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책소개
유교와 불교는 동아시아 사상의 주요 두 축을 이룬다. 유교가 중국 고대의 공자에 의해 시작되고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이후로, 두 사상 모두 동아시아의 독특한 사상체계 형성에 크게 기여해 왔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서로 다르지만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왔다. 이런 배경에서 비춰볼 때, 현 학계에서 유교와 불교 간의 역사적 대화에 대한 학문적 탐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동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상 간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상호 작용을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역사를 통해 유교와 불교는 각 시대를 거치며 ‘사상적 변주(격의)와 융합’의 과정을 거치며 긴 대화의 여정을 함께 해 왔다. 그 교차점들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동아시아 사상과 문화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여정을 되돌아보는 작업이며, 사상적 변주와 융합은 이 과정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화두이다. 그 역사적 상호 작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방대한 작업이다. 따라서 우리는 위 화두를 등불 삼아 그 교차점들을 대략적으로나마 복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유교와 불교가 어떻게 대화해 왔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통찰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저자소개
<유교와 불교의 대화> 편집위원회 : 김진무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서재영 성철사상연구원장, 김도일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장, 유용빈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연구원.-
김도일金渡鎰: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철학과에서 순자의 윤리 사상과 도덕 심리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대만대학교 방문학자 (2016년),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방문학자 (2022년)로 지낸 바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부교수로서, 유교문화연구소장, 비판유학〮현대경학연구센터장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 유학동양한국철학과 4단계 두뇌한국 21 교육연구단장(교육부 지원사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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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빈柳鏞賓: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칭화대학교 철학과에서 성현영 『도덕경의소』의 정치 이념과 그 철학 기초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 강사 및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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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金帝蘭: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웅십력의 철학사상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및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근현대철학 및 근현대불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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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金鎭戊: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교 철학과에서 불교와 현학의 관계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원광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 강사 및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불교, 도가철학, 현학, 선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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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욱卞熙郁: 서울대학교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철학과에서 대혜 종고의 간화선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불교학연구회 이사, 한국선학회 부회장, 서울대학교 철학과 강사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불교, 한국불교, 선불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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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길암 石吉岩: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원효의 보법화엄사상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불교연구원 전임연구원과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HK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 불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불교, 화엄학 그리고 동아시아불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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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빈 柳鏞賓: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칭화대학교 철학과에서 성현영 『도덕경의소』의 정치 이념과 그 철학 기초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고,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 강사 및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제자백가, 도가철학 그리고 불교철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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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李遠碩: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북송대 인성론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강사와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과 강사를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학교 철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철학, 송대 유학 그리고 한국 유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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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임 李海任: 명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한원진의 심성론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공동연구원 및 전주 상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 유학, 조선 유학 그리고 송대 성리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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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봉 鄭相峯: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학교 철학과에서 주자의 심론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고, 한국철학사연구회 회장, 한국중국학회 회장, 중국현대철학연구회 회장, 한국주자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철학, 한국철학, 동서비교철학 그리고 유교윤리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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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혁 陳永革: 중국 남경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절강성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소장 및 2급연구원, 절강성종교연구센터 주임 및 수석전문가로 재직 중이다. “절강성신세기151인재”와 “절강성五個一批이론인재”에 뽑혔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불교, 지역사상문화 등이다.
