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음미하는 부처님 말씀]
걸식乞食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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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학 / 2018 년 9 월 [통권 제6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916회 / 댓글0건본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대비구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계셨다. 공양 때가 되자 세존께서는 가사를 갖추신 다음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시어 밥을 빌러 다니셨다. 한 집 한 집 차례로. (밥 빌기를 마치시고는) 본래 계시던 자리로 돌아오셨다. 공양을 마치신 다음,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시고, 자리를 펴시어 앉으셨다.”
『금강경』의 「법회인유분」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치는 데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조건 즉 육성취(六成就:信·聞·時·主·處·衆)를 밝힌 대목입니다.
위 경전 구절에서 굵은 글자로 나타낸 부분은 육성취와 관련 없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일상입니다. 대소변을 보고 잠자는 행위만 기록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초등학생들에게 일기쓰기를 가르칠 때 선생님들이 ‘제발 날마다 똑같이 반복하는 일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좋은 일도 없는 것만은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벽암록에 보이는 운문 스님의 말입니다. 영가 스님이 「증도가」에서 노래한 ‘한도인閑道人’의 경지도 부럽습니다. 하지만 사위성에서 아침을 맞이하여 ‘걸식’으로 하루 끼니를 해결하고는 선정 삼매에 든 부처님의 삶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부처님은 문 앞으로 바람만 지나다니는 곳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늘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였습니다.
저는 『금강경』의 유명한 ‘사구게’보다 「법회인유분」의 심심한 문장을 더 좋아합니다. 부처님의 하루가 말갛게 보입니다. 이보다 투명한 삶은 없을 겁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후 입멸하시기까지 49년 동안의 하루하루를 여기에 포개 놓아도 어디 한 곳 삐져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장엄으로 표현한 부처님의 모습보다 더 거룩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처님의 단순한 삶에서도 단 한 가지 문제에서 만큼은 자유롭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먹는 일’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한때 ‘먹는 문제’에 목숨을 걸다시피 매달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뼈만 남은 부처님 ‘고행상’은 이 때의 모습입니다. 그때 부처님의 고행 주제는 ‘먹는 일로부터의 자유’였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고행의 결박을 풀고 수자타로부터 ‘유미죽’을 받았을 때, 함께 고행했던 다섯 비구가 부처님을 비난한 목소리에 그때의 정황이 생생히 드러납니다. “붓다가 예전에는 하루에 참깨 한 알, 곡식 한 톨만 먹었는데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이제 속세에서 신身 · 구口 · 의意 삼행을 제어하지 않는데 어떻게 해탈을 얻을 수 있겠는가?”(『불교음식학―음식과 욕망』, 89쪽, 불광출판사)
부처님은 하루 ‘참깨 한 알’의 극단적 고행에서 벗어나 ‘유미죽’을 드셨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중도’를 선택한 것입니다. 해탈의 수단이어야 할 ‘고행’이 목적으로 뒤집힌 상황에서 빠져 나온 것입니다. 유미죽은 극한적 절식에서 비롯되는 육체적 속박으로부터 풀려나오게 하는 열쇠였습니다. 자유로워진 육체의 힘은 선정禪定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해탈.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렇게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말할 때, 그냥 ‘힘들다’고 하지 않고 굳이 ‘먹고 살기 힘들다’다고들 합니다. 비굴, 수치, 모욕 따위를 감수해야할 경우는 대개 ‘먹고 사는’ 문제와 맞닿은 상황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 의식주가 기본이지만, 음식의 곤궁이 가장 절박한 문제라는 얘기이겠지요. 정치 집단이나 재벌가의 내분도 근원을 찾아가면 결국 밥그릇이 나타납니다. ‘밥그릇’ 지키는 데 집요하기로는, 충분히 먹고 살만한 사람이라 하여 다르지 않습니다..
빈부 양극화 ― 마음 가난의 균질화
소비자본주의는 편의와 쾌락을 판매할 때 ‘공포’를 덤으로 줍니다. 한국인이 보험료로 내는 돈은 1인당 연간 340만원이라 합니다.(2015년 기준, 한겨레신문 2016.07.20) 집값 떨어질까 봐 공포에 떠는 건 집주인만이 아닙니다. 은행과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과 정부는 공포산업의 CEO입니다. 공포산업의 소비자인 우리는, 부자든 가난뱅이든 아등바등과 전전긍긍을 지불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공포는 끊임없이 생산되는 성공신화에 가려져 유령처럼 떠돕니다. 유령은 실체가 없어서 더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 공포는 빈자와 부자 모두에게 공평합니다. 부자들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편안하게 앓는 소리를 합니다. ‘가난의 자연화’라고 이름 붙일 만한 현상입니다. ‘경제적 양극화’가 엄연한 세상에서 이루어진 ‘가난의 (정신적) 균질화’입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각박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경제적 문제가 ‘먹고 살기’로 치환될 때, 가난에 대한 공포는 과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을 냉정하게―거의 동물과 똑같이―바라보는 진화생물학자의 시선을 따르자면, 200만 년 전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던 인류의 조상 때부터 이어온 본능적 반응일 테니까요. 굶주림에 특히 약한 인간의 생물적 약점도 한 몫 거듭니다. ‘사흘 굶어 담 안 넘을 놈 없고’, ‘열흘 굶어 군자 없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어떤 의미로든 먹고 사는 일은 어렵습니다. 삶의 비루함과 거룩함도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유미죽’이 부처님이 이루신 해탈의 선결 조건이었던 것처럼, 먹는 일로부터 자유롭지 않는 한 해탈은 무망합니다.
