍(道風)인 것이다.
유행바람 선거바람
어쨌거나 바람의 본질은 유형이건 무형이건 멀리까지 또 많은 이에게 퍼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변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영화도 전시회도 흥행바람이 불어야 관객의 줄이 길어진다. 선거도 여(與)건 야(野)건 바람이 불어야 이길 수 있다. 이른바 ‘선거열풍’이다. 그 바람을 차단해야 할 때는 ‘북풍’ 같은 인위적인 맞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효과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옷에도 유행이 있고 음식에도 대세가 있다. 유행바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것은 일으킬 때마다 상업적으로 늘 대박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대중의 변덕스런 취향이나 원하는 수요를 재빨리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감각과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빨리 그 바람의 꽁무니라도 뒤따라가야 본전이라도 건질 수 있는 것이 시장세계의 생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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