목차
■서 문_ 책을 엮으며-유교와 불교, 그 사상적 변주와 융합┃김도일, 유용빈■총 론_ 중국 역사를 통해 본 유학과 불교의 대화┃유교와 불교의 대화 편집위원회
제1장 불교의 전래부터 당대까지 이루어진 유교와 불교의 대화
•석길암┃불교적 사유와 유교적 사유의 융합과 간격-불성과 인성의 차이
제2장 송명대에 심화된 유교와 불교의 대화
•이원석┃유자휘에게 끼친 대혜종고의 영향
•이해임┃장구성(張九成)은 대혜종고(大慧宗杲)에게 무엇을 배웠는가? - 장구성과 대혜종고의 격물 담론을 중심으로
•변희욱┃송대(宋代)의 간화(看話)와 격물(格物)
•정상봉┃주희가 본 육구연의 심학과 선(禪)
•김진무┃조사선(祖師禪)과 육왕(陸王) 심학(心學)의 교섭관계
제3장 명말청초 불교계에서 계속된 유교와 불교의 대화
•진영혁┃중국 전근대(前近代) 유불(儒佛) 관계 - 만명(晚明) 불교의 양지심학론(良知心學論)
•유용빈┃지욱(智旭)
책속으로
- 48쪽, 총론 < 중국 역사를 통해 본 유학과 불교의 관계 >불교와 유학의 사상적 융합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기는 바로 근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서구 열강의 침탈로 인한 민족적 위기를 불교와 유학의 사상적 융합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현한 것이다. 근대 시기의 유학과 불교의 융합은 한쪽의 우월성을 논하기보다는 민족적인 각성으로부터 서로 융합하여 서학에 대응하는 것이었고, 또한 이를 통하여 당시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근대 시기의 불교와 유학의 융합으로는 ‘신유학’과 ‘인간불교’가 가장 대표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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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쪽, 석길암 < 불교적 사유와 유교적 사유의 융합과 간격 >
불성(佛性)과 인성(人性)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국에서 일어난 불교와 유교의 교섭 과정에서 불교적 사유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불성이 주목되지만, 그것이 인도불교 본래의 사유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동일한 관점에서 불교와 교섭하는 과정에서 유교적 사유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인성을 주목하지만, 인성이라는 개념이 본래의 유교적 사유를 대표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 역시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이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의 교섭을 보여주는 접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며, 교섭 이후의 전개에서 각각의 사유를 대표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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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쪽, 이원석 < 유자희에게 끼친 대혜종고의 영향 >
대혜종고는 유자휘에게 묵조선을 버리고 생사의 관문을 깨라고 충고했는데, 우리는 유자휘의 「성전론」 및 여러 문장을 분석하여, 유자휘가 대혜의 비판적 충고를 수용해서 기존의 입론을 수정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유자휘가 생각하는 ‘도’는 단지 고요하고 공허한 동일적 본체일 뿐만 아니라 다양성의 원리로 자리매김되고 있었다. 또한 ‘마음’은 본래 적막하여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것이지만 외물과 감응하여 적절한 감정을 낼 수 있는 것이며, 더욱 중요하게는 그것이 본성과 감정을 정밀하게 변별하는 주재자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유자휘는 보았다. 그다음, 유자휘는 사려 및 호오의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보며, 대신 선을 사유하고 좋아하는 방향으로 수양해야 한다고 여겼다. 마지막으로, 유자휘는 이상적 모범으로서 공자를 제시하되, 생사의 관문을 깬 인물로 그를 재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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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쪽, 이해임 < 장구성은 대혜종고에게 무엇을 배웠는가 >
