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온 대지가 금빛으로 바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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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5 년 5 월 [통권 제2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7,207회 / 댓글0건본문
금에도 등급이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 시작부분에는 ‘염부단금(閻浮壇金)’이 나온다. 대삼림 속을 흐르는 강물 바닥에서 산출되는 금을 사금(砂金)이라고 한다. 적황색으로 자색(紫色)을 띠고 있으며, 금 가운데 가장 귀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구 위에서 대삼림 속을 흐르는 강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남미의 아마존강 유역에서 사금을 채취한다면 염부단금과 유사할 것이다. 금도 생산되는 지역에 따라 여러 유형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미얀마 쉐다곤 황금대탑
그럼에도 사바세계는 24k 등 순도 한 가지 기준으로만 누런 금값을 매긴다. 하지만 화엄세계는 오래 전부터 금도 여러 종류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경전에서는 최고의 빛깔을 ‘자금색(紫金色:붉은 빛이 나는 금색)’이라고 한다. 아름답거나 훌륭함을 찬탄하는 용어로 수시로 인용되곤 했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
권위와 흠모를 동시에 추구해 온 종교계는 정치가보다 더 많은 숫자의 금빛 건물을 남겼다. 그래서 세계 주요 관광지마다 ‘황금사원’이란 명칭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돔이나 탑의 일부분 혹은 건물전체를 금칠로 마감한 까닭이다.
모든 건축 재료가 금덩어리였다면 더 유명세를 떨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한 양을 구할 수도 없거니와 설사 구한다 할지라도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지라 ‘겉멋’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속까지 금이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은 그리스 신화인 ‘마이더스(Midas)의 손’ 사건으로써 잘 반영하고 있다. 만지기만 하면 무엇이건 황금으로 바뀌는 신통력에 대한 우화이다. 어찌 그 왕 뿐이겠는가?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음식을 먹기 위해 손으로 집었더니 빵마저 금으로 변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먹을 수는 없는 물건이다. 또 곁에 있는 공주를 만졌다가 그 딸마저 황금동상으로 바뀌는 과보를 받고서야 욕심의 실상을 제대로 깨치게 된다는 줄거리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어느 시인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좋은 사람은 금보다 더 빛나기 마련이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똑같은 교복을 입고 교문에서 쏟아져 나와도 어머니는 자기아들을 즉시 알아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머니만 알아볼 수 있는 아들만의 빛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그것은 금빛보다도 더 아름다운 빛일 것이다.
경치만 아름답다고 명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많은 인재들이 세상을 금빛으로 바꿀 때 비로소 진짜 명산이 되는 법이다. 선진국은 금칠한 빌딩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원칙을 존중하면서 상대에 대한 배려심을 갖춘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나라를 말한다. 과거시대에 한 획을 그었던 화려한 성전(聖殿)이라고 할지라도 현재 종교적 기능이 정지된 채 드나드는 사람들이 관광객뿐이라면 그건 성전이 아니라 한갓 박제된 구경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선어록에서는 사찰을 보방(寶坊)이라고 부른다. ‘보배구역’이라는 말이다. 다른 말로 금지(金地)라고도 한다. 불․법․승(佛․法․僧)이라는 삼보(三寶)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불보(佛寶)와 법보(法寶)는 본래 보물이지만, 살아 움직이는 승보(僧寶)는 보물단지가 될 수도 있고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 승보가 보물단지가 될 때 불보와 법보는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이 제일 큰 보배인 것이다.
땅이 금색으로 변하다
선종의 제10대 조사인 협(協) 존자는 평생 옆구리를 방바닥이나 벽에 기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름마저 ‘옆구리(協) 존자’로 불렸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큰 나무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그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땅이 금색으로 변하면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땅은 차츰차츰 금색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훤칠한 인물이 그 지역을 찾아왔다. 알고 보니 그의 몸에서 나오는 금빛 아우라가 이 땅을 노랗게 물들였던 것이다.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것처럼. 그 주인공은 장차 11조가 될 부나야사(富那夜奢) 선사였다.
차지변금색(此地變金色)
예지어성지(預知於聖至)
땅이 금색으로 변한다는 것은
성인이 올 것을 미리 알려 줌이라.
-『보림전』 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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