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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자취를 찾아서
성철스님의 자취를 찾아서

14. 대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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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3-08 11:14 조회2,2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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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룡 거사로부터 귀중한 장서를 받은 성철스님은 당시 해인사 백련암 경내에 장경각을 새로 지어 보관하며 대출은 철저히 금했다. 대신 책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절에서 재워주며 공부를 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사진은 장경각을 헐고 새로 지은 백련암 법당안의 서가(書架). 김형주 기자
 
성철스님이 문경 대승사에 머물 시절, 스님은 또 하나의 획기적인 인연을 맺었다. 스님이 평생 간직한 책을 갖게 된 기연이 바로 대승사에서 싹튼 것이다. 스님은 참선수행자에게는 ‘책을 읽지 말라’고 엄하게 일러오셨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어느 불교학자나 어느 스님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한다. 장서도 많았다.
스님들에겐 절대로 책을 주지 않겠다던 ‘金 거사’
유식학 강론’에 이은 심도 있는 대화와 신뢰 끝
<성철스님에게 모두 기증
 
출가하고서도 스님은 다른 스님들로부터 ‘철 수좌는 팔만대장경을 바로 외고 거꾸로 왼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런 스님이 참선 공부하는 불자들에게는 ‘책을 읽지 말라’고 했으니 언뜻 들으면 모순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스님의 이 가르침은 지극한 도(至道)는 언어나 문자에 있지 않음을 일러준 말임을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스님의 장서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자. 성철스님과 청담스님이 대승사에서 함께 수행할 때 주지는 김낙순스님이었다. 어느 날 주지 스님이 청담스님에게 말했다.
“내게 친척이 되는 김병룡(金秉龍) 거사라는 분이 있는데 서울에 삽니다. 경전에도 밝고 어록에도 밝다 합니다. 그분은 돈 많은 부자라서 불교책을 많이 모았다고 합니다. 대장경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발간된 선어록 등 3000여권의 불교관련 책과 목판본도 갖고 있답니다. 그분은 충주에 살던 천석꾼인데 불교에 심취했던 아버지로부터 불교책을 물려받은 데다 자기가 또 모았답니다. 그런데 중한테는 자기의 책을 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청담스님은 주지 스님의 말을 성철스님에게 전했다. 성철스님은 “그렇게 불교공부를 많이 한 거사가 있나. 책을 그리도 많이 갖고 있고. 그런데 뭐라? 중한테는 절대로 책을 안 주겠다고?” 스님은 호기심에다 오기까지 일어 그 거사를 만나기로 하고 서울로 갔다.
김 거사와 성철스님은 서로 만나 불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당시의 이야기를 성철스님이 시자 원택스님에게 한 말이 있다.
“김 거사가 보기 드물게 경전을 많이 읽었고 특히 반야경전에 달통했더구만. 그 사람이 유식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해. 그래서 내가 말했지. ‘거사가 아는 불교이야기는 어지간히 했소?’ 하니 ‘그렇습니다’ 카는 거야. 내 차례다 싶어 유식학에 대해 한참 얘기했제. 자기도 잘 모르는 유식학을 강론하니 귀가 번쩍 뜨였던 모양이라.”
   
‘법계지보(法界之寶)’. 성철스님은 김 거사에게 받은 장서에 일일이
이 글자를 새긴 도장(오른쪽)을 찍었다. 스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온누리의 보배’로 귀하게 간직하고 활용했다.
 
