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
세월의 변화 속에 상좌와 함께한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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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3 년 5 월 [통권 제121호] / / 작성일23-05-05 14:18 / 조회2,910회 / 댓글0건본문
올 3월은 유난히 봄날 같지 않은 봄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예전에는 4월 중순을 전후로 하여 일주일 간의 시차를 두고 진해군항벚꽃축제, 대전벚꽃축제, 한강 윤중로 여의도벚꽃축제가 열려서 모든 국민이 벚꽃축제를 즐겼는데, 올해는 4월이 오기도 전에 벚꽃이 피나 싶더니 며칠 사이로 꽃잎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해인사 골짜기에 살다 보니 계절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다가 한 10여 년 전부터 해인사 홍류동 벚꽃이 이전과는 달리 10~15일 빨리 피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요사이는 20일 이상 빨리 피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름철 태풍도 그 위력이 줄어들고, 홍류동계곡 물의 양도 줄어드는 게 눈에 띄기 시작하였습니다. 20여 년 전에는 태풍이 불고 장마가 졌다 하면 홍류동계곡의 물이 찻길 위로 넘쳐 올라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비가 대차게 와도 물이 넘치기는커녕 오히려 계곡 높이의 2/3도 넘기지 못하는 걸 보면서 머잖아 해인사도 물이 부족한 때가 오겠구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즈음 가뭄이 심해지다 보니 올겨울에는 해인사 골짜기에 흐르는 물이 점차 줄어 암자는 물론이고 해인사도 겨울나기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해인사 홍류동계곡이나 가야면 청량사 오르는 입구에 흐드러지게 피던 벚꽃마저도 개화기가 3월 말로 당겨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세월의 변화 속에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10년 만에 열린다는 뉴스가 연일 흥미롭게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순천만국가정원은 3월 31일까지 공식적으론 휴장이었지만 며칠간 무료관광의 기간을 설정해 많은 사람이 다녀갔고, 4월 1일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회되고 일주일이 못 되어 45만여 명이 다녀갔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10년 만에 열린다”라는 제목을 보니 마음이 작동하여 상좌 일봉, 일거, 일엄스님과 함께 2박 3일 일정으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이웃의 ‘보령해저터널’과 안면도 등을 둘러보기로 하고 봄나들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4월 10일, 순천만천문대에서 뜻밖의 선물을 얻다
4월 10일, 8시 30분에 산청 겁외사를 떠나 지리산을 달려 하동 삼성궁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보니, 그렇게 요란스럽던 벚꽃은 이내 다 져버리고 가지마다 새잎이 돋아나며 푸르름을 다투기 시작하는 모습이 무척 싱그러웠습니다. 10시에 광양 구봉산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저 멀리 동쪽에 제일 높게 솟아 있는 봉우리가 지리산 제일봉 천왕봉이고, 희미하게 보이는 저 다리가 남해대교이고, 그 옆이 이순신장군이 돌아가신 노량리 해변이고, 지금 우리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저 다리가 바로 유명한 이순신대교이고 그 너머가 여수 공업단지입니다.”라는 일엄스님의 안내가 이어졌습니다. 구봉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여수를 지날 일이 있을 때마다 일부러 하늘에 매달려 있는 이순신대교를 지나며 감탄하고 신기하게 여겼는데 저렇게 나약해 보일 수가 있나 하는 아쉬움이 일었습니다. 그에 반해 광양만의 광대한 제철공업단지와 여수지구의 공업단지는 지나온 조국의 발전상을 새삼 느끼게 하였습니다.
11시 반에 순천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13시쯤 순천만국가정원박람회장을 찾아 나섰습니다. 나중에 보니 길을 잘못 들어 넓은 갯벌을 볼 수 있는 올리브카페에서 바닷물이 빠지며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씩을 했습니다. 14시에 순천만국가정원박람회장 동문으로 입장하는데, 소납은 경로와 4급 장애인으로 무료로 입장하고, 세 사람은각각 8천 원의 입장료를 냈습니다. “대한민국 생태도시 순천은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 습지의 항구적인 보전을 위해 정원을 조성하고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이후 순천만국가정원이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됨으로써 순천시는 정원문화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라는 안내문도 읽었습니다.
