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개의 마음까지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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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5 년 11 월 [통권 제3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8,275회 / 댓글0건본문
#이야기 하나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도반 절에서 추석연휴를 보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먹은 후 하루 세 번 느긋한 걸음걸이로 동구까지 포행을 다녔다. 천천히 걸으면 왕복 40분가량 걸렸다. 적당한 경사로 인하여 하루 운동량으로 충분했다. ‘보리’라는 이름을 가진 진돗개가 늘 동행했다. 늘 눈곱이 끼어있는 이 녀석도 나이가 만만찮아 올라올 때는 헉헉거렸다. 그래도 얼마나 깔끔한지 절에 몇 년을 같이 살아도 똥 누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느 해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기진맥진상태로 주지실 앞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아마 계곡을 건너다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자상한 성정의 도반스님은 ‘삐뽀삐뽀’하며 비상등을 켠 채 전속력으로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응급조치를 마친 수의사는 “너무 나이가 많아 가망 없다.”고 최종 통보했다. 할 수 없이 사찰로 데리고 왔다. 수건으로 털의 물기를 닦아내고 헤어드라이기로 몸을 말린 후 전기난로를 피웠다. 입을 강제로 벌려 우유와 약을 계속 먹였다. 드디어 사흘 후에 깨어났다. 생명 있는 것은 어쨌거나 최선을 다해 돌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15년 동안 천년고찰의 문화재를 지켜주었으니 이미 자기 밥값을 한 까닭이다.
#이야기 둘
경기도 포천의 어떤 절에서 만난 그 진돗개는 여간 사나운 게 아니었다. 산에서 내려 온 멧돼지가 혼비백산하며 도망갈 정도로 용맹을 떨쳤다. 어떤 날은 올무에 걸렸는지 털이 빠지고 허리부분에 철사자국이 선명했다. 그래도 그 기상은 여전했다. 온 산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제대로 사고를 쳤다. 앞발이 완전히 찢어진 채 나타난 것이다. 칼로 그은 것처럼 일직선으로 벌어져 생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상처길이가 족히 20cm는 될 것 같았다. “어이그!” 하며 동물병원으로 싣고 갔다. 깁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냥 두면 어찌 되느냐?”고 물었더니 “파상풍 걸려 죽지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할 수 없이 모든 것을 수의사의 결정에 맡겼다. 개 몸값의 몇 배가 되는 비용을 지불한 뒤 병원문을 나섰다. 과다지출에 대한 화풀이로 개 머리를 한 대 쥐어 박았다. 지은 죄가 있는 것을 아는지 평소와는 달리 잔뜩 풀이 죽은 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눈만 껌뻑였다. 연민심이 일어나 다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경주 골굴사에서 대중들과 함께 살았던 개 동아 보살 모습. 
#이야기 셋
대월씨(大月氏)국의 어떤 바라문 집에는 유별난 습관을 가진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개는 항상 처마 밑 그 자리만을 고수하며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혹여 불가피한 일이 생기면 그것을 해결한 뒤에는 이내 그 자리로 돌아왔다. 심지어 비가 들이치거나 심지어 그 자리가 물에 잠겨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잠을 잤다. 이런 옹고집을 보다 못한 주인이 지팡이로 때리면 잠시 자리를 피했다가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무려 15년을 그렇게 했다.
어느 날 주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마침 그 때 선종 제18조 가야사다(伽耶舍多) 존자가 그 집을 찾아왔다. 존자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도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공양을 정성껏 잘 대접하고 난 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한 후 그 연유를 물었다.      
“저 개는 당신의 조상입니다. 돌아가실 무렵 핏줄들이 그 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소유한 황금을 물려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할 수 없이 항아리에 담아 처마 밑에 땅을 파고 묻었습니다. 다시 개로 환생하여 자기 재산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 자리를 파보십시오. 당신이 금을 수습하고 나면 개는 굳이 그 자리를 고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에 따라 땅을 팠더니 항아리가 나왔고 그 속에는 황금이 가득했다. 그 날부터 그 개는 집안 여기저기를 내키는 대로 다녔고 아무데서나 잠을 잤다. 이 인연으로 개 주인은 존자의 제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보림전』 권4에 남아있다. 
가야사다 존자는 개가 황금방석을 깔고 앉아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어리석은 주인은 개의 별스런 습관을 나무라기만 했다. 모르고 보면 이상행동이지만 알고 보면 정상행동이다. 말 못하는 짐승의 ‘이심전심’까지 읽을 수 있다면 언젠가 횡재할 일도 생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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