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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조사선의 실질적 건립자 마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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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2 년 4 월 [통권 제108호]  /     /  작성일22-04-04 11:50  /   조회8,76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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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16 | 마조도일馬祖道一 

 

육조六祖 혜능慧能대사가 조계曹溪에서 40여 년 동안 법을 펼치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는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따르면 그의 직계 제자가 43인(주1)이라고 하며, 『단경』의 ‘부촉咐囑’에는 이른바 ‘십대제자十大弟子’의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주2) 

 

육조와 선종 오가의 형성

 

그렇지만 ‘십대제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하택신회荷澤神會이며, 다른 제자들의 행적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더욱이 숙종肅宗 대종代宗의 양제의 국사國師로서 선사상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남양혜충南陽慧忠, 그리고 선종사에서 가장 중요한 법맥인 남악회양南嶽懷讓, 청원행사靑原行思 등도 ‘십대제자’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단경』에 기록된 ‘십대제자’는 혜능대사가 입적 당시에 문하에 머물던 제자들을 거명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가속賈餗이 보력寶曆 원년(825)에 찬술한 『대비선사비명大悲禪師碑銘』에서는 “조계대사의 입적 후 그 법을 이은 신회神會와 회양懷讓이 또한 두 종宗을 이루었다.”(주3)라는 문구가 보인다. 따라서 이 당시에는 남종선의 주류를 신회의 하택종荷澤宗과 남악회양의 제자인 마조도일馬祖道一의 홍주종洪州宗으로 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한편 송대 지반志磐이 찬술한 『불조통기佛祖統紀』에서는 “육조 이후 두파派를 이루었는데, 하나는 청원행사이다. 행사는 석두희천에게 전하였으며, 그 문하에 조동曹洞·운문雲門·법안法眼을 이루었다. 다른 하나는 남악회양으로 회양은 마조에게 전하였고, 그 문하에 임제臨濟·위앙潙仰을 이루었다. 이렇게 오가종파五家宗派가 되었으나 도道는 하나일 뿐이다.”(주4)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로부터 보자면 후대로 갈수록 ‘하택종’은 쇠락하여 사라지고 ‘청원계’에서 조동·운문·법안의 3종이 출현하였고, ‘남악계’에서 위앙·임제의 2종이 출현하여 ‘오가五家’를 이루었으며, 그는 모두 혜능으로부터 계승된 것이기 때문에 “도는 하나일 뿐”이라고 칭함을 알 수 있다.

 

이 ‘오가’의 형성은 조사선에 있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이후에 각각 논하겠지만 이러한 남종선의 분파는 실제적으로 석두희천과 마조도일로부터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특히 『송고승전宋高僧傳』 권9의 “강서江西의 법주는 대적大寂(馬祖)이요, 호남湖南의 법주는 석두로서 서로 왕래가 끊이지 않아 두 대사大士를 친견하지 못한다면 도를 알 수 없을 정도이다.”(주5)라는 기록으로부터 이 두 선사의 문하에서는 서로 왕래하면서 조사선을 선양했다고 하겠다. 그에 따라서 먼저 마조도일(709~788)의 선사상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벽돌을 갈아 거울 만들기

 

마조는 실질적인 조사선의 건립자라고도 평가받는다. 조사선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는 이들은 이른바 ‘즉심즉불卽心卽佛’과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도불용수道不用修’ 등을 언급할 정도로 마조의 선사상은 상당히 유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선사상이 모두 『육조단경』에 근거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이들은 드물다고 하겠다. 따라서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1. 마조선사馬祖禪師.      

 

마조가 남악회양을 만나 깨달음에 이르는 기연도 상당히 유명하다. 마조가 출가한 이후, 남악南岳의 전법원傳法院에서 매일 좌선을 하자 회양선사는 그 앞에서 벽돌을 갈았고,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 거울을 만든다고 답하고, 그에 의문을 제기하자 다음과 같이 설한다.