호수정원에서 유람선을 타려고 했는데, 유람선은 10명 정원으로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며 오늘은 예약이 끝났다고 하여 내일(11일) 9시 20분으로 예약을 하고 ‘꿈의 다리’를 건너서 서쪽 구역의 열대식물원 등을 관람하고 동문으로 되돌아오면서 튤립 등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주변을 보면서 흥겨워하는 시민들의 얼굴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오후 4시에 내일 오전 9시에 다시 오기로 하고 “오늘 오후는 순천만 습지 관람으로 마무리하자.”라고 의논하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순천만 습지에 도착하니 거기에도 관람객이 꽤 모여 있었고, 갈대밭 위로 길게 펼쳐진 나무데크길은 습지 관람에 안성맞춤으로 편리하였습니다. 마침 월요일이라 생태체험선은 쉰다고 하였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순천만 쉼터를 지나 ‘낮에는 새를 보고 밤에는 별을 보는’ 순천만천문대를 방문하여 뜻밖의 선물을 얻었습니다.
하나는 직경 40cm가 넘는 둥근 원 안에 밝은색과 어두운색으로 대지와 바다를 구분하고 곳곳의 바다와 산맥과 절벽의 이름을 빼곡히 적어놓은 월면도月面圖입니다. 또 하나는 2007년 1월 22일부터 발행된 우리나라 만원권 뒷면에 그려진 전천全天 천문도로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입니다. 천상天象 즉 천문 현상을 12분야分野로 나누어 차례로 늘어놓은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월면도를 손에 넣은 것도 반갑고 기쁜 일이었지만 만원권에 있는 약식 천문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천문도 인쇄물을 얻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이런 천문도를 볼 줄 모르는 무식함을 탄식할 뿐이었습니다.
4월 11일, 정채봉 작가를 만나고 보령으로 가다
4월 11일, 아침을 먹고 오늘의 계획에 따라 9시 20분까지 호수정원에 도착하여 왕복 40분이 소요되는 동천크루즈에 몸을 실었습니다. 10시 10분에 꿈의 다리를 건너서 꿈의 광장을 지나 정원역에 도착하여 스카이큐브 6인승에 소납과 일봉, 일거스님 셋이 타고, 일엄스님은 자가용으로 먼저 순천만 생태체험선 선착장으로 출발하여 거기서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순천만까지 편도 요금은 6천 원으로 막상 출발하고 보니 스카이큐브는 선착장까지 가는 게 아니라 순천문학관까지만 운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천문학관은 순천 출신 문학인 정채봉, 김승옥 작가의 생애와 문학정신을 기리고 순천시민을 위한 문화생활 공간으로 순천만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 초가 건물입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정채봉관, 김승옥관에서는 작가의 저서, 소장 도서, 영상자료 등을 보고, 다목적관에서는 전시된 사진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정채봉 작가는 성철 큰스님이 198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6대 종정에 취임하고 난 2년 뒤인 1983년에 월간 샘터의 편집장으로 있으면서 법정스님과의 인연으로 성철 종정 예하를 인터뷰하러 백련암을 다녀갈 때부터 인연이 생긴 분이었습니다. 동화작가로서 평생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고 맑게 살았던 정 작가는 간암으로 투병하다가 2001년 1월 9일, 동화처럼 눈 내리는 날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22년이 지난 오늘, 순천만 습지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사진으로 얼굴을 마주 대하니 순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회가 밀려왔습니다. 성철 종정 예하와 법정스님 그리고 정채봉 작가, 어느 회상에서 다시 만나 담소를 나누고 계시지나 않으시는지....
여기서 버스를 타고 10여 분 가다 내려서 몇 분 걷지 않아 일엄스님이 기다리는 선착장에 도착하여 11시 10분에 생태체험선에 탑승하여 왕복 30분 소요되는 바다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순천만 습지 탐방은 무성한 갈대숲과 수많은 철새의 낙원이 되는 10월 ~ 2월 사이의 탐방이 최고의 볼거리라고 합니다.
