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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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3 년 6 월 [통권 제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9,392회 / 댓글0건본문
서산인가? 임연인가?
눈덮인 들판을 걷고자 하거든 踏(穿)雪野中去
모름지기 어지럽게 발자국을 남기지 말라. 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걷는 이 걸음걸이는 今日(朝)我行跡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遂作後人程
답설가(踏雪歌)는 이제까지 서산청허(西山淸虛, 1520~1604) 선사의 시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천설가(穿雪歌)의 저자로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 1771~1853) 선생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두 저자는 본문 속에서 답(踏)과 천(穿), 그리고 일(日)과 조(朝) 단 두 글자만 차이를 보일 뿐, 내용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는 『청허집』이나 『임연당집』에는 이 시가 수록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만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임연당집 별집(別集)』에는 추가로 실려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별집’이라는 말에서 보듯 이것은 뒷날 후학들에 의해 의도적 편입의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친작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서산 대사의 시로 알려지게 된 까닭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기록 때문이다. 그가 한때 ‘원종’이란 법명으로 잠시 몸을 의탁하여 숨어 지냈던 마곡사 백범당에는 지금도 당신의 친필로 쓰여 진 이 시가 마루에 걸려있다. 그 이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서산 작품으로 각인된 상태에서 아무리 임연의 글이라고 해도 일반인들은 기존 생각을 교정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지명도에 있어서 서산 플러스 김구의 영향력을 임연문중․문도와 몇몇 학자가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김구의 오해’라고 백번 이야기해도 모두가 오불관언(吾不關焉)이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다. 이 멋진 시가 이왕이면 임진란의 내부적 원인을 제공하여 나라를 곤경에 빠뜨린 것에 대한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유생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던 ‘멋진 스님’인 서산의 작품이었으면 하는 백성들의 바람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게다가 진짜 독립운동으로 ‘나라를 구한’ 백범 선생이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
원인 상인의 오해인가?
답설가는 유력한 저자가 두 사람에 불과하지만 『보림전』은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만 보아도 관계된 저자가 다섯 명이나 등장하고 있다. 경전목록 편집자들이 사실이 애매할 경우에 기존의 모든 자료를 올려놓고서 판단을 뒷사람에게 떠넘기는 방법을 애용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림전』의 경우 한 사람의 저작이라기보다는 공동작업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저서라고 하기보다는 편저(編著)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로 등재된 사람은 행적이 묘연하고 서문을 쓴 사람은 실재하고 있다는 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한 책에 다수의 저자가 등장하는 혼돈의 출발은 850년 무렵 활동한 일본출신 구법승 원인(圓仁, 엔닌) 상인(上人)의 의도하지 않는 오해(?) 때문이었다. 그는 두 권의 경전목록집을 남겼다. 그런데 두 권의 목록집 속에서 『보림전』 이본(異本)의 저자를 달리 기록한 것이다. 달리 기록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두 종류의 원본 자체가 저자를 달리하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저자 문제는 출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가져온 현존의 청련원본(靑蓮院本)에 대한 기록으로 추정되는 『입당구법목록(入唐求法目錄 839년)』에선 ‘주릉 지거(朱陵 智炬)’라고 하였고, 『입당신구성교목록(入唐新求聖敎目錄 847년)』에는 ‘회계 영철(會稽 靈徹)’이라고 했다. 지거(智炬)와 영철(靈徹)이라는 저자충돌이 첫 번째 혼돈이었다. 둘 다 801년 『보림전』 간행 후 40여년 전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신빙성은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원인 스님도 고민 끝에 병기하는 방식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대안이기도 했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았다
몇백 년 후 『동역전등목록(東域傳燈目錄, 1094년)』은 과감하게 ‘영철’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1104년 『대장경강목지요록(大藏經綱目指要錄, 1104년)』은 ‘서천 승지(西天 勝持), 금릉 혜거(金陵 惠炬), 영철 서(靈徹 序)’등 세 사람을 열거하고 있다. 결정하기 곤란하면 모든 가능성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자기 책임을 모면하려고 하는 것은 보신주의 관료와 학자들이 주로 애용하는 방식이다. 『불조통재(佛祖通載, 1341년)』에는 ‘건강 혜거(建康 惠炬), 천축 승지(天竺 勝持)’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정법정종기』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책은 담요(曇曜)의 위조”라고 단언하였다. 백번 양보하여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조도 저작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등장인물은 지거, 영철, 승지, 혜거, 담요 등 무려 다섯 명이다. 이 가운데 지거와 혜거는 동일인물로 보인다. 서역출신의 승지는 ‘인도선종사’ 전공자로 추정된다. 초조 가섭부터 28조 달마대사까지 선종사 부문의 자문을 위해 영입한 인물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거, 혜거, 승지는 모든 고승 전류에 그 행적이 없다. 다만 영철은 『송고승전』에 ‘회계 운문사 영철’로 그 이름이 등재되어있다. 북경대학 교수를 지낸 호적(胡適, 1891~1962, 후스) 선생은 『보림전』의 편저자를 “주릉(朱陵)의 지거(智炬)가 아니라 회계(會稽) 땅의 영철(靈澈)”이라고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현재의 대중들은 ‘최초의 청련원본’의 기록대로 ‘지거 『보림전』’으로 통용하고 있다. 원인 스님은 반쯤 오해했고, 호적 선생은 완전히 오해했다고 생각하면서 오리지널본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낸 것이다.
조계선종을 구하다
세간에서는 능력이상의 대가를 누리는 사람을 향해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라고 하면서 빈정거린다. 아닌 게 아니라 작복설(作福說)에 의한다면 “나라를 구하면 남의 복도 내 복이 된다.”라는 것은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변방의 아류로 떨어질 뻔 했던 혜능-마조선사를 구해내 중국불교사의 주류로 등장하게 만든 책이 『보림전』이다. 저자인 지거(智炬) 스님은 나라를 구한 것에 버금갈만한 업적인 조계선종을 구했던 것이다. 저울로 그 공덕의 무게를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나라를 구한 것 이상의 눈금숫자를 받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스님은 조계선종을 구하기 위하여 당신의 법명 지거(智炬)처럼 ‘지혜의 횃불’을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팔로우 미(Follow me). 나를 따르라.”
사진 설명 - 공주 마곡사 ‘백범당’에 걸려 있는 김구 선생의 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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