 

“네가 좌선을 배움은 좌불坐佛을 배움이 된다. 만약 좌선을 배운다면 선은 앉거나 눕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禪非坐臥]. 만약 ‘좌불’을 배운다면 부처는 정해진 상相이 아니다. 머무는 법이 없는 곳에서 마땅히 취하고 버릴 것이 없다. 네가 만약 ‘좌불’한다면 곧 부처를 죽이는 것이요, 만약 좌상坐相에 집착한다면 그 이치를 통달하는 것이 아니다.”(주6)

 

이로부터 마조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사상은 바로 『단경』에서 강조하는 것으로, “만약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옳다면, 유마힐維摩詰이 사리불舍利弗의 숲 속에서 연좌宴坐함을 꾸짖은 것과 맞지 않다.”(주7) 등의 내용과 같다. 이러한 기연은 이후에 이른바 ‘선비좌와禪非坐臥’ 라는 용어를 유행시켰다고 하겠다. 

 

사진 2. 회양선사南嶽懷讓.

 

 『마조어록』에는 “너희들은 각자 자심自心이 부처임을 믿어라.”(주8) “자성自性이 본래 구족되어 있어 다만 선악의 일 가운데 걸림이 없다면 수도인修道人이라 칭하겠다. 선함을 취하고 악함을 버리며, 공空을 관하여 입정入定한다면 바로 조작造作에 속한다.”(주9)라고 하는 ‘불성’과 관련된 언급이 많이 보인다. 이 역시 『단경』에서 ‘자성’, ‘자심’으로서 불성을 해석하는 것과 동일한 사상적 틀이라고 할 수 있다.

 

마조의 가장 유명한 문구는 바로 ‘도불용수’와 ‘평상심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마조어록』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도는 닦을 필요가 없으니[道不用修] 다만 오염되지 말라. 어떻게 오염되는가? 다만 생사生死의 마음이 있어 조작하고 좇아가면 모두 오염이다. 만약 바로 그 도를 알고자 하면 평상심平常心이 도이다. 무엇을 평상심이라 이르는가? 조작造作, 시비是非, 취사取捨, 단상斷常, 범성凡聖이 없음[無]이다. 경전에 이르기를, ‘범부의 행함도 아니며, 성현의 행함도 아님이 보살행이다.’(주10)라고 하였다. 다만 지금 행주좌와行住坐臥하고 근기에 따르고 사물을 접함이 모두 도이다.”(주11) 

 

사진 3. 마경대磨鏡臺. 호남성湖南城 형산衡山의 옛 전법원傳法院 자리에 소재하는 바위. 남악회양 선사가 벽돌을 갈았다는 전설이 전하는 바위로 조원祖源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러한 사상도 『단경』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단경』에서는 ‘돈오’의 입장에서 ‘무수무증’을 제창하고 있음을 언급했는데, 마조는 직접적으로 ‘도불용수’를 제창하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그 근거를 바로 ‘평상심’으로 설정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평상심은 결코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이른바 ‘조작·시비·취사·단상·범성’이 없는 상태가 ‘평상심’이라는 것이다.

 

평상심이 곧 도다

 

어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만약 ‘조작·시비·취사’를 없앤다면 그는 결코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차들이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횡단보도의 신호등 앞에서 초록과 빨간 등을 ‘취사’하지 않고 건넌다면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따라서 마조가 설한 ‘평상심’은 결코 일반적인 ‘마음’이 아닌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결국 능소能所가 완전히 희석된, 즉 나와 우주법계가 완전히 ‘불이不二’의 상태에 들어 이극理極에서 극조極照하는 ‘돈오’를 이루어야만 가능하다고 하겠다. 또한 ‘돈오’가 이루어진다면 바로 ‘돈수頓修’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비로소 ‘도불용수’가 가능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마조어록』의 다음과 같은 문답에서도 나타난다.