북송대 유학자들은 선사와 자유롭게 교류하며 정치적으로 학문적으로 많은 담론을 나누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대혜와 장구성이다. 두 사람 모두 주전론을 주장했을 뿐 아니라 이를 빌미로 유배당했다. 이들은 진회(秦檜)를 중심으로 형성된 화친론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혜는 성리학에 대한 깊은 조회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이정자의 제자들이 물격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간파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는 대혜가 경산에서 장구성과 함께 격물·물격에 대해담론하는 장면에서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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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쪽, 변희욱 < 송대의 간화와 격물 >
왜 두 길은 갈라졌을까? 공부 주체가 사물에 다가간다[格]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주희의 길에서 공부 주체는 실제로 존재하며 공부 주체와 대상 사물은 일단 나누어져 있다. 그 길의 지반도 실리(實理)고 목적지도 실리다. 대혜의 길에서 ‘나’는 점일 뿐 본래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공부 주체와 사물은 나누어지지도 않았고 하나이지도 않다[空]. 대혜가 “공에 빠져라.”라고 주문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 길의 지반도 공이고 목적지도 공이다. 주희의 길에도 완연한 이분법은 존재하기 어렵지만, 대혜의 길에서 이분법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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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쪽, 정상봉 < 주희가 본 육구연의 심학과 선 >
주희는 육구연의 심학적 특징,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심(一心)’, ‘본심(本心)’의 중추 개념부터 ‘발명본심(發明本心)’의 도덕 실천과 ‘존덕성(尊德性)’의 위주의 실천 공부 전체가 선(禪)에 가깝다는 비판을 가하였다. 육구연의 입장에서는 학문의 모식이나 방법이 형식적으로 선불교와 가까워 보일지라도 그 실질적 내용은 유가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희의 비판은 너무 심하다고 여겼을 법하다. 그러나 주희는 이단(異端)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일관되게 육구연을 비판하였다. 그것은 ‘존덕성’을 위주로 한 육구연의 공부 방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훗날 주희는「옥산강의(玉山講義)」(1194)에서 ‘존덕성’을 우선으로 하되 ‘도문학’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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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쪽, 김진무 < 조사선과 육왕 심학의 교섭관계 >
‘심’과 ‘리’를 다르게 보는 주희의 맹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미 육구연에 의하여 ‘첩상가옥(疊床架屋)’이라고 철저하게 비판을 받았던 부분이다. 이러한 왕양명의 논술에서도 명확하게 『단경』의 영향이 보인다. 특히 “외심에서 리를 구한다면, 이는 지와 행을 둘로 나누는 것이다.[外心以求理, 此知, 行之斫以二也.]”는 구절은 『단경』에서 도처에 설해지는 “막향외구(莫向外求)”, “불가외구(不假外求)”, “만약 본심을 깨닫는다면 바로 본래 해탈이다[若識本心, 即本解脫]” 등과 특히 “이러한 견해가 있는 것은 법에 바로 두 가지 상(相)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作此見者, 法有二相.]”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어쨌거나 ‘심즉리’는 바로 육왕 ‘심학’의 특징이며 바로 ‘지행합일’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사상적 연원은 분명하게 불교, 특히 조사선의 종전(宗典)인 『단경』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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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277쪽, 진영혁 < 중국 전근대 유불 관계 - 만명 불교의 양지심학론>
만명 시기 ‘출유입불’한 많은 불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운서주굉, 영각원현, 우익지욱 세 명을 뛰어넘을 자가 없다. 이 세 사람 중에 운서가 가장 연장자이고, 원현이 그다음이고, 지욱이 가장 늦게 나왔다. 그 가운데 운서와 지욱은 후대[청초 팽제청(彭際淸)에서 비롯됨]에 만명 불교의 ‘4대 고승’으로 추앙되었다. 주굉은 비록 후대에 정토조사(제8대 조사)로 추존되었지만, 그가 수학한 것은 화엄사상을 융합한 선승이었으며, 원현은 ‘고산선법(高山禪法)’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에 찬양받았다. ‘출유입불’의 이들 세 명의 학승들은 모두 양명학의 ‘양지(良知)’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 사상이 상당히 전형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겠으며, 각각 명말 선종과 교문(敎門: 천태종)을 대표한다.
