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연못을 메운 자리에 사찰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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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5 년 3 월 [통권 제23호] / / 작성일20-08-03 10:33 / 조회6,350회 / 댓글0건본문
집단이주는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합천댐이 생기면서 수몰된 마을주민들을 위하여 새로운 동네가 만들어졌다. 행정구역명은 '봉산면'이다. 다른 묵은 동네와는 달리 그야말로 ‘새마을’이다. 또 해인사 사하촌을 지역민들은 ‘신부락’이라고 부른다. 해인사 일주문 앞까지 빼곡히 들어서있던 가게들을 문화재 구역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한 곳에 집단이주 시키면서 새로 만든 마을이기 때문이다. 아
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동네는 영원히 ‘신부락’이다. 처음에는 일반명사로 불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유명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동네를 옮긴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작은 일이 아니다. 댐을 만들고 물을 채울 때도 주민들의 이주가 필요하지만, 반대로 기존 연못의 물을 빼내고 다른 용도로 전용하더라도 수중중생들을 이동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크건 작건 적지 않는 갈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계단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다
속리산 법주사에 머물 때 가장 좋았던 것은 경내에 계단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평평한 운동장 같은 넓은 터가 이런 깊은 산속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노스님들이 머물기 좋은 도량이 된 것 같다. 나이 든 사람에게 계단을 오르내리라고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팔만대장경과 큰법당 앞의 깎아지른 듯한 해인사 계단을 보고는 이내 질린 표정을 지으며 계단 없는 우회로를 묻는 관광객 어르신에게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일어난다.(비상용 찻길의 쇠대문은 늘 잠겨 있다.) 해인사는 산을 깎아 만든 사찰인지라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이용하지 않으면 이동이 불가능한 구조다. 산을 깎아 넓은 운동장 같은 평지를 만드는 작업은 삽과 곡괭이 그리고 삼태기만 있던 시절에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부담스럽고 또 평지가람에 사는 스님들을 부러워하는 처지가 되었다.
통도사 자리는 본래 연못임을 구룡지가 증명하다
깊은 산속의 넓은 평지는 원래 연못자리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을 빼내고 바닥을 고르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넓은 부지를 확보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호수에 살고 있는 말 못하는 중생들에게 그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저항이 뒤따랐을 것이다. 가장 뛰어난 수중동물인 용을 앞장 세워 반대하는 형식을 취했다.
통도사 구룡지 (사진: 죽풍원)
양산 통도사 창건설화는 그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여준다. 연못을 사찰부지로 만들려는 스님과 이를 반대하는 용이 팽팽한 대결을 벌인다. 어쩔 수 없이 살생을 피하기 위해 신통력으로 연못물 온도를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얼마 후 "어마! 뜨거워라." 하고 용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는 용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눈먼 용이라 도망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작은 연못을 만들어 그 한 마리 용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현재 남아있는 경내의 작은 연못인 구룡지(九龍池)가 그 전설의 흔적을 오늘도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넓은 통도사 경내 역시 계단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이 전설로 뒷받침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찰에는 많은 용들이 살고 있다
호수를 떠난 용들은 갖가지 재주를 부리면서 여기저기 자기자리를 찾아갔다. 어떤 용은 지붕위로 올라갔다. 용마루 끝에 위엄 있는 용두(龍頭)기와로 자리 잡았다. 어떤 용은 법당기둥을 감고서 승천하는 모습으로 자기공간을 확보했다. 추위와 더위를 피하려고 처마 밑에서 머리만 내놓고 온몸을 법당다락에 숨겨놓은 얌체 같은 용도 있기는 하다.
법당 안에서 반야용선을 끌고 가는 일을 자청한 용은 아예 뱃사공으로 취직했다. 멀리 일주문 밖으로 나가 부도전에서 무거운 비석을 등에 올려놓고 평생 ‘노가다’의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아예 용궁을 포기하고 한 평짜리 용왕각을 마련하여 단독주택으로 분가한 용도 더러 보인다. 새끼 용들은 계단의 소매돌이나 수미단 혹은 우물반자 등 구석구석에서 손바닥만큼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있는 듯 없는 듯 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렇게 위치와 모양을 달리해 함께 사는 구조를 통해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들었다.
말전지 비구는 신심있는 용을 만나다.
아난 존자의 제자인 말전지(末田地) 비구는 늘 연못가에서 좌선하기를 즐겼다. 앞이 탁 트인 눈 맛이 더없이 좋았고 늘 시원한 바람이 쾌적한 수행환경을 만들어 준 까닭이다. 선정에 든 그의 모습은 용왕마저 공경심을 낼 정도로 경건했다. 이에 반한 용왕이 공양초청까지 하는지라 용궁의 영빈관까지 다녀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용왕의 신심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어느 날 깜짝 놀랄만한 제안을 했다.
“물을 줄여 연못 터를 바쳐 작은 집(精舍)을 만들기를 원합니다.(龍乃縮水奉池 願充精舍)”
물가에서 정진하기를 좋아하는 스님에게 호숫가 별장을 지어드리겠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말전지 비구는 기뻐하기는커녕 저 많은 용의 가족들은 어떻게 살라고 물 평수를 줄이려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속내를 알아차린 용왕은 다시 부연설명을 했다.
“연못 서북쪽에 별도로 백리 남짓한 연못을 만들고 용과 권속 500무리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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