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대승사 대승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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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3-08 11:13 조회2,8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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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사 선원인 쌍련선원은 대웅전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선원 정면에는 월산스님이 쓴 ‘大乘禪院(대승선원)’이란 현판이 있다. 대승사 대승선원 전경. 김형주 기자 |
성철스님은 1944년 동안거와 이듬해 1945년 하안거를 경북 문경 대승사(大乘寺) 쌍련선원(雙蓮禪院)에서 지냈다. 지금은 대승선원이라 한다. 여기서는 평생도반 청담스님과 같이 있었다. 스님은 당신 도반의 둘째 딸을 이때 발심 출가시켰다. 1945년 단오날이었다.
“나는 (계를 설하기 위해)법상에 안 올라가는 사람인데, 순호스님(청담스님을 당시엔 순호스님이라 했다) 딸이니까 내 딱 한번 사미니계를 설한다.” 법상에 오른 성철스님은 청담스님 딸 인순이를 앉혀놓고 계를 설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이 명(命)과 목숨이 다하도록 일생동안 산목숨을 죽이지 말 것이니, 능히 이를 지키겠느냐?” “능지(能持, 능히 지키겠습니다)”
한국 최초 비구니강사 묘엄스님
선지식으로 우뚝 서
이렇게 5계와 10계를 다 설한 후 성철스님은 “이제 그대는 사미니가 되었으니 법명은 묘할 묘(妙)자, 장엄할 엄(嚴)자, 묘엄이라 할 것이다.” 이때 인순의 나이 14살. 현대 한국 비구니계의 거목(巨木) 묘엄스님은 이렇게 스님이 되었다.
묘엄스님은 지금 수원 봉녕사(奉寧寺)에 주석하고 있다. 봉녕사 주지이자 봉녕사승가대학 학장을 거쳐 종단의 품계(品階)로는 비구의 대종사에 해당하는 명사(明師)인 이 시대의 선지식이다.
묘엄스님의 일대기를 책으로 펴낸 작가 윤청광(尹靑光)은 <회색고무신>으로 이름한 이 책에서 이렇게 써 놓고 있다.
묘엄스님. |
“일제시대의 움츠러들고 변질된 불교를 바로 세우고자 열반에 드는 순간까지 불교정화를 외치던 청담스님. 그는 노모(老母)의 원을 들어주기 위해 하룻밤의 파계를 행한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딸은 그 출생의 사연 때문인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일제치하, 정신대(지금은 일본군 종군위안부라 부른다)에 가지 않기 위해 딸은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의 큰 스승을 만나게 된다. 친구의 딸에게 불교, 역사, 교양 등을 손수 가르쳐주고 ‘묘엄’이라는 법명을 내려준 성철스님. 딸은 아버지 청담스님과 스승 성철스님의 바람대로 우리나라 비구니계를 바로 세우고 비구니들의 스승이 되기 위한 고된 수행길에 나선다.
청담스님, 성철스님뿐만 아니라 경봉스님, 운허스님, 동산스님, 효봉스님, 향곡스님, 자운스님 등 내로라하는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딸은 한국 최초의 비구니강사가 된다. 그 후 딸은 동학사, 운문사에서 비구니강원을 이끌었으며 지금은 봉녕사 승가대학 학장으로서 우리나라 비구니계의 뿌리가 되었다.”
<회색고무신>은 청담스님의 딸, 성철스님이 제자인 묘엄스님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스님의 딸로 태어나 오늘날 우리나라 비구니계의 큰 스승이 된 묘엄스님은 어쩌면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이 남긴 가장 큰 사리가 아닐까.” (<회색고무신> 2002년 시공사 刊)
하늘에서 네 부처님이 내려오고
땅에선 쌍으로 된 연꽃이 솟아오르는 곳…
책 인용이 길었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어서다. 이 책은 한 여성수행자의 일대기면서 한국불교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성철스님과 청담스님의 도반으로서의 일생과 당신들의 행적을 후학에게 되새기게 하려는 필자의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대승사에서의 성철스님의 행적이 갖는 의미 가운데서 ‘묘엄스님의 출가’ 이야기는 그만큼 의의가 크지 않을 수 없다.
대승사 가던 날, 지난 8월23일이었다. 그날이 절기로는 처서(處暑)였다. 참 무서운 게 절기였다. 더위가 물러난다는 처서. 정말 그랬다. 부산서 시외버스로 3시간40분이 걸리는 문경터미널에 한낮에 도착했다. 한적한 시골버스정류장. 한낮인데도 언제 그렇게 더웠느냐는 듯 바람이 선선했다.
대승사 대웅전 전경. |
끊임없이 울어쌓는 매미소리만 아니라면 버스정류장은 마냥 조용하리라 여겨졌다. 대합실에 앉은 한 할머니는 차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시원한 바람을 쐬러 산책 나온 모습으로 간혹 조는 듯도 했다.