머리말
서문_책을 엮으며: 유교와 불교, 그 사상적 변주와 융합 - 역사 속 유교와 불교의 대화 여정 -김도일(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장/ 비판유학·현대경학연구센터장)
유용빈(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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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불교는 동아시아 사상의 주요 두 축을 이룬다. 유교가 중국 고대의 공자에 의해 시작되고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이후로, 두 사상 모두 동아시아의 독특한 사상체계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서로 다르지만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왔다. 이런 배경에서 비춰볼 때, 현 학계에서 유교와 불교 간의 역사적 대화에 대한 학문적 탐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동아시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사상 간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상호 작용을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불교가 중국에 스며들기 시작한 시기는 한무제(漢武帝, 재위 기원전 141~87)의 중앙아시아 영토 확장 시기로 추정된다. 이때 중국의 영향력이 중앙아시아로 확대되면서 실크로드를 통해 불교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 초창기에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유교보다 도가사상이었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한역할 때, 많은 번역가들이 도가 개념을 차용했다. 이러한 번역은 단순한 문자적 수준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소위 ‘격의(格義)’의 방식도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지식인들은 불교 교리를 자신들에게 더 익숙한 도가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이로 인해 불교는 중국 문화에 맞게 변형되었고, 중국불교는 인도불교와 다른 독특한 특성을 갖게 되었다. 즉, 격의는 단순한 번역을 넘어서서, 사상이나 종교가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상적 변주’는 특히 위진(魏晉) 시기(220~420)에 유행했다.
이러한 변주의 과정 외에도 불교가 중국에 스며드는 초기 과정에서 유교 역시 불교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영향은 주로 사회 윤리적 측면에서 나타났다. 이 상호 작용을 잘 보여주는 문헌으로는 「모자이혹론(牟子理惑論)」이 있다. 이 문헌은 승우(僧祐, 445~518)가 편찬한 『홍명집(弘明集)』에 수록되어 있다. 「모자이혹론」은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와 도교를 논하며 불교를 옹호한다. 문헌 속에는 유교의 불교 비판과 이에 대한 불교의 대응이 잘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유교는 불교가 중국의 전통적 사회 윤리, 특히 효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에 불교 측은 중국의 전통적 사회 윤리를 지엽적인 것으로 보고, 불교가 추구하는 것이 진정으로 궁극적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즉, 불교는 궁극적인 가치가 지엽적인 것과 충돌하더라도 추구되어야 하며, 이를 비판할 수 없다는 논리로 양자 간의 충돌을 해소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오히려 중국불교가 사회 윤리 차원에서 유교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불교와 유교 간의 복잡한 상호 작용과 영향 관계를 잘 드러내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유교와 불교 간의 대화는 사회 윤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 탐구의 측면에서도 이루어졌다. 이 대화의 핵심에는 불교의 불성(佛性)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관련된 다양한 논의는 인도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나, 중국에서는 이를 유교적 전통의 인심(人心)이나 인성(人性)과 같은, 자신에게 더 친숙한 개념과의 연관성 속에서 새로운 개념으로 재창조해 내었다. 예를 들어,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볼 수 있는 불성론은 인도불교에는 없던 중국화된 불교의 독특한 이론이다. 이러한 불성론은 이후 유학의 마음이론 형성에 반대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이고(李翶, 772~841)의 『복성서(復性書)』는 이러한 영향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는 불성 개념을 매개로 한 유교와 불교의 교류가 단순한 격의를 넘어 융합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융합은 두 사상 간의 깊은 상호 작용과 서로에 대한 이해의 확장을 나타낸다.
융합은 격의라는 현지화와 재해석을 넘어서는 과정으로, 서로 다른 개념이나 사상이 섞여 새로운 결합물을 만드는 ‘멜팅팟(melting pot)’과 같다. 이 과정에서 각 사상의 요소들이 섞이거나 상호 작용하여 새로운 개념, 이론, 심지어 실천 양식까지도 창출한다. 격의가 특정 문화적 맥락에 맞는 재해석이라면, 융합 그 사회 문화적 배경에서 필요로 하는 무엇에 대한 응답이다. 예를 들어 불성은 그러한 융합의 결과물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유교적 전통 아래에서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윤리적인 삶을 추구해 왔다. 불성은 바로 이러한 필요에 대한 불교적 대응에서 비롯된 사상적 융합물이다. 이는 불교가 중국의 사회 문화적 맥락에 맞게 변형되고 발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송명(宋明) 시기에 이르러 유교와 불교의 융합은 더욱 깊어졌다. 이 시기에 형성되고 발전한 송명 유학에 불교가 끼친 영향은 널리 인정받는 사실이다. 일부 불교 승려들은 유학자들과 직접 교류하며 그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교류의 대표적인 예로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가 있다. 또 다른 한편,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 1033~1107), 주희(朱熹, 1130~1200)와 같은 유학자들이 불교를 강하게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론에서 불교적 요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치[理]를 중시하는 주희의 이학(理學) 계열뿐만 아니라 마음[心]을 중심에 둔 왕양명의 심학(心學) 계열에서도 불교의 영향은 명확한데, 바로 그들의 이치와 마음에 대한 이해 속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사례들은 당시 유교 지식인들이 유교와 불교의 사상을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사상적 멜팅팟을 형성했음을 잘 보여준다.