이상의 글은 원택스님이 쓴 <성철스님 시봉이야기2>에서 인용했다. 그러나 그중에서 김 거사가 ‘중에게는 책을 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필자가 다른데서 들은 얘기다. 그 다른데서 들은 이야기를 보자. 스님과 김 거사는 이후 여러 번 만났다고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스님과 김 거사는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갔다고 한다.
그날도 두 분은 만났다. 그 자리는 이미 두 분의 신뢰가 쌓인 후라 김 거사는 ‘이 스님 같으면 내 책을 전해도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을 테고 스님도 이쯤이면 내 할 말을 해야겠다고 작심했을 때였다.
전과 같이 불교이야기를 나눈 후 잠깐 뜸을 들이고 난 뒤 스님이 말했다. “김 거사, 당신이 갖고 있는 책은 중한테는 절대로 안준다고 했다면서요?” “예, 그렇습니다.” 스님은 “그거 참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스님은 “그런데 나도 중인데 나한테도 그 책을 주지 않겠소?” 했다. 그랬더니 김 거사는 “스님이시라면 다 드리겠습니다”했다고 한다.
‘시봉이야기’의 글과 필자가 들은 이야기가 약간 다르기는 하나 공통점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책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책을 자기보다 더 잘 지닐 사람을 찾기 마련이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갖고 싶은 마음을 갖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또한 자기가 갖든 누가 갖든 그 책이 오래남아 여러 사람에게 이익이 되게 하려는 마음이 있다.
현재 해인사 백련암에는 스님의 책이 간직돼 있다. 최근 원택스님은 필자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일러주었다. 책 정리를 하다가 당시의 기록을 찾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스님이 김 거사에게 책을 받을 때가 ‘응화(應化) 2974년 정해(丁亥) 9월’이라는 것이다. 응화 2974년 정해이면 당시에는 불기(佛紀)를 2900년대를 쓸 때이니까 서기로는 1947년이 된다.
이 기록에는 또한 ‘증여인(贈與人) 김병룡(金秉龍), 영수인(領收人) 성철’로 쓰여 있다고 했다. 원택스님은 이로써 시봉일기에 ‘방대한 장서’ 제목으로 쓴 글에서 “성철스님이 방대한 장서를 갖게 된 것은 경남 양산 내원사에 머물 무렵이다”라는 문장에 자세한 설명이 더해져야 한다고 필자에게 일깨워주었다.
다시 말하면 책을 인수한 시기는 1947년 9월이니까 그때 스님은 경북 문경 봉암사결사에 들어갈 때였다. 내원암에 머문 시기는 1947년 하안거였다.
성철스님, ‘장경각’ 지어 ‘법계의 보물’ 같이 활용
절 밖 대출 금지하면서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재워주고 먹여주며 보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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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김 거사의 책을 인수한 이후 스님의 장서는 해를 거듭하면서 숫자와 내용을 더해갔다. 필자가 해인사 백련암을 출가했을 당시 백련암 염화실 앞에는 ‘장경각(藏經閣)’이라는 현판이 걸린 당우가 한 채 있었다.
스님은 당신의 장서를 집 한 채를 지어 모두 모셔 놓았다. 시멘트로 된 이 건물은 좌우로 창을 냈는데 쇠창살에다가 철문이었다. 출입문 역시 철문이었다. 지금은 장경각을 헐어 없애고 새로 지은 법당에 스님 책을 모셔놓았다.
스님의 장서이야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스님은 당신의 장서에 도장을 책마다 다 찍었다. 헌데 그 도장문구가 독특하다. 여느 장서가라면 ‘OO소장’식으로 도장에 새길 텐데 스님은 그러지 않았다. 스님이 책에 찍은 도장은 ‘법계지보(法界之寶)’. 즉 ’법계의 보물‘이란 뜻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이 책들은 온누리의 보배라는 말이다.
그만큼 지중한 것이며 또한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 하나 더 독특한 것이 있다. 스님은 당신의 책을 어느 누구에게 빌려주어 절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았다. 요즘말로 이를테면 ‘관외대출’은 절대 금지였다.
‘책을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내게 오라. 책을 볼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겠다. 그러나 절 밖으로 갖고 가서는 안된다’는 철칙이었다.
   
‘장경각’ 현판. 지금은 법당 서가에 보관돼 있다.
 
필자가 스님을 모시고 백련암에 살 때다. 1960년대 말인지 1970년대 초반인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한 청년이 백련암에 와서 스님을 친견했다. 그 청년이 가고난 뒤 스님이 필자에게 한 말이다.
“그놈 참 재밌는 놈이데. 내가 책 자랑을 하고 이 책은 절대로 밖으로 못나가게 한다고 하니까 그럼 밖으로 나가게 하려면 어찌하면 됩니까 하기에 내 죽고 나면 그 때는 모르지 했지, 그러니까 그놈이 뭐라 캤는지 아나? 그렇다면 스님께서 얼른 돌아가셔야 하겠습니다 안 카나. 글 마 참 재밌제.”
그 때 그 청년이 오늘의 철학자 윤구병 선생이다. 지금은 어디에서 그분이 이 글을 볼지 모르겠다.
 
■ 되새기는 성철스님 법어
정진(精進)
모든 육도만행(六度萬行)은 그 목적이 생사해탈(生死解脫) 즉 성불에 있으니 성불의 바른 길인 참선에 정진하지 않으면 이는 고행외도(苦行外徒)에 불과하다.
정진은 일상(日常)과 몽중(夢中)과 숙면(熟眠)에 일여(一如)되어야 조금 상응(相應)함이 있으니 잠시라도 화두(話頭)에 간단(間斷)이 있으면 아니된다.
정진은 필사(必死)의 노력이 필수조건이니 등한(等閒).방일(放逸)하면 미래겁이 다하여도 대도(大道)를 성취하지 못하나니 다음의 조항을 엄수하여야 한다.
-. 4시간이상 자지 않는다.
-. 벙어리같이 지내며 잡담하지 않는다.
-. 문맹같이 일체 문자를 보지 않는다.
-. 포식ㆍ간식하지 않는다.
-. 적당한 노동을 한다.
- 수도8계(修道八戒) 중에서
 
[불교신문 2754호/ 9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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