부처님은 ‘먹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어먹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는 불교의 출가 사문뿐 아니라 걸식하는 바라문처럼 떠도는 모든 수행자들에게 기꺼이 음식을 보시하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었으므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부처님의 교단 구성원들이 스스로 음식에 대한 욕망을 통제하는 일이었습니다. 앞서 살폈듯이 음식에 대한 욕망의 뿌리는 여간 질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세워진 대원칙은 하루 한 번 오전에 걸식하여 먹는 것입니다.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어서는 안 됩니다. 먹고 남은 음식을 보관해서도 안 됩니다. 주인 없는 나무의 열매라도 직접 따 먹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음식의 맛을 즐기고 가득 배를 불리는 것을 경계하는 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작물을 길러 먹어서 안 되는 등의 규정으로 일체 생산 활동을 금지했습니다. 무위도식을 장려한 것이 아니라 소유에서 오는 탐착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 것입니다. 출가 사문이 생산 활동을 한다는 것은 재가 신도와 경쟁 관계에 놓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조계종단의 계율은 『사분율』에 근거하며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입니다. 인간 욕망에 대한 해부학이라 할 정도로 신구의 삼업에 대한 지독한 천착의 결과라 할 것입니다. 이 가운데 음식에 관한 것은 비교적 가벼운 계율로 주로 바일제법과 중학법 등에 해당합니다만 비구 250계 가운데 42개 항목이나 됩니다. 이렇게 음식 관련 계율 조문이 많은 까닭은 ‘입을 벌리고 먹지 마라’, ‘핥아 먹지 마라’와 같이, 사소한 행위에서조차 위의를 세워 음식에 대한 욕망을 통제하려 한 데 있을 것입니다.
계율 - 욕망 해부학
빌어먹든 벌어먹든, 잘 먹든 못 먹든 어렵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목숨이 그로 말미암기 때문이겠지요. 부처님 재세시 인도의 풍토에서 제정된 계율을 지금 여기서 그대로 따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단적으로 걸식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정신의 구현은 가능할 것입니다. 걸사乞士의 정신에 투철한 수행자라면 누가 뭐래도 눈 깜짝 않고 당당히 얻어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걸식의 품격’입니다.
출가 수행자가 생산 활동을 하거나 쌓아 두기를 일삼으면, 재가 신도의 보시는 바라밀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출가 수행자가 스스로를 복전福田으로 일컫는다면 그것 또한 비루한 일이 될 것입니다.
여기 거룩한 행걸行乞의 풍광이 펼쳐집니다. 가섭 존자가 유마 거사에게 문병을 가라는 부처님의 명을 받고, 자신은 그러할 수 없음을 사뢴 다음, 유마힐로부터 들은 바를 전하는 장면입니다.
옛적에 가난한 마을에서 걸식할 때 유마힐이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대가섭이여,
그대는 자비로우나 널리 펴지는 못하는구려. 어찌 부자 마을을 버리고 가난한 마을인지요. 마땅히 평등하게 차례대로 걸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먹기 위하여 걸식하지 않는 까닭에 걸식해야 할 것이며, 마땅히 오온으로 뭉쳐진 육체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먹고, 마땅히 받지 않기 위하여 받아야 합니다. 마을이 비어 있다는 생각으로 마을에 들어갈 것인 즉, 보이는 바 색은 눈먼 이와 같이 하고, 들리는 바 소리는 메아리로 여기며, 맡는 바 냄새는 바람으로 알고, 먹는 바 음식 맛을 분별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느낌을 받아들이되 지혜를 증득한 바와 같이 하여야 할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환상과 같아서 자성도 없고 타성도 없으며,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도 없고 지금 곧 멸하는 것도 없습니다.
가섭이여,
능히 여덟 가지 잘못을 버리지 않고 여덟 가지 선정에 들어 탐착심을 없애고, 그릇된 생각으로 정법에 들며, 한번 먹음으로써 일체에 베풀고, 제불과 모든 현성을 공양한 연후에 먹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먹는 이는 번뇌가 없으나 번뇌를 여읜 것도 아니고, 선정에 든 것도 아니고 선정을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세간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열반에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음식을 보시하는 자에게는 큰 복도 작은 복도 돌아갈 것이 없고, 이익을 얻는 일도 손해를 보는 일도 없습니다. 그리 하여야만 바르게 불도에 들어 소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섭이여,
만약 이와 같이 먹는다면 사람들의 베풂을 헛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유마경 · 제자품』에서 -
베푸는 이도 받는 이도 주고받음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밥이 평등하면 존재가 평등하고, 존재가 평등하면 밥 역시 그러합니다(『유마경』).” 이것이 진정한 ‘걸식의 품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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