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보림전』이 ‘천년금서’에서 해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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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3 년 5 월 [통권 제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10,151회 / 댓글0건본문
『보림전』은 혜능-마조선사로 이어지는 조계종의 원류를 밝힌 최초의 전등록이다. 전등록의 고형(古形)인 동시에 원형인 까닭에 그 서지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책의 안팎과 주변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면서 동시에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연재물로 ‘보림별어’가 기획되었다.- 편집자
금서는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적, 사상적, 종교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유통 금지된 책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시대 시대마다 영악한 저자와 편집인들은 그런 자료들일수록 더욱 의도적으로 인용하면서 출전을 고의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금서 전체의 책 제목을 열거하고 기본적인 해설까지 더한 책을 다시 만들어 저항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상만사는 물고 물리면서 서로 연기적인 세계 속에서 윤회하고 있다.
서기 801년에 『보림전』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 본문은 여러 가지 선(禪) 문헌에 자주 인용되었고 책 제목 역시 갖가지 경전목록에 그 이름을 절대로 빠뜨리지 않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존재여부에 대한 호기심은 더해졌고 사라진 이유까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
어느 날 중국 불교계에 육조혜능이란 걸출한 인물이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그의 출신성분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다. 기득권의 장벽은 두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성같이 나타난 혜능을 향해 수많은 인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평지 돌출형’ 영웅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파죽지세(破竹之勢)를 이루면서 역사적 정통성 확보라는 ‘중국적 당위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되었다. 기존 불교사와는 전혀 시각을 달리하는 혜능 선사를 중심으로 서술한 새로운 선종 역사서가 요청되었다.
누군가 총대를 메야 했다. 용감하게 혜거(惠炬) 스님이 나섰다. 기득권 불교층의 가사와 발우를 통한 법통 전달수단을 대신하여 ‘게송’이라는 새로운 전법형식을 도입했다. 외면적인 형식보다는 깨달음의 안목(正法眼藏)이라는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춘 발상의 대전환이었다. 그리고 부처님부터 달마대사까지 이어진 법맥인 서천 28조설을 완성하고, 더불어 달마에서 혜능까지 전해 온 동토 6조설을 통해 법의 계통을 완성했다. 이른바 남종선의 법맥도를 최초로 완성한 결과물이 『보림전』인 것이다.
비판과 분서(焚書)가 거듭되다
‘보배들의 숲(寶林)’이라는 아름다운 책 이름과는 달리 출판할 때부터 격렬한 비판이 쏟아졌다. 806년 신청(神淸) 스님의 『북산록(北山錄)』에 언급된 비난은 서막에 불과했다. 《가산불교대사림》에 의하면 “요(遼)나라 흥종(興宗1031~1054)은 (『보림전』은) 거짓된 책이므로 태워버리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또 『석문정통(釋門正統)』에서 “요나라 도종(道宗)은 전효(詮曉) 등에 명하여 경록을 평정하고 『육조단경』과 『보림전』을 불태워버렸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성종(聖宗), 흥종(興宗), 도종(道宗)시대는 요(遼)의 전성기였다. 또 『정법정종기』는 “이 책을 담요(曇曜)의 위조라 하여 불살라버릴 것”이라고 하였다. 출판의 대가는 혹독했다. 분서(焚書)라는 미증유의 난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책은 없어져도 그 내용과 제목은 갖가지 문헌에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명저는 사라지지 않는다
선종의 역사 속에서 독서금지 기간이 가장 길었던 책은 『보림전』일 것이다. 송곳은 감추어도 그 끝이 호주머니 밖으로 삐어져 나오기 마련이다. ‘분서의 난’ 이후 천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1932년 일본 경도(京都) 청련원(靑蓮院)에서 『보림전』 권6 사본 한 권이 발견되었다. 나쁜 일도 함께 몰려오지만 좋은 일도 겹쳐 오기 마련이다. 이듬해인 1933년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 산서성 조성현(趙城縣) 광승사(廣勝寺)에서 『보림전』 권1부터 권5까지 그리고 권8 등 모두 6권이 발견된다. 그동안 제목만 알려져 오던 책이 비로소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 801년 간행된 것이니 실로 1200년 만에 그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아쉽게도 10권 가운데 7권 9권 10권 등 3권이 사라진 7권의 산질(散帙)이었다. 불바다에서 돌아온 것 치고는 경미한 부상이라 하겠다. 천년 만에 금서에서 자동해제된 것이다.
혜능선사 열반 1300주년을 맞이하다
『석문정통』에는 『보림전』뿐만 아니라 『육조단경』도 함께 태웠다고 했다. 두 책을 한통속으로 간주한 것이다. 어쨌거나 혜능 선사가 남긴 동아시아 불교사의 탁월한 업적은 『보림전』이 그 시발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후 선종역사서를 대표하는 『경덕전등록』, 『조당집』이 『보림전』 체제를 그대로 이어받은 사실만 보더라도 『보림전』의 탁월한 편집안목을 짐작케 해준다. 올해는 혜능선사 열반 1300주기 되는 해이다. 선사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중국과 한국에서 열린다. 이에 발맞추어 필자는 『보림전』에 대한 ‘복권작업’(?)을 통해 1300주기 행사의 말석에 참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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