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 이야기]
험준한 기봉과 미끄러운 석두의 길[石頭路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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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2 년 5 월 [통권 제109호] / / 작성일22-05-04 11:18 / 조회8,211회 / 댓글0건본문
중국선 이야기 17 | 석두희천石頭希遷
육조혜능의 문하에서 남악회양南嶽懷讓과 마조도일馬祖道一이 강서江西지방에서 크게 선법을 일으키는 시기에 호남湖南에서는 청원행사靑原行思와 석두희천石頭希遷이 크게 행화를 이루었다. 이를 남악계南嶽系와 청원계靑原系라고 하며, 이로부터 오가五家의 조사선祖師禪이 형성되었다.
청원행사의 불락계급不落階級
청원행사(?∼740)는 속성이 유劉이고 길주吉州 여릉廬陵(현 江西省 吉安市) 출신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이후 조계의 육조혜능을 참알하였는데, 『경덕전등록』에 실린 그의 전기에는 혜능과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어디에 힘을 써야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라고 묻자, 조사는 “그대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는가?”라고 물었다. 행사는 “성제聖諦 또한 행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조사가 “어떠한 계급에 떨어졌는가?”라고 묻자, “성제마저 행하지 않았는데, 어떤 계급이 있겠습니까?”라고 답하였다.(주1)
여기에서 ‘계급’은 바로 점수漸修를 의미하는 것이며, ‘성제’는 또한 교학의 차제次第에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추구하는 사성제四聖諦를 가리킨다. 따라서 ‘불락계급不落階級’을 물은 것은 바로 어떻게 해야 ‘돈오’할 수 있는가를 물은 것이고, ‘성제’조차 닦지 않았다는 의미는 자신이 이미 ‘돈법頓法’에 들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말이다. 당연히 이러한 문답은 육조의 마음에 흡족하였을 것이고, 그에 따라 혜능 문하의 상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혜능으로부터 법을 얻은 후에 강서에 이르러 홍법하였으며, 길주 청원산靑原山 정거사靜居寺에 주석하였기 때문에 총림에서는 그를 ‘청원행사靑原行思’라고 불렀다.
행사도 또한 돈법의 제접법을 사용하여 학인들을 접인接引하고 있다. 그 가운데 유명한 문답은 어떤 승려가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라고 묻자 행사는 도리어 “여릉의 쌀값은 얼마인가?”2)라고 물었다. 이는 유명한 ‘여릉의 쌀값’이라는 공안公案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결코 중요하지 않지만, 결국은 학인에게 ‘돈오’에 이를 것을 강조하는 대화라고 하겠다. 행사의 행화는 비록 “당시 행사의 문하에는 학인들이 무리를 이루었다.”(주3)라고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제자는 희천希遷 한 사람뿐이며, 그에 따라 행사는 “여러 제자들이 비록 많다고 하지만, 기린 하나면 족하다.”(주4)라고 하였다.
석두희천의 석두종石頭宗
석두희천石頭希遷(700∼790)은 속성이 진陳이고 단주端州 고요高要(현 廣東省 高要縣) 출신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조계에 이르러 혜능 문하에서 사미沙彌가 되었으며, 혜능이 입적하면서 행사를 찾아가라고 하여 강서로 가서 행사를 찾았다. 그와 행사가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행사가 “너는 어디서 왔는가?”라고 묻자, 희천은 “조계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행사가 “무엇을 얻으러 왔는가?”라고 하자, 희천은 “조계에 이르기 전에도, 또한 잃은 것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행사가 다시 “그렇다면 조계에 무엇 하러 갔었는가?”라고 묻자 희천은 “만약 조계에 이르지 않았다면, 어찌 잃지 않음을 알았겠습니까?”라고 답하였다.”(주5)
희천이 말하는 ‘잃지 않음[不失]’이라는 것은 바로 『단경』에서 강조하는 모든 사람이 가진 자성自性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상 『단경』의 사상은 ‘돈오’를 통하여 이른바 ‘본래현성本來現成’, ‘당하즉시當下卽是’로 귀결되는데, 여기에서 희천의 답은 이를 함의含意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희천은 이미 혜능 문하에서 이른바 ‘선지식의 지시指示’를 통하여 어느 정도 돈오에 접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희천은 행사 문하에서 수법受法 이후, 천보天寶(742∼755)년간 초에 호남湖南 형산衡山의 남사南寺에서 홍법弘法의 요청을 받았다. 이에 희천은 사원 동쪽의 큰 바위 위에 암자를 짓고 머물렀기 때문에 그를 ‘석두화상石頭和尙’이라 칭했으며, 그의 문하를 석두종石頭宗이라고 칭한다.
