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고 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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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5 년 2 월 [통권 제2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673회 / 댓글0건본문
열반지 무심당 앞에서 서성이다
한번 방석 위에 앉으면 꿈쩍도 않는다고 하여 ‘절구통 수좌’라는 별호를 가진 은사인 법전(1925~2014) 대종사의 일곱번 재(齋) 가운데 벌써 네 번째 재일(2015.1.19.)도 속절없이 지나갔다. 열반지인 팔공산 도림사의 무심당(無心堂)은 글자 그대로 떠나신 어른의 성정만큼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무심하기만 하다. 하지만 재(齋)가 끝나도 법당에 남은 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유심(有心)하다. 남겨 놓은 43과의 사리와 전시된 몇 장의 사진만으로 그 유심함을 달래본다.
조주(趙州, 778~897) 선사 말씀대로 “살아 있는 수백 명이 죽은 한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수백 명이 살아있는 한 사람을 보내고 있다.”는 의미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내리는 눈발이 속눈썹에 걸리더니 이내 녹으면서 눈물이 된다.
늘 땅 구르는 소리와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다
결국 구순생신(음 10.8.)은 소진한 모습으로 누우신 채 맞이해야 했다. 1981년 처음 뵈었을 때, 걸을 때는 두 발에서 땅을 구르는 소리가 났고, 양 팔에서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함께 났다. 1986년 이후 몇 년 동안 어른 곁에서 시봉하며 살았다. 시자 방으로 건너올 때는 언제나 마루를 쿵쿵거리며 쏜살같이 등장하시곤 했다. 질세라 문설주에 당신의 손이 닿기 전에 얼른 먼저 문을 열어드렸다. 산책할 때는 어찌나 빨리 걷는지 뒤따라가기에도 바빴다. 새벽 3시 법당 문을 열기도 전에 그 앞에서 기다렸다가 108배를 단숨에 가뿐하게 마치는 것으로 하루를 여셨다.
늘 그렇게 재빨랐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스님께서 이번 겨울에는 하루하루 재(灰)처럼 식어간다. 안타깝게 지켜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열반(음 11.2.) 후 조계종 종단장(曹溪宗 宗團葬)이라는 큰일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다. 산더미 같은 일거리 앞에 슬퍼할 틈조차 없다. 하지만 입관(入棺)할 때는 ‘이제 뵐 수 없는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훈수와 실전의 차이를 체감하다
위패는 추레한 종이 대신 야무지게 나무로 만들었다. 행사용 팜플릿은 모두가 소장하고 싶도록 깔끔함을 추구했다. 미리 정리해 둔 법문집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2003년 11월, 조계종출판사)와 자서전 『누구 없는가』(2009년 11월, 김영사)는 자료를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당신 삶과 어울리지 않는 허례인 화환은 마음만 받고 꽃은 일체 사양했다. 영단과 식장은 평소 당신의 성정대로 가능한 한 단순미와 절제미가 제대로 드러나도록 상주(喪主) 제자들과 종무소 소임자들이 함께 구석구석 살폈다.
다비가 끝나고 스승의 영정 옆에 앉은 원철 스님
산중의 사부대중 역시 한 마음으로 자기자리를 지키면서 필요할 때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옆에서 훈수하며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영결식과 바둑돌을 한 수 한 수 직접 놓아야 하는 영결식이 주는 차이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체감한 일주일 시간이었다.
한 줌의 재만 남기다
세워놓은 장작더미 위로 타오르는 불꽃은 당신의 마지막 자비심처럼 겨울밤의 냉기와 어둠을 걷어내 주었다. 다비장을 지키는 대중들은 둥근 원을 그리면서 밤샘 정진을 했다.
몇 바퀴를 돌다말고 고개를 드는 순간 영정사진과 눈이 마주쳤다. 변함없는 모습의 사진이 불타는 숯더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사진이 스승의 모습일까? 아니면 숯더미 속의 법구(法軀)가 스승의 모습일까? 어차피 의문만 있지 답은 없다. 그냥 걷는 게 해답이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는 오로지 한 줌의 재만 남았을 뿐이다.
도대체 그 사이에 어디로 가신 것일까?
아불이여(我不離汝)하고 여불이아(汝不離我)로다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고 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옛 선인들은 이런 게송을 미리 남겨둔 것이리라. 이제 늘 좌우명처럼 들려주시던 말씀을 법신(法身)삼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근극념지공(內勤剋念之功)하고
외홍부쟁지덕(外弘不諍之德)하라.
안으로는 망념을 이겨내는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밖으로는 남과 다투지 않는 덕을 펼쳐라.
수발다라는 스승보다 먼저 열반하다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인 수발다라(須跋陀羅)는 당시 120살이었다. 스승이 돌아가실 무렵에 만나 가르침을 받고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스승인 석존보다 먼저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보림전』 권2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혀 놓았다.
“저는 스승의 열반모습을 절대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我不欲見師滅度)”
붓다의 열반으로 인한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까닭에 차라리 자기가 먼저 열반에 들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 돼야 슬퍼할 자격이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만약 나이가 120살이 아니었다면 더욱 극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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