 

 

사진 4. 마조선사가 선풍을 드날린 강서성 난창의 우민사佑民寺. 옛 문헌에는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승려가 물었다. “어떠한 것이 수도修道입니까?” 답하였다. “‘도’는 ‘닦음[修]’에 속하지 않는다. 만약 ‘닦음’을 통하여 얻는다면 그 ‘닦음’으로 이룬 것은 또한 무너지기 때문에 바로 성문聲聞과 같을 것이다. 만약 ‘불수不修’라면 바로 범부와 같을 것이다. … 만약 상근중생上根衆生이라면 홀연히 선지식의 지시指示를 만나 다시 계급階級과 지위地位를 거치지 않고서 본성本性을 돈오頓悟할 것이다.”(주12)

 

이로부터  명확하게 ‘도불용수’와 ‘평상심시도’는 ‘돈오’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사실상 궁극적인 깨달음에 있어서는 ‘돈오’만이 가능하다는 입장은 이미 『단경』에서 제시되었는데, ‘돈오’의 속성은 마조의 말과 같이 ‘계급과 지위를 거치지 않음’이다. 종보본 『단경』에서 “자성을 스스로 깨달아[自悟] 돈오돈수頓悟頓修하는 것이지 점차漸次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법을 세우지 않는다. 제법은 적멸한 것이니 어디에 차제次第가 있단 말인가?”(주13)라고 설하는 바와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돈오’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학인들에게 선리禪理를 ‘돈오’하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마조는 이러한 문제를 ‘선지식의 지시’로 해결하고자 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일반적인 교학敎學에서 시설하는 이른바 성문聲聞의 ‘사쌍팔배四雙八輩’, ‘연각緣覺’, ‘보살십지菩薩十地’ 등의 과정을 다만 ‘선지식의 지시’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지식의 지시’를 바로 ‘제접提接’이라고 칭하고, 이후 조사선에서는 상당히 다양한 ‘제접법’이 출현하게 된다. 또한 ‘제접’은 기본적으로 대면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다양한 상황의 ‘선문답’이 출현하고, 후대에 그를 정리하여 ‘공안公案’으로 제시하게 된다.

 

마음에 ‘즉’해야 부처에 다가갈 수 있다

 

마조의 또 다른 유명한 구절은 바로 ‘즉심즉불卽心卽佛’이다. 『마조어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승려가 물었다. “화상은 어째서 ‘즉심즉불’을 설했습니까?”라고 묻자 마조가 “아이의 울음을 그치기 위함이다.”라고 답하였다. “울음이 그치고 나면 어떻게 하시렵니까?”라고 묻자 마조가 “비심비불非心非佛이다.”라고 답하였다. “이 두 종류를 제외한 사람이 오면 어떻게 가리켜 보이겠습니까?”라고 말하자 “그에게 물物이 아니라고 말하겠다.”라고 답하였다.”(주14)

 

이로부터 마조는 ‘즉심즉불’을 상당히 강조하여 설했으며,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비심비불’이라고도 설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즉심즉불’과 ‘비심비불’은 바로 ‘표전表詮’과 ‘차전遮詮’, 즉 긍정적인 표현과 부정적인 표현의 방법일 뿐으로 그 함의는 동일하다. ‘즉심즉불’은 바로 마음에 ‘즉’했을 때 불佛에 ‘즉’할 수 있다는 것으로 실제로 반야사상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라고 하겠다. 반야법에서는 이른바 ‘중생즉불衆生卽佛’,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라고 하는 진리의 세계와 세속의 세계는 철저하게 ‘즉卽’의 관계임을 논증하고 있다.

 

특히 반야법에서는 진리의 세계가 가치를 지닌다면 또한 세속의 세계도 그와 동등한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호상관대互相觀待’를 제창한다. 도생道生은 불성佛性과 반야의 문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돈오’를 제창하였으며, 『단경』에서도 불성과 반야의 입장에서 ‘돈오돈수’를 제창하였고, 비록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사상적으로는 이미 ‘즉심즉불’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마조의 ‘즉심즉불’ 역시 ‘돈오’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고, 『단경』의 선사상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마조의 사법제자는 『경덕전등록』 권6에 실린 ‘마조전’에 따르면, “입실제자가 139인으로 각 한 지방의 종주宗主가 되었다.”(주15)라고 한다. 이와 같이 수많은 마조의 사법제자들이 강서江西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이를 홍주종洪州宗이라고 칭한다.

