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달마 대사가 파밭에서 유유자적하게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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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4 년 1 월 [통권 제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717회 / 댓글0건본문
파는 지혜를 열어 준 풀이였다
한국의 오래된 동화에는 최초로 파를 먹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아이들에게 파는 지혜를 열어주는 음식이라는 스토리를 들려주고자 하는 것이 그 목적일 것이다. 그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옛날에 옛날에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던 시절이었다. 이유는 이웃끼리는 물론 부모 형제까지도 서로 소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소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끔 뭔가 씐 것처럼 생기는 병이였다. 이런 ‘순간 식인종 변신’사태를 여러 번 목격한 후 주인공은 혐오감으로 인하여 그 땅을 떠났다. 언제나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해주는 지역을 찾기 위함이었다. 마침내 소와 사람을 분명하게 구별하며 행복하게 사는 지역을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지역도 본래는 소와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병으로 인하여 곤혹을 치렀으나 어떤 풀을 먹고 난 후 그 병이 없어졌다고 했다. 주인공은 그 풀의 씨앗을 얻은 후 심고 가꾸고 먹는 법까지 배워 고향으로 돌아왔다. 가장 좋은 땅에 그 씨를 뿌리고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순간 친구들의 눈에는 그가 소로 보였고 급기야 잡아먹히게 되었다. 얼마 후 밭에서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이상한 풀이 돋았고, 독특한 향기 때문에 마을사람 모두가 즐겨먹게 되었다. 그 이후로 소와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는 병도 없어졌다. 그리하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 총
그 풀은 파(蔥, 葱)였다. 소와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명(無明)을 깨우쳐준 지혜의 풀이였던 것이다. 이처럼 파는 세간의 최상 요리재료이지만 절집은 오신채이기 때문에 피해야 할 식재료이다. 『능엄경』에서는 ‘오신채는 익혀먹으면 음란한 마음을 일으키고 날 것으로 먹으면 분노의 마음이 커진다’고 하여 먹지 못하게 했다. 세간과 출세간의 라이프스타일의 차이가 파에 대한 극단적 양면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사찰음식이란 ‘고기와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총령은 야생 파꽃이 가득히 핀 ‘파 고개’였다
선어록에는 ‘총령(蔥嶺)’이라는 유명한 지명이 등장한다. 번역한다면 ‘파 고개’쯤 되겠다.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에 최초로 총령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며, 청대(淸代)까지 이어진 유서 깊은 지명이기도 하다. 총령이라는 이름은 산 위에 파(蔥, 葱)가 많다고 한 것에서 기원한다. 현장 스님의 구법여행기인 『대당서역기』 권12에는 “땅에서 파가 많이 나므로 총령이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지금도 총령 지역에는 야생파가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식물학자들은 파 원산지를 중국서부로 추정하고 있다.
총령을 포함한 이 지역 일대를 파미르(Pamir, 播密) 고원이라고 부른다. 파미르는 옛 페르시아 말로 ‘평옥(平屋)의 지붕’이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슬라브 집 옥상’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범어 파미르는 ‘황야’의 의미이다. 그 어원대로 평평하긴 했지만 척박한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오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 스님은 그 통행의 어려움을 “눈물 뿌리며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시를 남길 정도였다.
평생 눈물을 훔쳐본 적이 없건만(平生不捫淚)
오늘만은 하염없이 눈물 뿌리는구나(今日灑千行)
.............
불을 벗 삼아 (얼음)층층을 오르며 노래하지만(伴火上陔歌)
과연 저 파밀 고원을 넘을 수 있을런지(焉能度播密)
파 고개와 짚신은 뒷날 공안으로 승화되다.
혜초 스님의 고행 길과는 달리 달마 대사에게 ‘파 고개’인 총령은 짚신 한 짝을 손에 들고 맨발로 유유자적하는 낭만적인 길이였다. 때마침 가득 피어 있는 야생 파꽃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당신에게 파 고개는 신세계를 열어주는 통로인 까닭이다. 이런 여유로운 모습을 목격한 이가 위(魏)나라 사신 송운(宋雲)이다. 그는 돈황 출신이며, 양현지(楊衒之 6C중엽)의 『낙양가람기』 속에 「송운행기(宋雲行記)」를 남겼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는 지극히 평범하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서천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평범 속에 비범함이 녹아있다. 서천은 외형적으로 달마 대사의 고향을 가리키지만 내용적으로는 자기의 본래모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보림전』은 그 고개를 이미 통용되고 있던 ‘총령’이라는 이름대신 ‘서령(西嶺)’이란 평범한 이름으로 바꾸어서 기록했다. 『조당집』 역시 ‘서령’이란 지명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고지식한 편집자인 혜거 스님은 절집에서 금기시하는 오신채인 ‘파’라는 이름이 달마 대사의 품격 그리고 선종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기존의 ‘파 고개’가 아니라 그냥 방향을 나타내는 말인 ‘서쪽 고개’라고 이름 붙였다. 단어 한 개 속에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편집자의 가치관이 알게 모르게 투영되기 마련인 것이다. 편집이란 단순한 ‘오려붙이기’가 아님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편집이란 남의 입을 빌려서 자기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총령에서 짚신 한 짝을 손에 들고 가는 ‘의외의 모습’은 뒷날 한 개의 공안으로 정형화되었다. 고려의 혜심(慧諶, 1178~1233) 국사가 편집한 『선문염송』 103칙은 ‘달마척리(達摩隻履 ; 달마의 짚신 한 짝)’이다. 특히 이 공안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망자(亡者)에게 내려주는 가장 인기 있는 화두로 자리 잡았다.
“총령도중(蔥嶺途中) 수휴척리(手携隻履)....無生滅知 一句麽?
총령 길 도중에 손에 들고 있는 한 짝의 짚신! .....생멸이 없는 일구(一句)를 알겠는가?”
순간 침묵(良久) 후, 짧게 끊어지듯 울리는 세 번의 요령소리.
딸랑! 딸랑! 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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