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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상당법어(上堂法語)를 들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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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3 년 7 월 [통권 제3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8,07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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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월 중순경에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영자전에서 동지섣달 추운 겨울에 일주일 동안 삼천배 기도를 마친 후 삭발하게 되니 그날이 동짓달 보름이었습니다.

 

그 후 그믐에 난생처음 해인사 대웅전에서 결제 후 보름마다 있는 성철 큰스님 상당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암자의 행자 신분으로 큰 법당에 들어가니 산중 비구, 비구니 스님들과 신도님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에 우선 기가 질렸지만 겨우 말석의 행자 자리를 찾아 엎드렸습니다. 방장 큰스님을 법상에 모시는 장엄한 예불이 10여 분 계속되고 마침내 큰스님께서 법상에 좌정하시고 예를 받으신 뒤 설법이 시작되었습니다. 법문은 대중을 깨우쳐주시는 상당법어(上堂法語)가 아니라 『육조단경』에 관한 내용으로 60여 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난 후 큰스님께서 저를 보시고는 “이놈 행자야, 오늘 뭐 좀 알겠드나?” 하시어 “예! 꼭 저를 위해 법문해 주시는 듯 했심더” 하니, “이놈 봐라, 뭐 내가 할 일 없어 니깐 놈을 위해 법문 했겠나? 대중을 위해서 했제. 그놈 참 건방지네!” 하셨던 기억입니다. 그 후 『육조단경』 강의가 끝났는지 다음 철부터는 상당법어 때마다 옛 조사스님들의 예화를 들고 여러 가지 스님들의 평을 덧붙여 큰스님께서 또 평을 하시는 법문을 하셨는데, 전혀 이해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상당법문을 끝내시고 백련암으로 올라오신 후 “행자야! 오늘 내 말 알겠드나?” 하시니 “캄캄해서 아무 말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하고 여쭈면 “그럼 그렇지! 니깐 놈이 뭘 알아들으려고!” 하시며 혀를 끌끌 차시고는 휑 돌아 당신 방으로 드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상당법문은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큰스님의 상당법문을 모아서 『본지풍광』을 펴냈습니다. 큰스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상당법문을 하면 흔히 ‘우리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말씀만 자주 하지 마시고,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알아들을 수 있는 법문을 해 주십시오.’ 하는 요청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나는 늘 맑은 하늘에 태양이 환히 비치는 것처럼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그런 법문을 했지 알아들을 수 없는 법문은 조금도 한 일이 없습니다. 만일 내 법문을 알아듣지 못했다면 그 사람의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운 것입니다.

 

귀 어두운 사람이 어떻게 해서든 귓병을 치유해 귀를 뚫을 작정은 하지 않고, 눈 어두운 사람이 무슨 수를 써서든 눈을 떠 물건을 바로 보도록 스스로 노력은 하지 않고, 귀 어두운 사람이 ‘내 귀에 들리게 해 달라’ 하고, 눈 어두운 사람이 ‘내 눈에 보이게 해 달라’며 자꾸 보채기만 하니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예전 큰스님들이 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스님의 도와 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를 위해서 해석해 주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긴다.’ 왜냐하면 화두를 해석하면 그 해석에 떨어져 영원히 깨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안을 해석해서는 영원히 깨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귀로 듣고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화두공부만 열심히 시킬 뿐이지 해설은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청을 하더라도 해설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법문을 확실히 알려면 눈 감고 귀 막고서는 안 됩니다. 눈을 번쩍 뜨고 귀를 활짝 열어 보고 들을 것 같으면 실지로 이 시방세계 그대로가 광명천지며 시방세계 이대로가 무진법문 아님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앉아서 들리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만 하느냐 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법문을 하는 귀착점은 어디인가?

 

모든 중생 개개인 누구나 영원한 생명 속에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영원한 생명 속에 무한한 능력을 가진 이것을 개척한다면 부처도 될 수 있고 조사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시방세계를 내 집같이 돌아다니며 일체중생을 위해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영원한 생명 속에 무한한 능력을 하루빨리 개발하려면 어떠한 방법을 써야 하는가? 화두를 자나 깨나 잊지 말고 부지런히 참구해서 화두를 바로 깨쳐야만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디로 회향해야 하는가? 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해서 바로 깨치는 여기로 모두 회향해서 영원한 생명 속에 무한한 능력을 하루빨리 개발합시다.”

 

일본의 유명한 선학자 야나기다 세이잔 교수는 간화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도 이래의 선의 공부는 여기에 이르기 위한 기나긴 모색의 과정이었다고 말해도 좋다. 선의 본질을 이루는 의식집중의 훈련은 화두에 대한 큰 의심의 응결과 그 타파라고 하는 간명직절한 두 단계로 통일되는 것이다. 그것은 북종적인 간심간정(看心看淨)과 남종적인 견성주의(見性主義)의 멋진 조화라고 볼 수도 있으며, 더욱 소급해 올라간다면 소승적인 번뇌대치(煩腦對治)의 수정(修定)과 대승적인 반야공관(般若空觀)의 비할 바 없는 통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성철 큰스님을 가르침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 간화선 공안 타파에 매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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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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