점심을 먹고 1시에 순천만에서 보령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오후 4시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령에서 안면도에 이르는 보령해저터널을 통과하는 흥분된 시간을 가졌습니다. 굴 입구에 들어서니 다니는 차가 없어서 신나게 달리며 굴속을 살펴봤습니다. 보령해저터널은 해수면으로부터는 80m 아래에 위치하여 국내 터널 가운데 가장 깊고, 총 길이 6,927m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터널입니다. 7~8년 전에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해저터널도 가 봤고, 가까이는 부산 가덕도 해저터널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들어온 바와는 달리 바닥이나 측면, 천정에 물 한 방울도 맺히지 않는 너무나 깨끗한 2차로의 고속도로라서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원산도를 지나 안면도 제일 끝 항구인 영목항을 지나 한참을 달리니 처음으로 꽃지해수욕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왔습니다. 좁은 길로 접어드니 순천에서는 지고 있던 벚꽃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벚꽃이 져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시무룩해 있던 일봉스님의 얼굴이 활짝 피며 “지리산과 안면도 사이에도 계절의 차이가 있구만요!” 하면서 희색이 만연하였습니다. 꽃지해변을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보령해저터널로 되돌아 나와 18시쯤 대천해수욕장 주변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데도 미세먼지는 가득하고, 날씨는 춥고 바람은 불고... 서해안 낙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겠다던 꿈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4월 12일, 대낭혜화상 무염국사를 만나다
4월 12일, 오전 8시부터 1시간 가까이 대천해수욕장 백사장을 걷기도 하고 쉬기도 하다가 의견을 모아 성주사지聖住寺址를 답사하기로 하였습니다.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성주산파의 중심 사찰이었던 성주사는 1960년 이곳에서 출토된 기와 조각에 의해 백제 제29대 법왕法王 때 창건된 오합사烏合寺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 폐허가 되었다가 통일신라 문성왕(재위 839~857) 때 당나라에서 귀국한 무염無染(800~888) 국사가 머무르면서 중창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문성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습니다.
무염국사는 821년 당나라로 가서 종남산 지상사至相寺의 화엄강석華嚴講席에 참여하였는데, 그때 이미 당나라에는 화엄학보다 선종이 크게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불광사佛光寺 여만如滿 선사를 찾아가 선법을 배우고, 마곡산麻谷山 보철寶徹 선사에게서 마조스님의 법맥을 이어받았습니다. 20여 년 동안 중국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보살행을 실천하여 ‘동방의 대보살’이라고도 불린 분입니다. 무염스님은 귀국하여 성주사를 성주산문의 본산으로 삼아 40여 년 동안 교화를 펼쳤습니다. 성주사가 번창하였을 때는 2천 5백 명 가량의 승려들이 살았고, 절에서 쌀 씻은 물이 성주천을 따라 십 리나 흘렀다고 합니다.
무염국사가 89세로 입적하자 진성왕은 최치원崔致遠에게 명하여 비문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대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大郎彗和尙白月葆光塔碑(국보 제8호)입니다. 최치원은 화려한 문장 솜씨로 5,120여 자에 이르는 긴 비문을 지었는데, 무염국사의 성장과 출가, 중국에 유학하여 공부하는 과정, 귀국하여 성주사를 일으키고 불법을 전하는 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최치원이 지은 사산비명四山碑銘 중 하나로도 유명한 이 비문은 신라의 골품骨品과 고어古語를 연구하는 자료로서도 귀중하다고 합니다. 특히 빗돌은 보령 남포면에서 나오는 오석烏石을 썼는데, 1천여 년의 풍상을 견디며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 뛰어난 품질을 입증하고도 남는 듯합니다. 그러나 성주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뒤 중건되지 못하고 폐사지가 되어 오늘날 절은 온데간데없고 5층 석탑과 3층 석탑 및 석조물만이 그 터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대낭혜화상 무염국사의 깨달음은 깊고도 깊어서 당나라의 여만선사는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지만 이와 같은 신라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뒷날 중국이 선풍禪風을 잃어버리는 날에는 중국 사람들이 신라로 가서 선법을 물어야 할 것이다.”라며 크게 칭찬했다고 하는데, 오늘날 다시 그 선풍이 일어나길 두 손 모아 빌었습니다.
12시에 점심공양을 하고 새만금 방조제의 웅장함을 감상하며 고군산군도(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를 둘러보았습니다. 각 섬이 육교로 연결되어 있는 장관을 보면서 여수와 고흥 사이의 다섯 개 섬을 두 개의 연륙교와 세 개의 연도교로 연결한 것도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백련암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오후 7시에 겁외사에 도착하여 3일간의 긴 여정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또 한 번의 봄날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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