문경에서 대승사까지는 승용차로 약30분 거리.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8번지. 사불산(四佛山) 대승사는 제8교구본사 직지사 말사다. 사불산은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죽령 서남쪽 40리 지점에 있다. 산북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오른쪽 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높이 올라가면 해발 600미터 산마루에 뛰어난 풍광을 지닌 절이 있다. 대승사다.
신라 진평왕대인 587년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바위가 공덕봉 꼭대기에 내려앉았다. 왕이 바위 곁에 절을 세우고 <법화경>을 열심히 읽는 이름 없는 비구를 주지로 앉혀 사면석불에 공양을 올리게 했다고 한다. 이 절의 창건설화다.
6ㆍ25전쟁 화재 등으로 문 여닫기 수차례 거듭
1995년 ‘대승선원’으로
재개원하면서 수선납자 모여들기 시작
임진왜란 때 전소(全燒)된 후 조선말까지 몇 차례 중수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대승사에는 유일강원이 개설되어 근현대사에서 석학으로 칭송받는 권상로, 안진호 등이 대승사에 적(籍)을 두었으며 전국 13도에서도 가장 우수한 학인들이 모였다고 한다. 1928년 “선원과 강원을 영구히 개설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있다. 일제시대에 대승사에는 선원.강원.염불원까지 있어 오늘날의 총림을 연상케 해준다.
대승사 선원인 쌍련선원은 대웅전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현대의 명필 시암(是菴) 배길기(裵吉基) 선생은 ‘天降四佛 地聳雙蓮(천강사불 지용쌍련, 하늘에서 네 부처님이 내려오고 땅에서 쌍으로 된 연꽃이 솟아올랐다)’이라는 현판을 각각 특유의 필체로 썼다.
‘天降四佛 地聳雙蓮(천강사불 지용쌍련)’이라는 현판이 눈길을 끈다. |
선원 정면에는 월산(月山)스님이 쓴 대승선원(大乘禪院)이란 현판이 있다. 묘엄스님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쌍련선원에는 아버지 순호스님과 성철스님을 비롯해서 청안스님, 성수스님, 자운스님, 홍경스님, 우봉스님, 정영스님, 법응스님, 성오스님 등 20여분의 스님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1950년 6.25한국전쟁 이후 선원의 문은 오랫동안 닫혀 있었다. 현재 대승사의 기록에는 1960년대 안타까운 화재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1982년 선문이 다시 열렸다. 1985년에는 법달(法達)스님이 선원장으로 들어서서 대중들과 수선(修禪)했으며, 그 다음해인 1986년 월산스님이 조실을 맡아 대중들과 1년간 정진했지만 이후 선원은 한동안 운영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5년 조실 월산스님이 대승선원이란 이름으로 대웅전 옆 당우에 선원을 다시 개원하여 많은 수선 납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서슬퍼런 가풍이 살아 움직이는 대표적 선도량으로서의 면목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대승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 극락전, 응진전, 선원, 요사채가 있으며 한쪽 외진 곳에 총지암을 새로 지어 선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 주지 철산(鐵山) 탄공(呑空)스님은 ‘부지런하기로 유명한 스님’이라 불린다고 한다. 일주문 옆에 도자기 굽는 가마를 만들어 템플스테이 때 도자기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산약초도 재배한다. 도량도 대작불사를 일구어 새 당우도 깨끗하고 훤칠하게 건립해 놓았다.
올 하안거에는 선방에서 27명의 수선납자가 정진했다고 한다. ‘숲이 짙으면 호랑이가 깃든다’고 했다. 쌍련선원에서 눈 밝은 납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되새기는 성철스님 법어
생명의 참모습모든 생명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합시다. 만법의 참모습은 둥근 햇빛보다 더 밝고 푸른 허공보다 더 깨끗하여 항상 때 묻지 않습니다.
악하다 천하다 함은 겉보기일 뿐 그 참모습은 거룩한 부처님과 추호도 다름이 없어서 일체가 장엄하며 숭고합니다. 그러므로 천하게 보이는 파리, 개미나 악하게 날뛰는 이리, 호랑이를 부처님과 같이 존경해야 하거늘 하물며 같은 무리인 사람들끼리는 더 말할 것 없습니다.
살인 강도 등 악한 죄인을 부처님과 같이 공경할 때 비로소 생명의 참모습을 알고 참다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광대한 우주를 두루 보아도 부처님 존재 아님이 없으며 부처님 나라 아님이 없어서 모든 불행은 자취도 찾아 볼 수 업고 오직 영원한 행복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 서로 모든 생명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합시다.
- 1981년 부처님오신날 법어. |
[불교신문 2751호/ 9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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