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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돈황 월아천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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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3 년 8 월 [통권 제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6,36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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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이나 세월이 흘렀습니다.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사리탑 건립이었습니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원효 연구로 잘 알려진 은정희 교수님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대학 교수님들과 교장 선생님들이 방학 중에 21일간 중국 석굴탐사를 하려 하는데 스님께서도 참석해주셨으면 합니다.”

 

사리탑을 모시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하고 생각이 많은 때에 초청해 주셔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대동석굴, 오대산 문수성지, 용문석굴, 공의석굴, 천수의 맥적산 석굴, 티벳의 라싸까지 다녀오는 여정이었습니다. 그 크고 많고 흔한 석굴들을 참배하면서 “석굴 중 방 하나만이라도 우리나라에 있다면 불자들이 얼마나 큰 신심을 가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수한 석굴들을 부러워했습니다. 무엇보다 1박 2일의 일정이었지만 라싸의 포탈라궁을 돌아보면서 역대 달라이라마를 2m가 넘는 금으로 조성해 모신 모습을 둘러보면서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함에 기가 질렸습니다.

 


 

 

 

그리고 벽면에 달라이 라마 마다 두 손을 펼쳐 찍은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장엄한 모습을 보면서 한국불교의 전통과는 사뭇 다른 티벳의 불교전통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던 기억입니다. 그때 저는 마음속으로 “포탈라궁을 일찍 보았더라면 베토벤의 ‘데드 마스크’ 처럼 큰스님 얼굴도 남기고 큰스님의 양 손바닥도 찍어놓고, 부처님의 족적이 세상에 널리 퍼져있듯이 큰스님의 양발 족적도 석고로 떠놓았어야 했는데…”하는 후회를 거듭거듭 했었습니다.

 

공의석굴 탐방을 갔을 때는 규모는 작았지만 그 석굴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자생한 백송(白松)들이 울울창창 자태를 뽐내고 있는 그 광경에 정말 숨이 멎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송이 세월만 좀 가면 천연기념물 감인데 온 산에 끝없이 한 아름 되는 듯한 백송이 끝없이 이어진 자생지를 목격한 것도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기회가 되어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해준 석굴탐사반 팀원들에게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었습니다.

 

그 후로 간다 간다 하면서 가지 못했던 돈황석굴에 최근 다녀왔습니다. 7월 10일 아침 6시 40분쯤 유원에 도착해 두 시간쯤 더 달려 저 멀리 모래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곧 돈황시였습니다. 멀건 죽 한 사발로 아침을 때우고 모래가 운다는 명사산으로 향했습니다. 도심에서 채 30분도 안 되게 달려 명사산에 도착했습니다. 옛날에는 낙타로만 명사산과 월아천을 둘러보았다고 했는데 지금은 사방이 탁 트인 15인승 차량도 월아천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명사산은 저 멀리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와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서 형성된 것입니다. 인간의 인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자연현상이 경이롭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유명한 모래산 속에 초승달 모양의 연못이 있고, 중수를 거듭한 4층의 중국식 기와지붕 건물이 한층 더 운치를 더하고 있으니 신비로웠습니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 그 옛날 경전을 구하기 위해, 부처님 진리를 깨치기 위해 인도로 떠나던 유학승들을 마음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맨발로 낮 12시 쯤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명사산 기슭의 모래밭 길을 걸어보기 시작했습니다.

 

100여m를 왔다 갔다 하는 걷기에 불과했지만 그 사이에 네덜란드인 에릭 쥐르허가 짓고 최연식 교수가 번역한 『불교의 중국정복』이라는 책을 떠올렸습니다. 이 책은 중국에서의 불교 수용과 변용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인도 불교가 4~50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어떻게 중국사상계와 민중에 굳건히 뿌리내리게 되는가 하는 과정을 기술한 학문서적입니다. 이 죽음의 길을 통해서 목숨을 걸고 불교전파를 위해 중국으로 중국으로 발걸음을 옮긴 무수한 발자국을 찾아보려니 나의 발바닥 밑의 모래가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죽음의 사막에서 목숨을 걸고 간혹 오아시스를 만나며 중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무수한 스님들의 고초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고생 끝에 중국에 젖어든 인도불교는 수와 당나라를 거치면서 8~9C에 이르면 인류 정신사에 큰 자랑인 선종(禪宗)이라는 불교의 금자탑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종문(宗門) 중에서 법제자가 많기로는 마조 대사가 제일이다. 88명의 법사가 천하에 넓게 퍼져서 불법을 선양하였으니 참으로 드문 일이고 훌륭한 모습이다. 그러나 정안종사는 수삼인 뿐이었으니 정안(正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위의 말씀은 황벽 스님의 법문이신데 큰스님께서 자주 인용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1,700공안집인 『경덕전등록』에 실린 조사스님들도 모두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정안을 갖춘 스님들은 아니라는 뜻으로, 간곡하게 황벽 스님의 법문을 인용하셨다 생각합니다.

 

명사산의 달아오르는 모래밭에서 큰스님께서 깨치신 불교 이해와 세상에 펼치신 불교 실천을 어떻게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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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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