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더럽다거나 깨끗하다고 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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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4 년 10 월 [통권 제18호] / / 작성일20-05-29 14:36 / 조회6,432회 / 댓글0건본문
장안은 좋은 곳이다
추석연휴가 끝난 뒤 서안(西安)을 찾았다. 그 옛날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이다. “서울장안”이란 말에서 보듯 장안이란 말 자체가 ‘나라의 중심’을 의미한다. 당시에 서역(인도, 유럽 포함)과 동녘(신라, 일본 포함)에서 저마다 꿈과 환상을 가지고 이 지역으로 꾸역꾸역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유동인구를 제외한 상주인구만 해도 100만 명을 자랑할 정도였다. 당나라 때 100만 명은 현재의 1000만 명 이상의 북적거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늘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었다. 시류를 따라 당시 스님들도 갖가기 핑계를 대면서 너도나도 서울로 진출했다. 이런 현상을 뒷날 낭야혜각 선사는 점잖게 타일렀다.
“장안이 비록 좋은 곳이기는 하지만 절대로 오래 머물지 말라
(長安雖樂不是長久).”
자식에 대한 필요이상의 집착을 버려라
중국은 이런저런 일로 몇 번 다녀왔다. 그럼에도 서안은 처음이다. ‘중국! 어디까지 가봤니?’하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형편이다. 정말 세상은 넓고 참배해야 할 성지도 너무 많다. 고색창연한 장안을 그리면서 왔는데 기대가 너무 컸는지 서안은 생각보다 작고 초라했다. 하지만 만만찮은 규모와 7층의 높이(64m)를 자랑하는 대안탑은 예나 지금이나 이 지역을 상징하는 건물로서, 오늘도 변함없는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지라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유수의 국적 항공사 광고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더욱 친숙한 탑이 되었다. 그 광고의 마지막 자막은 대안탑을 배경으로 간절하게 합장한 채 정성스럽게 허리를 숙이는 아주머니 옆모습(고3 어머니인 듯?)에 “생지축지 생이불유(生之畜之生而不有, 낳고 기르되 소유하지 않는다)”라는 한자(漢字)가 오버랩된다. 이 카피가 교육열에 관한 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이 땅의 엄마들에게 적지 않는 잔잔한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노자(老子)가 일찍이 자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스스로 경계하라고 남긴 여덟 글자가 TV화면 속에서 우리를 향해 다시 걸어 나온 것이다.
기러기의 은혜를 잊지 않다
대안탑(大雁塔)은 대자은사(大慈恩寺) 경내에 있다. 이 절은 현장(玄????, 600~664) 법사를 위해 당나라 조정에서 번역공간으로 제공한 곳이다. 사찰 곳곳에 스님의 체취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안탑의 ‘대안(大雁, 큰기러기)’은 순례길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그대로 묻어난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인도로 가는 길은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여정이었다. 숱한 고통이 뒤따랐다. 언젠가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침내 정신마저 아득해졌을 때 어디선가 기러기가 나타났다. 날갯짓으로 길을 안내해 준 덕분에 그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탑을 조성한 본래 목적은 당신이 수집해온 엄청난 분량의 경전을 보관해두기 위한 법보전(法寶殿)이었다. 하지만 탑 이름을 ‘대안(大雁, 큰 기러기)’으로 지은 것은 기러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이다. 말 못하는 날짐승의 은덕까지 기억하고 있기에 이 도량은 ‘대자은(大慈恩)의 공간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미물을 향한 애틋함까지 함께 음미하면서 꼭대기 7층까지 천천히 올라갔다.
대자은사 현장 법사 동상과 대안탑
탑 중심이 비어 있는 탓에 안전을 위해 난간이 둘러져 있는 나무계단을 한 칸 한 칸 조심스럽게 밟았다. 층층마다 사방으로 창문을 낸 덕분에 시가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기능까지 겸한 중국풍의 전형적 벽돌탑이었다.
반야심경을 독송하다
일행과 함께 ‘반야심경’을 합송했다. 번역의 역사적 현장(現場)에서 번역자인 현장 법사께서 직접 지켜보는 자리에서 그 경을 읽으니 사뭇 감(感)이 달랐다. 그동안 수천 번은 읽었을 터인데 이번 독송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닿아온다. 아마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불교경전을 꼽으라면 하나같이 반야심경을 열거할 것이다. 또 불교에 관심 있는 이들이 가장 먼저 접하고 외우는 경(經)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반야심경을 매개체로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자주 만나는 스님이 현장 법사인 셈이다. 후학들은 짧은 한 편의 경구 속에서 당신의 땀과 열정을 접하게 된다. 더불어 촉(觸)이 더 발달한 이는 천 년 전 대자은사의 공기와 흙냄새까지 스며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더럽다는 것은 무엇인가?
언젠가 반야심경의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는 4글자 앞에서 호흡이 멈추었다.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늘 더러움은 피해가고 또 깨끗함만 찾아가려고 애쓴다. 쓰레기통이 있기 때문에 주변이 청결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쓰레기통을 멀리 하려고만 든다. 더러움이 없으면 결국 깨끗함도 있을 수 없는 것인데도 말이다.
또 인간에게 더럽게 보이는 것을 파리 모기는 깨끗하게 볼 수도 있다. 진짜 ‘더러움의 실체’가 있다면 사람에게도 파리에게도 똑같이 더러워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더럽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반대로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제대로 알고 보면 ‘더러운 것’이란 없다. 다만 ‘더럽다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더럽다’혹은 ‘깨끗하다’라고 하는 것조차 결국 차별심과 분별심이라는 생각이 만들어낸 지극히 주관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이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불구부정(不垢不淨)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썩고 더러워도 썩었다는 생각이 없다
반야심경의 ‘불구부정’의 사례가 될 만한 장면을『보림전』권2에서 만났다. 길거리에서 죽은 개를 보고 부처님과 아난 존자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그때나 지금이나 ‘불구부정’은 여전히 모두의 화두라고 하겠다.(물론 해결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더라도 먹고 사는 일에는 지장이 없겠지만 ㅋㅋ)
부처님: “심한 악취가 나는데 누가 가까이 가겠는가?”
아난: “썩고 더러워도 썩었다는 생각이 없으면 그 이빨은 희고 깨끗하므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雖復臭穢而無臭想其齒白淨甚是可愛).”
부처님: “네 말이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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