무정유성無情有性 불성론
석두희천의 선풍禪風은 마조도일馬祖道一이 “석두의 길은 미끄럽다[石頭路滑].”(주6)라고 칭하는 것과 같이 그 기봉機鋒이 험준하여 일반인이 응대하기 어려웠다. 예를 들면, 어떤 한 승려가 희천을 찾아왔다. 희천은 “어디에서 오시는가?”라고 물었다. 승려는 “강서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하였다. 다시 “마조대사를 보았는가?”라고 묻자, 승려는 “보았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희천은 바로 땅 위의 땔감나무 한 다발을 가리키며 “마조대사가 어찌 이것과 같은가?”(주7)라고 하자, 승려는 대꾸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대화에서 중요한 사상적 변곡점이 보인다. 그것은 ‘무정유성無情有性’의 불성론적 사유가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데 『경덕전등록』 권14에 실린 전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보인다.
나의 법문은 선대로부터 부처님께서 전해 주신 것이니, 선정禪定과 정진精進을 논할 것 없이 불佛의 지견知見을 통달하면 즉심즉불卽心卽佛이다. 심心·불佛·중생衆生·보리菩提·번뇌煩惱는 이름은 다르나 체體는 하나일 뿐이다.(주8)
이로부터 희천 역시 마조와 같이 ‘즉심즉불’을 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승려가 희천에게 “무엇이 선禪입니까?”라고 묻자 희천은 “벽돌이다.”라고 답하였고, 다시 “무엇이 도입니까?”라고 묻자, “나무토막이다.”라고 답하였다.(주9) 여기에는 중요한 사상적 충돌이 보이는데, 바로 ‘즉심즉불’과 ‘무정유성’의 대립이다.
‘심’에 ‘즉’해야만 ‘불’에 ‘즉’할 수 있다는 점은 명확하게 『단경』으로부터 연원한 것이지만, ‘벽돌’, ‘나무토막’과 같은 무정물로 불성을 삼는 것은 동산법문 이래 『단경』에서도 철저하게 비판했던 점이다. 희천의 선사상에는 ‘유정유성有情有性’, 즉 ‘즉심즉불’과 무정의 불성론이 혼재하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과도기적인 사상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는 점이다. 사실상 이는 조사선의 불성론에 있어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이에 대해서는 다음호에 종합적으로 논할 예정이다.
그런데 희천의 이러한 사상적 태도는 바로 당시 불교의 다양한 교의를 조사선에서 통합하고자 하는 의도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하겠다. 희천의 선사상을 집약하고 있는 것은 바로 「참동계參同契」인데, 이는 220자字의 짧은 게송이며, 『경덕전등록』 권30에 「남악석두화상참동계南嶽石頭和尙參同契」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는 희천이 승조僧肇의 『조론肇論』을 읽고 감탄하여 “만물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자, 그가 오직 성인聖人이구나!”라고 하고, “성인은 자기가 없고 자기가 아닌 바가 없으며, 법신法身은 상象이 없는데 누가 자타自他를 말하겠는가?”라고 하며 「참동계」를 찬술했다고 한다.(주10) 이로부터 희천이 『조론』에 보이는 ‘촉사이진觸事而眞’, ‘물아동근物我同根’,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아위일物我爲一’ 등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무정유성’을 제창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참동계」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축토竺土의 대선大仙은 마음을 동서東西로 은밀히 서로 부촉하셨다. 사람의 근기는 예리하거나 아둔함이 있지만, 도에는 남북이 없다. 영원靈源은 밝고 밝아서 깨끗하며, 지파枝派는 어둡게 흘러 들어간다. 사事에 집착하면 원래 어리석음이요, 리理에 계합하여도 깨달음이 아니다.(주11)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대선’, 즉 석존釋尊이 전한 것은 바로 ‘심법心法’을 전한 것이고, 이는 바로 ‘영원’의 본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선종의 남북 등의 분기와 심지어 화엄학의 이사무애理事無碍를 수용하려는 의중도 보인다고 하겠다.
