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乳)과 피(血)는 둘이 아니다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월간고경 연재기사

월간고경

[보림별어]
젖(乳)과 피(血)는 둘이 아니다


페이지 정보

원철스님  /  2015 년 1 월 [통권 제21호]  /     /  작성일20-08-03 14:02  /   조회6,929회  /   댓글0건

본문

가리왕과 인욕선인이 악연으로 만나다

 

붓다께서는 “전생에 가리왕(歌利王, kali는‘악하다’는 의미)에게 신체가 낱낱이 찢어지는 상황을 당했을 때도 그 왕에 대하여 분노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금강경』에서 담담하게 술회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항상 잘 참은 까닭에 인욕선인(忍辱仙人)이라고 불렸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은 ‘나의 몸이긴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나의 몸이라고 할 것이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법칙에 대한 넘칠만큼 과도한 신뢰로써 무장했기 때문이다. 인연에 따라 조건이 모인 것이 내 몸의 탄생이요, 인연이 다해 조건이 흩어지는 것이 내 몸의 소멸이라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도리까지 덤으로 합세했다. 이를 『금강경』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는 이치’라고 고상하고 어려운 말로써 부연하여 설명했다. 

 

흘린 피가 우유빛 젖이 되다

 

이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것이었다. 어느 날 가리왕은 궁녀를 데리고 근처로 소풍을 나왔다. 함께 오손도손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과식을 한 탓인지 이내 찾아온 식곤증으로 인하여 잠을 청했다. 그 사이에 궁녀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꽃과 나비를 따라 산책을 나갔다가 들판의 큰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인욕선인을 만난 것이다. 갑을관계에서 오는 왕의 정치적 권위와는 또 다른 맑고 고요한 종교적 권위에 그대로 매료되었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꽃을 바치고 그 자리에서 ‘오빠부대’가 된 것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닥거리다가 결국 사단이 났다. 낮잠에서 깨어난 왕은 궁녀들을 찾아 나섰지만 이미 ‘오빠부대’로 전락해버린 그녀들을 보자마자 그 질투심은 극에 달했다. 졸지에 삼각관계가 된지라 ‘뭐하는 X이냐?'는 정제되지 않는 거친 어투가 튀어나왔을 것이다. ‘인욕수행을 하고 있다’는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참는 힘이 얼마나 되는지 테스트해 보겠다는 미명하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의 손발은 물론 잘생긴 코까지 단숨에 칼질을 마쳤다. 그런 다음 적반하장격으로 '진짜 인욕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이라'는 닦달까지 해댔다.

 

“인욕하는 마음에 거짓이 없다면 흘린 피가 모두 우유가 되리라.(血當爲乳)”

 

이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에 낭자한 피는 드디어 우유빛 같은 젖으로 변해버렸다. 그야말로 혈유불이(血乳不二)의 경지를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물론 몸은 보란듯이 본래대로 회복되었다. 이에 놀란 왕은 참회하고 선인의 종교적 제자가 되었다. 왕권과 종권이 충돌했을 때는 신통력을 보여주는 것이 제일 빠른 해결방법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준다.

 

『직지』에도 ‘우유사건’을 기록으로 남겨두다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유명한 『직지(直指)』에는 선종의 서천 24조인 사자(獅子) 존자의 우유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전후 상황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거두절미한 채 사건의 결과만 간단하게 요약해 놓았다. 모르긴 해도 이 역시 입에 담기에 민망한 치사한(?) 이유로 왕권과 종권의 충돌이 있었을 것이다. 계빈국의 왕이 “이미 오온(五蘊)이 공(空)하다고 했으니 목을 달라!”고 했다. 그놈의 반야심경은 짧다는 이유로 아무나 외워 이상한 방향으로 해석을 하는 통에 그 화근이 사자 존자에게 미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존자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든지 그의 입에서는 “목뿐만 아니라 이미 몸도 내 것이 아니다.”라는 도를 넘는 답변이 나왔다. 이에 주저 없이 목을 베니 ‘흰 젓이 한 길로 치솟았다(白乳高丈)’고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전쟁터도 아닌데 아무데서나 칼을 휘두른 왕은 그 과보로 팔이 저절로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王臂自落)고 전한다. 이 사건 역시 주변사람들에게 적지 않는 종교적 감화력을 주었을 것이다.

 

젖과 피는 둘이 아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유목민족의 ‘피=젖’이라는 생활 관념이 반영된 설화”라는 견해를 보였다.(『금강경』 강해 p282) 『부모은중경』에는 ‘아이를 낳을 때는 3말 3되 피를 흘리고, 기를 때는 8섬 4말의 젖을 먹인다’고 하였다. 아기에게 결국 피와 젖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희미한 근거로 원용할 수 있겠다. 이처럼 종교역사에서 ‘피가 우유가 되는’ 사건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신라불교의 최초 순교자인 이차돈 성사(聖師)도 “그의 목을 베니 하얀 젖이 한 길이나 치솟았다.(白乳湧出一丈)” (『삼국유사』 권3 ‘흥법’편)는 일은 재삼 언급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보림전> 권2에도 ‘우유사건’이 나온다. 다행스럽게도 살생이 수반되지 않는 경미한 사건이다. 우바국다의 제자들은 전부 바라문 출신인지 하나같이 거만했다. 성직자라는 직업은 3차 산업에 속하는 서비스업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가 거만하다면 이는 결국 포교영업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수행자의 거만이란 본분마저 저버리는 결과로 귀착된다. 이 소문을 전해들은 상나화수 존자는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으로 하늘을 팍팍 찔렀다.

“갑자기 하늘에서 흰 우유가 흘러내렸는데 끈적끈적(고:膏) 했다.(俄降白乳如膏)” 

 

도대체 이런 이상한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대중들은 설명을 원했다. 하지만 ‘수행을 제대로 하면 알 수 있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결국 『금강경』에서 말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제거를 위한 방편으로 신통력을 보인 셈이다. 수행의 시작은 아만심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하는 까닭이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원철스님
원철 스님은 해인사, 은해사, 실상사, 법주사, 동국대 등에서 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그리고 일간지와 교계지 등 여러 매체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글로써 주변과 소통해왔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있네』등 몇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번역서에는『선림승보전』상·하가 있으며, 초역을 마친『보림전』의 교열 및 윤문작업 중이다.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해인사승가대학 학장(강주) 소임을 맡고 있다.
원철스님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