명청(明淸) 시기에도 유교와 불교 간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특히 명말청초에는 유불 일치 사상이 유행하며, 이 사상을 주장하는 승려들이 등장했다. 덕청(德淸, 1546~1623), 주굉(袾宏, 1535~1615), 진가(眞可, 1543~1603), 지욱(智旭, 1599~1655)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지욱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유불 일치를 선언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불교 이론을 구축했다. 지욱은 『논어점정(論語點睛)』, 『맹자택유(孟子擇乳)』(失傳), 『대학직지(大學直指)』, 『중용직지(中庸直指)』 등에서 유교 경전들을 불교적 관점으로 해석했다. 그의 접근 방식은 유교의 특정 개념을 본질적으로 다른 불교의 특정 개념과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론은 사상적 멜팅팟보다는 위진(魏晉) 시기의 격의, 즉 사상적 변주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는 유교와 불교 간의 융합이 한번 이루어졌다고 해서 그 대화가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다른 시대적 배경에서는 또다시 상호 간의 재해석이 필요함을 나타낸다.
청말민초(淸末民初) 시기의 중국에서는 유불 대화가 다시금 융합의 형태를 띠었다. 이 시기의 ‘현대신유학’은 유교와 불교의 융합을 새롭게 시도했다. 웅십력(熊十力, 1884~1968)은 불교의 유식학적(唯識學的) 기초를 비판적으로 활용하여 유교사상을 심화시키는 노력을 했다. 이 시도를 바탕으로 당군의(唐君毅, 1909~1978)는 유교와 화엄학(華嚴學)의 융합, 모종삼(牟宗三, 1909~1995)은 유교와 천태학(天台學)의 융합을 추구했다. 이러한 융합의 결과로, 중국 지식인들은 서구적 근대성에 대응하여 과학과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새로운 윤리 체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즉 현대신유학은 유교와 불교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유입된 근대적 사상들 사이에서 새로운 멜팅팟의 자처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사상과 근대적 사상을 결합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사상적 방향을 모색했다.
역사를 통해 유교와 불교는 위와 같은 ‘사상적 변주(격의)와 융합’의 과정을 거치며 긴 대화의 여정을 함께 해왔다. 그 교차점들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동아시아 사상과 문화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여정을 되돌아보는 작업이며, 사상적 변주와 융합은 이 과정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화두이다. 그 역사적 상호 작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방대한 작업이다. 따라서 우리는 위 화두를 등불 삼아, 그 교차점들을 대략적으로나마 복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유교와 불교가 어떻게 대화해 왔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통찰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노파심에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사상적 변주와 융합이 반드시 순차적으로 교차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된 내용에서 시대순으로 교차가 드러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역사를 더 상세히 살펴보면 얼마든지 다른 양상이 드러날 수도 있다. 같은 시기에 동시에 발생하거나 사상가마다 다르게 혼합적으로 나타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상적 변주와 융합의 과정을 포착할 때 중요한 것은, 사상적 대화 속에서 단일한 방식이 아닌 이 두 다른 방법이 함께 작용해 왔다는 점이다. ...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