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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음미하는 부처님 말씀]
극심하게 흔들릴 때 부르는 이름 -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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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학  /  2019 년 4 월 [통권 제72호]  /     /  작성일20-06-20 13:44  /   조회5,25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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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학 | 작가·자유기고가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세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용비어천가』 제2장의 첫 문장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아는 옛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일 겁니다. 단단한 문장입니다. 빼고 더할 것이 없다는 뜻에서 그렇다는 얘깁니다. 성공한 문장입니다. 속내가 빤히 내보이는 말을,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도 몰염치로 우세 당하지 않을 만하니, 그만 하면 성공이겠지요. 『용비어천가』의 125장 전체가 이 한 문장으로 버틴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모든 성취가 비유의 힘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고? 

 

『용비어천가』의 창작자들이 조선을 ‘뿌리 깊은 나무’에 비유한 건 명민한 선택이었습니다. ‘나무’라는 익숙하면서도 믿음직한 비유 대상으로, 자신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럴 듯한 얘기로 들리게 할 멍석을 마련한 것이지요. 용비어천가의 서사가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만큼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의 시각에서는 당연히 애처롭지요. 건국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일일이 중국의 고사에 빗대고 있으니까요. 물론 왕권을 절대시하여 권력을 마구 휘두르지 않고 문학적으로 설득하여 민심을 얻으려 한 노력은 높이 살 만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구질구질한 느낌마저 거두어지지는 않습니다. 그 번쇄함으로부터 간신히 벗어나게 하는 구원의 한 문장이 바로 “불휘 기픈 남…”으로 시작하는 제2장의 첫 문장 입니다. 이 문장이 없었더라면 『용비어천가』는 오늘날까지 빛을 보는 장수를 누리지 못 했을 것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리느니.” 

똑같이 순우리말인데도 옛 문장과 현대어로 바꾼 문장의 차이가 확연 합니다. 숫제 다른 문장으로 봐야 합니다. 본래의 문장이 지닌 시詩로서의 완결성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시는 형식과 내용, 표현과 의미,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해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니, 거부합니다. 문자 또는 음성 그 자체로 자재합니다. 제가 글의 시작에서 결례를 무릅쓰고 고문 그대로 옮긴 이유입니다. 그래도 ‘뿌리 깊은 나무’는 표기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거의 옛 문장과 포개집니다. ‘나무’의 살림살이에 예와 이제의 다름이 없는 까닭이겠지요.

 

뿌리 깊은 나무. 울림 참 좋은 말입니다. 지금은 전설이 된 한 잡지의 제호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1976년에 창간, 1980년에 제5공화국을 연 신군부에 의해 폐간되기까지 짧은 기간 동안 발행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미치는 잡지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드라마 제목으로도 쓰였었지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뿌리 깊은 나무’는 마치 하나의 단어처럼 우리에게 친근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비유적 의미일 것입니다. 그 본의는 큰 바람에도 줄기가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생존을 위협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겠지요. 이런 나무라면 가지 또한 무성할 터이니 많은 꽃이 피어 또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얘기여서 하나마나 한 말이기도 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릴 것’이라는 믿음은 결과주의적 사고의 한 전형입니다. ‘돈 많이 벌면 부자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어떻게 깊이 뿌리내렸는가’ 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다 아는 얘기입니다. 정녕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실은 흔들려야만, 잘 흔들려야만 깊이 뿌리 내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나무는 잘 흔들려야 뿌리가 깊어진다 

 

1987년 미국 애리조나의 사막 한 가운데에 거대한 온실 같은 구조물이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총 면적 약 1만 2,700㎡(약 3,800평) 규모로 인공의 작은 지구 생태계를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습니다. 이 안에 사막, 열대 우림, 사바나, 습지, 삼림, 농지는 물론 호수와 산호가 사는 바다까지 들여놓았습니다. 지구 생태계의 모든 요소를 통제 가능한 공간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1989년에 완공된 이 구조물의 이름은 바이오스피어 2Biosphere2였습니다. 지구를 바이오스피어1로 보고 이에 대응하는 인공 지구라는 의미에서 바이오스피어2로 명명한 것입니다.

 

 

인도 산치대탑 탑문의 조각 세부.

 

 

1991년, 과학자와 의사를 포함한 8명의 실험자들이 2년을 계획으로, 마치 다른 행성에 지구를 옮겨 놓은 것과 같은 바이오스피어2로 생존 실험에 들어갑니다. 먹을 것까지도 자급자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비장해 보이기조차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인공 지구가 짝퉁의 한계를 드러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산소의 농도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콘크리트가 다량의 산소를 흡수하는 한편, 식물들은 충분한 산소를 만들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유기물을 포함한 토양의 미생물도 산소 농도 저하에 큰 몫을 했습니다. 바닷물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은 턱없이 모자랐고 과도한 이산화탄소는 바닷물을 산성화 시켜 산호를 녹게 만들었습니다. 숲의 규모가 작아서 새들은 죽었습니다. 불개미는 늘어났지만 곤충은 사라졌습니다. 곤충이 사라지면서 식물들의 수정은 어려워졌습니다. 식량 생산량도 점차 줄어들었고 실험자들의 살가죽과 뼈는 가까워졌습니다. 실험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심신 모두 사막화되어 바이오스피어1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8명의 실험자를 2년 동안 유리 돔 속에 살게 하는 데 쓰인 돈 2억 달러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바이오스피어2 실험을 단순히 실패라고 보는 것은 단견입니다. 지구 생태계의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까요. 인드라망처럼 연결된 지구 생태계는 결코 시험관 속에 복제할 수 없고, 한정된 공간에 재현한 생태계조차도 통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그 배움의 핵심일 것입니다.

