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가섭 존자는 상습적인 지각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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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4 년 5 월 [통권 제1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247회 / 댓글0건본문
반야용선 지각생 악착 동자
청도 운문사 비로전 법당 천정 한 구석에는 나무로 깎아 만든 조그만 동자상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아슬아슬한 스릴만점의 설치미술 작품을 방불케 한다. 동자는 이를 악물고 두 손에 힘을 잔뜩 주고서 반야용선과 연결된 밧줄을 붙잡고 악착같이 매달려 서방정토를 향해 필사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뒷날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악착 동자’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동자는 인간 세상에 살 때 착하게 살았던 공덕으로 요절했지만 극락행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반야용선이 도착한다는 얘길 듣고 가족과 안타까운 생이별 인사를 하느라고 그만 약속시간보다 늦어버렸다. 그 사이에 반야용선이 출항해버리자 동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 한 사람 더 있소!”라고 목이 터져라 배를 불렀다. 하지만 앞선 청룡은 늦었다며 얼른 가려고 하고, 반야용선에 용케 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못 들었는지 뒤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인로왕 보살은 뱃머리에 서서 나아가는 방향을 잡느라고 정신없었다. 아미타 여래는 중생구제 삼매경에 빠져 꿈쩍도 않고, 관음보살은 멀미하는 사람, 떠드는 사람들을 챙기느라고 바쁘고, 지장보살은 뒤편에서 방향키를 잡느라고 딴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때 우연히 뒤를 본 황룡이 땅 끝에서 애타는 모습으로 서있는 동자를 발견했지만 이미 배를 다시 되돌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에 황룡은 순간적으로 재치를 발휘하여 있는 힘을 다해 밧줄을 던졌다. 동자는 그 밧줄을 잡고서 악착같이 매달린 채로 종착역인 피안(彼岸)까지 가야했다.(<경남일보>, 2011년 9월 9일자, 주부칼럼, 최정희) 지각의 대가는 그만큼 혹독했다.
운문사 비로전의 악착 동자
첫 번째 지각의 결과는 ‘염화미소’였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가섭 존자는 지각으로 인하여 출세하게 되었다. 이른 바 삼처전심(三處傳心 : 부처님이 가섭 존자에게 세 곳에서 법을 전한 것. 염화미소, 다자탑 앞에서 자리의 반을 양보한 것. 열반 후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인 것)이 모두 지각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존자는 대단한 법기(法器)의 소유자였다. 그는 출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아라한과를 증득할 정도였으며, 부처님은 자신이 입고 있던 분소의(糞掃衣, 누더기)를 그에게 친히 입히는 파격적인 대우를 한다. 그는 매우 청빈한 생활을 했으며 넓은 광야에서 홀로 고행을 했다. 이후 그는 ‘두타제일’로 불렸다. 하지만 늘 밖으로만 떠돌았다. 교단은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 존자를 중심으로 석가족 출가자들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살․· 자자(布薩․· 自恣 : 보름마다 그리고 안거 끝나는 날 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허물을 고백하고 참회하는 모임)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는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와야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늦게 온 가섭에게 부처님께서 연꽃을 들어보이자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런 ‘염화미소(拈花微笑)’도 알고 보면 그가 늦게 왔기 때문에 “그래! 이제 왔냐?”하면서 꽃을 들어 반가움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하니 대상자인 가섭만 빙그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대중들과는 이미 상견례가 끝났기 때문이다. (삼처전심에 대한 더 깊은 뜻은 여기에서 논하지 않겠다.)
두 번째 지각 때는 앉을 자리마저 없었다.
다자탑(多子塔)은 비사리성의 서북쪽 방향으로 3리(里)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 탑은 왕사성에 살고 있던 어떤 장자(長者:신심과 재력을 동시에 갖춘 거사)의 아들 딸들이 한꺼번에 벽지불과(辟支佛果)를 얻은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친인척들이 세워준 탑이라고 전한다.(『祖庭事苑』 8).
출세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요즈음은 정․관계와 재계로 진출하거나 고시를 패스하거나 공기업,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시골동네에서는 명문학교에 입학하거나 박사학위를 취득하거나 진급하는 것도 동네 청년회 혹은 친인척들이 축하 현수막을 달아주기도 한다. 다자탑은 훌륭한 수행자를 배출한 것이 가문의 영광이었던 그런 시절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인 셈이다.
그날 모임은 다자탑 앞에서 열린다는 전갈을 받았다. 하필 가섭 존자는 평소보다 더 멀리 있었다. 부랴부랴 달려왔다. 지난 번 지각 때는 뒷자리라도 남아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완전히 지각대장으로 낙인찍히는 순간이었다. 주변을 맴돌면서 비집고 들어갈 자리를 찾아보려고 기웃거리고 있는 그와 부처님의 눈이 마주쳤다. 부처님은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당신이 앉은 자리의 반을 내주면서 가섭을 앉도록 배려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다자탑전 분반좌(多子塔前 分半座)’ 사건의 전말이다.
세 번째 지각으로 기적을 만들어내다
부처님께서 입멸할 때 가섭 존자는 칠엽굴에 머물고 있었다. 열반의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왔을 때는 이미 입관이 끝나고 장례식을 앞둔 시점이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는 아난 존자에게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을 뵙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청했지만 아난 존자 역시 그 청을 들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건 이미 봉해버린 관 뚜껑을 다시 열어야 하는 엄청난 일이였기 때문이다. 별다른 도리가 없음을 알고 난 그는 다비를 치루기 전에 관 앞에서 흐느껴 울었다. 그 때였다. 세존께서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밀어 보이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장아함경』4, <遊行經>) 이른 바 곽시쌍부(槨示雙趺) 사건이다. ‘염화미소’나 ‘다자탑전 분반좌’ 때처럼 몇 시간 차이로 늦게 온 것이 아니라 아예 며칠 늦게 도착했다. 이것은 지각이라기보다는 거의 결석에 가까운 지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열반한 이후에도 가섭 존자에게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염화미소의 현장 영축산에서 정진 중인 한국의 불자들
지각도 지각하기 나름이다
『보림전』 권1 「가섭」편에는 ‘삼처전심’에 대한 언질로 보아도 좋을 구절이 보인다.
“자리에 앉도록 명령하여 가사를 부촉했다(命坐付衣)”라는 언급과 “부처님께서 금으로 만든 관 안에서 금색의 두 발을 나타내셨다(佛於金棺內 現金色雙足)”라는 기록을 남겼다. 두 번째 지각과 세 번째 지각 건은 짧게라도 언급되어 있지만 1번 지각인 염화미소에 대한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결론은 지각도 지각 나름이다. 악착 동자는 잠깐의 지각에도 불구하고 걸상을 두 손으로 들고 꿇어앉아 오랜 시간 동안 벌을 서야 했다. 하지만 상습적으로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가섭 존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매번 그냥 넘어갔다. 지각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벌을 받을 수도, 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이 도리는 어떤 도리인지 화두삼아 참구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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