 

마조의 선사상은 선종사상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조의 선은 『단경』을 계승하여 보다 직접적인 언구로 설시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사실상 마조의 선사상은 상당히 광범위하고 또한 학인들을 제접하면서 다양한 기연어구가 존재 하지만 여기에서는 가장 핵심이 되는 사상만을 살펴보았다.

 

<각주>

(주1)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5(大正藏51, 235a), “第三十三祖慧能大師法嗣四十三人.”

(주2)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3b), “大師遂喚門人 法海、志誠、法達、智常、志通、志徹、志道、法珍、法如、神會. 大師言: 汝等拾弟子近前, 汝等不同餘人. 吾滅度後, 汝各爲一方頭.”,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60a), “師一日喚門人 法海、志誠、法達、神會、智常、智通、志徹、志道、法珍、法如等, 曰: 汝等不同餘人, 吾滅度後, 各爲一方師.”

(주3) [淸]董誥·阮元·徐松等編, 『全唐文』 卷731, 賈餗撰, 『楊州華林寺大悲禪師碑銘』, “曹溪旣沒, 其嗣法者神會,懷讓又析爲二宗.”

(주4) [宋]志磐撰, 『佛祖統紀』 卷29(大正藏49, 292b), “六祖之後爲二派. 一曰靑原思. 思傳石頭遷, 其下爲曹洞、雲門、法眼. 一曰南岳讓. 讓傳馬祖, 其下爲臨濟、潙仰. 是爲五家宗派, 道一而已.”

(주5) [宋]贊寧, 『宋高僧傳』卷9, 「南嶽石頭山希遷傳」(大正藏50, 76a), “江西主大寂, 湖南主石頭, 往來憧憧不見二大士爲無知矣.”

(주6) [宋]頥藏主集, 『古尊宿語錄』卷1, 「大鑑下一世」(卍續藏68, 3a-b), “汝學坐禪, 爲學坐佛; 若學坐禪, 禪非坐臥; 若學坐佛, 佛非定相. 於無住法, 不應取捨. 汝若坐佛, 卽是殺佛; 若執坐相, 非達其理.” 이 구절은 『景德傳燈錄』卷5, 「南嶽懷讓禪師傳」(大正藏48, 240c)과 『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卍續藏69, 2a)에도 실려 있다.

(주7)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8b), “若坐不動是, 維摩詰不合呵舍利弗宴坐林中.”

(주8) 『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卍續藏69, 2b), “汝等諸人, 各信自心是佛.”

(주9) 앞의 책, “自性本來具足, 但於善惡事中不滯, 喚作脩道人. 取善捨惡, 觀空入定, 卽屬造作.”

(주10) [姚秦] 鳩摩羅什譯,  『維摩詰所說經』卷中(大正藏14, 545b)

(주11) 『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卍續藏69, 3a), “道不用修, 但莫汚染. 何爲汚染? 但有生死心, 造作趨向, 皆是汚染. 若欲直會其道, 平常心是道. 何謂平常心? 無造作, 無是非, 無取舍, 無斷常, 無凡無聖. 經云: 非凡夫行, 非聖賢行, 是菩薩行. 只如今行住坐臥, 應機接物, 盡是道.”

(주12) 『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卍續藏69, 2c), “僧問: 如何是脩道? 曰: 道不屬脩. 若言脩得, 脩成還壞, 卽同聲聞. 若言不脩, 卽同凡夫. …… 若是上根衆生, 忽爾遇善知識指示, 言下領會, 更不歷於階級地位, 頓悟本性.”

(주13) 宗寶本, 『壇經』(T48, 358c), “自性自悟, 頓悟頓修, 亦無漸次. 所以不立一切法. 諸法寂滅, 有何次第?”

(주14) 『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卍續藏69, 4c), “僧問: 和尙爲甚麽說卽心卽佛? 祖曰: 爲止小兒啼. 曰: 啼止時如何? 師曰: 非心非佛. 曰: 除此二種人來, 如何指示? 祖曰: 向伊道, 不是物.”

(주15) [宋]道原纂, 『景德傳燈錄』卷6(大正藏51, 246b), “入室弟子一百三十九人, 各爲一方宗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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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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