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신족통-축지법으로 세상을 주름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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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6 년 3 월 [통권 제3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264회 / 댓글0건본문
고속철이 신족통을 대신하다
아침 먹고 가야산을 출발하여 종로에 있는 조계사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한 후 저녁공양은 해인사에서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KTX덕분이다. 건설할 때만해도 ‘손바닥만 한 나라에 무슨 고속철?’이라고 구시렁거렸는데, 완공 후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이가 되었다. 덕분에 수행을 통해 신통력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신족통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운전면허증을 딴 후 처음 차를 몰았을 때 “아! 이것이 현대판 신족통이구나!”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새롭다.
걸어 다니는 것과는 공간 감각이 완전히 달랐다. 비행기를 타니 경전에 자주 나오는 “시공을 초월한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대다수 사람들이 현재 비행 속도도 만족하지 못하니, 곧 초음속 여객기까지 등장할 태세이다. 하늘의 고속철 시대가 곧 열리게 될 것 같다. 족신(足神)의 끝판왕이다.
축지법의 비결은 부적이었다
이동수단이라고는 자기가 가진 두발 밖에 없던 시절에는 보폭을 크게 하며 부지런히 뛰는 것 외에는 빨리 갈 수 있는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수호지』에 등장하는 대종(戴宗)은 하루 800리를 걸어 다녔다. 그 비결은 다리에 〈甲馬〉(갑마:잘 달리는 말)라는 부적을 붙이는 비방을 사용했다. 연락책이 소임인 까닭이다. 별명이 신행태보(神行太步, 신통력으로 걷는 큰 걸음걸이)였다. 조선의 토정 이지함(1517~1578) 선생은 고향인 보령에서 서울까지 하루 이틀 만에 다녔다. 또 360리 떨어진 충청도 청양지방에 사는 친구 이생(李生) 집은 서울에서 출발하면 해지기 전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비보(飛步, 날아다니듯 걷는 것)였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걸어도 그것은 체력적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힘들이지 않고 빨리 가는 법을 찾아내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드디어 땅을 줄여서 먼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축지법(縮地法)이 등장했다. 후한(後漢)시대 비장방(費長房)은 “땅이나 도로를 단축시켜 하루 만에 천리 밖에 있는 사람을 만난 후 다시 땅을 복원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神異傳』 권5 壺公)고 전한다.
남을 위해 신족통을 사용하다
수행을 통해 여섯 가지 신통한 능력을 갖추는 일은 별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능력 가운데 신족통(神足通)도 있다.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걸리는 시간은 젊은이가 팔을 한번 접었다 펴는 사이(壯士屈伸而腕間)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위의 평면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지옥이나 천상세계 같은 차원을 달리하는 입체적 공간까지 포함한다. 목건련 존자는 지옥세계까지 마음대로 드나들었으며, “보살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의 도력으로 갈수 없는 곳까지 갈 수 있다”(『열반경』)고 했다. 생각만 하면 3차원 4차원 세계를 가리지 않고 어디건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능력인 까닭에 여의통(如意通)이라고도 불렀다. 그야말로 공상영화의 타임머신 원형이라고 하겠다.
신통력을 개인의 편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다. 부처님 당시 필릉가바차 비구는 평소처럼 탁발을 나갔다. 자주 들르는 익숙한 집이다. 그날따라 늘 대문까지 나와서 반겨주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온 집안에 수심이 가득했다. 연유를 물으니 부모들은 울먹이며 “아무리 찾아봐도 아이들이 없는 걸 보니 유괴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즉시 선정(禪定)에 들었다. 천리안(千里眼)으로 확인하니 도적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갠지스 강을 건너는 중이였다. 이내 신족통을 이용하여 몸을 날려 유괴범의 뱃머리에 우뚝 섰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당황한 범인들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때 아이들은 스님을 보고 기뻐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한 다리씩 껴안았다. 다시 신족통을 사용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그 집으로 되돌아왔다.
가장 큰 신족통은 출가하는 일이다.
『보림전』 권4에는 하루에 삼천리를 걸을 수 있는 바라문이 등장한다. 족신(足神) 바라문(가칭)은 대종의 800리, 비장방의 1000리를 능가하는 실력자다. 하루 300리를 걸었다는 토정 선생은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그는 부적도 없고 축지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구마리다(선종19조) 존자가 그 비법을 물었다. “발에 기름을 바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들깨기름도 콩기름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유나 휘발유는 더더욱 아니다. 말가목자(末訶木子)라고 불리는 대추만한 열매를 짠 기름이었다. 그 나무가 서있는 곳은 구나함 부처님을 모신 탑전이다. 그 신통방통한 기름을 만들어내는 말가목은 구나함모니의 화현이라고 전해져 왔다.
열매는 100개 이상 열리지 않았다. 그만큼 귀한 기름이다. 늘 달리기만 한다면 이것도 문제다.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 나무의 잎으로 기름을 닦아내면 멈추었다. 잎과 열매가 엑설레이터요, 브레이크였던 것이다.
그는 구마리다 존자를 만나 선종(禪宗)으로 출가하고자 했다. 존자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오라고 한다. 그의 집은 삼천리 밖이었다. 그 신족통을 이용하여 출가를 허락받았다고 『보림전』은 기록했다. 하기야 집을 나오는 일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신족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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