 

이제 이 글에서 바이오스피어2 얘기를 꺼낸 까닭을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바이오스피어2에 구현된 열대 우림의 나무들이 죽은 이유입니다. 바이오스피어2의 허파 역할을 할 나무들은 푸에르토리코와 아마존에서 옮겨온 것이었는데, 그 나무들이 죽은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연적인 바람이 주는 자극이 없어서 나무들이 적절히 뿌리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분석 결과였습니다. 잘 흔들리는 것. 그것은 실존적 호흡입니다.

 

다시 첫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잘 흔들렸기 때문에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굵은 줄기와 많은 열매만으로 뿌리 깊은 나무를 말해 왔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잘 흔들린 과거사였는데 말입니다. 잘 흔들리기 위해서는 행운도 따라 줘야 합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심한 바람을 만나 뿌리째 뽑힐 수도 있고, 부드럽게 흔들릴 조건이 아니어서 허리가 꺾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일생은 흔들림의 연속입니다. 출생, 성장, 교육, 결혼, 취직, 노쇠, 병, 죽음과 같은 삶의 굽이마다 크게 흔들립니다. 그것이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상의 매순간도 흔들림의 연속입니다. 알람 벨과 ‘1분만 더’를 다투며 흔들리고,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흔들리고, 지하철 빈자리 하나를 두고 곁눈질을 하며 흔들리고, 모처럼 가족 외식에서 메뉴판의 숫자 위에서 흔들리고, TV 리모컨 주도권을 가지고 흔들리면서 삽니다. 그래도 이 정도야 별 것 아니지요. 현실과 양심 사이, 감정과 이성 사이, 이익과 손해 사이에서 흔들릴 때는 한 보따리의 한숨과 탄식으로는 부족 합니다. 알 수 없는 전생 업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죽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속수무책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때가 있습니다. 시련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긍정심리학의 가르침 따위는 별 소용이 없습니다. 딱히 종교가 없는 사람도 하나님, 부처님을 찾습니다. 먼 조상까지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다고 안 될 일이 되고, 될 일이 안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숨이 쉬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갑니다. 차라리 다음날 아침 눈이 뜨지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은 시간도 지나가게 마련이고 또 어떻게든 살아가게 됩니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말입니다. 참으로 모질기도 한 것이 사람 목숨입니다.

 

세상살이는 흔들림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온갖 ‘업’이 충돌하는 이런 곳에서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범부가 아니겠지요. 그래서 저는 염불합니다. 잘 흔들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늘 의심하면서도, 늘 회의 하면서도 부르고 또 부릅니다. ‘나무아미타불.’

 

흔들리는 삶을 위한 부처님의 위로

 

부처님께서 만년에 영취산에 계실 때였습니다.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아들에 의한 역모였습니다. 태자 아사세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인 제바달다의 꼬임에 빠져 아버지 빈비사라왕을 유폐시켰습니다. 조금의 먹을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머니 위제희가 남편을 만나는 것만은 막지 않았습니다. 위제희 부인은 아들 몰래 우유에 이긴 밀가루를 꿀 바른 몸에 붙여 남편에게 먹였습니다. 이를 안 태자가 어머니마저 죽이려 했지만 월광이라는 대신과 기사라는 궁중 의사의 설득으로 칼을 내려놓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위제희 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탄식 또 탄식 말고는 없었겠지요. 마지막 힘을 모아서 부처님을 찾았습니다. 부처님께 간절히 청하기를 목련존자와 아난존자를 자신에게 보내 위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곧바로 목련존자와 아난존자를 보내는 한편 당신도 위제희 부인 앞에 나투셨습니다. 부처님은 본 위제희 부인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숙세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토록 나쁜 아들을 낳았을까요. 부처님께서는 또 어떤 인연으로 제바달다와 같은 사람과 친족이 되었습니까?”

 

이어서 위제희 부인은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며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에 부처님은 극락 셰계에 태어나는 16가지 관법을 설하십니다. 다음은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가르침으로 범부 가운데서도 최하의 인간들에게 건네는 부처님의 위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가르침입니다. 그저 이렇게 부르기만 하면 됩니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 부인에게 이르셨다.

“하품하생下品下生’ 하는 사람이란, 오역죄五逆罪와 십악十惡을 비롯한 온갖 악업을 일삼아서 그 죄의 과보로 마땅히 악도惡道에 떨어져 여러 겁 동안 끝없는 고통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목숨이 다할 때 선지식을 만나면 그 선지식이 여러모로 안위하여 주고 미묘한 가르침을 설하여 부처님을 생각하도록 일깨우느니라.

 

하지만 이 사람은 극심한 괴로움에 부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에 선지식은 ‘만약 부처님을 생각할 수 없다면 다만 아마타불을 부르도록 하라’고 다독여 이르느니라. 이리하여 그가 지극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그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10번만 부르면,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는 그 동안에 80억겁 동안 생사를 헤맨 죄업이 소멸되느니라.

 

마침내 목숨이 다할 때 그의 눈앞에 태양처럼 빛나는 황금 연꽃이 나타나니, 바로 그 순간 극락의 연꽃봉우리 속에 태어나느니라. 이후 12대겁이 지나면 연꽃이 피어나는데 이때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한없이 자비로운 음성으로 만물의 실상과 온갖 죄업을 소멸하는 가르침을 설하니, 이를 듣고 환희하는 바로 그 순간 보리심을 일으키느니라.

이렇게 극락에 태어나는 사람을 하품하생이라 이름하고, 하열한 범부의 관상법이라 일컫는 바 열여섯 번째 관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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