회호回互·불회호不回互, 촉목회도觸目會道의 제창
이러한 「참동계」의 전체적인 문구를 분석하자면 다양한 선사상을 도출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바로 다음과 같은 문구라고 하겠다.
문문門門의 일체 경계가 회호回互·불회호不回互한다. ‘회호’하면 상섭相涉하고, ‘불회호’하면 위位에 의지하여 머문다.(주12)
눈에 부딪쳐도 도를 깨닫지 못한다면, 발을 움직인들 어찌 길을 알겠는가?(주13)
이로부터 희천은 ‘회호’와 ‘불회호’를 제창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촉목회도觸目會道’를 제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회호와 불회호는 후대 선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특히 조동종曹洞宗의 정편오위正偏五位에서 이를 원용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참동계」는 “나아가는 걸음에 멀고 가까운 것이 없지만, 미혹하면 산과 강처럼 가로막히는 완고頑固에 빠진다. 삼가 참현인參玄人들에게 고하노니,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주14)라고 권계勸誡하면서 마치고 있다.
희천은 정원貞元 6년(790) 경오庚午 12월 25일에 91세, 법랍은 63세로 입적하였으며, 문인들이 동령東嶺에다 탑을 세워 탑호를 견상見相이라 하였고, 후에 무제대사無際大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청원행사-석두희천의 청원계에서 조사선의 5가 가운데 조동·운문·법안의 3종이 출현하였으며, 그 가운데 조동종이 가장 오래 존속하였다
<각주>
(주1)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5(大正藏51, 240a), “問曰: 當何所務, 卽不落階級? 祖曰: 汝曾作什麽? 師曰: 聖諦亦不爲. 祖曰: 落何階級? 曰: 聖諦尙不爲, 何階級之有?”
(주2) 앞의 책(大正藏51, 240c), “廬陵米作麽價?”
(주3) [宋]贊寧撰, 『宋高僧傳』 卷9(大正藏50, 764a), “當時思公之門, 學者麏至.”
(주4)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5(大正藏51, 240a), “衆角雖多, 一麟足矣.”
(주5)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5(大正藏51, 240b), “師問曰: 子何方而來? 遷曰: 曹溪. 師曰: 將得什麽來? 曰: 未到曹溪亦不失. 師曰: 恁麽, 用去曹溪作什麽? 曰: 若不到曹溪, 爭知不失?”
(주6)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6(大正藏51, 246b).
(주7) 앞의 책, 卷14(大正藏51, 309b), “師問新到僧: 從什麽處來? 僧曰: 江西來. 師曰: 見馬大師否? 僧曰: 見. 師乃指一橛柴曰: 馬師何似遮箇?”
(주8)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14(大正藏51, 309b), “吾之法門先佛傳授, 不論禪定精進, 達佛之知見卽心卽佛. 心佛衆生菩提煩惱名異體一.”
(주9) 앞의 책(大正藏51, 309c), “問: 如何是禪? 師曰: 碌塼. 又問: 如何是道? 師曰: 木頭.”
(주10) [宋]普濟集, 『五燈會元』 卷5(卍續藏83, 454c), “師因看肇論, 至會萬物爲己者其唯聖人乎. 乃拊几 曰: 聖人無己, 靡所不己. 法身無象, 誰云自他? …… 遂著參同契.”
(주11) [宋]道原纂, 『景德傳燈錄』 卷30(大正藏51, 459b), “竺土大仙心, 東西密相付. 人根有利鈍, 道無南北祖. 靈源明皎潔, 枝派暗流注. 執事元是迷, 契理亦非悟.”
(주12) 앞의 책, “門門一切境, 迴互不迴互. 迴而更相涉, 不爾依位住.”
(주13) 앞의 책, “觸目不會道, 運足焉知路.”
(주14) 앞의 책, “進步非近遠, 迷隔山河固. 謹白參玄人, 光陰莫虛度.”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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